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파링 파트너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76
박하령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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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성적보다 더 걱정되는 건 성장통이다. 물론 그건 아이들의 몫임을 잘 안다. 아이들도 곧 친구들과의 관계, 성적, 이성, 외모, 진로 고민 등 내가 지나온 시간만큼 비슷한 환경을 지나며 무수한 고민과 갈등과 아픔의 덩어리들과 싸우면서 한 뼘씩 성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는 꾸준히 청소년 문학을 출간해오고 있다. 나의 스파링 파트너는 처음 만난 책이다. 여섯 개의 단편들이 어렵지 않고 이야기의 상황이나 전하는 메시지가 좋아서 당장 딸아이에게 읽어보라고 건네주었다. 이러한 책은 그러한 감정을 간접경험해 볼 수 있고 아이의 문학적 감수성도 길러줄 수 있어 좋다.

 

책을 읽고 가만히 돌아보니 난 이처럼 다양한 고민을 하며 지나온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다행일 수도 있지만 그랬기 때문에 성장통을 늦게까지 앓았던 것 같다. 오히려 다양한 경험들이 주는 고통에 마주해 본 이들이 더 나은 어른으로 성장한다. <수아가 집으로 가는 시간>의 나연이는 주변인들의 눈으로만 보았을 때 바르고 착했다. 별문제 없이 어른들의 눈에 맞춘 성장기를 지나고 있던 나연에게 수아라는 아이가 집에 오면서부터 내면의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자신도 미처 몰랐던 또 다른 나를 들여다보며 앞으로는 자신의 마음에게 더 솔직해지고자 한다. 나연이처럼 자신의 감정에 혼란스러움을 느끼거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해 속앓이를 하는 친구들이 있다. 내 감정에 손해를 끼쳐 자신을 힘들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반면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에 자신을 맡긴 경우도 있다. <여름을 깨물다>에서 하나는 잘못한 어른들로 인해 잠시 떠나오게 된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주눅 들어 하지 않고 좋아하는 친구에게 서슴없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 비록 하나의 첫사랑은 감히라는 한 마디를 뒤로하고 끝내야 했지만 하나는 그때의 자신의 감정에 대한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부모의 운명에 휩쓸리지 않고 누구를 향한 원망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하나가 멋져 보인다.

 

청소년기에는 질풍 노동의 시기이자 감정이 영글어 가는 시기다. <굴러라, 공!>에서 하윤이는 정의감에 불타는 성격이다. 반 친구들을 곤란하게 하고 사사건건 문제의 중심인 홍모를 응징하기 위해 작은 복수를 계획한다. 하윤이는 폭력과 비폭력의 상호작용까지 고려하며 나름 고민을 한다. 다만 상황이란 것이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다. 옳고 그름에 대한 단순한 판단이 엉뚱한 결과를 불러오게 되어 혼란스러움에 빠지자 자신의 감정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합리화를 한다. 아마도 하윤이는 내내 죄책감과 싸워야 되겠지만 더욱 감정에 신중하며 성장할 것이다.

 

<마이 페이스(My pace)>속 주희는 자존감이 바닥이다. 잘나가는 연예인 언니와 늘 비교당하며 주눅 들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하정이라는 친구를 만나면서 자신만의 속도를 찾아가게 된다. 누구와 비교할 필요도 없고 누구를 따라갈 필요도 없이 나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무엇보다 주희는 부모에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자신만의 목소리는 상대가 아닌 자신에게도 분명하게 전달해야 한다. <너는 나의 스파링 파트너>에서 현민은 기주라는 아이로 인해 두려움과 맞닥뜨리게 된다. 평소 무뚝뚝하고 무시하는 듯한 말투로 대하는 아빠와의 관계도 적잖은 스트레스였는데 기주의 능청스러운 뻔뻔함에 독이 오를 대로 오른다. 하지만 현민은 기주를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할 힘으로 바꿔 생각한다. 평소 꾹 눌러 두었던 생각에 힘을 불어넣자 당당해진 자신을 보게 된다. 아빠의 부정적인 영향을 밀어내고 자신만의 감정 독립을 한 현민이 기특하다.

 

<발끝을 올리고>는 우리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겪는 감정의 변화를 재밌게 보았다. 오해로 인해 순식간에 우리에서 왕따가 되어버린 다미의 극복기를 보며 아이가 잘 보고 배웠으면 했다. 상황은 괜찮아졌지만 다미는 상처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나름의 노력을 했다. 그 모든 일들이 절대 없었던 일이 될 수는 없으며 다미는 인간관계에 있어 진정한 우정이나 믿음에 대해 다각도의 시선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게 성장하고 달라지는 것이다.

 

여섯 가지 단편들이 관통하는 주제는 아픔을 통해 성장한다는 이야기다. 이야기에 사건이 있어야 고민과 갈등이 있듯 성장기에 겪는 통증은 그만큼 자신을 더 단단하게 한다. 성장기의 감정은 여리다. 쉽게 다치기도 하지만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반면 그 상처에 조금만 애정을 쏟으면 그만큼 회복력도 빠른 것이 성장기의 아이들이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어떻게 끌고 나갈지는 자신의 몫이다. 어른들은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도록 틈을 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제 그릇만큼 또는 제 그릇보다 좀 더 큰 지혜로 세상을 밀고 나가며 단단하게 성장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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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목털의 늑대 빌리 두고두고 읽고 싶은 시튼 동물 이야기 8
우상구 글.그림, 어니스트 톰슨 시튼 원작 / 청어람주니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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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0년 전 인간들은 동물과 어떤 관계를 이루며 살았을까. 아이들은 주로 늑대를 동화나 만화 속에서 접한다. 아기돼지 삼 형제를 잡아먹으려 하고, 빨간 모자를 삼키고, 어린 양들을 잡아먹는 등 다른 동물을 해치는 악당으로 말이다. 이는 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늑대는 사람들이 기르는 가축을 잡아먹거나(이도 결국은 인간들이 늑대 먹이를 죄다 사냥한 때문이지만) 사냥꾼의 사냥감을 훔치는 등 인간들과 공생하기는 어려운 존재였다. 아마도 그런 이미지가 동화에서 주로 다루어졌겠지만 시튼에 등장하는 늑대 이야기를 읽다 보면 늑대라는 동물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기에 그 시대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시튼의 시선은 물론 인간보다 동물들에게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는 분명 동물도 그들만의 세상이 있고 그들만의 룰과 감정으로 살아가는 동물이기에 존중해야 됨을 말하고자 한 것일 것이다. 늑대는 개처럼 길들일 수 없기에 인간에게는 무서운 존재일 수밖에 없었지만 실은 인간들이 모르는 용맹함과 의리와 영리함을 갖춘 동물이다. 그들만의 네트워크가 잘 이루어져 있고 무리 안에서 서로를 알뜰히 챙기고 보살핀다. 그러한 예로 늑대소년 이야기도 있으며 이 시리즈의 <소년을 사랑한 늑대 이야기>도 그런 내용이지 않을까 한다.

 

 

 

 

 

주인공 '나'는 킹이라는 사냥꾼에게서 빌리라는 늑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인간들이 동물들의 씨를 말리자 먹잇감이 없어진 늑대는 마을에 수시로 출몰했고 인간들은 사냥꾼에게 현상금까지 걸어 늑대 사냥을 부추겼다. 그들은 어미 늑대뿐 아니라 새끼들까지 모조리 죽여 씨를 말리려 했다. 동물은 배가 부르면 더 이상의 음식을 탐내지 않는데 반해 인간은 돈이 되는 짓이라면 무슨 짓이든 하고 끝없이 욕심을 부리는 것을 보면 참 동물보다 못나 보인다.

 

빌리는 늑대들의 또 다른 공간인 예비굴에 숨어 있었기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고 다른 어미의 품에서 성장한다. 어미 늑대가 자신의 새끼가 아님에도 거두고 살뜰하게 보살피는 모습에 어찌나 마음이 애잔하고 따스한지.

그러던 어느 날 어미는 독이 든 음식을 먹고 온다. 그로 인해 다른 새끼들까지 죽게 되자 어미와 빌리만 남게 된다. 둘은 다시 새로운 생존방식을 터득하며 무리를 피해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들이 쳐 놓은 덫에 영민하던 어미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어미는 빌리를 지켜내기 위해 곁에 오지 못하도록 으르렁거리며 쫓아내고 결국 붙잡혀 죽임을 당한다.

 

 

 

 

 

 

이제 혼자 남겨진 빌리는 더더욱 강해져야만 한다. 동물의 세계에서 힘은 곧 권력이고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빌리는 사냥꾼과의 두뇌전에도 능숙함을 보이며 쫓고 쫓기는 줄다리기를 시작한다. 위기에 처한 동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위기 속으로 뛰어드는 것도 서슴지 않았고 게다가 보란 듯이 동료를 구하고 빠진다. 분명 그들의 목표는 빌리였음에도 사냥꾼들은 빌리의 영특함에 감탄한다. 또한 그 모습은 사냥꾼들의 애간장을 태우기도 했다. 더욱 빌리 사냥에 열을 올리며 쫓아보지만 빌리의 꾀에 사냥개들만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다.

 

빌리에게 자연은 자신만의 생존법칙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인간들은 알면서도 그들 위에 군림하고 지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면서 점점 동물과 함께 공존해야 한다는 자연법칙을 잊고 살았다. 각자의 생명체는 저마다의 환경에서 존중받고 살아야 함에도 인간들이 너무나 많은 법칙을 깨고 망쳐놓았다.

먹이가 없어 민가로 내려오는 멧돼지를 쏘아 죽이면서 우리는 한없이 미안해해야 하고 동물원 코끼리쇼를 보며 즐거워할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그런 곳에 가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더 이상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닌 동물 본연의 속성을 진지하게 알려주며 인간과 함께 아름답게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필요할 것이다.

 

시튼의 동물기를 읽고 있으면 잊고 지냈던 동물 본능의 삶을 통해 동물에 대한 애정이 더 커진다. 마치 동물의 왕국을 보며 자연법칙과 순환의 위대함을 느끼는 것과 흡사하겠다. 그만큼 진심을 가지고 동물을 대할 때 인간은 자연에 대한 겸손한 마음을 지니게 된다. 인간은 너무 깊숙이 그곳을 침범해서도 안된다. 빌리가 자연스럽게 죽어갈 곳도 자연이어야 한다. 동화 속에 그려진 늑대의 이미지가 아닌 용감한 늑대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진짜 교육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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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잔상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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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오래 생각하면 마음이 천리만길을 달려 그에게로 가닿는다고. -p.10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파동을 지닌 생명체는 인간이라고 한다. 그만큼 인간은 서로에게 엄청난 자극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존재다. 그 파동의 심지는 사랑에서 기인하고 수많은 방향으로 다양한 감정들이 뻗어나간다.

이 책은 그러한 순간(문학작품, 영화, 그림)에 대한 작가의 생각노트 같다. 심지어 인간이 사랑을 하는 존재라는 사실도 새삼 신기하다. 아니 사랑이란 단어조차도 참 새롭다.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인간을 이해(여행하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 비밀을 가진 사람, 칼을 놓는 사람, 이별하는 사람, 기억하는 사람, 사랑 이후의 사람) 하기 위함임을 느끼게 된다. 모든 것들에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사랑이 결핍되거나 사랑이 금지되거나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디스토피아)이 얼마나 끔찍한지 문학작품과 영화를 통해 간접경험을 하지 않았는가.

 

 

 

 

"인생이란 그런 거야"

"인간은 몸이다."라는 문장을 본적 있다. 인간은 움직여야 사는 존재다.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것이다. 작가는 누군가의 가방과 신발을 들여다보며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들의 삶에 나의 가치관을 대비하는 건 무의미하다. 나 자신의 고집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에게서 인생의 가치와 고통의 여유를 보게 된다. 그것은 우리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사소한 순간이다. 사랑은 그런 것들에게서 기인하며 그러한 순간을 찾아 움직이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의 삶도 그런 일들의 연속인 것 같다. 그런 경험이 낳은 잔상들로 나 자신을 만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가끔 사진을 찍어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진을 꺼내보면서 내게 이런 기억이 있었음을 떠올릴 때 그렇다. -p.88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사진은 기억을 떠올리는 또 다른 수단이다. 그래서 나도 무수한 순간들을 담는다. 한 장의 사진은 그 순간의 앞뒤를 불러온다. 심지어 읽어 둔 책들을 일일이 찍어두는 이유도 기억하기 위함이다.

사소하지만 그것들은 나 자신에게 무언가를 남기는 일이며 세상에 나의 안부를 전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진들은 내가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 건지, 나라는 점은 누구와 선을 잇고 살아야 하는 건지를 묻는 또 다른 세상과의 대화법이다. 사진의 차가움보다 그 속에서 나의 사랑과 열정의 부피감을 기억하고 싶다.

한 장의 이미지가 보여주는 것이 덧없는 아름다움이라고 해도, 훼손된 기억으로 왜곡된다고 해도 나는 계속 순간을 담을 것이다. 훗날 기억될 나의 잔상들.

 

 

 

 

"다 보여줘서는 안 된다. 절반만 보여줄 것."

작가는 글을 사랑했다. 넘치게 사랑했고 그랬기에 진솔하게 다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작가는 마치 서툰 사랑에 헤매듯 교수님의 충고를 몸으로 느끼기까지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거쳤다. 덜어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고나 할까.

사랑할 때도 그와 마찬가지다. 자신을 다 보이지 말라고 한다. 상대로 하여금 호기심과 해석의 여지를 남겨야 그 사랑은 오래간다. 글도, 사랑도, 인생도 마찬가지임을 깨닫기까지는 역시 세월이 필요하다. 내가 부딪히고 꺾어지고 베인 세월들이 비로소 해답을 제시한다. 쓸데없이 장황하게 늘어진 말들을 센스 있게 함축할 수 있는 것처럼 인생도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사랑을 통해 우리는 타인의 한 점과 또 다른 타인의 한 점이 만나는 이미지를 목격한다. 개별적인 삶을 살아왔던 것으로 보이는 두 개의 사건은, 그러나 맞닿는 순간 서로의 과거를 포용한다. 포용한다는 것은 서로의 속내를 듣고 이해하거나 존중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두 개의 사건이 맞부딪친다는 것은 그런 차원을 넘어선다. -p.14

 

사랑은 위대하다. 그렇기에 사랑을 말하고 있는 작품들의 여운은 오랜 잔상으로 남는다. 작가가 언급하고 있는 작품뿐 아니라 더 많은 작품들을 떠올리며 사랑이란 감정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세계를 그려보았다. 영화 <노트북>처럼 진실되며 헌신적인, <봄날은 간다>와 <500일의 섬머>처럼 현실적이고 냉정한, <퐁네프의 연인들>처럼 돌이킬 수 없이 잔인한, 소설 <폭풍의 언덕>처럼 격동적이고 애절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처럼 슬프고 안타까운, <연인 속의 연인>처럼 집착해서 지독한, <나의 미치광이>처럼 요상한 끌림의 순간들. 유한의 삶 속에서 각자가 경험하는 사랑의 사건들이 이처럼 다양하다는 사실이 모처럼 놀랍게 다가온다.

 

사랑이 없었다면 모든 문학과 예술은 아무것도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간조차도 아무런 존재도 아니었으리라. 사랑도 유행을 타고 변덕을 부린다. 하지만 유행이 돌고 사람들이 다시 그 유행을 좇듯 우리는 사랑의 유사한 순간들을 찾는다. 사랑이 낳은 수많은 감정선들. 애틋함, 그리움, 배신, 소유, 집착, 불안, 두려움, 아픔 등의 감정들을 보면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몰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큼 몰입하고 얼마큼 머물고 얼마큼 빠져나오고 얼마큼 지속할 것인가에 따라 그 잔상도 달라진다.

내 삶은 나의 것이지만 그 삶은 타인과 맞닿은 무수한 기억의 편린들로 채워져 있다는 작가의 말을 곱씹어 보니 그러한 잔상들이 삶을 지탱해주는 것임을 알겠다.

비록 잘 간직해온 것들이 아니더라도 이해하지 못한 희귀한 순간들이 어느 순간 이해될 때가 삶이 한층 더 성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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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한 개 빙고 두고두고 읽고 싶은 시튼 동물 이야기 7
우상구 글.그림, 어니스트 톰슨 시튼 원작 / 청어람주니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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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한다면 내 개를 사랑하라

 

며칠 전에 아역 연기자가 고양이를 학대했다며 비난을 받았다. 영상을 보니 액션이 다소 과해 보이긴 했다. 뭐 아이니 그럴 수 있고 앞으로 얼마든지 고쳐나갈 수 있다. 문제는 부모다. 그런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채 영상부터 올리고픈 맘이 앞섰나 보다. 그 한 번의 행동으로 싸잡아 비난할 수는 없겠지만 부모나 아이는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동물이 인간과 상상이상의 교감을 한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이들도 많다. 가끔 세상에 이런 일이에 등장하는 놀라운 사연들 말고도 실제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이들은 자신의 동물과 놀라운 경험을 가지기도 한다. 그들은 단지 인간의 언어체계를 모른다 뿐이지 온몸으로 인간과 교감한다. 실로 그들의 행동에서 보이는 의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섬세하다. 오랜 시간 반려동물과 함께 하고 있기에 그 점은 정말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다시 영상 얘길 하자면 어떤 이는 그 정도로 밀치고 던진다고 큰일 나지 않는다며 오버하지 말라는 이도 있었다. 물론 죽지는 않겠지만 분명한 건 그들도 그 순간을 안다는 사실이다. 장난인지 폭력인지.

 

 

 

 

이 책은 '두고두고 읽고 싶은 시튼 동물 이야기'시리즈의 7번째 책이다. 표지를 본 순간 작년에 본 책 한 권이 떠올랐다. <좋은 생명체로 산다는 건>의 저자는 보더콜리를 키웠었다. 유독 그녀의 남다른 반려견의 사랑에 인상 깊은 감동을 받았었고 마당 너른 집이라면 한번 길러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이 개의 넘치는 에너지를 감당할 자신은 없지만.ㅎㅎ

나를 사랑한 개 빙고는 보더콜리 종이다. 보더콜리는 “농장의 양치는 개”로 불린다. 이 종은 영특하고 활력적이고 민첩하며 의욕적이다. 사람의 일을 잘 돕고 다정하며 냉철한 면도 있다. 그림만 보아도 멋지고 영리해 보이지 않는가.

책의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 속에서 동물과 함께하며 그림을 그렸고 박물학자를 꿈꾸었다고 한다. 훗날 글을 쓰며 많은 이들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알렸으며 '동물 문학의 아버지'라고 불렸다. 시튼 동물기는 사실적 동물문학을 그리며 인간적인 면을 더 부각시켰다. 그만큼 인간들이 동물과 함께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빙고도 저자의 그런 마음이 더 드러난 책이다. '나'는 이웃의 개 프랭크의 용맹함에 반해 프랭크의 새끼를 입양한다. 이 개다! 싶은 생각에 이름도 빙고라 짓는다. 그 시절 농장에서는 주로 개들은 가축을 담당했다. 하지만 천방지축에다 너무나 강한 충성심에 일을 자꾸 그르치게 된다. 하지만 빙고는 그 어떤 개보다 동물적 감각이 뛰어났고 용감했다. 그렇지만 '나'는 빙고를 잘 돌보지 못한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 땐 이미 빙고는 초원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진 뒤다. 거침없이 돌아다니는 것도 모자라 암컷 코요테와 함께 다녔다. 마을 사람들은 코요테뿐 아니라 빙고까지 미워하게 되고 인간과 동물의 보이지 않는 복수전이 오간다. 코요테를 죽이는 사람들, 인간을 보며 으르렁대는 빙고, 죽은 말에 독을 넣어 먹이로 던져놓은 사람들. 책 속 어느 인디언 부족 간의 전쟁은 확대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빙고는 늑대처럼 살다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며 산다. 그러던 어느 날 덫에 걸린 빙고를 '나'가 구해주고 돌봐주게 된다. '나'는 야생동물을 포획해 보상금을 받는 일에 빠져 있다. 평소처럼 여기저기 덫을 놓다 그만 제 덫에 손과 발이 걸리게 되어 꼼짝없이 코요테 무리의 식사가 될 신세가 된다. 하지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생사의 갈림길 앞에서 빙고를 본 것이다.

 

빙고는 어떻게 '나'가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동물의 본능적 감각의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빙고는 자신을 위기에서 구해준 '나'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으며 늘 자신을 신경 쓰는 마음을 알고 있었나 보다. 이 이야기에서 동물과 인간의 교감에 한계가 없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개는 죽을 때 주인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생을 마친다고 한다. 하지만 빙고는 자신의 마지막은 자신이 제일 행복했던 공간에서 마치고 싶었다. 반면 마지막까지 인간의 이기심으로 빙고가 죽은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반려동물을 키운다면 더욱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더불어 절대 이 지구상에서 자연과 동물은 인간과 함께 공존하는 생명체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아낌없이 사랑해주고 진심 어린 맘으로 돌봐주어야겠다. 중요한 건 반려견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것이겠지만. 마지막을 지켜주지 못해 '나'가 가슴 아파하는 모습을 보니 나는 끝까지 함께 있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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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들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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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모습들은 그 시대를 반영하며 흘러간다. 반대로 말하자면 여성의 모습을 통해 사회적 상황과 변화를 유추할 수도 있다. 그만큼 여성은 남성과는 달리 섬세하고 민감하고 예민하며 감성적이고 이성적이다. 어쩌면 남성들은 이러한 사실을 태곳적부터 알고 있었기에 종교와 사상으로 억눌렀던 것은 아닐까.

 

과거 역사에서 여성의 출산 즉 생산능력을 더 중시하던 때가 있었다. 한차례 큰 전쟁을 치르고 나면 급격히 인구가 감소한다. 그럴 때면 아주 은밀히 출산장려를 독려하며 여성의 사회진출을 막는 전략을 폈다고 한다. 이는 전체주의 사상을 주입시키는 과정에서도 있었다.

 

전작 <시녀 이야기>는 워낙 화재성을 몰고 왔던 작품이기에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대충의 줄거리를 알고 있는 이들이 많다. 더군다나 충격적인 소재와 tv 매체의 절묘한 조합, 화려한 붉은 컬러가 주는 영상미 때문에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그런 이유로 독자들은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 극에 달했고 많은 이들이 질문을 쏟아냈다고 한다. 그래서 마거릿 애트우드는 뭐, 거의 다 여러분의 질문 덕이다!라며 후속작 증인들의 공을 독자들에게 돌리고 있다.

 

길리어드는 철저한 전체주의 사회를 표방하고 있다. 출산율이 떨어지고 기형아 출산율이 늘어나자 어느 날 갑자기 여성들은 자신들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다. 남성들은 여자들의 이기적인 선택에 의해 줄어드는 출생률과 과도한 방종 및 과도한 허기로 인해 절제가 없어진 사회에서 절제를 위해 여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애초에 여자들에게 평등을 약속한 것 자체가 잔인한 짓이었어요. -p.256

 

우선 전편의 내용을 알면서도 내내 불쾌하고 화가 나는 감정을 다스리기가 힘들었다. 작가는 어떻게 성과 권력을 하나로 묶을 생각을 했으며 이렇게 잔인한 설정을 구상한 것일까. 더 이상 여자들에게는 그들을 나타내고 드러 낼 이름도, 문자도, 자유도 없다. 여자는 그저 정상적인 아이를 생산할 수 있는 자궁만 있으면 된다. 구멍의 역할은 들고나는 것이다. 여자는 그 역할만 충실히 하면 된다. 아~~ 정말 소름 끼치고 불쾌하기 짝이 없다. 원죄! 즉 태어날 때부터 여자인 몸뚱이는 남자의 욕정을 취하게 하기에 처음부터 온실 속 화초 같은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반항적인 여자는 간음하는 음부가 될 뿐이다. 그저 한 떨기 꽃이 되어 최고의 신붓감으로 정상아를 순산할 수 있기만 하면 된다. 사회에서 남녀의 역할은 정확히 구분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전편과는 달리 증언들에서는 길리어드 체재가 붕괴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좀 더 희망을 안고 보았다. 붉은색이 아닌 안정감을 주는 녹색 컬러의 표지를 펼쳐보니 두 여인이 보인다. 모자를 쓴 여인과 머리를 질끈 동여 맨 두 여인. 띠지를 들춰내야만 볼 수 있는 소녀들의 내면까지도. 그녀들은 길리어드를 붕괴시킬 중추적 역할을 수행한다.

 

 

 

 

 

<증언들>은 세 명의 각기 다른 여성의 녹취록과 수기로 이루어져 있다. 여성들의 삶 전반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제일 윗 계급인 '아주머니'의 리디아 아주머니, 부모를 한순간에 잃은 캐나다 소녀 데이지, 이 책의 표지 모델이자 길리어드의 소녀 아그네스.

 

그들은 각자의 공간에서 듣고 보고 경험한 자신들의 삶의 과정을 증언하고 있다. 그들의 증언은 길리어드의 시작점부터 다시 올라간다. 리디아 아주머니가 어떻게 아주머니 계급이 되어 그 자리에까지 올랐는지의 과정을 보며 엘리트 집단이라도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훈련과정을 통해 얼마든지 괴물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게 된다. 하지만 여성은 남성보다 덜 본능적이고 전투적이다. 그녀는 인간 본성의 밑바닥과 최상위 모든 것들을 맛보았다. 길리어드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려면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고 사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자아를 찾는 일 따위가 무의미하다는 걸 알지만 도저히 떨쳐버릴 수는 없다.

 

나는 어디에나 있고 아무 데도 없다. - p.49

 

 

결국 리디아 아주머니는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마치 모든 여성들에게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마음으로 길리어드의 눈을 속이고 또 속이며 더 철저하고 똑똑하게 속이는 작업에 착수한다. 그것이 단 1퍼센트의 가능성일지라도! 희망을 걸어본다.

 

 

 

 

 

길리어드에서 여성은 아주머니, 시녀, 소녀, 아내들로 위치가 나뉘며 그들이 입는 옷 색깔로 구분 짓는다. 녹색 옷은 결혼을 앞둔 소녀의 복장으로 아그네스도 곧 녹색 옷을 입을 것이다. 대부분 철저한 세뇌교육 탓에 결혼을 당연시 받아들이지만 아그네스는 출생의 비밀과 급우의 자살 소동 등으로 혼란에 빠진다. 무엇보다 성인 여성의 몸이 할 수 있는 역할의 가치에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피하거나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체념할 때쯤 리디아 아주머니가 찾아온다.

 

반길리어드 시위에 참가하며 목소리를 높였던 데이지는 갑작스러운 부모님의 피살과 출생의 비밀이 한꺼번에 찾아온다. 길리어드 안팎을 잇고 있는 끈이 자신임을 안 순간 더 이상의 선택지가 없음을 깨닫는다.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과 엄마가 못다 한 임무에 대한 연장선에 서서 메이데이 요원들의 지시에 따라 진주 소녀(선교사업 임무를 지닌) 들과 접촉 후 길리어드로 숨어들게 된다.

 

 

 

 

 

사상과 종교가 변질되어 인간을 타락시키거나 인간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기 위해 교묘하게 다뤄지기도 한다. 길리어드에서 하느님과 성경 말씀은 여자들의 옭아매기에 최적의 시스템이었다. '아주머니'같은 충직한 성직자들이 필요하고 모든 공은 하느님을 향한다. 운명에 순응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열두 조각으로 잘린 첩'과 같은 성경 말씀으로 공포심을 조장한다. 그렇게 지상에 세운 하느님이라는 전체주의는 보이지 않는 '눈'의 철저한 감시를 받게 된다. 하지만 리디아 아주머니는 알고 있었다. 자신만이 그 견고한 전체주의를 흔들 수 있는 적임자임을.

 

철저히 길리어드의 체제에 길들여진 여자들은 순종적 삶에 익숙해지지만 그 속에서도 질투와 시기로 서로를 경계한다. 누가 더 높은 계급에게 간택 받는지, 누가 더 보란 듯이 정상아를 생산하는지, 누가 더 길리어드에 복종하고 충성하는 지로 말이다. 음모와 살인이 조용히 일어나서 죽은 이들의 영혼을 소리 없이 데려간다. 저드 사령관의 성적 취향 때문에 조용히 죽어나가는 아내들을 보면서 버려지는 영혼들이 불쌍했다.

 

리디아 아주머니는 이 모든 사건사고들을 보며 심경의 변화를 느꼈을 것이다. 길리어드 이전의 그녀의 직업은 가정법원 판사였다. 여성들의 성 착취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기에 베카와 아그네스를 아르두아 홀로 데려온 것이다. 계획대로 데이지까지 아르두아 홀에 오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비밀 파일들은 하나씩 열리고 긴장과 두려움은 배가 된다. 제아무리 완벽한 계획이라도 타이밍은 한 번뿐이다. 이제부터 모든 속임수와 친해져야 한다. 장벽에 내걸리거나 총알받이가 되는 두려움보다 더 무서운 건, 이 모든 것들이 묻힌 채 지속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마치 꽁꽁 숨은 출생의 비밀들처럼.

 

전편에서 길리어드가 저지르는 만행 때문에 누적된 심적 스트레가 어느 정도 풀린다. 그 중심인물이 철면피 리디아 아주머니였다는 사실에 연민도 생긴다. 그녀는 안면 근육이 저릴 만큼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분노의 통증에 속은 타들어갔으리라. 석상은 본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인류를 위해 헌신한 인물들을 위해 세워지는 것이다. 한 사람의 올바른 판단이 더할 나위 없이 귀하게 여겨지는 이야기였다. 더 이상의 디스토피아는 나오지 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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