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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자본론 - 사람과 돈이 모이는 도시는 어떻게 디자인되는가
모종린 지음 / 다산3.0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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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유명하다는 맛 집이나 거리를 찾아 걸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갈 때마다 많은 인파에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곳을 찾고 또 찾는다. 특색 있게 조성된 골목길에 들어서면 호기심에 사로잡힌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치 미로 안에 있는 것 같은 느낌에 빠지기도 한다. 그것은 호기심과 기대감일 수도 있고 당혹감과 혼란스러움일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 골목상권을 그리 즐기는 편은 아니다. 대한민국 골목상권을 몇 군데 돌았던 기억이 그다지 즐겁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목길에 관한 이 책을 집어 든 건 골목길 상권에 관심이 생겨서였다. 각종 매체에서 그러한 상권에 대한 정보가 흘러나올 때면 나도 저 특색 있는 거리에 점포 하나 내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은 서울의 지리적 조건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머릿속에서 지도가 잘 펼쳐지진 않았지만 최근 뉴스나 각종 기사를 통해서 서울의 유명한 거리나 상권에 대한 내용을 접해온 것이 그나마 도움이 되어 다행이다 싶었다.
서울의 홍대, 가로수길, 삼청동, 인사동, 이태원 등 골목길의 역사와 조성 배경 그리고 변화된 과정을 살펴보다 보니 제대로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던 일이 아쉬움으로 돌아왔다.

저자 모종린은 골목길 상권에 관하여 다각도로 풀어놓고 있다. 무엇보다 골목경제가 곧 국가경쟁력을 키우는 일임을 강조하며 정부 개입의 적극성을 필두로 골목상권의 필요성과 중요성 그리고 상권을 조성하기 위한 조건들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자영업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까지 함께 알아야 할 지식으로 상권 문화를 이해하고 지지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건축가 유현준 교수의 말대로 골목길의 매력은 밀도와 우연성이다. 저마다의 취향을 살린 가게들과 맛 집들은 대중에겐 예상치 못하는 즐거움을 준다. 이미 대형마켓의 획일화된 이미지에 지친 사람들은 그런 특색 있는 볼거리를 찾아 발걸음을 옮긴다. 더구나 젊은 층들의 아이쇼핑문화와 인증샷문화는 그러한 트렌드를 반영한다. 그래서 좀 더 자유로운 골목상권에서 독특한 아이템을 찾고 경험한다. 이렇게 한국의 이색 거리들은 외국인들에게도 즐거운 곳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외국인들에게 소개할 이색 공간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내용에 아쉬움이 밀려왔다.
가까운 나라 일본과 비교하더라도 너무나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이다. 그런 점에서 분명 일본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 우리도 관광산업의 육성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러한 상권조성이 필요하겠다. 배낭여행객들을 불러 모아 각 도시만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말이다.

골목길 상권의 골칫거리는 역시나 젠트리피케이션이다. 낙후된 지역을 기껏 살려놨더니 임대료 상승 등으로 지역민이 이주해버리는 현상은 분명 안타까움이다. 특히 신도시나 관광지에 이러한 현상이 몰려 결국 빈 점포가 늘어나는 현상은 결국 지역상권을 침체기에 빠뜨린다. 이러한 예로 예전에 알뜰신잡 경주 편에서도 언급되기도 했었는데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결론은 여전히 숙제라는 이야기로 마무리되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잘 되는 곳에 투자가가 몰리고 자연스레 임대료가 상승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정부의 적절한 규제와 타협 아래 지역주민들을 설득한다면 장기적 안목을 가진 투자자들의 협업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 현상을 딛고서 골목상권이 일어서기 위해서는 수요자와 공급자 외에도 중간에서 지휘하는 중개자와 기획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유망한 자영업자나 성공한 기업가들의 영입과 임대차 시장의 역할이 더 요구된다. 골목상권 살리기 위해 입점업체를 규제하고 임대료 인상 억제 및 자영업자를 위한 시장경제가 조성되어야 하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얼마 전 TV에서 시장 상권을 살리기 위해 저렴한 임대료로 젊은 창업자들을 끌어들여 상권을 살린 예도 보았다. 그곳의 매장들은 젊고 에너지가 넘쳤고 상인 대표의 한마디 한마디에는 고마움이  묻어났다. 죽어가던 지역상권과 골목상권을 살린 예로 많은 이들의 노력이 돋보였다.

또 다른 예로 문화가 융성했던 공간이 매력적인 상권으로 탈바꿈한 곳은 단연 인기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나 작가의 도시 브루클린 같은 지역은 부러운 예이다. 그에 반해 자연스레 골목길 상권이 조성된 곳도 있다. 한 예능 프로에서 서퍼들로 인해 새로운 서퍼 관광단지로 인기를 끌고 있는 죽도해변을 본 적이 있다. 그곳의 맛 집과 서퍼 문화는 한국이 아닌 이색 문화가 느껴지는 곳으로 서핑을 하지 않더라도 찾고 싶은 곳이었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한국 고유의 문화나 음식에 관한 골목상권이 부족한 것이 문제이며 나타났다 빨리 사라지는 상권도 문제이다. 장인정신의 결여와 계승의 문제는 좀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누구나 쉽게 차릴 수 있는 프랜 차이점들은 숙련된 기술을 요하지 않기에 그런 경험을 쌓을 필요가 없게 한다. 이러한 전문 인력의 부족은 장인정신을 저해하는 요인이다. 오죽하면 닭집이나 커피전문점도 프랜 차이점이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하니 우리나라 상권의 실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나 덧붙인다면 골목상권이 너무 젊은 층의 소비문화로 자리 잡아서는 안될 것이다. 가족과, 그리고 노년층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의 개발이 필요할 것이다. 아이들의 출입을 금하는 현상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씁쓸함을 떨칠 수가 없으니 말이다.

함께 사는 사회, 조금만 이기심을 접는다면, 조금만 더 공동체적 정신을 발휘한다면!
더 많은 이들이 걸으면서 다채로운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C-READI (Culture-Readi-문화가 준비돼야 한다)
성공한 골목상권은 공통적으로 문화 인프라(Culture), 임대료(Rent),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 접근성(Acess), 도시 디자인(Design), 정체성(Identity) 등 6가지 조건을 충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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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영휴
사토 쇼고 지음, 서혜영 옮김 / 해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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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일들이 수도 없이 많다.

그래서 영혼, 귀신, 빙의, 윤회, 환생 등을 온전히 무시할 수만은 없다.
더구나 그러한 초자연적인 현상은 소설의 모티브가 되어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렇기 때문에 달의 영휴는 독자들을 책 속으로 끌어당기기에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를 가졌다.

영휴라는 뜻은 차고 기울다는 의미다. 즉 달의 영휴란 달이 차고 기우는 것을 뜻한다.
얼마 전에 어느 글에서 달과 생명체의 유기적인 관계에 관한 짧은 글을 본 적이 있다. 여성의 월경주기나 인간의 정신 상태와 사망시간까지도 영향을 미친다는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또한 늑대인간도 있지 않은가.
아무튼 그 글을 보고 나서였을까, 삶과 죽음을 달의 영휴라는 소재로 풀어낸 점은 그리 낯설지 않다.
영원한 사랑이라는 기묘한 느낌에 약간의 소름 돋음을 지닌 이 소설은 애달픈 사랑 이야기다.


 

"나는 달처럼 죽어서, 다시 태어날 거야. 그래서 너를 만나러 갈 거야."

 

달이 차고 기울 듯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했던 여인은 그녀가 말한 대로 다른 이의 몸을 빌려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갑작스레 죽고 태어남을 반복하며 놀라움을 보여준다. 열병을 앓은 뒤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가는 모습을 통해 빙의인가 하다가 그것이 환생임을 알아차린 순간 전생의 기억들이 얼마나 현재를 지배하며 각 인물들을 엮어놓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가슴 아프게 끝나버린 사랑과의 재회를 위해 오십 년도 안되는 시간 동안 세 번이나 죽고 태어나는 과정이 짜 맞춰지다 추가되는 반전에 작가의 치밀한 계산이 돋보이기도 했다.

루리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은 안나 카레니나와 비슷한 생과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녀가 예고했듯이 예고몽을 통해 루리라는 이름을 가지고 환생한다. 그녀의 못다 한 사랑, 미스미와의 간절한 만남을 위한 여정에서 그 죽음과 탄생의 간격은 길지 않았다. 환생을 위한 종착지였던 미스미는 루리와의 짧은 만남이 너무나 강렬했다. 연상의 여인이 남기고 간 자취를 벗겨낼 수 없을 만큼.
그래서 생전에 그녀가 남겼던 달의 영휴를 믿으며 다시 찾아올 그녀를 기다린다. 어찌 보면 조금 무섭기도 한 그녀의 말은 썩 로맨틱하지만은 않지만 둘만의 암호는 말 그대로 빛이 난다.

 

"루리와 하리도 빛을 비추면 빛난다."

 

그렇듯 소설은 그 과정을 독특한 구조로 풀어내고 있다. 루리라는 딸이 있었던 오사나이는 두 모녀와 만나고 있다. 그들의 분위기는 그들의 관계만큼이나 복잡하고 어색하다. 그곳에 있는 여자아이의 이름도 루리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요상한 관계에 놓인 세 사람이 만나 두 시간 정도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루리의 돌고 도는 환생 과정이 들추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 소설은 옮긴이의 말대로 두 번 읽기 좋은 책이라기보다는 두 번은 보아야 한다. 헤깔리는 이름들과 세 번이나 환생하며 이야기에 또 이야기가 덧씌워져 있기에 헷갈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여러 인물들 중 루리의 남편이었던 마사키라는 인물은 루리의 생과 죽음에 영향을 미친 인물로 눈에 두드러진다. 한번 죽으면 끝인 생이라고 철떡 같이 믿으며 삶에 대해 정직하게 최선을 다 하는 인물이었지만 사랑에 있어서는 서툰 인물이었다. 루리는 그저 자신의 인생에 아내의 역할만 충실히 해내면 되는 존재였고 그녀의 영혼까지 어루만져 주지 못하였다. 애초에 맞지 않는 부부라는 연을 억지로 끌어다 맞춘 느낌이랄까.
그런 FM 같은 생을 살던 그에게 믿었던 선배의 장난스러운 자살(유서를 본 순간 좀 얼떨떨하면서 헛웃음이 터졌다)은 분노로 터져 나왔고 그러는 사이 아내 루리의 죽음마저도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른다. 삶이 그를 배신했다는 강렬함은 그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겨우 다잡은 그의 삶에 나타난 루리의 환생은 섬뜩한 분위기로 그를 다시 무너뜨린다.

이렇듯 루리가 죽고 태어남을 반복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루리와 미스미의 재회가 어떻게 그려질는지 그려나가다 가슴이 저려오는 순간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그렇게 환생을 통해 사랑을 찾아가는 사이 인생의 반을 손해 보는 이들은 또 어쩌란 말인가... 어쩌면 이것도 이기적인 사랑이 아닌가.
환생이라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빠져 있다가 어린 루리가 던진 복선에 잠시 멈춰 섰다.
'깊이 있는 사랑'이라는 단어에 왜 서글퍼지는 걸까.ㅎ

"사랑의 깊이가 조건이라면, 그 밖에도 다시 태어날 자격이 있는 사람은 많이 있어요." -p.366

영화가 제작되길 기대해본다. 특히 루리임을 확신하는 혀 내밀며 웃는 모습은 귀여움보다는 소름이 먼저 다가와서 독특한 장르가 될듯하다. 섬세하고 짜임새 있는 구성도 대중을 사로잡기에 좋고. 달의 영휴로 나오키 수상작을 처음 만나보았다. 그래서 찾아본 전작들 중 오래전에 영화로만 보았던 철도원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영화의 희미한 기억을 떠안고 책을 찾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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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방미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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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던 평범한 그날. 평범했던 부부의 일상이 산산조각 난다. 비명소리로 그렇게 시작된 은은한 공포감이 소설의 분위기를 쥐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인과관계를 찾아야 한다. 왜? 어째서? 무엇 때문에?라는 의문을 들고서.
하지만 피의자의 인생 그 어디에도 동정이나 연민의 감정이 나누어지지 않는다. 서서히 자기만의 세계에 심취하고 있는 광기만 느껴진다. 사회가 그녀를 이방인으로 내쳤다기보다는 그녀 자신이 이방인으로 떠돈듯하고 결코 넘지 말아야 할 경계를 무너뜨렸다. 아이들의 부모는 적절하게 인간적으로 그녀를 받아들였고 그날마저도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성인 남녀가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을 한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다. 자연스레 육아와 일은 양분이 되고 여전히 사회적 통념상 대부분의 여성들이 육아를 책임지고 담당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세세한 일들에는 대체적으로 느슨하다. 여성들은 의무감과 자아 성취라는 두 가지 갈림길에서 늘 고민하고 작아진다. 이상하게도 가정주부라는 명함은 내밀 수도 없는 직함인 듯 주눅 든다. 고민 끝에 내리는 결론은 누군가에게 내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맡겨야 하는 것뿐이다.

이처럼 폴과 미리암도 이러한 문제에 직면한다. 우연히 마주친 대학 동기에게 일자리를 제안받은 미리암은 그 제안을 놓칠 수 없다. 결국 부부는 적절한 대안으로 보모를 들이기로 한다. 그리고 부부는 신중하고 까다롭게 보모를 찾는다. 그들도 끌렸지만 아이들도 좋아한 금발머리의 루이즈는 혼란스럽고 엉망이었던 폴과 미리암의 가정에 질서와 균형을 제공한다. 보모 이상의 역할을 척척해내는 메리 포핀스 같은 존재로 떠오르며 그들의 일상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위치를 키워나간다.

하지만 그러한 믿음이 일을 그르치고 만다. 뭐든 적당히 적절한 선을 지켜야 했다.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호의적이지도 따스하지도 않다는 걸 미리암은 놓쳤다. 많은 말을 다 들어주지 말라는 폴의 주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리암은 회사에서 입지가 굳어질수록 루이즈에게 상당한 공간을 내어준다. 루이즈의 욕망이 늘어갈수록 점점 부모와 보모 사이에 양육에 대한 줄다리기가 시작된 듯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낌새를 알아차린 뒤엔 이미 돌이킬 수 없단 걸 직감한다.

그들이 그녀를 밀어내도 그녀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이 작별 인사를 해도 그녀는 문을 두드려대고 안으로 들어올 것이며, 상처받은 연인처럼 위험할 것이다. -p.228

그렇게 루이즈는 소설의 중심부를 배회하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자기 세계에 갇힌다. 어쩌면 스스로 가두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모든 일에 완벽을 기하는 여자가 자신의 삶은 내버려 둔 채 완벽한 가정에 끼어들려 한 것 자체가 모순이다. 그래서 그녀를 모른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많은 순간들이 왜곡되고 틀어지며 루이즈의 머릿속을 지배한다. 순간 훅 하고 다가오는 공포감은 미저리나 올가미 등에서의 광기 가득한 캐릭터를 연상시키며 루이즈를 밀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욕망의 최고치에 이르며 이성과 감성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거의 흐릿한, 달의 세계의 루이즈, 무언가를 기다리는 루이즈, 어떤 경계의 끝에서 이제 막 그 경계를 넘으려 하는 루이즈, 그 경계 뒤에서 그녀는 사라질 것이다. -p.280

소설은 페미니즘적 요소를 많이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일과 양육이란 큰 숙제가 골칫거리처럼 보인다. 부모는 양육의 의무를 질 수밖에 없다. 또한 그 일련의 과정에서 남편의 역할도 비중이 높다. 하지만 소설에서도 볼 수 있듯이 폴은 꽁무니를 빼고 싶어 했다. 그래서 미리암은 더 힘들고 우울해했다. 그러면서 더욱 화가 나는 생각은 양육에 올인하고 있는 여성들을 향한 왜곡된 시선이다.

어머니들도 있다. 희미한 시선의 어머니들. 최근의 출산으로 세상의 경계에 붙들린 어머니. 벤치에 앉아 아직 물렁물렁한 자기 배의 무게를 느끼는 어머니. 그녀는 고통의 몸, 무언가를 분비하는 몸, 시큼한 모유와 피 냄새가 나는 몸을 입고 있다. 그녀가 끌고 다니는 몸, 그녀가 돌보지도 않고 쉬게 하지도 않는 몸. 미소를 머금은, 환하게 빛나는 어머니, 모든 아이들이 은근히 쳐다보는 어머니도 아주 드물게 있다. -p.143

그렇듯 소설은 미혼자들에게 또 다른 공포감을 던진다. 결혼과 육아에 대한 공포는 점점 더 N포세대를 부추긴다. 구더기가 무서워 장을 못 담가서야 되겠냐마는 실로 일과 육아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고통받고 있는 건 사실이다.
"누군가 죽어야 한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누군가 죽어야 한다."라는 이 섬뜩한 구절을 "우리가 행복하려면 사회적 제도가 잘 갖추어져야 한다."로  고치고 싶을 만큼!

달콤한 노래라는 타이틀은 분명 소름돋는다. 그러나 사건 현장에서 들릴 듯 말 듯 한 미리암의 딸꾹질 소리는 더 끔찍하고 절망적이었다. 자신을 위한 선택에 모든 인생이 난도질당했다. 그래서 여자들은 언제나 육아와 일로 죄책감에서 벗어나긴 힘들 것 같다. 그래서 애처롭다. 또 그래서 나는 루이즈라는 캐릭터에 무언가를 덧씌워 희석시키고 싶지 않다.
하지만 커버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짧은 생각하나가 스쳤다. 세상은 루이즈에게 어떤 공간을 내어주어야 했을까?

2016년 콩쿠르 수상작답게 스타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12번째 여성 수상작가라는 타이틀과 함께 그녀는 프랑스 문학의 스타작가로 올라섰다. 기사를 검색해 보니 한국에서 독자들과 만남도 가졌었다.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걸 하는 아쉬움에 머리를 쥐어박았다.~^^ 여성작가의 예리하고 섬세한 심리묘사가 흥미진진하였다. 빨리 넘어가는 종잇장에 아쉬움이 느껴질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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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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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이야기 속 세 남자.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는 공통점을 가진 이들에게 주어진 생의 상실감.
그리고 각자의 몫으로 남겨진 그 상실감의 무게감을 덜어내기 위한 몸부림을 통해 다양한 인생의 철학적 의미들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늘 그렇듯 인간이 시련과 고난을 통해 안정된 고도에 정착하기까지 그들의 믿음의 일부는 깨지거나 부서지고 수정된다.
집이라는 안정된 공간을 갈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본능에 가깝다. 그것이 집이든 누군가의 품이 되었든.

역시 얀 마텔이구나를 느끼며 단편 같지만 단편이 아니었던 이 짜임새 있는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었다.
그것은 파이 이야기를 보고 난후 한동안 그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느낌과 흡사했다.
강중약이라는 리듬을 유지한 듯한 타이틀.
1. 집을 잃다, 2. 집으로, 3. 집 에서 볼 수 있듯이 먼저 인간에게 있어 집이 가져다주는 여러 가지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랑은 집이다.
매일 아침 수도관은 거품이 이는 새로운 감정들을 나르고, 하수구는 말다툼을 씻어 내리고, 환한 창문은 활짝 열려 새로이 다진 선의의 싱그러운 공기를 받아들인다.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 토대와 무너지지 않는 천장으로 된 집이다.
그에게도 한때 그런 집이 있었다. 그것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p.35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죽음의 삼연타를 경험하고 그 충격으로 뒤로 걷는 남자 토마스가 등장한다. 더 이상 삶에게 뒤통수를 가격 당하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주위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뒤로 걷는 일에 열중한다. 그런데 어느 날 고미술 박물관 보조로 근무하던 중 다른 시대의 물건인 율리시스 신부의 일기를 발견한다. '이곳이 집이다'라는 반복된 구절에서 집을 잃고 방황한다는 공통점 때문이었을까. 토마스는 무언가에 홀린 듯 일기 속에 등장하는 성물인 십자고상을 찾아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떠난다. 짧은 일정으로 인해 숙부에게 빌린 낯선 고철 덩어리를 끌고.

생사람을 잡아먹으며 배를 불리던 시절, 율리시스 신부가 겪었던 신과 인간에 대한 고뇌를 읽어내려가며 함께 하는 여정은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다. 오죽하면 파이 이야기에서 바다를 표류하며 점점 몰골이 처참해져가던 그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웃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정말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비웃음은 가여움이 되고 그 가여움이 다시 경멸로 변하는 등 수시로 감정이 널뛰었다.

"지친다! 지쳐" 토마스가 나직하게 내뱉는다. 인간은 고난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눈을 뜨게 해줄까? 고난의 결과로 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될까?-p.127

처참한 여정만큼 포르투갈의 산이 그토록 높았던가 싶지만 실로 도착한 산도. 그리고 그가 그토록 찾던 성물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결국 그가 그토록 믿었던 모든 것들에 토악질로 대신한다. 그렇게 삶을 향한 울부짖음은 신에게 간청하는 건지 그리운 아버지를 찾는 건지 알 수 없는 부르짖음으로 끝난다.

우리는 진화된 유인원일 뿐 타락한 천사가 아니다. 토마스는 외로움에 짓눌린다.-p.159

그렇게 강력하게 한방을 맞은 후 읽어내려간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말이 좀 많다. 병리학 과장인 에우제비우는 주로 시신을 부검한다. 한 해의 마지막 날 한밤중에 그를 찾아온 아내는 추리소설과 복음서의 관련성과 적합성, 합의와 동일성에 대해 열변을 토한 뒤 사라진다. 둘 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열렬한 팬이라는 사실은 또 다른 흥미였지만 이건 뭔 소리야 하는 사이 또 다른 의문의 여인 마리아가 등장한다. 남편의 시신을 들고 찾아와 부검을 의뢰하는 묘령의 여인. 그리고 다시 짜 맞춰지는 이야기들. 
"여기가 집이야, 여기가 집이야, 여기가 집이야."라며 중얼거리며 남편의 품속으로 들어가 버린 여인 때문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렇게 기묘한 분위기를 빠져나와 맞은 세 번째 이야기는 감동이었다. 파이 이야기를 자꾸 언급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동물과 인간의 조합 때문이다. 호랑이가 수풀을 헤치고 사라지던 장면과 오도가 이베리아 코뿔소를 향해 달려나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유사한 감정을 느꼈다.
상원위원으로 인생의 상위계층을 달리던 피터에게 떠나버린 아내의 빈자리는 너무나 컸다. 그 큰 빈자리에 어느 날 갑자기 한 마리의 침팬지가 대신하고 들어온다. '그것'이 아닌 '그'라고 칭하며 인생의 동반자로 낙점한 침팬지 오도에게 피터는 그가 느끼는 유사 감정인 자유를 갈망하는 눈빛을 읽어내린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모든 걸 내던지고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떠올린 행선지는 두 살 때 떠나온 포르투갈이었고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듯 오도와 그곳으로 간다. 때때로 머릿속에선 선택의 결과와 후회가 소용돌이치지만 오도를 볼 때마다 드는 강한 믿음은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열망으로 나아가게 한다.

서로만의 완벽한 언어로 교감을 하는 사이 피터는 오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기 시작한다. 그러는 동안의 여정은 시간에 대한 압박감이나 공간에 대한 두려움 따위도 잊게 한다. 인간의 회귀본능에 따른 자연스러움일까, 포르투갈의 높은 산! 부모님이 살았던 작고 고립된 마을을 본 순간 그는 단번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리고 낯선 곳에서의 환대에 진정한 동거가 시작된다.
이곳에서 오도의 행동 하나하나를 본격적으로 이해하기 시작하자 진정한 삶이 몸에 배기 시작한다. 인간에 대한 불편했던 감정들을 오도의 진실된 행동을 통해 치유받으며 내려놓은 자연스러운 일상이 좋아진다.

세상이 시계라는 것을 이미 어제 알아차렸다. -p.347

그는 시간이라는 경주에서 족쇄를 풀고 시간 자체를 음미하는 법을 배웠다.
......(중략)
오도가 사람처럼 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가 오도처럼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놀랍다. -p.366

오도가 가득히 들어찬 삶, 오도를 위해 내어준 시간들, 피터는 그 속에서 마냥 행복에 젖는다.
생의 마지막 호흡을 오도에게 내어주며 진정으로 오도에게 자유를 안겨준 피터를 보며 난 이 모든 것들에 눈물을 쏟아냈다.

표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유인원, 인간, 십자고상, 아이등이 보인다. 그렇듯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은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얽혀있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서 절묘하게 만난다. 아하~~~! 하는 긴 감탄사를 내뱉는 순간과 동시에 무수하게 스쳐가는 질문들도 함께 쏟아졌다.

마치 마법 같고 구전동화 같은 이야기에 담요 한 장 얻어덮은 느낌이다. 인생의 고난 뒤에 얻게 되는 깨달음이 안도감과 평온함을 가져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기를 거쳐 인간은 진화한듯하지만 여전히 힘겹고 너무나 쉽게 무너지는 존재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종교적 믿음에 기대고 그 어떤 다른 것들에 의지하지만 본연의 삶은 과연 무엇일까. 무언가 더 있을 거라는 이상적인 믿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내려놓고 시간 속에서 무엇을 호흡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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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s Super Challenge 숨은그림찾기 : In the Wild (흥미진진 야생 모험) Highlights Super Challenge 숨은그림찾기
하이라이츠 어린이 (Highlights for Children) 지음 / 소란i(소란아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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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어릴 때 자주 숨은 그림 찾기를 출력해서 함께 해 본 적이 있었다.
그 뒤로도 영어학원에서 간간이 프린트물을 가지고 와서

숨은 그림도 찾고 영어 단어를 공부한 적도 있었다
다양한 그림과 재미있는 내용이 많아서 흥미로워 했었던 기억이 있었는데 이 책을 본 순간 정말 반가웠다.
이전에 몇 가지 시리즈가 선보였었고 
이번에 in the wild라는 새로운 테마를 가지고 출간되었다.

 

 

책 한 권에 담긴 이야기 그림이 정말 많고 다채롭다.

숨은 그림 찾기는 집중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고 찾은 뒤의 성취감과 끈기력도 키워볼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곳곳에 숨겨진 그림을 찾고 해당 단어의 영어를 공부하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몇장을 열심히 찾고 난후
제시된 그림이 없이 숨은 그림을 찾아내는 도전! 슈퍼 챌리지도 꽤 흥미롭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팀을 짜서 내기 시합도 벌여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더구나 아이들은 할머니와 함께 놀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서 반가웠는데
할머니도 숨은 그림을 찾느라 엉덩이를 떼지 못하셨다.

 

 

다채로운 그림을 보며 상상력도 키워보고 또한 사물을 다각도로 보는 능력도 키워볼 수 있겠다.
다만 숨은 그림이 다소 억지스러운 것도 있고 물건의 생김새를 잘 몰라서 못 찾는 경우도 있었다.
하나의 사물이 여러 형태를 하고 있는 것도 많기에 눈을 부릅뜨고 보아야 한다.
잘 찾아지다가도 진도가 안나가는 페이지도 있었다.ㅎ

찾고야 말겠다며 강한 성취욕을 보이는 아이들은 매일매일 책을 펼쳐들고 찾기에 여념이 없다.
그래서 이 한 권을 다 끝내면 다른 시리즈로 즐거움을 이어가야겠다.
TV나 모바일에 시간을 뺏기고 있는 아이들에게 숨은 그림 찾기 책을 들이밀며 함께 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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