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문진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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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집이 도착한 날. 으레 그렇듯 대상작만 빠르게 읽고서 작년 작품집 위에 포개어 놓았다. 그렇게 완독하지 못한 채 책탑만 쌓아 올리던 지난해와는 달리 드디어 올해는 완독을 했다.

우선 국문학을 많이 접하지 못해서 내가 아는 작가라곤 손홍규님뿐이었다.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이란 산문집이 너무 좋았기에 '삼촌이 한 명 있다'로 시작하는 <지루한 소설만 읽는 삼촌>에 호감도가 기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한 명 있는 삼촌이지만 가족의 눈에 비친 삼촌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누군가에게 삼촌은 신세를 망친 탕아였고 다른 누군가에게 삼촌은 세상에 다시 보기 힘든 순정파였으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 삼촌은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지루한 소설만 읽게 된 사람으로 그려진다. 그렇지만 원래 삼촌은 그저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끼리 포근한 집을 짓고 살기를 원했던 평범한 우리 같은 사람이었다.

인상적이었던 건 형수의 생일날 세 사람(형수와 형 그리고 삼촌)이 본 영화였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라는 영화를 고른 건 형수였다. 영화를 고른 이유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특히 형이 남긴 감상평을 보라. 애정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저 저돌적이고 일차원적인 감상평에 형수의 우울증이 짐작되고도 남는다.

젊은 놈들이 내일이 없다는 듯이 천방지축 날뛰면 비참하게 죽는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멋지게 한탕을 하여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으려면 치밀하고 완벽해야 한다.


팍팍한 서울살이에 생계형 부부가 되어버린 형과 형수를 보면서 황현진님의 <우리집 여기 얼음통에>에서의 커플이 떠올랐다. 어쩌다 보니 사랑보다는 경제적 이유로 묶여버린 사이 같지만 혼자보단 둘이었기에 괜찮을 줄 알았다. 그렇지만 위기는 그들 사이에 균열을 일으킨다. 질병에 대한 두려움, 가난에 대한 두려움. 한꺼번에 밀려드는 두려움에 할 수 있는 거라곤 견디는 것뿐이다. 위기 속에 사랑만큼은 더 이상 줄줄 새나가지 않기를.

<지루한 소설만 읽는 삼촌>의 마지막 문단을 읽다 보니 각 작품들의 단면들이 스쳐 지났다. '가까운 사람 가운데 비참하게 죽은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분명히 알아볼 것이다'라는 문장을 지날 땐 윤대녕님의 <시계입구가게앞검문소>가 떠올랐다. 화자가 시계입구가게앞검문소 근처 해장국집을 들를 때 문진영님의 <두 개의 방>에서 해장국 한 그릇하자던 그가 떠오른다. 오래된 극장을 찾는 그와 시계입구가게앞검문소의 유래를 추적하는 그는 어딘지 닮아 있다. 그 과정에서 삶의 일부가 장례식이었던 두 사람을 보며 부채를 떠안은 듯한 산자의 통증을 보게 된다. 낯선 이들이 주고받는 깊숙한 대화는 뒷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 그 슬픔에서 빠져나와야만 하는가'라는 물음 앞에 그들의 관계를 보면 반드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정용준님의 <미스터 심플>에서의 쓸쓸해 보이던 두 남자의 만남 역시 다르지 않아 보인다. '거기야말로 삶의 한복판'이고 그곳에서 만난 낯선 관계에서 위안을 얻기도 하는 것이 삶의 특별함 아니겠는가.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관계들과 예기치 못하게 형성되는 관계들 속에 뒤엉켜 살아간다. <완전한 사과>에서는 우습게도 가해자의 가족이지만 그들 역시도 피해자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된다. 그들이 감내해야 될 무게감 때문에 생각이 많았던 작품이었다. 가해자의 가족인 '나'에겐 생활이 없고 생존만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제아무리 발버둥 쳐도 내 삶은 온전해질 수 없고 시간을 돌려보며 놓쳐버린 타이밍을 찾을 뿐이다. '그때 내가 그랬더라면'이라는 가정이 낳은 결과의 방향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유사한 상황 앞에서 이번만큼은 그때 하지 못했던 액션을 취하는 것으로 단편은 끝난다. 하지만 그다음 벌어질 상황이 생각만큼 통쾌할 것 같지 않다.

대상작인 <두 개의 방>은 그렇게 끌리던 작품은 아니었다. 오히려 리뷰가 너무 과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는데 평범하게 읽은 작품이 한껏 난해해지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저자와 편집자를 넘어 친구가 되어버린 두 사람은 한 번씩 만나 술 산책을 한다. 그야말로 동네 탐방이다. 이 산책의 재미는 현재 속에서 과거 찾기다. 혼자를 선호하는 나에게 이런 만남도 괜찮을 것 같다.

요즘 단편들의 트렌드인가 싶을 만큼 비슷한 분위기가 두드러짐에도 각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얘기치 못한 곳에서 뜻밖의 감정들을 만나기도 한다. 전후 사정을 알듯 말듯 , 이해가 될 듯 말 듯 한 속 사정의 내막을 희미한 단서들로 유추할 수 없을 땐 굳이 생각을 한곳에 붙잡아 두진 않았다. 그저 흐르는 대로 내버려 두기엔 진연주님의 <나의 사랑스럽고 지긋지긋한 개들>이 편했다. 오히려 끄트머리에서 엷은 미소가 지어졌다. 반려견을 키우고 있어서 였을 수도. 사랑스럽고 지긋지긋한 것. 아니면 지긋지긋한데 사랑스러운 것. 우리의 삶이야말로 그런 아이러니의 연속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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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화살 - 작은 바이러스는 어떻게 우리의 모든 것을 바꿨는가
니컬러스 A. 크리스타키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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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가을빛은 완연하고 우린 이제 위드 코로나라는 단계에 진입했다. 예상했듯 확진자는 속출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처음과는 달리 확진자와의 선 긋기나 죽음에 대한 공포감은 줄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코로나에 대한 생각은 이념처럼 갈려있다. 두려움에서 기인한 불신과 왜곡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으며 이는 백신에 대한 불신으로 번져갔다. 놀라운 건 여전히 우리는 코로나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이다. 신이 쏜 화살이든 인간이 자연에 저지른 대가이든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백신이 나오기 전에 쓰였지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

당황할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경솔한 무관심을 촉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p.432

일주일 전 큰 아이반에 확진자가 발생해서 나도 처음으로 코로나 검사란 걸 받아 보았다. 당연히 큰 아이는 자가격리 대상자였고 그 기간 동안 여러모로 신경 쓸 일이 많았었다. 다행히도 학교나 주변에서 확진자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으로 상황은 종료되었지만 처음 당하는 상황에 우왕좌왕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번 일로 나 역시 바이러스의 여파를 느껴보았다고나 할까. 경제적인 건 이미 타격을 받은 상태다.

이처럼 바이러스는 우리의 삶의 전반을 흔들었다. 우선 생과 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이들이 있을 것이고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이들도 수두룩하다. 나라별로 보면 위기 대응 능력의 미숙으로 나라가 쑥대밭이 된 곳도 있으며 사람들의 불신과 무관심으로 인해 통제조차 안되는 곳도 있다. 어제자 뉴스에서는 갱단 두목이 백신 접종을 호소한다는 기사도 보았고 미국은 접종에 강제성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높아가는 백신 접종률에 박수를 보내야 되지만 변종 바이러스로 인해 다시 방역은 뚫렸고, 길고 긴 싸움에 느슨해진 심리상태 역시 확진자 수를 늘리는데 한몫하고 있다. 우리는 죽음에 대처하는 다섯 단계인 부인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의 과정을 지났다. 그렇지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백신 부작용의 두려움을 외면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코로나에 걸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건 위험하지 않나.

중요한 건 팬데믹은 수시로 찾아올 것이다. 단지 그것은 작가의 말대로 우리가 처음 겪기 때문에 힘들 뿐이다. 우리에게 절실한 건 생각의 전환이다. 남 탓과 비난은 멈추고 서로 공생하는 방법에 생각을 모아야 한다. 마스크를 잘 쓰는 일이 타인을 위한 일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만 불편한 게 아니다. 내가 불편함을 감수하지 못하면 결과야 불 보듯 뻔하다. 솔직히 시간이 지날수록 지속성이 가능할까 싶지만 위기 때마다 인류는 잘 넘기며 진화해왔다. 예전과는 다르게 빨라진 대처 속도와 첨단 시스템은 감탄할만하다. 그랬기에 앞으로도 잘 해나갈 것이라 믿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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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미쓰비시 사거리의 거북이 15
안선모 지음 / 청어람주니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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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본은 한반도를 거점으로 세계정복을 꿈꿨다. 그들의 어리석은 꿈에 수많은 조선인들이 희생되었고 여전히 그 끔찍한 시간을 보상받지 못한 채 눈을 감아버린 이들이 있다. 이처럼 일본의 만행의 증거는 차고 넘치지만 일본은 여전히 잘못을 시인하지도 사죄하지도 않고 있다. 그랬기에 일본은 여전히 가깝고도 먼 나라일 뿐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작가의 어린 시절 나고 자란 '너른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가는 그저 무덤이라는 의미로 알고 있었던 '삼릉'의 의미를 새롭게 알게 된 후 자료를 수집한다. 인수라는 아이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 시간이 무려 8년이었다니 이 이야기가 굉장히 귀하게 다가온다. 나 역시 미쓰비시의 만행은 언론을 통해 알고 있었으나 삼릉이나 줄집이라는 단어는 처음 접했다. 책을 읽는 동안 또다시 분노하며 마음을 추슬러야 했지만 인수의 영특함과 총명함 덕에 조마조마한 기분도 덜어 낼 수 있었다.





인수는 부모님을 잃고 남의 집에 얹혀살고 있지만 공부에 대한 열의와 미래에 대한 꿈이 큰 친구다. 일본인 선생님에게 호되게 매를 맞아도 끄떡없고 남의 집 배달일을 하며 눈칫밥을 먹고 지내도 기죽지 않는 친구다.

대체 이 녀석의 당찬 면모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ㅎ

일본의 치졸함은 끝도 없지만 열한 살 인수의 눈에 비친 악랄함이라곤 고작 학교와 배달일을 하면서 겪은 정도일 뿐이니 그들이 검은 속내를 속속들이 알 리가 없었다. 그랬기에 인수는 일본이 세운 거대한 군수공장인 조병창에 취직하길 꿈꾼다. 막연히 무기를 만드는 게 멋져 보였던 인수에게 그곳에 다니는 영삼 형과 영순 누나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그렇지만 인수는 배달일을 하고 야학에 다니면서 점점 왜라는 의문을 품게 된다. 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건지 어른들이 수군거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이다. 게다가 기죽지 않는 당당함이 때론 쓸모없는 행동이 되고 솔직함이 오히려 손해가 될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배달집 아들 갑득이 형과의 친분이 쌓이는 동안 우연히 접한 낯선 풍경도 의문이다. 하지만 인수는 그러한 상황마저도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인수의 간절함이 통한 걸까. 드디어 인수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어느 날 장작 배달을 가게 된 일본인 집에서 한 일본 소녀 아야코를 알게 된다. 자신이 알고 있던 일본인과는 많이 달랐던 아야코에게 호기심이 일 때쯤, 인수는 어느 날 비에 휩쓸린 아야코를 위험에서 구해 주게 된다. 그 대가로 인수는 조병창을 둘러볼 기회를 얻게 되는데.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인수가 꿈꾸고 원하던 그곳이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되는 것이야 시간문제다. 하지만 인수는 그보다 더 큰 꿈을 품으며 세상에 눈을 떠간다는 결말이 더 의미가 깊어 보였다. 인수의 당찬 면모가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책을 읽어보면 알게 될 것이다.

인수와 함께하는 동안 전쟁의 소모품으로 살다간 우리 민족의 삶의 가여워 맘이 너무 아팠다. 일본의 뻔뻔함은 언제 막을 내리게 될까. 일본의 사과와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전쟁은 끝나도 끝난 것이 아니다. 일본 소녀 아야코가 보여주었던 박애정신이 그들에게 필요할 때다. 그래야 그들이 온전히 미쓰비시와 제대로 안녕을 고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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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 도둑을 찾아라! 숨 쉬는 역사 13
고수산나 지음, 김준영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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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더라. 가물거리는 기억을 더듬어 본다. 영재를 소개하는 프로였었고, 똘망똘망하게 빛나던 한 남자아이의 자신감도 떠오른다. 그 아이가 유독 관심을 보였던 분야는 외국으로 흩어져 있던 우리의 문화재였다. 잃어버린 혹은 빼앗긴 문화유산에 관한 책이 남긴 감정이 안타까움과 분노였다면 그 아이를 보면서 느낀 감정은 희망과 안도감이었다. 역사를 향한 열의와 흩어진 우리의 유산을 꼭 찾겠다던 당찬 포부에 절로 미래가 든든해졌었다.

이 책은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게 했다. 작가는 역사적 사건을 토대로 이야기의 틀을 짰다. 주변국과 강대국의 침략이 잦았던 우리는 꽤나 많은 유산을 빼앗겼었고 여전히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유산의 수도 상당하다. 지금도 문화재 찾기 운동이 계속되고는 있지만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 그랬기에 그러한 역사를 기반으로 한 어린이문고는 역사를 이해하는데 훌륭한 참고서가 된다. 아마도 이 책을 읽고 나면 내가 느꼈던 감정의 경로를 아이들도 느끼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무엇인지를 고심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일제강점기 만큼 아픈 역사는 없다. 일본은 조선을 제멋대로 주무르고 악랄하게 들쑤셨다. 그 시절 아무런 힘도 없었던 조선은 그저 당하고 또 당하는 수모를 참고 견뎌야 했다. 때는 온통 일본인들로 득실거리던 일제강점기 경주로 향한다. 100년 전, 그곳에는 그 시절을 힘겹게 버텨내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다. 주막집을 하던 순금이네, 순사보 아버지를 둔 정수네, 집안일을 책임지고 있던 기복이네. 어느 누구도 시절의 칼바람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작가는 세 아이를 중심으로 그 시절의 서러움과 분노를 잘 드러내고 있다.

경주는 문화유산의 보고다. 그만큼 묻혀 있는 유산도 상당했다. 주막집을 하던 순금이네는 집을 더 늘리려고 공사를 하던 중 유물이 출토된다. 아이들의 흙장난에 하나둘 모습을 드러 낸 무덤 속 유물들에 갑자기 공사는 중단되고 일본의 간섭으로 살던 집마저 옮겨야 했다. 문화재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것이기에 일본 역시 우리의 유산을 탐냈다. 경주에 조선 총독부 박물관 분관까지 둔 것은 나름 계산된 행동이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손을 통해 드러난 유물을 전시실에서 바라보며 그 생김새에 놀라며 화려했던 신라의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금관고에 보관해 둔 금관총 유물들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유물은 여기저기서 거래되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물론이고 일부 무지한 사람들은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유물을 팔아넘기기도 했다. 기복이는 기복이 형이 절터에서 주운 유물을 판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려주었다 되려 친구들의 질타를 받게 된다. 어떻게 문화재를 하다가도 결국은 기복이 형이 소작료를 내지 못해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난 사연에 그 어쩔 수 없음을 헤아리게 된다.

일본인의 소행이든 돈에 눈이 먼 조선인의 소행이든 유물의 행방은 묘연하다. 경찰서장은 마을을 이잡듯이 뒤지기 시작하는 데 범인을 잡겠다는 사명의 그늘에는 유물에 대한 소중함보다 자신의 출세욕이 앞서 있었다. 그 와중에 이집 저집 뒤집던 아베 순사는 기복이네에서 엄마의 유품인 경대를 발견하고 탐을 낸다. 이미 순사의 눈앞에 드러난 물건이 빼앗기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결국 이런저런 핑계를 갖다 붙여 경대를 빼앗아간 순사에 기복은 분노가 인다. 어떻게든 엄마의 유물을 찾고자 하는 의지에서 순사를 미행했으나 우연히 기복은 사라진 유물의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

기복은 이 사실을 친구들에게 전하게 되고 세 아이는 나름의 작전을 세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은 향해 줄 것인가. 세 아이들의 용감한 활약상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청어람 주니어에서는 독후 활동지가 제공된다. 이번에는 마스킹 테이프도 사은품으로 왔다. 독후 활동지는 정말 정말 강추! 특히 낱말퍼즐은 어려운 단어를 짚고 나갈 수 있어 좋았다. 나도 막히는 단어가 있다. 책에서도 낯선 단어에 주석이 달려 있지만 금방 잊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라 함께 맞추어보면서 머릿속에 콕 넣어두면 좋겠다. 코스모스가 옛말로 살살이꽃이라는 건 나도 처음 알았다. 어감이 너무 예쁘지 아니한가.


독후 활동지를 하면서 정수 할머니의 말을 통해 본 우리 민족의 감정이나 교장의 말을 통해 본 일본인의 두 얼굴에 대해 생각하면서 역사를 바라보는 눈을 길러볼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앞으로 유물을 되찾기까지 어떤 자세가 필요할지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것도 뜻깊은 시간이 되겠다.




오늘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지 575년째 되는 날이다. 주시경 선생이 '한글'이라는 단어를 처음 언급한 해는 1912년이고 이야기의 시대상과 멀지 않다. 이야기 속에서 기복이는 학교를 다니지 못해 글을 읽지 못한다. 하지만 유물의 단서를 발견했던 순간 글을 읽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며 한글 공부에 의지를 불태우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런 의지라면 기복이는 누구보다 빨리 한글을 습득하지 않을까.^^ 오늘만큼은 우리말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한번쯤 돌아보며 하루를 보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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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족 이야기 2 - 동굴 원정대 신비도서관
김춘옥 지음, 김완진 그림 / 청어람주니어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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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지배하고 있는 자들은 자만에 빠지기 쉽다. 그 나라의 질서와 평화가 유지되는 동안 한쪽 구석에서 웅크리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생각을 망각한다.

<길족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그러한 질문을 던지고 고심하게 만든다. 무엇이 최선인지를, 어떤 방향이 서로를 위해 나은 길인지를 찾아보게 되는 이야기이다.


<길족 이야기> 첫 번째 편에서는 길족세상의 질서를 보았다. 그 질서란 누군가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질서였다. 길족 세상을 다스리는 길찾족의 족장은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믿어 왔다. 그랬기에 다른 이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점점 더 체재를 굳히고자 했다. 길찾족과 길만족은 함께 잘 살 수 있었음에도 그럴 수가 없었다. 새로운 길은 혼란만을 야기한다고 믿었던 족장때문에 길만족의 희생은 당연시되어 흘러만 갔다.

하지만 길새의 등장은 족장이 이루어놓은 질서에 균열을 일으킨다. 어느 나라건 족장의 자리를 넘보는 반대세력이 존재한다. 길족 세계라고 예외는 아니다. 족장의 자리를 빼앗아 길족 세계를 손아귀에 넣고 싶어 하던 길다다는 길찾족과 길만족 사이에서 태어난 길새를 꼬투리 삼아 권력을 쟁탈하려 한다. 길만족의 발걸음을 미끼로 길찾족에게 뇌물을 뿌려대며 환심을 산 뒤 족장과 길모아를 밀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렇듯 두 세계의 중간다리가 된 길새는 누군가에겐 위협이었고 누군가에겐 행운이 되는 존재였다. 동굴 속에서 길만족을 만나고 궁금했던 진실들이 하나둘 풀리지만 족장과 길모아를 만난 뒤 바깥으로 통하는 동굴 문의 암호 역시 절실해졌다. 새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만큼 무언가를 해 내고 싶었다. 길포를 포함해 길새를 돕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나자 길새의 의욕은 커져간다. 엄마를 데려오고 억울하게 갇힌 길만족의 삶을 바로잡고 싶어 한다.


세상은 욕심만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게 아니란다. -p.86


길은 계속되고 모든 길은 통하기 마련이다. 길은 개인 한 사람에 의해 통제되어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길은 각 구성원들이 뜻을 모아 함께 다지고 지켜나가야 한다. 길다다의 역모로 동굴에 갇힌 족장과 길모아. 상황이 악화되자 족장은 그제서야 속내를 털어놓으며 뒤늦은 후회를 한다. 분명 족장의 방식은 과했다. 길만족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을 너무나 간단히 치부해 버렸다. 길새는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길족 세상을 위해 써야 한다. 길만족의 자유와 길찾족과의 적절한 균형을 위해. 그 걸음에는 오래전 누군가가 걸음의 깔리기도 하고 숨겨진 발자국을 찾아 얹기도 한다.

그 길에서 만난 흥미로운 존재는 길족 세상을 더욱 신비롭게 했다. 족장의 부탁으로 길신의 손에 탄생한 휘는 해맑은 아이였지만 자유를 억압하자 점점 나쁜 존재가 되어갔다. 족장은 모두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했고 휘를 만든 길신은 휘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아서 휘를 놓치고 말았다. 길새는 그런 휘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자유의 소중함과 화합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소중한 이야기였다. 아이들과 읽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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