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처음 찾아온 것은 자신의 심리적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폭력은 청소년기 그의 기억 전반을 어둡게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 선명한 얼룩은, 남편과 시부모에게 학대당하던 그의 어머니가 분노를 그에게 드러내면서 퍼부었던 욕설이었습니다. 이 상처는 그에게 변형된 방어기제로 발현되었습니다. 내부에서 날뛰는 폭력성을 밖으로 내보낼 때는 놀림·깔봄·비아냥거림으로 표현했습니다. 토론에서 이겨 상대방에게 모욕 주는 상상을 되풀이하면서 날카로운 논리적 문장 따위를 암기하곤 했습니다. 그럴수록 내면의 평화는 깨지고 사회생활은 뒤틀렸습니다. 몇 차례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치료 받아야겠다는 결론을 황급히 내렸을 때, 우연히 저를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숙의를 진행하는 동안, 필요한 요법으로 기억과 격정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아갔습니다. 그런 부분들이 정리되면서 이야기는 원 가족에서 점차 배우자로 넘어갔습니다. 그의 배우자가 그를 대하는 방식은 그가 드러내는 방어기제와 흡사했습니다. 목소리 등 사소한 인신의 문제를 빌미로 좀 더 야비하게 조롱하는 습관이 있지만 본질이 같아 보였습니다. 아마도 그에게 배우자의 그런 측면이 병적 끌림으로 작용하였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배우자는 출신지역이나 학력 따위 문제에서 드러나는 열등감을, 변형된 공격으로 위장해 사사건건 괴롭혔습니다. 저는 배우자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말했습니다.


“제가 드릴 말씀이 무엇인지 아마 짐작하실 것입니다. 다만, 일방적 이야기이므로 충분한 근거로 삼을 수 없습니다. 배우자에게 기회를 주시지요. 함께 오세요.”


다음 주, 부부가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에게 수 주 동안 들은 이야기를 백지로 돌리고 투명한 마음으로 배우자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30분 남짓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그가 말한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에너지 결을 배우자에게서 감지했습니다. 그것은 ‘옳지 않다.’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와 함께 두면 안 된다.’ 문제였습니다. 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그의 배우자에게는 천적의 에너지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제가 저녁식사를 제안했습니다. 식사 도중, 배우자의 직속상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사적인 일이라 하면서도 배우자는 저와 그를 남겨두고 서둘러 자리를 떴습니다. 저는 그 뒷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제가 무슨 말씀 더 드려야 할까요?”


그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간호사가 얼굴을 들이밀면서 ‘예약 잡지 않은 분이 무조건 뵙겠다고 하시는데 어쩌죠?’ 합니다. 제가 직감으로 느끼며 ‘괜찮다’ 하자, 말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활짝 웃으며 들어섰습니다. 그의 손에는 커다란 꽃다발이 들려 있었습니다.


“법원에서 오는 길입니다. 감사드려요.”


그 뒤, 그는 자신의 어머니·친구·선배를 제게 소개해, 병과 삶의 문제를 숙의하도록 했습니다. 10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잊을 만하면 연락해옵니다. 밥도 먹고, 술도 한 잔 합니다. 물론 더 이상 이혼 이야기 따위를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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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예약을 한 뒤, 다시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상담 가기 전에, 도움이 될 만한 자신의 이야기를 미리 적어 보내고 싶다는 취지를 전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문의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배우자는 그와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맥락을 고려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줄 몰랐습니다.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매사를 판단해 걸핏하면 사표 내고, 막말 하고, 이혼하자 달려들었습니다. 자기 신뢰가 부족해 사소한 데서 자존심을 내걸곤 했습니다. 매사 부정적이어서 불평불만을 일삼았습니다. 자주 격분에 빠져들어 조절 불가능한 상태로 날뛰었습니다. 급기야 만취된 어느 날, 귀신과 대화한다며 기괴한 광경을 연출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인내를 가지고 여러 차례 진지한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부부상담도 받았습니다. 정신과 치료도 받았습니다. 매번 나온 결론은 이혼이었습니다.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라고 해서 무슨 마법을 부리는 게 아니니, 뾰족 수가 있을 리 없습니다. 그를 공감·지지하는 정서를 바탕으로 해서, 다시 한 번 대화·협상의 기본 원리를 확인하고, 다른 데서는 쉽게 들어보지 못했을 법한 몇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리스 고전 수사법. 남녀 성차를 고려한 대화법. 전체 맥락을 잡고 제압하는 대화법. 최후 발언과 문맥 차단을 통한 대화 정리법. 정신장애 요소를 지닌 성인에게 하는 아동 상대 대화법.


무엇보다 제가 그에게 재삼 강조했던 것은 맨 마지막 대화법입니다. 모든 정신장애에는 발달장애가 기본으로 깔려 있다는 정신의학적 전제에 입각한 것으로서 한 가지 원칙, 세 가지 규칙만 지키면 됩니다. 한 가지 원칙: 함께 내린 결론은 반드시 관철한다. 3가지 규칙: 2인칭 어법, 금지 어법, 두괄식 어법을 금한다. 그리고 팁: 관계에 기대게 하지 않는다. 팁의 팁: 호칭은 관계 호칭 아닌 고유명을 쓴다.


배운 대로 되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법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진심으로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선생님이 함께 해주신 덕분에 드디어 갈라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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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함을 말할 때, 우리가 대부분 연상하는 의미는 비상함입니다. 의자醫者인 제 연상은 다릅니다. 비범하다는 말을 들으면, 어딘가 비정상이겠구나, 그러니까 아프겠구나, 생각합니다. 비대칭의 대칭이 역동적 평형을 이루는 생명 현상을 염두에 두고 판단하면, 비범하다는 것은 어딘가 치우쳤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치우침이 곧 병입니다. 이런 이치를 이해할 수 없는 서양의학은 많은 경우, 병의 본령을 간파하지 못합니다.


거의 10년 다 돼가는 기억 하나가 문득 떠오릅니다. 어떤 작가와 우울장애 때문에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 상태에 대하여 누구보다 예민한 느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울장애라는 병명만을 말하고 약 처방을 해줄 뿐, 어떤 양의사도 그가 지닌 우울장애의 기작과 특성을 명확히 이야기해주지 않았습니다. 그의 남다른 감수성은 이 점을 용납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리저리 길을 찾다가, 웬 변방 한의사가 우울증 상담 치료한다는 말을 듣고 찾아온 것입니다. 그는 작가답게 실팍한 묘사들을 통해 살아온 이야기와 마음의 풍경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최근 삶은 신산했습니다. 잘못된 결혼과 경제적 파탄에 이은 이혼까지 지옥 같은 여정이었습니다. 제2의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홀로 싸운 나날들도 혹독하였습니다. 게다가 새로운 일에서 거둔 성공은 또 다른 질곡을 몰고 왔습니다. 핍박과 송사에 휘말리면서, 그의 내면은 급격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뜨르르한 대형병원 정신과에서 상담(?)하고 약을 먹었습니다. 이렇다 할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 시간 남짓 그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이야기를 일단 매듭지으며, 그는 맑은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눈에 대고 딱 한 마디 했습니다.


“평범함의 부재!”


제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중심시각을 확 풀어버렸습니다. 극히 기민하게 내면으로 잠겨들었습니다. 다음 순간 그는 손뼉을 딱! 하고 쳤습니다.


“정확하시네요!”


그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삶, 그의 사유, 그의 글, 모두가 그에게서 사라진 평범함을 그리워한다, 증언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왜 양의사들이 그 동안 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는지 의아해했습니다. 사실,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입니다. 서양의학에는 이런 어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의학 너머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평범하지 못하다는 것은 평범하지 않다, 그러니까 비범하다는 것과 다릅니다. 평범하지 못하다는 것은, 평범함에 간직된 건강의 진실을 전제하고 거기에 이르지 못하였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평범함에 간직된 건강의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양극단의 기계적 교차가 아닌, 다양한 스펙트럼의 역동적 중도中道가 끊임없이 흐르는 상태입니다. 중도의 역동성은 화쟁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화쟁은 곡진한 소통 없으면 가능하지 않습니다. 곡진한 소통은 평등을 전제합니다. 평등은 평범함에 터합니다. 평범함은 죽어도 지켜야 하는 무엇, 죽어도 버려야 하는 무엇을 지니지 않기에 언제나 변화를 받아 안는 삶의 기조입니다. 언제나 변화를 받아 안는 삶의 기조는 다름 아닌 무상無常의 진실에 대한 깨달음과 맞닿아 있습니다. 무상의 세계에서 평범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그 진실을 깨닫는 것이 관건입니다. 어쩌면 바로 이 깨달음만이 유일한 비범함일지 모릅니다.


그가 그런 삶을 얼마나 어떻게 구현해갈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저 그를 신뢰할 따름입니다. 그는 그만큼 영특한 사람이니 말입니다. 하여, 그는 자주 제 기억을 일깨웁니다. 지금 그가 어찌 사는지, 안다고 해서 궁금증이 가실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이름 석 자, 인터넷 검색만 하면 근황이 쫙 뜨겠지만, 삼가는 것이, 그와 제가 지켜야 할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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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저와 제 삶을 이렇게 묘사하곤 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조건에 휩쓸리는 바람에 평범함과 비범함 사이를 넘나들 수 있었다.’ 제가 휩쓸린 비범함은 거의 대부분 증폭된 슬픔과 아픔이었습니다. 증폭된 슬픔과 아픔이 제게 일깨운 삶의 진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육중한 것이었습니다. 그 육중함 때문에 잃어버린 경쾌한 평범함, 실로 무량한 아쉬움이었습니다. 그 무량한 아쉬움을 다독이며, 마음 아픈 사람들의 동무로 살고 있습니다. 저의 이런 각성과 함께 했기 때문에 경쾌한 평범함으로 복귀할 수 있었던 한 청년이 있습니다.


그는 오로지 1등으로 점철된 비범한 시간 위에 군림했습니다. 켜켜이 쟁여진 1등의 삶이 단 한 순간에 무너졌을 때, 그의 이름은 우울증이었습니다. 우울증으로 저를 찾아왔을 때, 그가 한 말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였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1등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그를 이런 황폐함으로 내몬 힘은 대체 무엇일까요?


그의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제가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단순한 죄책감이 아닙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 숨결 하나하나가 어머니의 작의를 따라 빚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코 낯선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풍경입니다. 똑같은 어머니들인데 딱 이 지점에서는 달리 생각합니다. ‘내 새끼는 달라.’ 자기 아이 만큼은 특별하면서도 건강하다는 근거 없는 믿음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여러 친족 가운데 그의 가족은 유난히 학력에서 돋보였습니다. 특히 그는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 대학원 석·박사 통합과정을 수석 입학했으니, 그에게 거는 친족의 기대는 더 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그가 우울증으로 휴학하기 전까지 친족의 공부 판단 기준은 단연 그였습니다. 휴학 이후 그 기준은 의전 다니는 사촌에게로 넘어갔습니다. 그는 도리어 비교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세상입니다.


그와 삶다운 삶을 숙의한 2년 가까운 나날들, 지금 돌아보면 참으로 폐허에 불쑥불쑥 피어난 망초 꽃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상상해보십시오. 초로의 이단 한의사와 우울증에 던져진 젊은 수재가 허름한 변방 구석에 마주앉아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풍경을 말입니다. 쓸쓸함을 넘어 어쩐지 궁상맞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거기가 바로 향 맑은 평범함의 지성소였습니다.


그의 정서와 가족의 이해가 어느 정도 안정 상태로 접어들었을 때, 우리는 드디어 평범한 삶의 길을 모색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한테는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바로 공무원 그것이었습니다. 의외로(?) 반응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긴 망설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곧 바로 시험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수험 공부를 하면서 그림도 그렸습니다. 시간이 흘러 때가 되면 그림으로 봉사활동 하는 것이 꿈이라고 그가 말했습니다. 공유하면서도 긴장을 느끼는 삶의 태도 때문에 어머니와 이따금 부딪치기도 하지만 대체로 좋은 흐름을 탈 무렵 서서히 숙의를 마무리했습니다. 저는 그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습니다. 때때로 그가 궁금해지기는 하겠지요. 그 궁금증도 저와 그의 평범한 삶만큼이나 평범한 수준에 머무를 것이기에, 훗날 오가다 혹 만나면 반갑게 안부 묻는 기대 정도로 남겨두겠습니다.


“별일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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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인연을 맺고 가꾸는 일에 표준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더없이 아름답게 만나 정성을 기울여도 ‘부잣집 업 나가듯’ 사라지는 인연이 있습니다.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무심코 지나치다가 나중에 천하 인연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 제게 왔을 때, 그가 시종 짓고 있었던 표정만으로 생각한다면 뭔가 처음부터 어긋난 만남이 틀림없었습니다. 첫날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후로도 네 번은 먼 산보고, 졸고, 동문서답하고, 몸 꼬고·······도대체 자신이 여기 왜 오는지 모르겠다는 자세로 일관했습니다.


여섯 번째 날, 그는 벼락 맞은 듯 돌연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그는 그 때까지 제가 내준 글쓰기 같은 과제들을 마지못해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자신의 선입견 너머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는 능동적·적극적으로 숙의에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겪는 고통은 자신과 타인의 경계 설정이 잘 되지 않는 데서 왔습니다. 영유아기 전후 엄마와 맺는 애착관계 형성에 작지 않은 단절이 있었습니다. 닿음에서 느끼는 일치감·친밀감, 떨어짐에서 느끼는 단절감·소외감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지 못하여 감정 기복이 심했습니다. 너무 가까워서 무경계인 듯 느껴지는 상황도, 멀찌막이 떨어져 소통 없이 냉대당하는 상황도 못 견뎌했습니다. 전자는 형이, 후자는 아버지가 대상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중재적 위치에 있기는 했지만, 스스로 약하다고 느꼈습니다. 그가 방어기제로 작동시킨 것은 자해였습니다.


저는 과제로 그에게 글쓰기를 제시했습니다. 데면데면 글을 쓰다가 어느 구비에서 홀연히 들이닥치는 자각이 있었습니다. 격분의 언어를 넘어, 자해를 넘어, 분노가 몸을 통해 조절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 것입니다. 격분이 일으키는 폭력적 언어 대신 분노를 표현하는 일상어가 가능해졌습니다. 자해 행위도 멈추었습니다. 형과도 아버지와도 화해했습니다.


12번째 숙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전 협의 없이 저와 그는 숙의 종결 의견에서 일치를 보았습니다. 이런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몇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엿한 의대생이 되어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당당한 자신감이 온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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