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독서 토론 도서로 만난 구병모 작가의 첫 책이다. 책을 만나기전 작가에 대한 정보를 몰라 성별도 오해했다. 필명까지 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고나니 씁쓸하긴 하다. 암튼 작가의 첫 책에서 작가의 수준 높은 문장력과 탄탄한 묘사력과 풍부한 어휘력에 감탄을 했다. 이야기 또한 현실 세계에 끼어든 상상력이 과하지 않게 흐르고 나머지 상상의 반은 독자에게 던져놓고 있어 여러모로 할 이야기가 많았다.

한 여인이 실족사할 뻔한 사연으로 이야기는 시작되지만 허우적거리는 가여운 생명에게 주어진 아가미를 가진 자가 전하는 인간미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특이한 건 시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어 진실은 모호해지지 않을까.

 

어쩌면 세상은 그 자체로 바닥없는 물이기도 하고. -p.22

 

그 바닥없는 물에서 누군가에 의해 들어올려진 적이 있는 '양해류'

그 바닥없는 물에서 다시 태어난 '곤'

그 바닥없는 물에서 영원히 떠돌고 있을 '윤강하'​

 

해류를 살린 곤, 곤을 살린 강하, 실종된 강하를 찾고 있는 곤, 삶의 어느 지점에서 느낀 동질감으로 인해 강하와 곤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는 해류.

이처럼 사건의 시점은 해류에게서 강하로 흐르고 다시 해류에게 흘러 곤에게 전해지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 이야기는 무언가 허점을 드러내고 그 허점 속에 캐릭터도 변화한다. 한참 삐뚤어진 캐릭터를 고수하던 강하의 이미지에 인간미가 뚝뚝 흐른 채 끝이 나버려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만큼 초반에 보여준 그의 폭력성에 예민해져 있었기 때문이리라. 곤은 시종일관 색채가 느껴지지 않는 캐릭터이기도 했고. ​

 

누군가에게 있어 가난은 더 이상 헤어 나오지 못할 저주받은 운명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선택으로 생사의 선택권이 없었던 한 아이의 운명을 삶이 가엽게 여긴 것일까. 극한의 상황에서 극적으로 진화한 아이는 물고기와 인간 양쪽 세계를 오가는 능력이 생겨난다.

기이한 변화에 신기한 것보다 양쪽 귀 뒤가 근질거리는 것이 왠지 징그러운 기분에 몰입이 안 된다.

 

그렇게 처절한 삶의 바닥에서 건져 올려진 아이는 할아버지와 강하의 보살핌으로 숨을 쉬게 된다. 그 보살핌이라는 게 더러는 구박과 폭력이 동반되기는 했으나 어미에게 버려져 애정결핍에 갈증을 느끼던 강하는 곤의 존재가 싫지만은 않다.

그 불안함과 막막함이야말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요. -p.194

 

그럼에도 강하는 지독하게 곤에게 몹쓸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에게 아가미와 함께 속마음까지 꿰뚫는 능력이 생긴 걸까. 곤은 그저 묵묵히 모든 걸 받아들인다. 강하의 양가 대립되던 감정들이 어찌 논리적으로 설명이 될 수 있을까마는 분명한 건 강하는 곤이 다시 절망에 빠지지 않길 바랐다는 것이다.

어미의 피로 뒤덮인 현장에서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겠으니까"라는 말과 함께 "다시는 오지 말라"던 마지막 말속에 담긴 진한 애정에 울컥했다. 이제껏 강하가 싸지른 행동에는 사춘기 반항아의 기질도 다분했지만 곤의 특이함이 곧 위험함이라는 걸 알았던 서툰 방패막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 모든 해석이 강하의 입에서 전해진 말들이 해류라는 필터를 한 번 더 거치며 이미지가 순화된 것일 수도 있다. 강하가 끝까지 곤을 증오하고 두려워했는지 아니면 진정으로 어디서든 살아만 있어주길 바란 건지 잘 모르겠다.

 

어쩜 이리도 다들 처절하게 가난할까.

해류가 물속에서 살기 위해 붙잡은 것이 자신이 가진 물건 중 가장 가벼운 핸드백 끈이었다는 대목에서 웃프다가도 상한 젖병이 나뒹구는 작은방에서조차 목숨줄을 붙잡고 있던 곤의 모습을 떠올렸을 땐 비참할 따름이다.

호수에서 건져 올려지던 시체들은 불행을 전시하고 비극은 말뚝을 박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순간 드는 생각이 뛰어내릴 때마다 곤과 같은 생명체가 그들을 물 밖으로 떠밀어 준다면 그들은 다시 살아갈까.

글쎄다. ​

 

자연의 순환만을 떠올렸을 때 강물은 흘러 바다로 가는 게 이치다. 하지만 민물고기는 바다에서 살지 못한다. 늘 강물 냄새가 나던 곤이 바다로 가서 살수 있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실종된 강하의 신분이 새 삶을 줄 수도 있었지만 인간 속에 스며드는 삶이 더 난관이다. 그랬기에 물 밖보다 물속에서 평온함을 찾았던 곤에게 있어 강하를 찾는 일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그곳이 강이든 바다든 곤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물 만난 물고기가 되어 계속 헤엄쳐 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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