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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번째 천산갑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4년 9월
평점 :
가을은 게으름을 피우며 늦게까지 더위를 붙잡고 있던 여름을 한방에 밀어버렸다. 계절의 변화는 마치 날카로운 조각도 같았다.-p.74 나의 잠자던 감성이 드러나자 문득 파리의 가을 풍경이 궁금해진다. 하지만 '그'가 선택한 파리와 '그녀'와 '그'가 재회한 파리는 고독하기 그지없다. 그들과 더불어 나 역시 핫초콜릿이 절실해진다.
천쓰홍 작가는 본인의 이야기를 문장화하는데 귀신이다. 더불어 여성 이야기도 잘 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차별과 혐오, 냉대와 조롱에 누구보다 감각이 열려 있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대변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초반에 들었던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묘사에 대한 거부감이 오히려 그의 절실함과 간절함을 증폭시켰고, 중첩된 시간들이 하나 둘 풀려가자 캐릭터를 향한 나의 공감 능력이 최대치로 향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67번째 천산갑>은 <귀신들의 땅>과 어느 정도 연장선에 놓여 있다고 보인다. 보수적이고 지독한 대만 사회에서 여성과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고난의 연속인지를, 존재하지만 귀신처럼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운 것인지를 말이다. 하지만 울분만 토해내지 않는다. 여기엔 성장이 있었다.
<67번째 천산갑>은 제목부터 낯설었다. 천산갑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다. 천산갑의 생김새를 처음 본 느낌은 마치 오리너구리를 보았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특이한 생김새를 보며 종의 다양성에 경이감도 느껴진다. 작고 까만 눈동자가 참으로 사랑스럽다. 그렇다면 왜 천산갑일까.
대만과 천산갑의 연결고리는 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참고했다. 천산갑에서 갑의 발음이 게이를 의미하는 뜻으로 변질되어 혐오 표현으로 많이 쓰인다고 한다. 과거에는 천산갑 비늘이 정력에 좋다는 이유로 엄청나게 죽어나갔다는데 최근 기사에는 멸종 위기종인 천산갑을 밀수하다 적발되는 사례도 접했다. 그런 이유로 작가는 천산갑의 이미지를 '그'에게 투영했다. "천산갑들도 그러거든" -p.122 소설에 언급된 동일시 말고도 천산갑은 자신의 환경에 매우 민감하지만 매우 수줍음이 많아서 인간을 포함한 다른 동물들과의 접촉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즉 독립적이며 혼자서도 잘 논다는 얘기다.
<귀신들의 땅>보다는 읽기가 편했다. '그녀'와 '그'만 바라보면 되기 때문이다. 역시나 뒤죽박죽이다. 현재가 먼저 열리고 영화 기법처럼 화자와 시간 전환이 수시로 있다 보니 좀 더 집중력이 필요했다. (영화화하려면 천산갑 장면은 CG로 대체하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각자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의 생을 따라가는 과정이 마치 실내에 어둠에 적응하면서, 흐릿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점점 선명해-p.84 지는 기분과도 같았다. <귀신들의 땅>에서 보여준 화끈한 농담은 없지만 '그녀'와 '그'의 오래된 우정이 복원되는 과정만큼은 화끈해서 좋았다. 특히 샤넬백씬이 눈물 나게 통쾌했다.
여섯 살이던 그와 그녀는 한 매트리스 광고의 모델로 만나 영화까지 찍으며 우정을 쌓아가지만 '잠'이 지니는 너저분한 속성으로 인해 두 사람을 향한 잣대와 평가는 엇갈린다. 특히 어른들의 언어폭력(차별 언어)은 소름 그 자체다. 그렇게 그녀가 바라던 관계는 반 토막 우정으로 막을 내린듯했으나 오래전 영화가 복원되어 재상영된다는 소식은 그와 그녀를 낭트행으로 이끈다. 하지만 낭트행을 향한 두 사람의 목적은 달랐다. 그는 오래전 자신의 천산갑이 그리웠고 그녀는 그가 그리웠다. 그녀에게 기다림은 살아가는 동력이었고 그와의 만남을 통해 그녀는 복원되길 바랐다. 그녀는 오래전 함께여서 편안했던 그 기억을 다시 찾고 싶었다. 먼저 잠부터 푹 잔 뒤 산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을의 파리는 두 사람에게 자꾸만 여름의 기억을 들추게 한다.
아역배우 시절부터 온갖 시기와 질투, 비아냥과 냉대뿐 아니라 엄마의 무심함과 이성의 폭력에 노출된 채 성장하고 결혼한 '그녀'는 한 번도 짜릿했던 적이 없었던 자신의 생이 억울하기 그지없다. 듣지 않아도 될 말과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이 여과 없이 그녀의 혈관을 타고 온몸을 메마르게 한다. 한물간 그리고 천박한 배우라는 낙인은 불면의 밤 속에서 그녀를 서서히 죽여간다. 그녀는 현 남편의 선거용 조끼에 담긴 위선이 징글징글하고 잠자는 그녀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남편의 괴상한 취미에 혐오가 인다. 무엇보다 연쇄살인마(아들을 얻기까지 저지른 낙태)인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다.
눈물이 언어였 -p.146 고 요란한 구급차를 두려워하는 '그'에겐 정원 한구석 패배의 산을 쌓아놓을 만큼 일을 벌이는데 도가 트고 끊임없이 여자를 갈구했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불륜 현장을 찾아다니던 어머니가 있었다. 두 사람의 불협화음은 그를 침묵 속에 가둔 것도 모자라 아예 버려 버린다. 그와 그녀는 그렇게 흐릿하고, 흔들리고, 결함이 있고, 잊히고, 초점을 잃고, 색감이 없어지고, 일그러지고, 잡음이 섞인-p.135 과거를 안고 파리를 걷고 낭트로 달린다.
잘 자요~~ 잠을 잘 자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소설에서 매트리스는 중요한 소재이자 다양한 의미로 작용한다.
신형 매트리스는 그와 그녀를 잇는 매개체였고 낡은 매트리스는 억눌린 분노를 잠재우는 편안함이 된다. 아마도 그것은 오래전 그와 그녀가 버려진 후 낯선 곳에서 만난 매트리스에서의 '잠'에 기억 때문일 것이다. 제대로 된 집이 없던 그들에게 매트리스는 집이자 쉼이었다. 또한 낡은 매트리스는 그와 J와의 연결고리로 작용한다. 빨간 립스틱이 잘 어울리던 J의 죽음으로 방향을 잃은 그에게 그녀의 등장은 침묵과 소란을 뒤섞어 반쪽자리 우정을 회복하게 한다. 무엇보다 질문이 많았던 그녀의 눈빛과 말을 자꾸만 삼키는 그와의 신경전은 그녀의 아들이 남기고 간 빵부스러기(안경)로 인해 극에 치닫다 단숨에 녹는다. 결정적인 사건은 그녀의 억눌린 고통이 낳은 담석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그와 그녀의 낭트행의 목적은 엉뚱한 방향의 합의점에 이른다.
너는 나의 게이미야. -p. 467
나 역시 오래전 미드 <섹스 앤 더시티>를 보면서 게이 친구에 대한 바램을 품은 적이 있었다. 그 넉넉한 관계가 부러워서.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차별과 억압, 데이트 폭력과 협박까지 그녀에게 이성들은 한 번도 그녀를 진심으로 대한 적이 없었다. 누구에게나 메워지지 않는 구멍이 있다. 그는 그녀의 모든 순간에서 가장 고마운 존재로 그녀의 구멍을 메운다. 그에 대한 불신을 거두고 아들을 끌어안는 과정이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다.
아무러면 어때.-p. 444 라는 그녀의 한마디에서 자포자기가 아닌 시각의 유연함이 느껴져서일까. 이것이야말로 두 사람의 낡고 지난한 삶을 복원할 수 있는 생의 기술이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는 <귀신들의 땅>에서 다소 불편했던 성소수자의 고뇌를 한층 더 포용하게 된다. '페트리쇼르' 그 익숙한 슬픔의 냄새에 더 이상 두려움이 깃들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