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2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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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를 대표하는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 나름으로 불행하다.-처럼 인간은 각자가 가진 불행의 그릇만큼 불행하다. 나에게 작은 고통이 누군가에겐 전부인 고통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다. 베르테르에겐 사랑( to you)이 전부였고 나도 사랑(myself and)이 전부지만 그 대상이 다를 뿐이다. 베르테르가 자기 자신을 조금만 더 아꼈다면 슬픔을 정당화한 자기학대는 하지 않았을 텐데.

 

작년에 읽고 재독을 했다. 작년에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느낀 감정은 짜증이었다.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도 납득이 안되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인데 그럴 때마다 젊음을 허망하게 끝내서야 되겠는가.

사랑 이야기는 나의 성향이 어느 정도 반영될 수밖에 없다. 난 아무리 봐도 베르테르의 집착으로 밖엔 보이지 않았다. 재독하기 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제목을 한참 머릿속에 띄워놓고 멍하니 천장을 응시했다.

젊은 베르테르 자신의 슬픔(사랑)을 이해하기엔 도저히 감성보다는 이성이 앞서서 연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좌절) 전체를 이해하려고 드니 조금씩 감성의 문이 열렸다.

 

베르테르는 빌헬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자신의 심경을 전한다. 그가 잠시 편지가 뜸했던 6월 초 그는 한 여인의 세상 속으로 빠진다. 약혼자까지 있는 여인이었음에도 그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해와 달과 별은 제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겠지만 나는 도무지 낮과 밤을 분간할 수가 없었네. 내 주위의 세상이 통째로 사라져버렸던 것일세. -p.42

 

그가 <전쟁과 평화>의 아나톨 같은 성향(바람둥이-약혼자가 있는 나타샤를 완전 홀림)이었다면 가볍게 사랑을 쟁취했을는지도 모르지만 베르테르는 감성은 충만하나 소심한 스타일이었다. 정말 심수봉의 노래 '사랑밖에 난 몰라'를 절로 떠오르게 만드는 남자다.

 

아나톨과 베르테르의 공통점이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점점 대담해진다는 것이었다. 아나톨이 행동으로 보여주었다면 베르테르는 단언과 확신으로 보여준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베르테르도 한 머슴의 과감한 결단력을 부러워하거나 심지어 미치광이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의 단언과 확신은 그 수위가 점점 높아만 간다.

그녀도 나를 사랑하고 있고 그녀 주변의 모든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고 있으며 그녀가 자신과 결혼했으면 더 행복했을 거라는 마음. 2부에 가면 그러한 확신이 더 절정을 보인다. 로테가 남편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서 편지의 수신인이 나라는 상상을 하는 것도 모자라 그녀가 기르던 새가 입을 맞추자 그 작은 새의 부리가 그녀의 입술에서 내 입술로라며 행복해한다. 게다가 나중에는 알베르토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단정 짓기까지 한다.

 

이런 점들이 나를 점점 더 짜증 나게 했는데 과연 그의 행동을 사랑에 눈먼 젊은이의 순수한 사랑이라고 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들이 그의 사랑이 불러온 착각일까, 행위의 진실일까 하는 문제도 정리가 되지 않는다. 여전히~~

그가 틀리고 알베르토가 옳다는 건 아니지만 그가 알베르토와 나누는 대화의 절반 이상이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변명 같다.

 

도덕적으로만 본다면 그는 마음을 거두고 그들에게서 멀어져야 했다. 물론 본인도 죄책감에 잠시 그들 곁을 떠나 있었지만 바깥에서 겉돌다 로테를 잊지 못하고 다시 오게 된다. 그렇다면 로테는 책임이 없을까. 로테는 베르테르의 마음을 알면서도 그에게 자꾸 공간을 내어주었다. '내일도 오실 거죠?'라는 기대와 '사랑하는 베르테르'라는 문장으로 우정을 포장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정쩡하게 빈틈을 내어주던 그녀조차도 베르테르의 감정이 극에 달하자 알베르토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이 상황에 부담을 느낀다. 이런 종류의 사람이 여러 사람의 감정을 아프게 하는 법이지.

 

 

그녀가 나를 사랑하게 된 이유로 내가 얼마나 나 자신을 숭배하게 되었는지 모른단 말일세! -p.57라는 말을 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그녀와 자신의 가능성을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끌림이 강력해질수록 자신이 비참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느낀다. 할머니의 자석산 이야기를 떠올린 데는 그런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생동하는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 오래전 그는 그 속에서 느끼는 벅찬 감정에 전율을 일으켰었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지금은 인간이 자연에게 행하는 파괴력 때문에 괴로워한다. 그만큼 그는 사랑이 충만했을 때 오는 행복감보다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 오는 불행에 더 집착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초겨울 그의 심경은 절정에 달한다.

아, 과연 나보다 비참한 인간이 나 이전에 존재했을까. -p.137

 

사랑의 끝이 소유가 아님을 깨닫는 것까진 좋았으나 그는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죽음에 두는 어리석음을 보이고 말았다. 그를 위해 슬퍼하고 후회할 그들을 떠올리면서 위안을 얻다니. 나는 결정적으로 그의 죽음 때문에 그가 로테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보이지 않는다.

오래전 대학교 친구 중에 그 친구 때문에 자살한 남자가 있었다.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친구의 집 아파트 바로 앞 동에서 뛰어내렸다는 얘기를 듣고 경악을 한 적이 있다.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라서 그 친구가 가졌던 트라우마의 크기는 알 수 없지만 오래가지 않았을까. 특히 베르테르가 로테와 처음 만났을 때의 복장 그대로 죽으려 했을 때 소름이 돋았다.

 

로테는 과연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을까.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발걸음을 재촉해 보아도 '저곳'이라는 이상(理想)이 '이곳'의 현실이 되어버리는 순간 모든 것은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만다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결핍과 절박함 속에 머물게 되고 우리의 영혼은 사라져버린 활력소를 또다시

갈망하게 되는 게 아닐까. -p.43

 

위 말을 스스로 했음에도 그는 왜 사랑만큼은 대입시키지 못한 걸까. 사랑도 인간의 반복된 갈망에 하나였음을 알았더라면 그가 내세의 믿음에 빠져 버리지 않았을 텐데. 그는 너무나 속단했고 성급했다. 세상과의 불화를 죽음으로 벗어나려 한 것! 그것을 자유라고 여긴 그 사실이! 난 그것이 슬플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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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16 1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베르테르가 발표했을 당시에 당시 10대 20대들이 소설속 베르테르처럼 옷을 입고 자살을 할정도로 ㅋㅋ 건빵님 말씀처럼‘사랑의 끝이 소유가 아님‘ 명언임 ^.^

건빵과 별사탕 2021-02-16 10:25   좋아요 1 | URL
진짜 젊은이들의 무분별한 신드롬 문화도 무서운것 같아요. 소름이 돋더라고요.으흐~~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