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아이들 1
에이브러햄 버기즈 지음, 윤정숙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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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에티오피아. 한국전에 군사를 보낼만큼 고마운 나라였으나 쿠데타로 공산국이 되면서 질병이 적이 아닌 가난이 적인 된 나라. 독재 정권과 부정부패에 민중의 시름이 끊이지 않는 나라. 무지로 인해 성경은 그저 한켠에 쌓여가는 종이더미인 나라.

그런 땅 위에 세워진 한 선교병원 '미싱'에서 인도인 수녀가 쌍둥이 형제(매리언과 시바)를 낳다가 죽는 일이 벌어진다. 하지만 아버지로 추정되는 미국인 의사 토머스 스톤은 아이들보다 수녀의 죽음에 충격을 받고 자취를 감춘다. 그렇게 눈물 속에 태어난 아이들은 아버지의 동료 의사들 손에 길러진다. 마치 운명이었던 것처럼.

 

내 인생이 여기서 시작됐고, 그 때문에 그 일이 벌어졌다고, 그래서 이렇게 끝과 시작이 이어지게 된 거라고 말하려면 먼저 내 인생 역정을 정리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여기 있는 것이다. -p.15

 

이야기는 성장한 쌍둥이 형제 중 매리언이 미스터리로 남아있던 과거의 퍼즐 조각을 맞춰가며 전개된다. 자신들을 놓고 사라져버릴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 임신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무엇인지 말도 없이 떠난 엄마. 오래전 그 둘을 이어주었던 시간과 신을 거역하면서까지 숨길 수 없었던 감정의 순간들.

아버지의 동료였지만 썸을 타다 쌍둥이의 부모가 되어버린 헤리와 고시.

하나로 태어나(샴쌍둥이) 무사히 둘이 되었지만 서로를 다 안다고 여겼던 마음에 균열이 일고 새로운 관계 속에서 얽히고설킨 배신과 원망의 소용돌이는 그들을 오랜 시간 멀어져있게 한다. 성장기 그 둘의 운명을 흔들어놓았던 유모의 딸 제닛은 또다시 그 둘의 운명을 흔들어 놓는다. 어찌 보면 제닛은 미워할 수도 마냥 연민을 가질 수도 없는 인물이었다.

 

쿠데타로 인해 아디스를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마침 떠나고 싶기도 했지만) 의사였기에 뉴욕 땅에서 아버지를 처음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운명 앞에 삶과 죽음의 경계가 드리우자 처음 그들이 태어날 때 그들을 죽이려 했던 아버지는 그들을 다시 살려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책을 덮고 표지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들이 하나였던 오래전 시간 속. 붉게 물든 석양 속을 뛰어가는 쌍둥이(매리언과 시바)와 개(쿠출루)의 모습이 짠하게 다가온다. 동화 같던 시간에 인생의 구멍이 생긴 시점이 어쩌면 이때부터가 아닐까. 늘어나는 새끼들을 거둘 수 없다는 이유로 어른들이 쿠출루의 새끼를 잔인하게 죽이고 그 충격으로 시바가 어른들에게 되묻던 그때 말이다.

누가 나나 매리언을 죽여도 잊어버릴 거예요?

오늘 누가 우리를 죽여도 내일이면 잊어버릴 거냐고요?

 

하찮은 생명이 어디 있으며 쉽게 잊힐 죽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 뒤 시바는 침묵과 무덤덤으로 일관했고 매리언은 평온을 유지하려 애쓴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의 혼란은 그들의 앞길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행복의 슬리퍼는 너희 존재를 인정하는 것, 너희 모습을 인정하는 것, 너희 가족을 인정하는 것, 너희 재능을 인정하는 것, 너희한테 없는 재능을 인정하는 것이야. -p.58

 

생명, 탄생, 의학, 믿음, 사랑....

2장에서는 수술 장면들이 제법 등장하고 의학과 관련된 분량이 제법 되다 보니 의학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작가의 역량이 십분 발휘된 소설이자 생명에 대한 경이와 따스한 인간미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가슴을 후벼파는 사연 하나 없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에게는 심한 결핍과 상처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이 있기에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헤마의 쌍둥이를 향한 사랑은 두말할 것도 없지만 고시가 돈과 명예보다도 더 소중히 생각했던 것도 헤마를 향한 사랑이었다. 토마스 스톤이 쌍둥이를 버리고 자취를 감춘 이유도 자신의 목숨과도 같았던 수녀의 죽음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다면 충분히 납득이 된다.

 

그렇듯 쌍둥이들이 슬픔을 이겨낸 원동력은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 때문이었다. 헤리와 고시의 한없는 사랑과 가르침이 매리언을 제자리(일상)로 불러오게 한 것이다. 매리언이 그리워하던 아디스의 땅을 다시 걷을 때의 흥분과 병원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시바를 보았을 때의 격정들은 그들이 그곳에 존재했기에 가능한 감정들인 것이다. 결코 스스로 배우는 것은 없으며 삶의 구멍도 함께 메꾸어가는 것이다.

 

<눈물의 아이들>은 혼란한 세상 속에서 운명의 고리를 풀어가며 각자의 불행의 슬리퍼를 벗어던지고 평범하고 안온한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참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의학의 위대함처럼 사람이 사람의 생명을 살려내는 기술도 아름답지만 한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열정을 하는 모습도 아름답긴 마찬가지다. 선상에서 죽어가는 토마스를 살려 낸 메리 수녀, 쌍둥이들을 선뜻 거두어들인 헤마와 고시. 가난하고 병든 자들 곁을 지키는 미싱 사람들.

그처럼 그들은 변화와 혼돈의 시간속에서 각자 나름대로 배우며 성장해간다. 등장인물의 다양한 출신 배경과 성장 배경 등을 통해 누구도 정체성을 의심받고 배척당하지 않는 포용력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전해진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신념은 운명을 뛰어넘은 사랑일 것이다.

 

인생은 신호로 가득하다. 인생의 비결은 그 신호들을 읽는 법을 아는 데 있다. -2권, p.149

 

인생에서 평범한 날들을 갖는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매리언은 지나간 과거를 되뇌며 뒤늦게 깨닫는다. 배신감과 증오심으로 내던진 시간들을 다시는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것도.

시바의 빈자리를 쓰다듬으며 매리언은 자신에게 주문을 건다. 이제는 그가 진정 의미 있는 삶 속으로 걸어들어갈 것임을 알기에 참 다행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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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나카오 사스케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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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농경의 시작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극이라고 말했다. 이는 책에서 구체적 변증을 통해 살펴볼 수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인간의 과도한 욕망이 부른 참사이다. 그 참사는 지구의 위기로 이어졌다. 기후변화, 환경오염, 자원 고갈 등으로 말이다. 하지만 자원 고갈에 따른 대체 원료는 거의 개발이 완료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식량이다.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는 생태계를 크게 교란, 변화시키고 있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기후변화로 식물이 자라지 못하고 그나마 버티던 옥수수마저 말라죽는다. 그런 사태까지 오도록 방치해서도 안되겠지만 지금부터라도 대체작물의 개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나는 큰아이에게도 생명공학이나 식물, 농업 관련 학과를 추천하고 있다.(물론 아이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지만.ㅋㅋ)

 

이 주전 나는 처음으로 벼모 파종에 참여했다. 기계가 알아서 하는 일에 인간의 노동력을 조금 더 쓰면 되는 일이라 그리 힘들진 않았지만 그때 문득 벼의 기원에 대해 잠깐 호기심이 일었었다. 그랬기에 이 책은 순전히 그때의 호기심 덕에 읽었다. 농경의 기원이라니! 얼마나 구미가 당기는 제목인가.

 

밥심으로 산다는 한국인들에게는 쌀만 한 작물이 없다. 아무리 먹거리가 넘쳐나 쌀의 소비가 줄었어도 빵보다 밥이다. 저자도 밀을 주로 재배하고 소비하던 국가에서도 점차 쌀의 수입을 늘려가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쌀의 우수성을 인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그 많은 식물 중에 어떻게 인간은 이처럼 훌륭한 작물을 골라낼 수 있었을까.

 

농업의 시작은 인위적으로 일년생 볏과 식물의 군락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 p.131

 

이 책은 그렇게 두껍지 않다. 그만큼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문화의 어원이 본래 ‘재배’를 뜻한다고 한다. 즉 문화란 땅을 일구고 작물을 재배하는 것이 본뜻인 것이다. 그래서 농경도 크게 보면 문화다. 문화를 경계선 긋듯이 딱딱 구분 지을 수는 없겠지만 지리와 환경적 요소에 따라 분포하는(자라날 수 있는) 식물이 다르기에 저자는 세계 각지의 주요 농경 문화를 알기 쉽도록 구분 지어 설명하고 있다. 재배식물의 기원이 무엇인지 거슬러 오르다 보면 오랜 기간의 경험과 노하우가 놀라울 따름이다.

 

바나나에서 시작된 근재 농경문화, 환경 변화에 따른 조엽수림 문화, 다양한 잡곡이 등장했던 사바나 농경문화, 일년생 식물의 고향인 지중해 농경문화, 좀 더 독립적이고 체계적으로 변화한 신대륙 농경문화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는데 각 문화의 흐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대략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

 

조엽수림 문화는 주로 차, 실크, 옻, 감귤류, 차조기 등을 재배하였으며 채집 경제 단계부터 화전 재배 단계로 진행되었다. 그러면서 점차 일년생 작물만 선별해 재배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농경의 시대로 접어들게 된다.

 

사바나 농경문화는 용어 그대로 주로 아프리카에서 오랜 기간 발달했으며 인도를 거치면서 잡곡과 두류, 과체류를 탄생시켰다. 유료작물이 길러지게 되었고 작물의 특성상 토기를 이용해야 했기에 토기 발달도 덩달아 발달하게 되었다.

 

지중해 농경문화는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을 받고 이루어졌기에 사바나와는 대조적으로 일 년생 들인 겨울작물이 많았다. 인간이 머물다 간 자리는 토양의 변화를 가져왔고 야생초가 잡초로 변하고 잡초가 재배식물로 바뀌기도 했다.

 

저자는 5장에서 벼의 기원을 별도로 소개하고 있다. 그만큼 벼는 우리에게 중요한 재배식물이기 때문이다. 벼는 습지에서 자라는 잡곡이다. 사바나 농경문화에서 자라던 볏과 식물의 낟알을 채집해 식용으로 하던 것을 시초로 보고 있으며 인도 동부와 서아프리카에서 개발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야생 잡곡 중 뛰어난 종을 선별해 재배화한 것으로 추정하나 아시아에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 재배되었는지는 단정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인류의 생존에 적합한 작물은 오랜 시간에 걸쳐 선택되었고 진화해왔다. 심지어 감자의 독성을 제거하는 방법을 알기까지 희생도 따랐을 것이다. 언젠가 산행 중에 나무 둥지 아래에 자라나있는 버섯을 보며 독버섯 같아 보인다는 얘길 주고받으면서 식물의 독성을 알아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먹고 죽었을까라며 우스갯소리를 한적 있다. 지금은 유전자 정보로 깔끔하게 판별해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졌는가.

 

농경은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농경문화를 살펴보면 인류의 발전 속도가 빠를수록 전파력도 컸음이 드러난다. 하지만 지금부터 농경문화는 또 새롭게 달라져야 한다. 갑작스러운 기후변화에 대처하고 재배가 용이한 방법을 계속 찾아야 한다. 자연이 주는 것을 받기만 하고 살았던 내게 농경문화의 역사는 여러모로 감사함을 느끼게 해 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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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북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6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지음, 손향숙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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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 애니 정글북을 보았는가. 난 그 영화를 보며 정글북을 다 안다고 착각했다. 실로 시각과 청각이 주는 즐거움에 감탄사를 내내 연발하며 모글리와 동물 친구들이 선사하는 정글의 감동에 흠뻑 취했었다. 그렇지만 좀 더 폭넓고 깊은 사유를 위해서는 원작을 꼭 읽어야 한다. 이제서야 책을 읽게 돼서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나름 자연과 동물의 소중함을 깊이 느끼고 있는 지금이라서 더 흥미롭고 날카롭게 읽혔다.

 

정글북은 모글리 이야기로만 꽉 채워져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모글리 외 여러 단편들이 있으며 아이들에게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모글리는 좀 더 모험심이 강하고 영웅적인 이미지인듯하다. 천진난만함까진 아니더라도(실사판에서는 인간 세상으로 가지 않고 곰 발루와 지내는 장면이 꽤 천진난만한 장면이었다) 인간과 동물의 따뜻한 공생과 우정(우린 그 아이를 사랑해, 카. -p.58) 게다가 확실한 권선징악이 좋은 메시지를 남기고 있으니까.

 

역시 동화는 어른이 되어 만나면 더 새롭다. 심지어 다르게 읽히기도 한다. 재미와 흥미 위주에서 좀 더 깊게 들어가다 보니 여러모로 다양한 시각으로 등장인물들을 보게 된다. 심지어 악당의 말로에도 동정이 일 때가 있다. 정글북은 특히 작가의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여러 곳에서 불편한 점이 눈에 밟히고 종족 우월주의나 각종 편견들이 눈에 거슬린다. 원숭이를 쓸모없는 종족으로 비하하는 장면은 카스트제도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너무 앞서간 건가? ㅎ

정글의 동물들은 원숭이족과 어울려서는 안 돼. 우리는 원숭이들이 물 마시는 곳에서는 물 마시지 않고. 원숭이들이 사냥하는 곳에서는 사냥하지 않아. 그들이 죽는 곳에서는 죽지도 않지. -p.49

 

하지만 인도를 아끼는 마음도 엿보이고 동물 사랑뿐 아니라 환경이 변화하고 파괴되는 것에 대해서도 안타까워하는 모습도 보인다.

 

 

 

시어칸의 공격으로 고아가 된 모글리는 늑대들의 살가운 보살핌으로 시어칸으로부터 목숨을 구하고 그들 무리에서 성장한다. 물론 늑대 가족과 살기까지 곰 발루와 표범 바키라의 도움이 있었다. 그 둘은 특별히 모글리 선생을 자처하며 정글의 법칙을 가르치며 살뜰히 살핀다. 인간의 연약한 몸뚱이로는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에 숲과 물의 법칙과 사냥 신호에 정글 공용어까지 가르친다. 먹이를 위해서라면 사냥하시오. 하지만 재미로는 허락할 수 없소. -p.44 이는 절제와 생명에 대한 예의를 의미한다.

 

하지만 모든 늑대들이 모글리에게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모글리가 다른 동물들과는 극명한 차이(불을 다룰 줄 알고, 늑대발에서 가시를 뽑을 줄 알기에) 때문에 모글리를 두려워했고 정글에서 떠나주길 원했다. 시어칸의 꾐에 빠져 자유족의 대장 아켈라가 위험해지자 모글리는 정글을 떠나 인간사회로 들어간다. 정글의 삶이 몸에 밴 모글리는 인간의 규율과 제도가 맞지 않았고 그들의 허세와 교만은 우습기 그지없었다. 결국 시어칸 사냥 때문에 인간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주어 다시 정글로 쫓겨난다.

망이 짐승과 새들 사이를 오가듯이, 나도 마을과 정글 사이를 오간다. 왜일까? -p.107

 

모글리는 당당하게 정글로 다시 돌아왔다. 보란 듯이 시어칸의 가죽을 밟고 늑대들과 정글에서의 삶을 택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아니 성인이 된 후 결혼까지 했다고 하니 그 뒷이야기가 내심 궁금해진다. 모글리의 짝은? ㅎ

용감한 마음과 공손한 혀, 그게 있으면 정글을 헤치고 어디라도 갈 수 있지. -p.72

 

 

 

동물들의 삶을 최대한 사실적이고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있어서 자유족의 우두머리이자 '고독한 늑대' 아켈라의 운명을 보며 시튼의 동물기도 떠올랐다.

그 뒤에 이어지는 네 편의 단편들은 좀 더 교훈적이기도 하고 영웅적이기도 했다. <하얀 물개>편은 백인 우월주의(제가 최초의 하얀 물개예요. 게다가 검은 물개와 하얀 물개를 통틀어, 새로운 섬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유일한 물개죠.-p.128)가 엿보이기는 했으나 인간의 무분별한 동물 사냥을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위대한 전투 이야기라며 운을 떼며 시작하는 <리키티키타비>편은 정말 용맹한 녀석이 등장한다. 몽구스는 주로 코브라를 잡기 위해 가정에서 기른다고 하는데 이 조그만 녀석이 정말로 뱀 사냥꾼인지 확인하고자 찾아보았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뱀을 집어삼키는 영상에 놀라기도 했지만 천적 앞에서 죽은 척 연기를 하는 모습이 으찌나 귀여운지 배꼽 빠지게 웃기도 했다. 참으로 이야기와 잘 맞아떨어지는 용맹하고 영리한 동물인 것 같다. <코끼리들의 투마이>편에서 진정한 코끼리 몰이꾼이 되고자 했던 한 소년의 이야기로 한여름 밤의 꿈처럼 신비롭고 몽환적이게 펼쳐진다. 코끼리를 신성시하는 그들만의 문화도 엿볼 수 있다. <여왕 폐하의 신하들>편에서는 전쟁에서 죄 없이 희생되는 동물들의 모습이 그려져서 가슴 아프기도 했지만 어찌 보면 전쟁의 무모함을 말하는듯하다가도 제국주의가 언뜻 엿보이기도 했다.

 

역시 모글리만이 다가 아니었다. 동물들의 세계에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세계. 그곳엔 인간 사회가 본받고 깨쳐나가야 할 지혜들이 한가득이다. 이것이야말로 원작의 묘미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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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봄 헤세 4계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마인드큐브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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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5월초치곤 기온이 제법 높아 초여름 날씨를 방불케했다. 오늘도 오후 두시 넘어 강쥐와 산책을 다녀온 뒤 벌써 이렇게 땀이 나면 어쩌냐고 투덜댔다. 이러다간 여름이 바로 시작될 것만 같아 읽다만 <헤르만 헤세, 봄>편을 마저 읽었다. 원래는 봄이 시작되는 시점에 읽으려고 계획했건만 봄이 끝나갈 시점에 부랴부랴 책장을 덮는구나. 아직 봄꽃도 다 피지 않았건만, 아직 새잎이 쪼끄맣게 달린 녀석들도 많고만 벌써 뜨거워지면 우쩌냐고.

 

자연을 바라보기 시작한 사람은 거리를 걸어가면서도 단 일 분도 허비하지 않고 소중한 것들을 바라볼 수 있다.- p. 140

 

걷기가 좋아진 이유는 자연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면 시원한 바람을 가르는 느낌은 좋지만 자세히 보고픈 풍경을 지나쳐야 해서 요즘은 거의 걷는다. 매년 돌아오는 계절이지만 매 순간 느낌이 다르다. 이번 봄은 코로나19때문에 특히 그랬다.

온 세상이 질병에 무너져가도 봄의 생명은 다시 일어선다. 아마 긴긴 겨울 동안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면 심리적으로 더 고달팠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봄의 기운을 타고 공기가 기지개를 켰기에 우리도 조금은 견뎌낼 수 있지 않았을까.

 

 

 

 

헤세는 봄의 생명력과 푸르름에 대해 뛰어난 관찰력을 지녔다. 물론 천성적으로, 환경적으로 그는 자연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지만 모든 생명체의 순환과 순리를 경이롭게 바라보고 대한다. 나는 이제서야 보이는 것들이 헤세는 일찍부터 관찰하고 온몸으로 느낀 것이다.

 

내가 보지 못했는데도 기적이 이루어져 있고 숲들은 우거져 멀리 산 정상에서 부른다.

-p.63, <유년 시절 가운데> 중에서, 1903년

 

 

 

 

 

책 속에는 그가 쓴 글에서 봄에 관련된 글들만 모여있다. 시, 그림, 소설, 에세이, 편지 속에 비친 봄은 생동감 있고 아름답지만 때론 나이 많은 이들에게는 우울한 계절이라고 말한다. 3,4,5월의 점진적인 변화를 청춘에 빗대어 표현한 짧은 시도 인상적이고 전쟁의 아픔과 허무함을 강조한 문장들도 그 시절의 아픔으로 다가왔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느끼는 봄은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이 스며있다.

 

헤세는 어느 시기에 봄의 모습들이 어떻게 시시각각 변화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풍경이 어때야 아름다운지도 잘 알았다.

오월 초순의 지금과 나중에 또 다시 늦가을이 되면 남쪽 산악 지역의 풍경은 가장 아름다운 날들이 된다. -p.70

그것은 그가 그린 그림을 보면 쉽게 다가온다. 이런 풍경이라면 실제로 보았을 때 훨씬 아름다울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봄이 되면 정원은 분주해진다. 이는 물론 정원을 소유한 자들만이 절대적으로 공감할 이야기이다. 게으른 자의 정원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봄을 맞이하지 못한다. 얼마 전에 읽은 <매우 초록>의 저자도 봄을 맞이하기 위해 겨울의 분주함을 강조했고 나도 정원 있는 집에서 살아본 적도 있기에 헤세의 의도를 알겠다. 정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곳에 삶의 또 다른 깨달음이 숨어 있다.

자연의 선량함에 나의 정성을 곁들이면 새로운 창조자로서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게다가 자연의 가혹한 생태 현장을 직접 눈으로 보며 배우기도 한다. 식물의 순환 속에서 때론 참여하고 때론 배제되더라도 말이다.

이는 곧 우리네 삶의 방식으로 이어진다. 사계절을 맞이하고 준비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가짐도 그래야 한다.

 

우리 조상들은 무엇 때문에 시간에 쫓기곤 했던 것일까? -p.135 난 이 구절에서 흠칫했다. 1899년이나 지금이나 세대가 느끼는 것은 똑같구나. 그 시절에도 여가를 즐길 수 없을 만큼 먹고사는 일에 바빴나 보다. 더군다나 그의 눈에도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하나둘 사라져가는 옛 모습이 안타깝게 그려진다.

그들은 자신들과 같은 무리의 사람들과 마지막 남은 침대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고 그들의 자동차가 내뿜는 먼지 속에서 기침하면서 눈을 깜박거려야 할 그곳에 가 있을 것이다. -p.100

 

매년 봄이 너무 짧다고 투덜대지만 봄이 지나는 과정에 조금만 세심함을 기울이면 땅과 초록빛의 변화가 눈에 잡힐 것이고 바람의 결이 다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겨우내 볼품없어 보이던 마른 가지에서 어김없이 새 순이 돋아나는 걸 보면 생명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헤세는 봄을 절망에서 깨어남으로 보았고 꽃을 한 해의 기쁨이라고 했다. 의식적으로 체험한 기억은 유년시절의 향기로 남기도 한다. 봄의 걸음에 내 마음의 걸음을 싣고 헤세와 함께하는 여유를 부릴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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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기억의 세계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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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기억을 저장할 수 있는 시간 단위가 10분이라면 책은 없어지는 건가? 우습지만 이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엘리스 죽이기> 시리즈는 딸아이가 유독 좋아했다. 난 아직 읽어보진 못했지만 작가의 신작이라면 두 손들고 환영할 것 같았기에 이번엔 내가 먼저 읽어 보았다. 소설에 던져진 화두 '기억이 10분마다 사라진다면?'은 분명 아이들에게 수많은 가설과 다양한 이야기를 뽑아볼 수 있다.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면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측면과 마주하게 되는데 그런 부분도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어 유익할 것 같았다.

 

요즘은 게시판에 글을 작성할 때 자동 임지 저장 기능이 있다. 몇 분마다 할 건지 선택할 수 있어 혹시나 컴퓨터가 뻗더라도 작성 중이던 글을 살려낼 수 있다. 이런 편리한 기능이 있기에 인간은 단기기억을 살려내느라 머리를 쥐어짜낼 필요가 없어졌다. 대신 인간은 그런 단기기억들을 잘 모아 장기기억으로 저장하는 능력을 지녔다. 그것을 추억이라 부른다.

어느 날 여고생 리노는 방금 전 일어난 일에 대한 기억이 없음을 눈치챈다. 심지어 자신이 적은 메모조차도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린 상태다. 마치 10분 간격으로 포맷이 되고 있다고 할까. 이는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똑같이 일어난다. 뉴스 앵커는 원고를 읽다 식은땀을 흘리고 119구급 대원은 우왕좌왕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원자력발전소 같은 고위험군에 속한 사람들이다. 자칫 잘못하면 끔찍한 결말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요! 이 노트는 생명 다음으로 중요! 진짜라고! -p.56

 

이는 분명 엄청난 재앙이다. 인간에게 지력이 사라진다는 건 퇴화와 소멸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하지만 가설은 여기서 막을 내리지 않는다. 리노가 메모를 하고 원자력 발전소 직원들이 직감으로 위기를 넘겼듯 인간은 생존을 위한 지력을 다시 쥐어짜낸다. 기억이 사라진 차리. 그 틈을 메우는 역할은 마음(직감)뿐일까.

 

 

 

2부에서는 대망각 이후의 삶이 과연 어떠한 양상을 띄게 될까에 대한 다양한 예시가 등장한다. 인간은 단기기억의 소멸로 기억을 외부에 저장할 메모리칩을 개발하여 생존을 이어간다. 심지어 기억을 보관하기 위해 온갖 곳에 메모를 붙여 놓기도 하는데 과연 기억과 메모에 의존한 삶을 진정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대망각의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이후의 삶을 지켜나가기 위해서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설령 기존의 가치관에 위배되더라도 역사 속에서 가치관도 진화하고 발전해왔듯이 삶의 방식은 바뀌기 마련이다. 특히 대망각시대 이후의 아이들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시간을 저장한다. 장기기억이 존재하지 않으니 단기기억에 의한 메모리 기억으로 살아갈 뿐이다.

 

옴니버스 식으로 펼쳐지는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상상의 세계를 떠다녀 보았다. 메모리 회사의 실수로 쌍둥이에게 똑같은 기억이 삽입된다는 설정이나 교통사고로 딸의 메모리를 삽입한 아빠의 이야기나 거액의 돈에 자신의 메모리를 대리시험으로 빌려준 남자의 이야기는 기억이란 저장매체와 마음이 하나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한다.

 

기억이 마음일까? -p.157

 

개인에게 기억이 마음대로 바뀐다면 삶의 기준점이 사라진다. 이야기 속에서는 마음까지 분리하는 게 가능하다는 설정이지만 마음을 분리하는 게 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육체는 단지 기억을 위한 소모품에 불과해지자 육체를 뺏는 이들도 생겨난다. 이는 인간의 삶이 아니다. 저장 장치를 단 기계일 뿐.

 

그렇다면 저장매체가 없이 살아가는 게 가능할까. 문명이 손길이 닿지 않은 지역, 그들이 문명을 피해왔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그 공동체 무리에 도착한 나나는 메모리 없이는 살 수 없음을 말한다. 장기기억을 지니지 않은 사람들(생존에 필요한 축척된 생존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실수를 바로잡을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른다. 윤리적 문제와 부딪힘을 알고 또 누군가는 반문하지만 나나는 외부 장치를 써야 한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과거뿐 아니라 미래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계속 같은 일을 되풀이했어. 문명이 저지른 잘못을 또 다른 문명의 힘으로 억지로 수정하지. 그 결과 또 다른 잘못이 일어나고 이런 일을 되풀이해봤자 소용없는 일이야. 우리는 그 연쇄를 끊겠다고 결심한 거야. 안 그런가? -p.233

 

결국 인류는 인형처럼 누군가의 기억을 이어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기억뿐 아니라 그 사람의 가치관과 사상까지도 옮겨오게 된다고 설정하고 있다. 그것을 영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무당에게 메모리를 삽입해놓고 영혼을 불러온다는 설정이 코믹하긴 했다.

하지만 새로운 가치관은 다시 형성된다. 그래야지만 인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기에.

 

이야기가 끝으로 갈수록 김영하의 <작별>과 비스름해져 가는듯하다. 결국 몸뚱이는 없고 목소리만 남은 세상(폐기되지 않은 메모리). 그걸 영혼이라 부르기는 좀 우스운 감도 없잖아 있지만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계가 전혀 낯선 결말은 아니다. 기억을 저장한 홀로그램이든 로봇이든, 그 상황이 현실이든 가상이든, 중요한 건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있어 무엇이 중요할지 생각해볼 수 있겠다. 인간은 지력 있는 동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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