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진행되던 지난 여름

썩어가는 나무 등걸과 둥치

후미진 땅과 그늘진 자리에

작고 작은 생명들이 솟아나

내 영혼을 온통 사로잡았다

소미 하느님 신이神茸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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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해도 능력보다 일이 잘 되는 사람이 있고 잘 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 판단 기준이 모호함에도 우리 경험이 먼저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게 사실입니다. 중요한 인생사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깊은 우울장애에 빠져 허덕이는 사람 하나가 반쯤 넋 나간 얼굴을 하고 들어섰습니다.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그가 매우 똑똑하고 육감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람과 삶이 이렇게 서로 어긋나기도 하는구나, 젊은 날 저 자신에게 품었던 상념을 문득 떠올렸습니다.


그는 10살이 채 못 되어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유난히 아버지를 따랐던 그에게는 형언하기 어려운 충격이었습니다. 이후 그의 삶은 그의 똑똑함과 무관하게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뛰어난 그의 육감은 늘 좋지 않는 것에만 적중했습니다. 그의 이런 삶에 어머니는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습니다. 형제자매 또한 어려운 일이 터지면 감내하며 살라고 강권하는 선에서나 개입했습니다. 그를 가장 잔혹한 질곡으로 몰아넣은 것은 사기결혼이었습니다. 배우자의 가족은 의도적으로 그를 속이고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중증 정신장애 상태에 있는 사람과 결혼시켰습니다. 여기서 파생된 수많은 불행과 대결하느라 그의 인생 황금기가 다 날아갔습니다. 어느 정도 수습은 했지만 자신과 삶 자체를 향한 우울감은 갈수록 짙어졌습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그가 마지막으로 지니고 있는 소원 하나마저 물거품이 되겠다 싶어 저를 찾은 것입니다. 그가 간절한 눈빛으로 제게 말했습니다.


"제 소원은 세상 어둠을 밝음으로 바꾸는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어둠 보는 눈이 너무 밝아서 아프디아픈 삶을 살아온 그의 소원은 과연 이루어질까요? 다음 숙의를 예약하고 여느 때처럼 나간 어느 날부터 그가 홀연히 소식을 끊었습니다. 만일 지금 세상 어둠 하나가 밝은 하나로 바뀌고 있다면 거기 그가 있는 것은 아닐까, 가끔 그를 떠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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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원 접수대에 세월호 기억 물품들을 놓아두고 있다. 어떤 분이 내가 세월호 리본을 목걸이와 스마트폰 고리에 달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어디서 구했느냐 묻기에 광화문 가서 몇 개 가져온 것이다. 세 가지 반응이 나왔다.


고맙다며 가져가 달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누가 가랬나, 여행가다 죽은 걸, 뭐 어쩌라고 기억 운운이야, 하는 사람이 있다. 아유, 원장님, 세월호에 신경 많이 쓰시는구나, 죽은 애들이 제일 불쌍하지 뭐야, 하는 사람이 있다.


누구든 나름 생각하고, 그 생각 나름으로 산다. 인연 따라 가는 것이다. 그 나름이라는 것이, 많은 경우 자기 잘못을 눙치고 지나가는 도구로 악용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 우리다. 그럼에도 그 알량한 나름을 바꾸지 않는다.


한평생 배우며 산다는 말을 쉽게 하지만 대부분 거짓말이다. 자기 확신을 강화하는 정보를 쟁여갈 따름이다. 박근혜 파면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은 기존의 잘못된 생각을 돌이키지 않았다. 오히려 더더욱 광신적이 되었다.


인간은 자기성찰의 축을 본성에 지닌다. 어떤 계기에 자아비대증 환자 무리가 나타나 그 축을 뽑아버렸다. 그들이 감염시킨 인류가 수탈문명을 일으켜 오늘에 이르렀다. 또 하나의 파멸이자 마지막일지 모를 파멸이 다가온다.


파멸을 개벽으로 전복하는 길은 오직 하나다. 소미한 존재에 소미하게 스며드는 사랑小微沁心. 누가 소미한 존재인가. 세월호 아이들이다. 누가 소미하게 스며드는가. 바로 나며 너다. 성찰의 축을 당장 복원한다. 내일은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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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09-19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옆에 앉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렸어요..
주식 이야기를 하더니, 문재앙 이러면서.. 어찌나 화가 나고 어이없던지
본인 스스로와 그 자식들이 진정 이명박근혜 밑에서 살고 싶은건지..

이들에게 우리의 추운 겨울 광화문에서의 외침은 사치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bari_che 2017-09-19 17:30   좋아요 1 | URL
주식 얘기 할 정도면 저들은 의도적 무지를 장착한 자본기계입니다. 공동체를 파멸시킬 병기죠. 저들이 야차의 심장을 지녔듯 우리도 오연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부디 흔쾌히 진욕하는 온기 잃지 마시기를!

^^요즘, 건강은 괜찮으신지요.
 


인간에게 혼인이란 무엇일까요? 혼인과 사랑에는 함수관계가 존재할까요? 일부일처제라는 보편 조건이 언제 어떻게 왜 만들어졌을까요? 세상의 어떤 고전도 정답을 주지 못하기에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렇듯 어려운 주제를 가지고 아주 특별한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한 사람을 사랑해서 결혼했고, 나름 행복하게 살다가 어느 날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른 사람 또한 이미 결혼한 사람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각자 가정에 불만이 없습니다. 아이도 있습니다. 배우자에게 염증을 일으킨 것도 아닙니다. 우연인 듯 필연으로 만나 처음엔 선선한 친구였다가 이내 열렬한 연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알면 알수록 좋아집니다. 어찌 할까요?


사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마음치료를 내건 의자한테 오기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딱히 그가 자신으로 하여금 바람피우게 하는 어떤 정신적 문제가 있는지 의문이 들어서 찾아온 것도 아닙니다. 저는 그의 첫인상에서 풍기는 담담한 당당함에 좋은 예후를 느꼈습니다. 말하자면 어떤 선택을 하든 홀랑 말아먹지는 않을, 어떤 자기 생의 종자신뢰 같은 것을 지닌 사람으로 보였다는 것입니다. 그가 주눅 들지도 않고 야비하지도 않으니 제가 할 말은 오히려 세계 진실의 모호성, 그러니까 비대칭의 대칭을 정색하고 드러내는 기본만으로도 족했습니다.


그의 명민한 얼굴이 지금도 눈에 어립니다. 그가 턱 받치고 톡톡 던진 질문도 귀에 생생합니다. 그때의 그보다 오늘의 그가 덜 행복하리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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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별을 헤며 장엄을 말한다. 광대무변의 장엄을 부인하는 자 누군가. 그 광대무변의 장엄이 우리네 구체적인 삶에 얼마나 영향을 줄까.


장내 세균을 헤며 장엄을 말하지는 않는다. 소미의 장엄을 인정하는 자 누군가. 그 소미한 생명들은 우리네 삶에 실로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은하계 수천억 모여 우주 하나 된다는 사실을 무시해서 우울증에 걸리지는 않는다. 장내세균이 정서를 결정하는 요인이라는 사실을 무시하면 우울증에 걸린다.


엄마가 북극성의 빛이 고려 때 출발한 것인 줄 몰라서 자폐아가 태어나는 경우란 없다. 엄마가 장내세균 상태를 몰라서 자폐아가 태어나는 경우는 엄연히 있다.


대체 무엇이 장엄한가. 무엇이 대관절 장엄인가. 자아비대증에 걸린 인간은 큰 장엄만 장엄이라 한다. 작은 장엄을 감각하는 것이 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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