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토피입니다.”
그는 자기 존재를 그렇게 명명했습니다.
“저는 스테로이드로 살았습니다.”
그는 자기 인생을 그렇게 규정했습니다.
아토피는 재앙에 육박하는 피부질환입니다. 재앙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것은 아토피 때문에 삶 전반이 무너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삶의 전반을 무너뜨릴 만큼 치료가 쉽지 않은 까닭이 있습니다. 아토피는 단순한 피부질환이 아닙니다. 아토피는 소화기관, 특히 장의 병리상태. 더 나아가 정신의 병리상태와 직결됩니다. 사실 생명 진화의 이치로 따지면 피부가 첫째 ‘뇌’, 장이 둘째 ‘뇌’, 뇌는 맨 나중 ‘뇌’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자아는 피부입니다.
그가 자신을 아토피라고 명명한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얼마나 절실하고 절박한 문제였는지, 제가 그에게 디디에 앙지외의 『피부 자아』라는 책을 보여주자 책 제목만 보고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진실을 알 리 없는 통속한 의료인과 부모가 그에게 제시한 치료는 시종일관 그의 자아와 인격을 무시하고 피부 밖에서 틀어막기만 하는 폭력적·유기遺棄적 방식이었으니 말입니다.
통속한 의료인과 부모를 등에 업은 스테로이드는 그의 피부를 속였고 장을 소외시켰으며 정신을 망가뜨렸습니다. 비싼 스테로이드 사 나르는 일만을 자랑으로 여긴 아버지는 그에게서 사랑, 신뢰, 기대 따위를 죄다 거두어버렸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는 도구적 가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상호소통을 철저히 차단했습니다. ‘씻지 않으니 그 모양이지.’ 따위의 일방적 모욕으로 결정적 길목을 지켰습니다. 긁으면 야단을 쳤습니다. 힘들다 말하면 격분을 발했습니다. 아마도 ‘버렸다’는 말이 가장 핍진한 표현일 것입니다.
버려진 자가 겪는 백전백패의 삶은 곳곳을 파고들었습니다. 도저히 숨 쉬고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어둠의 감정 끄트머리에는 ‘죽어야 한다.’가 도사리고 있었지만 죽음의 그림자만 어른거려도 와락 공포가 밀려들었습니다. 눈앞에 아무도 없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홀로 잠자리에 누우면 도저히 눈을 감을 수 없었습니다. 마침 좋은 사람이 곁에 있어서 도망치듯 혼인했습니다.
배우자 또한 구세주가 아니었음은 물론입니다. 그걸 바라고 한 혼인은 아니었지만 배우자와도 허다한 충돌을 일으켰습니다. 의지할수록 원망이 느는 그, 보듬어 안을수록 단단한 벽을 느끼는 배우자,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연유산을 겪으면서 부부는 더욱 피폐해져갔습니다. 공격도 방어도 이루어지지 않고 한없이 움츠러드는 극한 상황에 이르자 더는 안 되겠다 싶어 새로운 길을 찾기로 하고 저를 찾은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하다가 우는 것인지 울다가 사이사이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의 울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흐느낌이었습니다. 제가 어느 순간 톡 하고 숨통을 틔워주었습니다.
“숨죽이지 말고 엉엉 소리 내어 우세요.”
그 말 듣기를 한평생 기다려온 사람처럼 지체 없이 그는 통곡의 폭포 아래로 뛰어내렸습니다. 통곡을 들으며 특히나 가슴 아팠던 것은 그의 울음소리 속에는 고통에 겨운 신음이 뒤엉켜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형언할 수 없는 설움과 응어리를 머금은 그 소리는 엉엉 소리 사이를 톱으로 썰 듯 비집고 나와 제 억장을 무너뜨렸습니다. 화장지 박스를 끌어안고 한참 울더니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그가 말했습니다.
“단 한 번도 소리 내어 울어본 적이 없습니다.”
긁어도 안 되고, 힘들다 말해도 안 되는 상황에서 어찌 소리 내어 울 수 있었겠습니까. 통곡할 수 없어서 악화된 것은 아토피만이 아니었습니다. 우울증도 무저갱으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흐느낄 수밖에 없었던 처지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여 애도함으로써 거기 사로잡혔던 옛 자아와 결별해야 합니다. 30여 년 저주로 들러붙어 있던 흐느끼는 자아를 베고서야 새 아침을 맞을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숙의를 마치고 저와 그는 밥을 먹으러 근처 식당으로 갔습니다. 음식을 시켜 놓고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불쑥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사실은 불쑥이 아니라 통곡 뒤에 따라오는 해소解消 제의ritual 같은 것입니다. 제가 그 제의에 동참하고자 제물 하나를 준비했습니다.
“나를 아버지라 가정하고, 하고 싶은 행동을 해보세요.”
그의 눈빛에서 파란 불꽃이 일었습니다. 전광석화로 제 손을 잡고 끌어당겼습니다. 다음 찰나 제 손가락 두 개가 그의 입 속에 있었습니다. 날카로운 통증이 솟아오르나 싶더니 이내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져 내렸습니다. 저는 사부작 소리조차 내지 않고 냅킨으로 그 피를 닦아냈습니다. 여전히 그의 눈에서는 파란 불꽃이 일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그는 밴드 한 통을 사들고 나타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그를 한 번도 안아준 적이 없었습니다. 그가 아토피 치료 받는 기나긴 과정에서도 아버지는 늘 부재의 존재였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한恨과 깊은 관련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이를테면 좌절한 수재였습니다. 평생 그 한을 자식을 통해 보상받고자 골몰했습니다. 물론 이루어질 수 없는 헛된 집착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우울 속으로 발맘발맘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진실은 비대칭의 대칭이니 말입니다.
숙의를 마치고 그와 저는 밥을 함께 먹은 다음 노래방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단 한 곡의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와도 그만 가도 그만 방랑의 길은 먼데
충청도 아줌마가 한사코 길을 막네.
주안상 하나 놓고 마주앉은 사람아.
술이나 따르면서, 따르면서 네 설움 내 설움을 엮어나 보자.
오기택의 <충청도 아줌마>입니다. 노래를 끝내고 저는 제 무섭고 아프고 슬픈 이야기를 자분자분 그에게 해주었습니다. 꼭 같은 무서움과 아픔, 그리고 슬픔으로 그와 저는 부둥켜안았습니다. 함께 대성통곡했습니다. 그도 저도 그 날 온전히 죽어 온전히 새로 태어났습니다.
그와 저는 지금도 여전히 생사의 동지입니다. 언제라도 노래방에 가면 그와 저는 함께 노래할 것입니다.
“네 설움 내 설움을 엮어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