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겨울 헤세 4계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마인드큐브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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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소중한 계절이다. 특히 요즘의 겨울은.

빛마저 미세먼지가 집어삼킨 풍경을 보고 있자니 겨울의 청아한 메마름을 느낄 수가 없다.

늙은 겨울날은 비웃듯이 눈을 찌뿌리며

빛을 좀 더 아낀다. - 잿빛 겨울날, 중에서

 

헤세의 계절 시리즈 중 가을을 먼저 읽었었다. 그 맛에 반해 사계절을 모두 준비해놓고 계절별로 찾아 읽기로 맘먹고 2020년 첫 시작을 헤세의 겨울로 열었다. 이 책은 헤세의 수많은 작품들 중 겨울과 관련된 내용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그의 평탄하지 못했던 삶은 그의 글들의 자양분이 되어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게 해 주었다. 그는 그 어떤 작가보다 자연을 사랑했고 동서양의 조화를 간절히 원했으며 우리의 삶에 대한 해답을 자연에서 찾으려 했다. 그가 그린 그림을 보고 있으면 복잡해진 마음이 가라앉는다. 한편으로는 붓을 들고 싶어지기도 한다. 수채화 물감을 흩뿌려 놓기만 해도 겨울과 지금의 내 심정을 담을 수 있을 것만 같다.

 

헤세의 겨울은 전쟁을 관통한 울음과도 같다. 눈이 마른 핏빛을 덮는다. 얼어버린 대지와 굳어버린 잿빛 공기 속의 측은함에 겨울은 제법 쓸쓸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봄의 기운은 제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희망을 느끼게 한다. 얼음이 녹는 소리에서 즐거운 기운을, 가느다란 햇볕이 졸고 있는 대지를 깨우는 소리에도 귀가 기울여질 수밖에 없음을 체감한다. 그의 말대로 "모든 죽음의 보상은 새로운 탄생"임을 공감하게 된다.

 

난로와의 대화는 색다른 접근이었다. 난로 자신은 단순한 기념물이라고 말한다. 기능적 측면으로 만 본다면 난로는 단순히 열을 내고 타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어디 인간에겐 그것뿐이랴.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길 좋아하는 유일한 존재가 인간이기에 우리는 난로 하나에서도 위대한 추억거리들을 쏟아낼 수 있는 것이다.

 

헤세가 해마다 맞이한 성탄절 풍경도 느낄 수 있다. 유년시절을 빠져나온 뒤의 성탄절은 전쟁의 희생자에 대한 안타까움과 인간적 가치를 당부하는 마음으로 더 채워져 있다. 물론 유년시절의 그리움도 빼놓지 않고 있다. 성탄절 선물로 받은 나비표본을 보며 그는 황홀함에 빠져든다. 다섯 쪽에 이르는 글들을 읽으며 아픈 그에게 죽은 나비의 표본이 영원한 생명의 위안이었음을 어림짐작할 뿐이지만.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한때 바이올린이나 책, 장난감, 스케이트가 지녔던 광채와 매력 같은 것은 더 이상 없다. 좋은 담배가 담긴 상자 세 개가 있었는데 그것은 위로가 되었고, 포도주와 코냑도 조금 있어서 그것으로 나는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p. 107

 

그의 젊은 시절 고뇌가 지금 내겐 고마운 것들이다.

네가 젊었던 때가 마지막으로 언제였나 하는 의문이.-p40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가 내 정체성에 대한 해답으로 돌아왔다. 모든 순간이 나였음을. 겨울은 정말로 사색을 통해 내적 성장을 이루기에 충만한 계절이다. 아직 눈다운 눈이 내리지 않고 있다. 눈 쌓인 도심의 풍경을 바라보는 일들이 전부일 테지만 겨울 짐을 나눠지고 있는 나무와 대지가 보고 싶어진다.

 

그의 글 중 늑대라는 글이 참 인상적이었다. 혹한의 추위에 굶주린 늑대들이 민가로 내려왔다 죽임을 당하는 장면인데 늑대의 인생이 이렇게도 가여울 수가. 반대의 입장에 서면 불쌍하지 않은 것들이 없다.

그의 깨지고 망가진 몸뚱이를 끌고 그들은 장크트임머 마을로 내려갔다.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 술과 커피를 마 시면서 즐거워했다. 그들은 노래도 하고, 욕을 퍼붓기도 했다. 눈 내린 삼림이나 찬란한 고원을 바라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샤세랄 산 위에 떠오른 달의 희미한 달빛이 그들이 쏘아 날아가던 총탄과 수정 같은 눈 위에 부딪쳐서, 그리고 맞아 죽은 늑대의 망가진 눈에 부딪쳐서 부서지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늑대, 중에서

 

겨울은 축척과 내적 성장으로 또 다른 나를 예비하는 계절이라는 추천사를 지인들에게 전하며

먹을거리로 축척했다가는 내장비만으로 힘들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ㅋㅋ

아무튼 헤세의 겨울로 인해 올 한 해도 나의 내면을 충만하게 살찌워가고 있는듯하다.

 

봄이 시작되면 헤세의 봄을 펼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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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서점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에드 맥베인.로런스 블록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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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은 아니었지만 크리스마스의 동화 같은 분위기는 즐겼었다. 산타 할아버지, 루돌프, 크리스마스트리, 선물, 캐럴, 흰 눈 등은 기분을 들뜨고 설레게 한다. 게다가 연말 분위기까지 더해지니 얼마나 신났던가.

하지만 사는 게 빡빡할수록 그런 것들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나조차도 크리스마스는 종교인의 축제로만 여기며 애써 즐기려 하지 않았다.

그런 내게도 올해는 크리스마스 관련 책이 선물로 오게 되었다. (이것도 우리 방탄이들덕이기도 하지만.ㅋ)

 

책에 대한 어떤 정보도 전혀 몰랐다. 미스터리 서점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하는 곳인지도 몰랐고, 유명 작가들의 단편집인 줄도 몰랐다. 이 책은 서점의 주인인 오토 펜즐러씨가 17년 동안 유명한 미스터리 작가에게 단편을 의뢰해서 단골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제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작가들의 이야기에 제한을 두었다. 크리스마스에 미스터리 서점을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한 사건을 기획할 것! 그렇다 보니 이야기는 마치 실제 일어난 사건인처럼 실감 나는 이야기도 있다. 미스터리지만 그다지 자극적이거나 끔찍함 없이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수준이다.

 

 

 

 

 

희귀본을 쫓거나(희귀본 하나면 쓰러져가는 서점을 구할 수 있다) 오래된 원고 얽힌 이야기들은 익숙하지만 <모작 살인 사건>처럼 찌릿! 반전과 <내 목표는 신성하니>에서의 짜릿! 복수극도 재밌었다. <엄마가 산타클로스 아저씨를 죽였어요>에서 느낀 섬뜩함은 오히려 동정심으로 변하기도 했고 <녹슨 책갈피 도난 사건>에서 벌어진 살인은 안타까워 그냥 묻고 싶기도 했다. <동방 박사의 간계>에서는 달달한 로맨스를 느낄 수도 있지만 반면 질투심에 눈먼 살인극도 등장한다. 미스터리라 싸늘하게 오싹한 이야기도 있다. 조금 약하기는 하지만.~~^^

<크리스천 킬러>는 진짜 혼자서 빵 터졌던 이야기였다. 제목부터 조합이 묘하듯 진지 코미디 같다가 마지막에 오는 전율은 어째. ᄏᄏ 유명 작가의 친필 원고를 훔친 할머니의 반전 인생이 돋보이는 <이름이 뭐길래>까지 쉴 틈 없이 책장을 넘기며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역자도 언급했듯이 가장 좋았던 이야기는 <크리스마스가 남긴 교훈>이었다. 이 이야기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이해심과 타인의 취향을 공감해주는 이야기여서 더 좋았다. 어떤 이들은 타인의 취향과 선택을 펌하하거나 무시한다. 마치 클래식을 듣지 않고 트로트를 좋아한다고 하면 그 사람의 수준이 낮다고 여기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서점 직원인 베로니카는 손님 해리가 저급한 책만 보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해리의 취향에 숨겨진 아픈 사연을 듣자 생각이 바뀌게 된다.

베로니카가 생각하는 가장 슬픈 일은, 해리가 한 번도 좋은 잭들을 사본 적이 없어서 문학의 진정한 황홀경에 빠져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해리는 좋은 문구 하나가 힘든 세상을 견뎌 낼 힘이 되어 주는 것도, 중심과 균형 감각을 잃지 않게 삶의 외연을 확장해 주는 것도 경험해 보지 못했을 터였다. -p.249

 

책만 보며 책 속에서 인생의 해답을 찾고자 했던 그녀가 고개를 들고 주변도 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또 다른 깨달음도 얻었다. 한 가지만 똑똑하면 헛똑똑이로 남을 수도 있음을.

 

미스터리 서점!

그곳엔 가치를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한 희귀본이 있고, 돈이 되는 작가의 원고도 있으며, 전 세계 곳곳 미스터리를 사랑하는 마니아들이 찾고, 이야기로 위안을 얻는 독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이 17편의 단편을 읽으며 이 서점의 가치를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나조차도 크리스마스 종합선물세트를 받은 기분이었다. 장르소설을 즐기지 않았는데 점점 빠져든다. 난 내가 요런 단편들을 좋아할 줄 몰랐다. 읽던 중간에 에드거 앨런 포 전집도 지르고야 말았으니.

 

크리스마스에 읽기 딱이다. 과하지 않은 이야기 속에 크리스마스의 정신도 있고 역자 후기에 색다른 반전도 숨어있다. 그렇담 2편과 3편은 쉬었다가 2020년 크리스마스에 봐야 하나? ㅋㅋ 아~~~ 크리스마스 트리도 준비해야겠다.

 

 

P.S) 나처럼 크리스마스에 특별한 계획이 없는 분들에게는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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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집은 켄타 별 리틀씨앤톡 모두의 동화
윤혜숙 지음, 윤태규 그림 / 리틀씨앤톡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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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다고 느낄 때 정말 필요한 건 무엇일까. 이 짤막한 동화 4편은 공감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학교, 학원, 가족,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받지 못할 때, 우리가 위로받을 수 있는 존재는 어떤 것들일까.

아이들 동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메시지가 청결해서다. 상상의 날개를 달고 무궁무진하게 펼쳐지는 이야기 속에서 따뜻한 온기를 채워갈 수 있어 좋다.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무언가만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외로움과 상처를 딛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특히 어른들의 잣대와 기준에 부합하여 성장해야 된다. 그만큼 육체뿐 아니라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떠안고 산다. <조는 도서관>속 친구는 정말 헬리콥터 엄마 때문에 24시간을 쫓기며 산다. <박물관 아이>속 한솔이도 엄마의 강요에 박물관에 이끌리다시피해서 왔다. 뭐 상황이 엇비슷해 보인다. 부모의 욕심대로 맞추어 살아야 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다 미안해질 지경이다.

 

 

 

 

조는 도서관은 그야말로 아이들을 위한 곳이다.

"책은 베개로, 햇빛은 이불로 빌려 드립니다."

이 얼마나 햇살 같은 문구인가. 아이들은 책도 너무 강요당하면서 봐야 하다 보니 책을 끔찍이 싫어하는 친구들도 많다. 그런데 이 도서관에서는 아무도 책을 읽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자고 싶으면 충분히 자고, 뒹굴뒹굴하거나 멍 때리고 있어도 상관없다. 그러다 이도 저도 지겨우면 각자 하고픈 걸 하면 된다. 그림도 그리고 자기가 정말 보고픈 책을 보면 된다. 그뿐이다. 지금 행복하다는 기분을 느끼는 것! 그것이면 된다. 이것이 잠깐만의 즐거운 상상이 아니기를! 아이들 하루에 이런 공간이 곁에 있기를! 나도 바라는 바다.

 

박물관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 나도 아이들을 데리고 다녀본 적이 있지만 반강제였다.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점만 강조했지 어떻게 접근하는 게 좋을지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한솔이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지만 장래가 불안정해서 엄마로부터 핀잔만 듣는다. 미술관이 더 좋지만 억지로 끌려온 박물관에서 김홍도의 그림을 보게 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관심 밖이다. 그런데 엄마가 잠깐 필기구를 찾으러 간 사이 김홍도 그림 속 종아리 맞던 아이가 사라졌다. 어라! 사라진 아이가 한솔이 옆에 서서는 자기를 도와달라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한솔이와 동문이는 그림 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

 

김홍도 그림에 스토리가 덧입으니 정말 재밌다. 아! 그림을 보면서 아이들과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보는 것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시간 여행 덕에 한솔이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닦달하던 엄마의 마음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게다가 김홍도의 그림도, 박물관도 그다지 지겹지 않은 것이 된다. 재능이란 건 하고자 하는 열정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한솔이가 깨달아서 다행이다.

 

<척척박사 도비>와 <내 친구 집은 켄타 별>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었던 이야기였다. 학교에서 반 친구로부터 놀림과 무시를 당하던 강모는 도깨비 친구 도비로 인해 자신감을 얻게 된다. 자신의 재능을 친구들에게 인정받아 뿌듯한 점도 있지만 다친 마음을 위로해준 건 자신이 늘 편안함을 느끼던 숲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자연보다 가상의 공간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다. 직접 자연 속에서 체험하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배웠으면 좋으련만.

 

마지막 이야기이자 이 책의 표제작인 <내 친구 집은 켄타 별>은 아이들의 순수한 세계가 오래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육원에 사는 친구 새벽이의 켄타 별 이야기를 의심의 눈초리로만 듣는다면 이 이야기가 재미없을 것이다. 그 친구의 말을 들어주고 우주 어딘가 존재할지도 모를 켄타 별을 상상한다면 우리의 삶은 더 다채로운 빛깔을 지닐 수 있지 않을까. 어둠 속에도 어딘가 빛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으며 성장하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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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트 콜렉터
캠론 라이트 지음, 이정민 옮김 / 카멜레온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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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란 인간이 되는 기술 안내서 -p.163

 

이틀 전 2019년 노벨 문학 수상자인 올가 투카르추크의 수상소감에 관한 글을 읽었다. 그녀가 말하는 문학에 대한 정의가 너무나 감명 깊어서 말하고 뱉고 또 말하고 뱉어보았다.

"문학은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엄청난 힘과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문학만이 우리를 타인의 삶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서 그 가치와 정당성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타자의 운명을 더불어 체감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난 그녀의 말이 집세 수금원의 말과 거의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캄보디아 프놈펜 외곽의 쓰레기 매립장, 스퉁 민체이. 이곳은 실제 존재하는 곳이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쓰레기를 줍고 살아가는 이들의 다큐를 어디선가 본 듯도 한데 이 이야기는 이곳이 주요 배경이다. 실제 저자는 그의 아들이 만든 다큐를 기반으로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맨 뒷장에는 소설 속 인물들의 사진이 첨부되어 있다.

 

 

 

 

상 리는 남편 기 림과 아들 니사이와 함께 이곳 스퉁 민체이에서 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퉁 민체이는 "승리의 강"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어쩌다 이곳이 쓰레기 매립장으로 탈바꿈한건지 이해불가다. 그만큼 캄보디아의 정치나 경제 모든 상황이 엉망이었다는 증거일 테지만.

 

그들은 하루하루 쓰레기를 주워 생활한다. 고철을 판 돈으로 쌀과 고기를 사고 집세도 낸다. 하지만 이곳이 암담하기만 한 곳은 아니다. 사람들은 그 속에서 놀이도 찾고 농담도 하고 새 생명도 낳는다. 다만 그들에겐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며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남들이 내다 버린 것들에서 삶을 일구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 -p.26

쓰레기 더미를 헤집고 돌아다니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마을을 뒤덮고 있는 악취의 강도가 얼마큼인지, 집이라고 하는 공간이 집으로써의 기본적인 역할은 하고 있는 건지 겪어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지만 그들의 일상과 생명 따윈 안중에도 없는 정부와 불도저에 더 화가 난다.

 

그들은 하루 벌어 하루를 겨우 살아내기에 집세 내기도 빠듯하다. 그런 상 리의 집 문을 두드리는 집세 수금원은 그들의 사정을 봐주는 법이 없다. 그녀는 늘 술에 절어 있으며 퉁명스럽고 화를 잘 낸다. 그런 성격이 워낙에 유명해서 '암소'라는 별명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쓰레기 더미에서 그림책 한 권을 주워 상 리에게 준다. 글도 모르는 상 리지만 책이라는 물건에서 무언가 이야기를 찾고자 한다. 아니 어쩌면 그 이전부터 이야기를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뜻 모를 이야기들이 늘 가슴속을 맴돌고 있었던 이유도 상 리의 DNA 어딘가 문학에 대한 갈망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디든 사건 사고가 있는 법이지만 이곳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그들을 더욱 절망에 빠뜨리는 것들뿐이다. 집세 수금원에게 집세를 내야 하던 날도 남편이 강도를 만나 돈을 뺏기고 만 것이다. 수금원에게 당당하게 집세를 내고팠던 소박한 바람이 또 물거품이 되고 조아리고 또 조아려야 할 일만 남았다. 하지만 그 그림책으로 인해 상황이 달라진다. 집세 수금원이 그 책을 본 순간 거의 울부짖는듯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분명 무언가 엄청난 사연이 있음을 직감한 상 리는 몹시 궁금해진다. 게다가 집세 수금원이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예감은 그녀에게는 기회이자 희망으로 다가온다. 상 리는 용기 내어 그녀에게 부탁하기에 이른다.

“제게 글 읽는 법을 가르쳐줄 수 있나요?”

 

상 리의 아이는 늘 아팠다. 그 모든 아픔의 근원이 끔찍한 환경 때문이라고 여긴 그녀는 아이에게 말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것이 그녀가 유일하게 글을 배우고자 한 이유였다. 지난날 캄보디아는 수많은 지식인들을 숙청했다. 지식인들은 멍청한 권력자들에게 암적인 존재다. 그들은 책을 불태우고 학자나 선생들을 죽이고 노동만이 나라를 살릴 수 있다고 믿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잃고 삶을 빼앗겼다. 집세 수금원인 소피프 신도 억울한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교육은 언제나 옳아. 이 세상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게 해줄 때는 더욱 그렇지. -p.163

 

그녀는 상 리에게서 잃어버렸던 문학의 희망을 보게 된다. 그녀는 한때 그녀가 그렇게 믿었던 글의 힘이 총과 칼 앞에선 아무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 모든 걸 체념했었다. 하지만 선생이었던 그녀는 생의 마지막 학생이 될 상 리에게 다시 글의 힘과 문학의 필요성을 가르치게 된다. 문학을 이해하려면 머리로 읽고 가슴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해. 그리고 두 가지가 동시에 작용해야 해. -p.105

 

배운 만큼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먼저 배운 것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느끼고 믿어야 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놀라운 세계를 경험할 거야. -p.153

 

문학을 어디서 찾냐고 상 리가 묻자 이곳 스퉁 민체이에는 문학이 넘쳐 나고 있으며 문학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나오는 것이라는 말을 던진다. 이야기를 읽는 모든 이야기의 대상과 주제가 바로 나 자신이지. -p.165 상 리는 내내 문학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사촌이 들려준 한 편의 시가 출발점이 되긴 하지만 그녀가 아이의 병을 고치기 위해 떠나는 여정과 소피프 신의 과거를 만나는 과정에서 진정한 문학의 의미를 찾아간다. 물론 소피프 신도 본연의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 쓸모없다고 여겼지만 쓸모있는 사람으로, 화를 품고 있던 사람이 아닌 다정한 사람으로. 토카르추크는 '다정함이란 가장 겸손한 사랑의 유형이다'라고 했다. 정말 그녀의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아이를 향한 상 리의 헌신적 사랑과 남편으로써 최선을 다하고 있는 기 림을 보면 그들이 비록 쓰레기를 줍고 살고 있기는 하나 쓰레기 인생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들은 누구보다 가족과 이웃을 돌보며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했다. 기 림이 상 리가 글을 배우려 할 때 느꼈던 두려움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상 리의 결심을 지지해주고 믿어주어서 다행이었다.

갑과 을이라는 냉랭한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두 여인의 우정. 그들을 뒷받침하고 있는 문학작품도 볼만하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시, 우화, 단편들이 또 다른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캄보디아판 신데렐라 이야기부터 모비딕, 로미오와 줄리엣, 소피프 신을 찾는 단서가 되는 노파와 코끼리 이야기까지.

 

인생이 늘 그렇게 힘들고 잔혹한 것만은 아니란다. 우리의 고난은 순간에 지나지 않아. -p.11

 

그들의 인생을 보면서 희망과 불행은 한자리에서 공존함을 알게 된다. 매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절망으로 내려앉을 것이다. 무엇보다 상 리를 보며 희망의 문은 스스로 찾지 않으면 절대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디서 사느냐가 아닌 어떻게 사느냐를 비로소 깨달은 것처럼.

 

무엇보다도 왜 문학이 필요한지, 나는 왜 문학이 좋은지, 문학적 사고를 위해 어떤 사고를 지녀야 할지 등 문학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어 좋았지만 문학의 즐거움을 알게 해 준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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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다시 보기를 권함 - 페터 볼레벤이 전하는, 나무의 언어로 자연을 이해하는 법
페터 볼레벤 지음, 강영옥 옮김 / 더숲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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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세상을 사는 법은 자신에게 가장 이상적인 삶을 찾는 것이다. -p.131

 

사람의 삶이라는 게 제멋대로 움직이는 동물의 삶 같지만, 실은 한자리에 꽂혀 한자리에서 늙어가는 식물의 삶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 수명 다한 식물을 뽑아내다 보면 흙 위에서 어떤 꽃을 피웠고 어떻게 시들었든 한결같이 넓고 깊은 흙을 움켜쥐고 있다. - [참 괜찮은 눈이 온다] 중에서

얼마 전에 읽은 책의 한 구절로 식물의 생태가 인간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그와 비슷하게 이 책의 저자도 같은 견해를 보인다. 나무의 삶도 인간의 삶과 참으로 닮은 구석이 많다고.

 

그래서 궁금했다. 요즘은 나무를 그냥 보는 것이 아닌 나무의 속 사정이 궁금하다. 얘는 왜 이리 표면이 거친지, 얘는 왜 이리 꼬였는지, 얘는 왜 이리 움푹 팬 곳이 많은 건지, 얘는 왜 아직도 잎이 떨어뜨리지 못 한채 말라가는 건지, 얘는 왜 위 가지에 이파리가 하나도 없는 건지, 예는 왜 표피가 두껍고 거친지, 얘는 왜 이리도 지나치게 잔가지를 많이 달고 있는건지, 태풍 때 꺾이고 부러진 아이들은 언제쯤 회복할는지..... 

 

 

 

더숲에서 출간되는 자연 관련 책을 일전에 두어 권 보았었지만 이 책은 정말 내가 찾던 책이다.

나도 나무가 정말 좋다. 어딜 가나 나무에 시선이 꽂혀있다. 지인들과 나선 가을 나들이에도 나는 혼자서 나무만 보았다. 오죽하면 지인들 왈, 넌 오늘 작정하고 나무 보러 왔구나. (지인들은 먹방투어가 목적이었다.ㅋ)

나무는 똑같은 모습이 없다. 우리네 삶도 비슷한 경험은 있지만 똑같은 경험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보이는 만큼만 보고 보고자 하는 만큼만 알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더 보려고 해야 한다. 그냥 주변에 있어서, 우리에게 좋은 공기를 주고, 목재를 내주고, 그늘을 내주어서 그냥 고마워만 할 존재가 아니라 이제는 나무의 생태를 지키고 보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무가 자기 의사 표현 능력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기에 나무를 관찰하는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학자들은 나무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애써왔기에 그 결과를 토대로 우리는 주변 나무를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목차를 보면 나무가 어떻게 성장하는지, 줄기와 가지가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나무껍질과 잎의 역할, 나무의 나이와 질병 그리고 죽음까지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나무의 특성에 언급되는 나무들에 대한 정보도 도움이 된다.

 

나무도 사람처럼 다양한 성질을 지니고 다양한 성격을 드러낸다. 품종과 주변 환경에 따라 나무가 표출하는 모습이 신기할 따름이다. 대체적으로 신중한 나무는 조급함을 낯설어 하지만 빨리 성장하고 죽는 나무도 있다. 그런 나무들의 수명이 대개 100년뿐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대게 나무는 다들 오래 견디고 장수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자작나무나 사시나무가 생명력이 짧을 줄이야.

 

 

 

나무는 땅속 네트워크로 긴밀하게 협력하기도 하지만 땅 위에서는 경쟁하기도 한다. 수관의 형태만 보아도 나무의 서열을 가늠할 수 있고 빛이 드는 위치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기도 한다. 나무도 소심한 나무가 있고 행동이 엉성한 나무도 있다. 어떤 나무는 잎이 빨리 떨어지고 어떤 나무는 주렁주렁 달고 있는 채로 말라가는지에 대한 부분을 읽고 나면 이해가 된다. 물론 저자는 여러 가지 환경적 요인이 있겠지만 인간은 절대 알 수 없는 부분!이라고 못을 박는다.

 

나무의 상처는 나무가 감내해 온 시간의 고통이다. 나무도 그렇게 과거를 기억한다. 실제로 나무는 목질의 갈라짐을 느낄 수 있어서 아파한다. -p.71 그리고 환경에 따라 변화한다. 제 자리에서 꼼짝 못 하기는 하나 빛이 부족할 경우 불안한 잔가지를 뽑아낸다. 그만큼 빛을 흡수하기 위해 발악하는 것이다. 나무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후손 번식에 집착하고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그렇게 에너지를 쏟고 나면 다음 해에 꽃을 피우지 않기도 한다. 그러므로 나무는 휴지기에 들어가기도 한다.

 

나무도 화상을 입는다고 한다. 뜨겁게 내리쬐는 한여름. 그늘이 되어주는 나무에게 고맙기도 했지만 쟤들은 괜찮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한번 수피가 터진 나무는 평생 시달린다고 하니 세세하고 조심스러운 관리가 필요하겠다. 나무가 암에 걸린다는 사실도 새로웠는데 99퍼센트 균류의 침입으로 나무의 삶이 위협받는다고 한다. 그 외에도 인간의 잘못으로 나무에게 해가 되는 경우도 많다. 환경오염은 물론이거니와 겨울철 도로에 뿌리는 염화칼슘도 나무에게는 독이 된다. 반면 딱따구리나 연어에 관한 이야기는 생태계가 참으로 놀랍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처럼 다양한 나무의 생태뿐 아니라 숲 생태계의 비밀을 들여다본 듯 흥미롭고 유익하다.

 

지금 나무는 동면에 들어갔다. 겨울은 나무의 영혼을 보는 계절이라고 한다. 나무는 가을에 세포를 생산할 준비를 마치고 겨울잠을 잔다. -p.67 비록 나뭇잎을 털어내어 볼품없긴 하지만 그 나름대로 운치가 느껴진다. 눈이라도 내리면 더더욱.

 

인간은 오랜 세월 숲을 이용하고 나무와 함께 했다. 안타까운 건 원시림이 언제까지 우리 곁에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환경학자들은 이미 지구환경은 회생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그만큼 나무가 건강하게 서식할 공간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게다 외래종과 토착종들 간의 불균형도 문제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빨리 인지하고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더 이상 아름다운 숲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자연 속에서 함께 오래오래 공생하고 싶다면 나무들의 사연에도 귀를 기울여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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