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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밤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2
류드밀라 페트루솁스카야 지음, 김혜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평점 :
윗세대 어르신들은 소싯적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마다 이런 말들을 한다. 내 인생은 한 권의 책으로도 다 못 쓴다고. 그만큼 고된 삶을 살았음을 강조한 건데 이 책 또한 못지않게 고달프다 보니 시대의 분위기에 역행한다는 이유로 자국에서는 출간을 금지당한 적도 있었다. 어쩌면 <시간은 밤>의 안나의 고백처럼 삶의 혹독한 진실을 불편해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일 수도 있다.
러시아 여성들의 삶을 가감 없이 드러낸 여러 편의 단편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허구인지 판단이 서지 않을 만큼 꾸밈이 없다. 게다가 단편이라 더 강렬하다. 이는 작가의 불우한 어린 시절(지옥에 갇힌 느낌)이 투영되어 있다. 앞쪽의 짧은 단편들은 중편 <시간은 밤>을 위한 준비운동과도 같다. 그만큼 <시간은 밤>의 심적 고통이 세다. 결국 앞쪽 짧은 단편들은 한 번 더 읽어야 했다. 가난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들의 정신을 극한 상황으로 쉴 새 없이 몰고 간다. 그러한 상황들을 풀어낸 작가의 글솜씨에 제대로 꽂혔다. 풍자와 해학은 물론이고 한편의 긴 시를 만난 것 같은 기분에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새롭고 흥미로웠다.
책을 덮고 나니 우선은 단편적 생각이 먼저 흐른다. 딸아이가 그녀가 되고 그녀가 엄마가 되고 엄마가 할머니가 되기까지 그녀들을 둘러싼 운명의 색채들은 어둡다. 그곳엔 우리가 듣기에 불편하고 감당하기에 버거운 사실들이 존재했다.
한마디로 욕밖에 나오지 않는 인생이었다. -p.305
가난, 병, 어둠, 답답, 짜증, 우울, 고독, 불행이라는 키워드를 끼고돌고 도는 이야기들 속에서 그녀들에게 집과 남자와 아이와 희망 같은 것들이 어떤 식으로 존재했었나를 짚어 보았다.
그녀들은 그저 그런 사람들이었고 그런 여인들로 불렸고 그냥 그렇게 잊혔다. 그녀들에게 남겨진 건 감당하기 버거운 삶의 부채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시간은 밤>에서 안나가 남긴 글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녀는 그저 그런 사람이 아닌 시인이었으며 그녀의 바람대로 시인으로 남았다. 그녀는 기억되고 회자될 것이다.
이곳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대체적으로 <집의 비밀>편 그녀의 꿈속에 등장한 아래와 같은 존재들이었다.
현실에서 그는 말 그대로 남에게 해만 끼치고, 자신의 삶과 경박함, 미래에 대한 끝없는 두려움으로 불구가 되어버린 쓸모없는 존재였다. -p.103
다시 말해, 가망이 없는 작자, 규율이나 양심, 의무에 대한 일말의 징후도 없는 인생이었다. 하긴 위인이라 불리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는 여자에게 제멋대로 굴고 강자가 자신에게 방해가 되는 약자를 파멸시키듯 그 여자들을 파멸시켜왔다. 내 잠을 방해한 불쌍한 파리떼를 내가 죽인 것처럼. -p.104
그런 남자들 곁에서 모든 것이 버려지고 사랑 밖으로 밀려나고 모든 삶이 삶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모래알처럼 흩어져 버렸다. 아주 가끔은 그들의 계산(세 얼굴의 료바같은 놈)에 속아 그들의 삶 속에 합류하지만 똑똑한 그녀(엘비라)처럼 승리자로 남는 경우도 있다. 엘비라 만만세!
알콜중독에 손가락이 꺾인 알리바바처럼 진짜 집을 버린 채 가짜 집(피난 처)을 전전하거나 여기저기 밀그롬같은 여자들은 남편에게 버림받고 자식의 사진 한 장에 기대어 아무것도 없이 살다 간다. 독신 여성의 미래는 <어두운 운명>의 그녀처럼 덜떨어진 남자들의 심심풀이 땅콩이 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이 그려지고 <아름다운 도시로>의 미혼모들의 운명 또한 바늘 위에 앉는 신세로 전락한다.
그럼에도 행복의 기대감은 간간이 있어 왔다. 이해! 하지만 그녀들에게 이해는 삶 속에 섞여 드는 단어가 아니었다. <성모 사건>속 아들은 엄마와 공통으로 얽히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시간은 밤>의 딸과 엄마는 동일한 삶의 패턴(불행)이라는 공통으로 얽혀 들어간다. 그들은 하나같이 엄마의 삶(회상)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살아서는 더더욱.
아이에 대한 사랑(모성애)이 당연함에도 단편 속에서 유독 강조되고 있는듯한 인상을 받았다. 아마도 그렇지 못했던 현실에 대한 후회와 반성이 아니었을까. 아이라는 양심을 지켜내야 한다는 의무감도 더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인간의 모습을 한 양심이다. -p.277
삶이 그녀들에게 가르쳐 준 건 달걀을 부치고, 수프를 끓이고, 기저귀를 가는 일뿐이다. 덤으로 엇나가는 아이들을 위해 밑빠진 독에 물(사랑, 희생, 헌신)을 쉴 새 없이 들이붓는다. 더군다나 그녀들에겐 최소한의 물품만 있었다. 물려 입고 물려 입고 물리도록 입는 옷처럼 가난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렇게 입던 옷의 운명의 끝이 쓰레기통이듯 가난이란 운명의 종착역은 포기였다. 새 생명의 탄생보다 현재의 생명줄 다섯(자신을 포함한)을 책임져야 했던 <파냐의 가난한 마음>편은 죽음의 그림자가 태어날 아기에게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에 씁쓸한 고통이 밀려온다. <시간은 밤>편의 안나는 끝내 고통스러운 선택을 해야만 했다. 하나를 위해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 그처럼 가난은 모든 걸 지닐 수 없게 한다. 때론 견딤조차도.
하지만 사샤는 왠지 자신의 인생을 그렇게 가볍게 대할 수가 없었다. 무언가가 그녀로 하여금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울지 않고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살면서 단 한 번만이라도 분명하게 대꾸해보라고, 이 상황을 끝내라고 무언가가 그녀를 떠밀었다. - p.57
사샤는 인생을 잘 관찰하면 나름 뜻대로 잘 굴러가리라 여겼다. 그녀는 막이 내리고 문이 열리면 다른 세상이 펼쳐지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언제까지나 인생이 연극이었으면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드리워졌던 죽음의 그림자 위에 새 생명이 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의 삶은 전환점을 맞이한다. 놀랍지 아니한가.
인생은 정말 농담을 잘한다. -p.171 인생은 뜻대로 되질 않는다. 진리다. 고로 인생은 때론 엿 같다. 그럼에도 생의 면역력은 공감과 희생에서 출발한다. 십오분의 소음이 영원한 화음<쇼팽과 멘델스존>이 되기도 하고 아름다운 여인과의 소중한 기억은 이해할 수 없는 삶 속에서도 즐거움<아름다운 도시로>을 선사한다. <시간은 밤>에서의 안나의 희생은 뭐 거의 숭고할 지경이다.
이 여러 개의 단편들은 여성들의 삶의 여러 단면들을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지만 그저 한 여인에게 모두 일어난 일처럼 여겨진다. 밤은 회복과 재생의 시간이다. 수없이 많은 밤이 지났다. 삶의 밑바닥을 억척스럽게 지켰던 그녀들이 아니었다면 가족의 영원함을 기약할 수 있었을까. 또한 '기대를 가져볼 만'한 것들이 있었기에 가난에서 한 발자국 물러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