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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올리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평점 :

힘들어서 이번만큼은 미용실을 가겠다던 다짐을 또 접고서 집에서 염색을 했다. 할 때는 귀찮아도 머리를 말린 뒤 거울을 보면 돈을 아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거짓말 많이 보태서 십 년은 젊어진 기분도 들고. 그런데 오늘 아침은 올리브 여사때문에 다른 기분을 느꼈다. 십 년 뒤에는 이런 모습이 아니겠지라는.
<다시, 올리브>는 전작 <올리브 키터리지>의 삶을 잇고 있다. 물론 나는 저자의 책이 처음이다. 전작을 건너뛰고 너무나 늙어버린 올리브를 먼저 만난 셈인데 그녀의 이전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이 책은 올리브를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여러 이웃들의 삶을 단편으로 엮어 놓았다. 삶의 다양성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무시하고 머물고 지나가고 놀라면서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 따윈 없음을 깨닫게 된다. 삶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P.455 그 모든 건 그들만의 살아가는 방식일 뿐이다. 삶의 접점을 찾는 것도 무의미하다. 옳고 그름의 잣대보다 행복과 불행의 결과보다 더 중요한 건 그들의 삶에서 내 삶의 나아갈 방향을 찾는 것이다. 더듬더듬. 자박자박.
자살, 성적 학대, 가정폭력, 외도, 차별.
올리브뿐 아니라 그녀가 아는 모든 이들은 가족 구성원의 관계가 일그러져 있다. 문제없는 집이 없다. 가족은 무엇 때문에 서로를 이리도 힘들게 하는 존재로 남아야 하나.
내 지긋지긋한 식구들을 먹여야 해서요. -p.218
지긋지긋한 존재이지만 나를 지탱해 주는 존재가 가족일 텐데 툭툭 끊어져 버린 관계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문화권과 생활 라이프에서 오는 이질감이 크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노년의 삶 곳곳을 지나는 파동은 무심한 현재를 깨운다. 나를 둘러싼 공동체의 삶 따위가 관심 밖을 넘어선 지금이지만 이 책은 다양한 가족의 모습과 각자의 가치관, 삶의 그늘과 빛, 세대 간의 대립과 공존, 생명의 탄생과 죽음에 주목하게 된다.
올리브처럼 우리는 모든 이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내가 그들 모두를 대하는 잣대나 방식도 다르고 서로의 주파수가 달라서 오는 편견도 어쩔 수 없다. 올리브의 참견이 고마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지랖이나 꼰대기질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고 그녀의 직언을 조언으로 받아들이는 이도 있겠으나 아니꼽게 받아들이는 이도 있다. 그럼에도 올리브에게 마음을 여는 이유는 올리브가 그들의 외로움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외로움을 귀신같이 잘 포착한다. 올리브 자신은 지나쳤을테지만 그만큼 외로움을 잘 안다는 얘기. 물론 시인인 앤드리아의 지적질에 한방 얻어맞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긴 했지만.^^ 교사 시절 학생들에게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면 자신의 참모습을 알게 된다며 훈수를 두었었던 그녀였지만 결국은 알 수 없는 인생처럼 자신을 정확히 안다는 건 어려운 일임을 깨닫는다.
내게는 내가 누구였는지에 대한 어떤 단서도 없다. 진실로 나는 한 가지도 알지 못한다. - p.460
키 크고 덩치 크고, 맙소사, 이상하기까지 한 올리브에게 잭은 마지막손을 내민다. 둘은 노년의 사랑을 이어가지만 처음의 자리에 대한 허전함과 그리움을 온전히 떨치진 못한다. 현재의 만족감보다 추억을 먹고 사는 노년의 일상이라면 얼마든지 그런 감정에 사로잡힐 것 같다. 하지만, 절대 다시 시작하는 게 아니야, 신디. 계속 이어가는 거지. -p.212 어떻게 지난 시간들속에서 사람만 쏙 빼 놓고 이어갈수 있을까. 잭이 먼저 떠나버렸으니 더 외롭고 두려운건 올리브의 몫으로 남았다.

부부란 뭘까. 결혼의 유통기한은 얼마나 될까.
결혼생활이 무르익는다는 건! 언제 입을 다물어야 하는지 아는 거라는 말도 일리는 있다.
"잭, 대체 왜 그렇게 그릇을 박박 긁어먹는 거야."
"톰, 그 사과 다른 데 가서 마저 먹을 수 없어?"라는 말로 상대의 자존심과 관계에 금을 내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렇듯 점점 입을 닫게 되는 건 어디까지나 관계에서 오는 불편함을 최소화하고 싶은 자기방어다. 그 나이쯤 되면 언쟁도 논쟁도 피곤한 일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합을 이뤄나가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자세도 중요하지만 포기 또한 중요한 행위이다. 이해는 포기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디는 곧 닥쳐올 죽음 앞에 원망이 가득하다. 자신의 부탁을 종종 잊어먹곤 하는 남편이 못마땅하다. 그런 그녀에게 올리브는 남편의 입장을 대변해 준다. 신디는 자신의 죽음만을 떠올리다 다시 남편의 삶을 들여다본 것이다. 2월의 햇빛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시 보였던 것처럼.
<햇빛 : LIGHT> 여러 이야기 중 가장 괜찮은 단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