낙인이란 말이 있습니다. 벗어나기 어려운 부정적 평가를 가리킵니다. 질병과 관련해서는 주로 정신질환이 가혹한 낙인인 경우가 많습니다. 정확히는 정신질환이 아니지만 그와 같은 사회적 편견의 뉘앙스를 머금은 낙인이 바로 ‘간질병’입니다. 공식용어는 뇌전증epilepsy이지만 여전히 시중에서는 간질병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그가 저를 찾아온 이유는 간질병 때문이었습니다.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자신이 간질병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왔습니다. 유수의 대학병원에서 간질병 판정을 받고 그 자신은 물론 가족 모두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서구의학으로는 간질병 약을 복용하는 것이 유일한 치료라고 하는 말을 듣고 다른 길이 없을까, 알아보다가 지인 소개로 저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제 앞에 앉자마자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저 간질병 아니지요? 그렇죠?”


저는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간질병, 아닙니다!”


말의 규정이 얼마나 고약한 차꼬인 줄 알기 때문에 무조건 풀어주었습니다. 그는 나지막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발개진 얼굴을 쓰다듬었습니다.


그가 유달리 공포에 취약하게 태어났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은, 어린 시절부터 이런저런 공포·불안 요인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었다는 것입니다. 4살 무렵엔 동생 출산으로, 9살 무렵엔 연이은 조부모 초상으로 홀로 큰 집에 남겨져 공포를 심하게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8살, 11살 무렵 뚜렷한 승강기 공포증을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청소년기 따돌림을 당하면서부터는 타인의 시선을 예민하게 의식하게 될 때도 공포가 밀려들었습니다. 세상은 너무 큰데 자신이 한없이 작아진다는 이상감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공포는 이내 신체 증상을 동반했습니다. 목이나 팔다리에 나타나는 뒤틀림, 돌아감, 꼬임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어떤 경우는 팔이 떨어져 나간다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이런 것들에 근거해 간질병 판정이 내려진 듯합니다. 저는 이런 현상을 서구의학과는 달리 심신의 상호작용 이치로 차근차근 설명해주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팔이 뒤틀리고 목이 돌아가고 다리가 꼬일 때 어떻게 반응하나요?”


그가 대답했습니다.


“힘 빡 주죠. 막아야 하잖아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계속 막으면 심장이 뒤틀리고 몸통이 돌아가고 뇌 회로가 꼬일 겁니다.”


그는 깜짝 놀라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병이 오면, 생명은 반드시 신호를 보냅니다. 신호란 본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작디작은 에너지 활동입니다. 공포·불안이 병적 수준에 이를 때, 생명은 그것을 알리기 위해 목이나 팔다리 정도의 근육 이상을 일으킵니다. 더 크고 중요한 부위의 심각한 이상을 방지하려 함입니다. 서구의학은 이런 이치를 알지 못합니다. 무조건 증상을 억제합니다. 그렇게 상품화된 오류를 의료 대중이 답습하고 있습니다. 저는 덧붙여 말했습니다.


“팔이 뒤틀리고 목이 돌아가고 다리가 꼬일 때, 아, 내 안에 더 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거구나, 하고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점점 그는 제 말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여갔습니다. 그럴수록 그런 증상은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이쯤해서 그만 둘 수도 있는 일입니다. 아닙니다. 조금 더 나아가야 합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간질병, 무서워요? 싫어요?”


그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간질병이면 어떻고 또 아니면 어떻습니까. 그게 무슨 대수인가요. 그래요. 고개 둘을 넘었습니다.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자연스럽게, 욕구를 따라 다음 맥락으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연애 이야기였습니다.


늘 그렇듯 이런 상황에 처한 청춘에게는 두 가지 심리가 공존합니다. 연애에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이성, 그리고 연애에 두 귀를 쫑긋 세우는 감성. 하나는 공포, 하나는 그리움. 둘 사이, 화해가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에게는 어린 시절의 결핍 때문에, 뭐랄까 아주 사소한 인프라조차 깔려 있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가령 홀로 사는 방에 이성 친구가 들어온다, 몸에 손을 댄다, 이런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마음의 경직은 몸의 경직이고, 몸의 경직은 삶의 경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할 시점에 다다랐습니다. 어느 날 작심하고 그에게 담담히 말해주었습니다.


“간질병, 맞습니다.”


간질병은 뇌전증이 아닙니다. 인생 병입니다. 경직과 경련이 삶의 문제 한가운데서 유연하게 풀려 나아가는 것이 치유의 종착점이자 본령입니다.


아프든 건강하든 누구나 자기 삶의 문제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시험이든 면접이든 그가 칼 날 위에서 요동칠 때마다 제가 함께 했습니다. 그는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헛된 실패란 결코 없습니다. 비록 성에 차지는 않지만 세월이 흐를 만큼 흐른 뒤, 그는 지금 나름 유연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혹 또 다른 삶을 꿈꾼다면, 또 그렇게 경직을 직면하고 나아갈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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