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걸 - 역사의 뒤안길에 숨어야 했던 클로뎃 콜빈 미래그래픽노블 4
에밀리 플라토 지음, 이희정 옮김 / 밝은미래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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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는 여전히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다운 삶, 인간으로서 존엄을 인정받지 못하고 사는 이들이 많다. 피부색, 언어, 지역에 따라 인간들은 서로를 차별하고 배척하고 밀어낸다. 아주 오래전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만으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아온 흑인들은 그들의 권리를 되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책은 흑인운동의 시초가 된 한 사건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불씨를 지피고 희생한 이들은 역사적으로 이름을 남긴다. 하지만 그들의 불씨가 타오르기 전에 곳곳에서 작은 불씨를 피워댄 이들이 있었다. 크게 이슈가 되진 못했지만 그들의 작은 행동은 큰 불씨를 지피는 연료가 되었다. 여기 작은 소녀 클로뎃 콜빈도 그런 인물 중 하나였다.

 

 

 

 

우선 일러스트가 간결하고 심플하다. 색상은 많이 제한되어 있고 인물의 묘사나 동작도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최대한 절제함으로써 그만큼 역사적 아픔을 강조하려 한 의도가 보인다. 서술 방식 또한 아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흑인이에요. -p.11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간접적으로 사건 현장에 놓이게 된다. 억울한 상황에서 느꼈을 분노의 크기와 고통의 깊이에 대해 조금씩 와닿게 된다. 나와는 다른 환경의 누군가가 되어 그들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키워볼 수 있다.

 

 

 

 

백인들이 흑인들의 터전을 빼앗고 그들의 삶을 지배했을 때는 더 참혹한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콜빈이 살던 그 시절(더 이상 노예는 아닌)의 흑인들은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사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백인들은 노예제가 없어졌음에도 흑인들을 인간 이하 취급을 했다. 백인들은 자신들의 생활권에 흑인들이 함께 하는 것을 불결하게 여겼다. 법적 장치(짐 크로 법)를 마련해 철저히 흑인들과 분리된 삶을 누리려 했다.

 

1950년대 미국 앨라배마주, 이곳엔 '짐크로 법'이 있었다. 그 법은 인간이 또 다른 인간에게 가하는 악법이었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그 법이 얼마나 부당한지 느낄 수 있다. 백인이 우위인 세상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동네에서 클로뎃은 변호사를 꿈꾸던 소녀였다. 사건은 학교 가던 버스 안에서 벌어진다. 당당하게 요금을 내고 흑인 전용 자리에 앉았음에도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되는 상황이 벌어지자 부당함에 저항한다. 하지만 결과는 경찰에게 얻어맞고 모욕적인 말을 듣고 구치소에 갇히고 만다.

 

이에 부당함에 반기를 든 이들이 소송을 하고 몸소 법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버스 승차거부와 같은 운동을 시작하지만 법은 백인들의 편이었다. 클로뎃은 좌절했고 변호사의 꿈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뒤 비슷한 사건이 또 일어난다. 로자 파크스라는 여성이 클로뎃처럼 버스 승차의 부당함과 싸우게 된다. 그녀는 더 당당했고 많은 흑인 여성들이 반발하면서 버스 거부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진다. 거기에 루서 킹 목사 또한 지지자로 나선다. 반면 백인들의 위협은 더 악랄해지고 비열해진다. 마틴 루서 킹은 39살 나이에 암살당한다.

 

그럼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클로뎃도 용기를 얻어 다시 증언을 하게 되고 그런 비슷한 일을 경험한 다른 여성들도 법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높인다. 그것은 현재의 그들보다 미래의 흑인들을 위한 투쟁이었으니까. 비록 그들은 승리했지만 클로뎃의 이름은 지워졌다. 우리는 여기서 기억해야 한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힘을 보태었는지를. 인종 분리법의 상처가 아물어 가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런 힘없고 나약한 이들이 있었기에 바뀔 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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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월
존 란체스터 지음, 서현정 옮김 / 서울문화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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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바다 바람 하늘

바다 바람 하늘 + 언덕이었다면 아름다운 풍경을 떠올리겠지만 이곳엔 언덕 따윈 없고 차가운 콘크리트가 세워져 있을 뿐이다. 왜 이곳에 콘크리트 벽이 세워졌는지 친절한 설명은 없다. 단지 이야기 흐름 속에서 단서를 찾고 추측할 뿐이다. 세상은 대격변(종말)을 겪었고 어떤 무리는 살아남아 벽을 세웠고 그렇지 못한 무리는 세상을 떠돈다. 더 이상 지구촌은 하나가 아니며 생존을 위한 투쟁만 남는다.

 

벽안의 사람들은 벽안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 벽을 지키는 일을 중시한다. 세상은 이분법화되었다. 살아남은 자와 떠도는 자, 벽을 지키는 사람들(경계병)과 벽을 넘으려는 사람들(상대), 벽 이전(기성세대)과 벽 이후(우리), 빼앗기는 자와 뺏는 자, 작게는 벽 위의 시간(근무)과 이후의 시간(제대).

 

먼 미래 어쩌면 가까운 미래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기후변화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하고 그에 따른 혼란으로 사람들은 분열된다. 망가진 지구에서 더 이상 인간의 존엄과 인간다운 삶은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천연자원은 바닥나고 물자는 턱없이 부족하고 귀해진다. 대격변이전 시대의 삶(현재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들)은 사라진지 오래고 가진 것만이라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방어벽을 치고 지켜야만 한다. 디스토피아 소설이 그렇듯 출산도 쉽지 않다. 대격변 이후의 가정의 개념 또한 달라진다. 콘크리트 벽만큼의 세대 간의 벽이 세워졌고 남녀 간 사랑보다는 번식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는다.

 

 

 

벽안의 사람들은 벽을 지키기 위해 2년 동안 복무를 해야만 한다. 선택지는 없다. 해야만 하는 것이다. 카바나도 두려움을 안고 벽 위의 첫 발을 내디뎠다. 추위와 긴장과 싸워야 하지만 진짜는 상대(침입자)들을 상대하는 것이다. 상대들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면 바다로 추방된다. 상대들을 막지 못했기에 그들과 같은 삶으로 내몬다. 거의 사형선고다. 그만큼 위험부담이 크기에 사회적 대우도 다르다.

 

 

벽만 바라보고 서 있는 곳. 보이는 거라곤 바다와 하늘 피부로 와닿는 거라곤 바람(추위). 머릿속으로 전해지는 울림은 두려움. 그는 시간을 계산한다. 계산하면 더 빨리 지나갈 것처럼. 12시간 근무를 하고 교대를 서는 일을 반복하는 동안 시간의 흐름만 기억한다. 하지만 시간은 더디다. 오히려 몸을 움직이는 훈련은 긴장감을 주지만 지루하진 않아서 할만하다. 하지만 삭막해 보이는 그 공간에도 온기가 있다. 그냥 인사하고 싶어서 온 거야.-p. 59라며저 온기를 전하는 동료와 근무 시 따뜻한 음료를 배달하는 조리사(그녀의 죽음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와 썸을 타게 되는 히파는 군 복무 생활을 좀 더 산문에 가깝게 해 준다.

 

그는 대위와 병장의 지도 아래 조금씩 이곳 생활에 익숙해져간다. 스스로 특별하고 싶었지만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은 차츰 우리라는 공동체에서 위안을 얻게 된다. 다만 적에 대한 막연한 적개심은 의문이 든다. 그가 그들의 고달픈 삶을 잠시 떠올리는 모습은 분명 연민이었으니까.

 

누구보다 대원들을 챙기고 임무에 충실한 대위는 그가 본받고픈 인물이다. 심장이 쫄깃해지는 훈련은 대원들끼리 더욱 친밀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격변 중이고 안전을 찾아 떠도는 자들은 벽을 넘으려 한다. 그리고 폭풍이 치던 어느 날, 정전이 되던 어느 날, 벽에서 긴박한 총성이 울리기 시작한다.

 

망가져버린 세상에서 누구는 살아남고 누구는 죽어야만 한다면 인간 세상은 나아갈 수 있을까.

벽은 물리적인 의미보다 상징적인 의미를 더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더 이상 품어주지 않는, 선택당할지 말지에 놓인 세상은 오래 유지될 수가 없다. 대위가 강조한 거짓 없는 세상. 혹은 거짓으로 세워진 세상 또한 서로를 품을 수 없다.

 

카바나는 바다 위에서 해적을 만난다. 치열한 생존의 끝은 동물처럼 본능만 남는다. 그는 눈앞에서 그런 현실을 보았다. 동료를 또 한 번 잃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그는 히파와 함께 떠돈다. 희망을 찾아 내려가는 남쪽. 기적과 같이 그들 앞에 도움의 사다리가 내려진다. 그가 벼랑의 끝에서 본 희망의 사다리 앞에서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더 이상 인간의 믿음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고소공포증을 이겨내고 사다리를 타고 오른다. 그들이 만난 생존자는 카바나와 히파에게 인간 등불인 셈이다. 그들이 진짜 등불을 밝히며 그 아름다운 불꽃에 온 마음이 뜨거워졌을 때 분명 그들은 좀 더 나은 미래를 그려보았을 것이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난민, 불법 이민자, 나라 간 장벽,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자국 이기주의, 세대 간 갈등 등은 여전히 진행 중인 이야기다. 서로가 잘 살기 위해 지속적으로 대화를 하고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이 책은 그런 이슈들을 바탕으로 깔고 있다. 그것이 진정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제임을 잊어선 안된다. 우리가 벽을 세울지 말지를 결정했다면 그 벽을 넘을지 무너뜨려야 할지 결정하는 것도 우리 자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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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초록 - 어쩌면 나의 40대에 대한 이야기
노석미 지음 / 난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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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지만 봄을 만끽하지 못하고 이따 보니 유독 표지에 혹하게 되는 책들이 있다. 이 책도 그러하다. 문학동네 신간 코너는 위험하다. 있는 책이나 열심히 봐야지 했었는데 또 들였다. 오래간만에 그림도 보며 방콕의 답답함을 씻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변명을 덧붙이면서.

 

저자는 홍대 회화과 출신으로 이 책 이전에도 몇 권의 책을 출간한 이력이 있으며 고양이 그림을 많이 그려서 고양이 작가로도 알려져 있다고 한다. 글을 보면 작가의 인생 코드가 보이겠지만 우선 그림, 글, 자연, 전원생활, 고양이... 등등 작가의 인생 코드가 나와 잘 맞는 것 같아 반가웠다. 저자는 자신만의 라이프를 일찍 찾았다. 땅을 찾아 집(개집을 뻥 튀긴 거라고는 하지만 그것도 부럽)을 짓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전원 라이프(고양이를 키우고 잡초를 뽑고 과실나무를 심고 장작을 베는 등)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마냥 부러웠다.

 

운명처럼 자신의 터가 되어준 양평의 보금자리에서의 생활이 어디 말처럼 아름답기만은 할까. 집을 세우면서 도 오래전 땅주인이었던 할아버지의 불편한 심기를 느껴야 했고 시골 인심도 예전 같지 않은지 오래되어 텃새와 편견(결혼 안 한 나이 많은 여자의 독신라이프)에 잘 대처하는 법도 알아야 했으며 나이 많은 이웃들의 충고와 잔소리도 감내해야 한다. 한국의 불필요한 시골 인심이라면 오지랖이 아닐까. 고양이 따위를 왜 키우느냐. 잔디는 뭣하러 심느냐. 길냥이들 밥은 왜 챙기느냐. 지면 흉한데 목련은 왜 심느냐 등등 사소한 참견들에 피곤하기 마련이다. 물론 득이 되는 조언들도 있다. 나무는 심는 위치가 다 다르고 토양에 따라 생사가 갈리기에 이웃분의 조언은 고급 정보다. 그렇듯 오래오래 내 터에서 자알 지내려면 동네 분위기에 맞추며 살아야 한다.

 

나는 이제야, 강가에 서서 아까 흐른 물이 이곳에 없다는 것을 관찰하고, 이것을 자각하고 있는 이 찰나 역시 계속 다른 찰나로 교체된다는 것을 배운다. -p.62

 

 

 

 

그렇게 시작된 전원생활은 사계절과 함께 무르익어간다. 남쪽을 바라보는 집안에서 느끼는 따스한 햇살과 집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저자의 예술적 감성을 깨우기 충분해 보인다. 그 소박한 창으로 보이는 멋들어진 사계절 풍경이 정말 탐날 지경이다.

 

하지만 전원생활은 정말 부지런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 저자는 집안 밖을 가꾸는 일부터 농사(소박), 애완묘와 길냥이까지 돌본다. 토마토와 마늘농사에 전문가가 되고 목화까지 도전한다. 게다가 월동준비 리스트를 보니 만만찮다. 계절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사계절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던 <리틀 포레스트> 영화도 떠올랐다. 계절 속 저자의 일상이 좀 더 현실적이지만 말이다.

 

전원생활하면 벌레부터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지인은 모기가 싫어 캠핑도 다니지 않는다. 전원은 모기뿐 아니라 파리, 벌, 뱀, 멧돼지 등 천적들이 활개치는 곳이다. 나는 뱀보다 지네가 더 싫었다. 실제로 보면 그 모양새가 정말 끔찍하다.ㅋ 저자는 파리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고 있는데 진짜 귀찮은 존재긴하다. 잡아도 잡아도 어디서 그렇게 들어오는 건지 파리채에 끈끈이까지 총동원했던 그 옛날이 떠오른다.

 

 

 

 

 

유독 맘을 사로잡은 것은 반려묘와의 시간들이다. 오랜 시간 그녀의 혼족라이프를 함께 한 그 친구들은 그녀에게 있어 반려묘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냥이의 눈빛들을 잘 알기에 그녀가 그린 그림 속 냥이들의 눈빛이 참 좋았다. 다섯 마리의 냥이를 하늘나라로 보낸 사연은 남 일 같지 않아 먹먹해졌다. 시간의 유한함을 생각하자 애잔함에 한 번 더 쓰다듬게 된다. 첫째냥에게 뚱뚱하다고 구박 좀 그만해야겠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의 톱니바퀴에서 나만 느슨해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자연속에서라면 마음만은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다. 매우 초록하면 초록으로 꽉꽉 들어찬 여름이 떠오르지만 그녀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오전과 오후의 일상이 진한 초록빛같이 싱그럽다.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신만의 유니크한 일상을 살고 있는 그녀의 삶을 응원한다.

 

작가님 그림을 보니 나도 울 냥이를 한번 그려볼까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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싯다르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3
헤르만 헤세 지음, 권혁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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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간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적당히 속세의 때도 필요하다. 난 경험치 없는 사람들의 설교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한참 마음이 삐딱선일땐 더 그랬다. 인생 경험이 풍부한 이들의 조언이 더 와닿을 수밖에 없는 건 그들도 나와 같은 아픔과 쓰라림을 견뎌냈다는 사실에 내가 위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헤르만 헤세도 인간이 인간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고통 뒤에 느끼는 행복이 더 가치 있고 속세의 어리석음은 속세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음을 말이다.

짧게 요약하자면 한 성직자의 진정한 자아 찾기로 속세에 머물면서 인간의 온갖 욕망과 쾌락을 경험한 뒤 자아반성을 통해 자기실현을 하는 이야기다. 특히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며 집을 떠나왔던 순간을 자신의 아들의 행동을 보며 떠올리게 된다.

너 같은 자식 낳아서 부모 맘 한번 느껴봐라는 말과 어쩜 그리 일맥상통하는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부분은 지극히 현실적인 깨달음이다. 아버지 역시 지금 자신이 아들 떄문에 겪고 있는 것과 똑같은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니었을까? -p.153

싯다르타는 카스트제도의 제일 꼭대기층 계급의 삶을 충분히 누리고 있었다. 그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인물이자 장차 브라만의 수장이 될 재목이었다. 하지만 그는 점점 심각한 고뇌에 빠지고 자아에 대한 불만족감은 점차 불만의 싹으로 자라나기 시작한다. 즉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원인과 결과를 맘속 깊이 신뢰하지 못한다. 세상만사에 대한 모든 이치를 배움으로만 터득할 수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아무리 목욕재계를 해 본들 아무리 명상을 해 본들 그의 삶 자체가 너무나 평온해서 개운하지도 불안이 해소되지 않았다. 즉 씻을 영혼도 긴장의 삶도 그는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한때 보았던 사문의 무리를 떠올리며 자신도 그와 같은 수행이 필요함을 인지한다. 싯다르타는 아버지의 걱정을 뒤로하고 의지대로 밀고 나간다. 싯다르타를 따르던 친구 고빈다도 그를 따른다.

 

 

 

 

싯다르타는 우선 비우기로 한다. 그리고 직접 고통을 참아내며 호흡을 조절한다. 위대한 사문의 가르침에 따라 도를 닦는다. 하지만 그는 부족함을 느낀다. 비천한 자들 즉 인간의 삶 속에서 그들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을 경험하고 싶어 한다. 마침 부처 고타마에 관한 소문을 들은 두 친구는 다시 길을 떠나 고타마의 아래에 머물지만 싯다르타가 처음 느꼈던 고행의 틈은 계속해서 그의 수행을 방해한다. 그는 다시 떠나기로 한다. 브라만의 싯다르타가 아닌 한 개인의 싯다르타가 되어서.

정말이지 세상 그 어떤 것도 나의 자아만큼, 내가 살아 있다는 이 수수께끼만큼, 내가 다른 모든 사람과 구별되는 남다른 존재라는 수수께끼, 내가 싯다르타라는 이 수수께끼만큼 나를 그토록 상념에 빠지게 한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싯다르타에 대해 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 모르고 있다니! - p.51

자기 자신조차도 모르는 자가 어떻게 인간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싯다르타는 그 점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고뇌에 찰 때마다 꿈을 꾼다. 꿈은 그를 속세와 가깝게도 하고 멀게도 한다. 꿈을 통해 깨달음의 힌트를 얻기도 한다.

 

나는 사색할 줄 압니다. 나는 기다릴 줄 압니다. 나는 단식할 줄 압니다. -p.73

 

어떠한 불신도 없이 바라본 세상은 아름다웠고 그는 그 속의 일부가 되고자 한다. 강을 건너 도착한 도시에서 그는 새로운 감정들을 경험한다. 대신 그가 늘 하던 사색과 기다림과 단식(욕망)은 최대한 활용하면서. 하지만 아름다운 여인과의 사랑(욕정과 쾌락), 부의 축적(소유와 탐욕)이 늘 그를 따라다니자 그는 점점 세속에 물들어간다.

우리는 세상을 알아갈수록 불안을 떠안고 살며 삶의 즐거움을 잃어간다. 싯다르타도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돈의 노예가 되고 돈 앞에 악랄해진다. 영혼의 타락은 삶의 죽음과도 같았다. 그의 얼굴은 그가 살아온 삶을 고스란히 본뜨고 있었고 그는 그런 스스로의 얼굴을 보며 환멸을 느끼고 다시 떠난다.

 

 

 

 

 

어떠한 목표도 없이 타인의 삶만 쫓다 보면 자신의 본연의 삶의 의미를 잃을 수도 있다. 만족(욕망)의 끝은 없다. 싯다르타는 한없이 부를 축척하고 사랑의 유희를 즐겼음에도 다시 허망함을 느꼈다. 죽음으로써 삶을 놓아버리려 했으나 그제서야 깨닫는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이 고행에서 느꼈던 틈(경험)의 일부였단걸.

자신을 잘 아는 것과 영리함은 별개다. 영리하지만 나뭇잎 같은 존재도 있다. 고타마처럼 하늘에 떠 있는 별 같은 존재로 살아가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싯다르타는 고타마를 떠올리며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 강을 건넌다.

그는 강가에서 고빈다를 만나 인생의 덧없음에 대해 고백하자 삶이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보이게 된다.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은 인생의 첫 시작점으로 그를 데리고 간다.

실수와 실패를 통해 한걸음 나아간다는 진리를 몸소 깨달은 것이다. 어리석었던 과거의 모습도 결국 나임을 자각해야 하고 다시 자신의 방향을 찾아 나아가야 한다. 그가 자신의 과거에 환멸을 느끼고 죽어버렸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다.

강물 앞에서 자신을 내던지려 했지만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깨달음을 찾자 싯다르타는 강에 머무르기로 한다.

그곳에서 강의 가르침에 따라 살고 있는 뱃사공을 그의 마지막 삶의 스승으로 삼는다.

강물은 흐르고 또 흐르고 끊임없이 흘러가지만 언제나 그곳에 존재하며 매 순간 같은 강물이면서도 새로운 강물이라는 것이다! 아, 과연 누가 이것을 파악하고, 이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p.121

비수데바(뱃사공)는 싯다르타의 이야기를 경청한다. 그것은 그가 가진 훌륭한 미덕임을 싯다르타는 깨닫는다. 게다가 비수데바는 자신이 아닌 강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자연에서 삶의 이치를 깨달아야 함을 말하고 있다. 세속에서의 찌든 삶의 해독제 역할은 자연이다. 이 부분에서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포스터가 떠올랐다.

자연과 더불어 자연이 극복하고 자연이 내어주는 것을 잘 받아들이며 자연의 일부가 되어가는 삶. 그것이 바로 그가 찾고자 한 배움이었다. 강물이 흐르는 모습 속에서 현재가 주는 귀함을 깨닫는다.

하지만 인생사가 물 흐르듯 차분히 흘러가지만은 않는 법. 그에게 아들의 등장은 다시 한번 그를 인생의 고뇌에 빠뜨린다. 그는 뱃사공이 되어 배 안에서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을 마주한다. 유치하고 어리석다고 여긴 그들의 삶 속에서 삶의 가치를 다시 보게 된다. 강물의 소리에서 그리움과 외로움, 고통의 소리를 듣게 된다. 이제야 귀 기울여 듣는 법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p.157

그는 배 위에서 고빈다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는 그가 여지껏 살아온 삶이 떠나온 이유였음을 말한다. 지혜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그것이 진리임을 전한다. 지식은 전할 수 있어도, 지혜는 전할 수 없다네. -p.164

싯다르타를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한 강물은 <작은 것들의 신>에서도 깨끗하고 신성한 존재로 언급된다. 강은 세속의 때를 씻어 내주고 지친 인간에게 위안을 준다. 하지만 강의 오염으로 강은 더 이상 인간에게 그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함도 떠올랐다. 생명의 순환이 오염(인간의 이기심)으로 막힌다면 끔찍한 결말을 초래하게 될 것이기에.

싯다르타는 종교적 색채를 떠나 한 인간의 내면의 성장을 보여준다. 모든 것은 헛되고 지나친 욕망에서 기인한다. 싯다르타가 중시했던 사색, 기다림, 단식은 이 같은 인간의 욕망을 절제하게 해 주는 행위들이다. 직접 보고 듣고 깨닫는 과정을 통해 현재 내 모습에서 필요한 덕목이 무엇일까 고심해볼 수 있겠다. 지금 나에겐 단식이 필요하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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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youkwon 2020-04-23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자세하면서도 정갈한 책 리뷰 감사드려요~~~~

건빵과 별사탕 2020-04-23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한 달의 교토 - 디지털 노마드 번역가의 교토 한 달 살기
박현아 지음 / 세나북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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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living you.

저자는 제대로 해석(언제나 아미타불이 당신을 살아가고 있어)을 했지만 나에겐 이런 의미로 다가왔다.

인생은 당신을 데리고 잘 사는 것이다.

 

나를 잘 데리고 산다는 것이 무얼 의미할까. 나는 가끔 여행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한번씩 이 질문을 한다. 일에 쫓기어 다른 나라의 문화를 느낄 새도 없이 살고 있는 나! 잘 살고 있는 게 맞나? 싶은 생각 말이다. 그만큼 여행 에세이는 나의 일상을 가끔 흔든다.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지금 전 세계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통과하고 있다. 이쯤에서 멈춰주었으면 하지만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다. 이미 모든 사람들은 일상을 빼앗겼고 불안과 두려움의 공기에 젖어 있다. 그래서일까. 저자의 작년 여행기가 어쩜 이리도 소중하고 귀할까.

봄이 선사하는 화려하고 기품 넘치는 풍경, 역사가 묻어나는 공간에서의 따뜻한 차 한 잔, 낯선 곳임에도 분명히 전해오던 온기, 잘못된 방향에서 만난 행운 같은 시간.

 

 

 

저자는 프리랜서 번역가다. 예전에 그녀의 책을 리뷰한 적이 있다. 그녀의 직업을 부러워하는 이들이 많을 것임에는 틀림없다. 일상에 매어있는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기에 특히 나는 그녀의 직업이 부럽다. 타향에서 한 달간 여행이 가능한 직업이니까.

뭐 일 년 프랑스를 여행한 기자분의 책도 읽으면서 많이 부러워했었지.ㅎ

 

아무리 나를 데리고 최선을 다해도 한 번씩 슬럼프가 온다. 그럴 땐 공간이동만큼 좋은 게 없다. 저자처럼 교토에서 한 달 살기를 결심하기까지는 도전정신과 용기가 필요하겠지만 그 시간 속에서 비워내고 채워가는 과정을 통해 분명 달라진 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2019년 4월이 일기처럼 쓰여있다. 블로그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나름 단단히 준비하고 나섰음에도 계획이 틀어진 날도 있었으며 무계획으로 움직인 날도 있었다. 4월임에도 날은 생각보다 추웠고 일본어를 잘 알아도 매번 잘못된 방향의 버스를 따서 시간과 돈을 허비한다. 가고자 한 곳이 문을 닫았거나 방문 시간이 늦어 들어가지 못하기도 했지만 혼자 하는 여행에서 그게 무슨 대수랴. 조금 이르게 도착해서 만발한 벚꽃을 보지는 못했어도 한 달의 끄트머리에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멋진 벚꽃 풍경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런 것이 혼자만의 여행의 묘미 아니겠는가. 참, 이 책은 교토 한 달 체험기라기보다는 여행기라는 점이 중요하다.

 

 

 

 

교토는 작년에 교토의 오래된 가게를 소개한 책을 리뷰한 적이 있어서 그 느낌은 조금 안다. 오래되고 고풍스러운 건물이 많아서인지 벚꽃과 함께한 풍경이 지금 내가 사는 동네의 풍경과는 너무나 달라 보인다. 어쩜 이렇게도 곳곳이 작품인지.

사진찍는걸 좋아해서 저런 풍경들을 담고 싶다는 욕심이 한가득이다. 그런점에서 더 부러운 여행이다.

분명 인파는 상당했을 것 같다. 사람들을 헤치고 지나가야 한다는 말에 그 모습이 그려지니까. 하지만 혼자서라면 이런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릴 것만 같다.

 

저자의 다도체험이 인상적이었다. 지난가을 서울구경할 때 다도체험을 준비하던 모습을 본적 있다. 주로 외국인들이 많았겠지만 그땐 별생각 없던 것이 지금은 해보고 싶은 맘이 생겼다. 아쉬운 대로 국내에서 다도체험을 꼭 한번 해 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저자는 사쿠라 모치가 먹고 싶어 가게에 들렀지만 그 떡이 없어 다른 떡을 사려 했지만 양이 많아 결국 시식용 떡을 두 개 집어먹고 나온다. 시식용 떡이 커서 더욱 미안했다는 저자의 글을 보면서 시식용 떡이 큰 건 작가처럼 미안해서라도 사게 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읽다 보니 눈이 번쩍하는 단어가 보인다. BTS!!

저자는 6일차는 카페 투어를 계획한다. 그곳에서 노트북을 하며 정리도 할 겸. 전통 가옥 모양에 호기심 반을 안고 들어간 카페에서 핸드드립 커피를 만난 것도 행운이었지만 카페 직원은 저자가 한국인인 걸 알고는 수줍게 자기는 아미라며 고백을 한다. 어쩜~~^^ BTS 엄청 좋아한다며 영상까지 함께 보았다는 내용에 내가 다 흐뭇해진다. 역시 방탄 포에버~!

 

 

 

 

저자는 틈틈이 일도 하면서 일정을 소화했다. 매일 가 본 곳의 정보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으며 중간중간 역사적 해설이 필요한 부분도 필요한 만큼 할애를 하고 있다. 일본 여행 책자에서 보았던 장소가 소개될 땐 좀 더 친근감을 느꼈다. 일본의 건축물은 참 화려하고 다채로운 모습을 지닌듯하다. 고즈넉하게 잘 관리된 풍경이나 오래된 가게들은 부럽기도 하다. 또한 수많은 관광객들로 인해 관광 코스마다 직원들도 친절해 보인다.

허나 맨션의 관리인은 한국인이라고 더 쪼아대는듯한 인상의 나마저도 불쾌한 마음이 든다.

 

그녀의 실수담은 그곳을 방문하려는 이들에겐 알짜배기 팁이다. 버스 정기권을 너무 늦게 구매한 점이나 정확한 버스 정류장을 찾기 어렵다는 점, 호텔이 아닌 맨션에서의 한 달 살이가 오히려 더 불편하고 힘들었다는 점등은 꼭 참고해야겠다.

참, SNS의 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점도 마찬가지. 금각사에서는 금각사 외 볼 거리가 없다는 글이 많았지만 금각사만 보아도 충분할 만큼 금각사의 모습에 압도당했다는 그녀의 말이 충분히 와닿았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감성이 다 다른법이니까.

 

개인적으로 인파가 너무 몰리는 곳을 선호하지 않다 보니 소도시 여행을 좋아한다. 하지만 교토의 유명한 관광 지도 한 번쯤은 방문해보고 싶다. 저자의 한 달 여행기가 독자들의 공간을 이동시키기에 충분했음에도 지금 그럴 수가 없으니 더욱 아쉽기 그지없다. 그녀의 발걸음이 내년엔 빛을 발할 수 있기를.

오늘 슈퍼핑크문이 떴다. 밤 12시쯤 창문을 열고 머리 위를 올려다보며 소원도 빌었다.

언능 이 사태가 끝나서 나를 데리고 철학의 길을 걷고 싶어요.라고.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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