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 삶의 지도를 확장하는 배움의 기록
이길보라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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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 책을 몇 분이 소개할 때만 해도 그저 그런 자기 계발서 정도로 여겼었다. 책은 다 때가 되면 찾아온다는 말이 어쩜 그리 맞아떨어질까. 작가의 이름이 특이해서 이름만은 기억하고 있었는데 데프 보이스 시리즈를 통해서 이번에 연줄을 잡아보기로 했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이 책에는 작가의 도전기가 담겨있다. 데프 보이스에서 작가가 코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보였던 내 반응 역시 놀라움과 대단함이었다. 그렇지만 작가는 그런 정체성을 신기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나라에서 겪은 경험담을 통해 '다름이 주는 풍성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들리지 않는 이들과 들리는 이들, 공교육과 새로운 도전 사이에서 그녀를 당차게 밀어 준 건 농인인 부모님 덕이었다. 장애를 장애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식에게만은 방법을 제시해 주던 부모님의 역할이 더 값져 보였다. 물론 코다여서 겪었을 불편함에 대해선 세세히 언급하고 있진 않지만 적지 않은 상처와 날카로운 베임이 있었을 것이다. 결혼 이야기까지 오가던 남자친구의 거절 이유에 나까지 흥분하고 분노했으니 그녀 역시 얼마나 상처가 되었을까.

 

작가님의 2년 동안의 네덜란드 고군분투기도 무척 훌륭하고 인상 깊었지만 네덜란드라는 나라가 지닌 문화성에 다시 한번 놀랐다. 이렇게 매력적으로 열린 나라라면 열정을 불태우는 과정에서 생기는 그을음마저도 나쁠 것 같지 않았다.

동성 간의 결혼을 제일 먼저 합법화한 것만 보아도 개개인의 삶과 인권을 존중했음을 알 수 있듯이 수용하고 이해하고 포용하려는 자세가 참 좋아 보였다. 지금의 네덜란드를 만든 건 이러한 사고방식을 국민들 대다수가 받아들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인상적이었던 건 총장도 자전거를 타고 다닐 만큼 자전거가 친숙한 나라라는 점이고 다문화에 대해 협력하고 연대하려는 자세를 갖췄다는 점이다. 그러니 다양한 사람들이 모며 자유로운 창작활동이 가능했을 것이다. 개개인의 발언권을 중시하고 저마다의 속도를 인정하는 태도,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을 기다려주던 급우들의 모습 역시 인상적이었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힘든 게 유학 생활일 텐데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것들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다. 유학자금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시도한 건 정말 멋진 일이다.

 

우린 언제나 '정상성'과 '일반화'에 대한 질문만을 받아왔다. 그녀 역시 그런 질문들 때문에 페미니스트가 되고 투쟁가가 되었다. 그러한 시선을 독특하게 바라본 외국인을 보며 작가가 느낀 부러움이 와닿는다.

 

개인의 예술 작업이 꼭 어떤 사회 문화적 억압으로부터 시작되지만은 않는다는 것이, 자신이 하고 싶은 작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무엇보다 그가 가진, 동기들이 가진 자유로움과 유연함을 갖고 싶었다. -p.154​

 

그곳처럼 우리 사회 역시 이런 곳이었으면 좋겠다. 국적이 어디인지, 성별이 무엇인지도 중요하지 않다.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사회적 지위가 어떠한 지도 고려 대상이 아니다. 성장기 일반적인 코스라는 것도 필요 없고 타인의 시선 또한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경험에서 얻은 넘어짐 정도는 얼마든지 성장을 위한 동력임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면 정말 좋겠다. 남들이 하니까 하고 남들처럼만 하기 위해 원치 않는 길에 서서 방황하던 시절은 나 때로 끝내야겠다. 내 아이들만큼은 틀 밖에서 자유롭게, 하고 싶어 하는 대로 지지하고 응원해 주어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두려움이 앞설 때 망설여질 때면 이 주문을 외워야겠다.

괜찮아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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