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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클의 소년들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2월
평점 :
시작부터 다리가 부러진 채 달려야 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더 끔찍한 건 시작 전에 다리를 분질러 버리려는 자들이다. 세상사 불공평한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평등과 자유를 부르짖어도 또 그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사는 이들이 천지라는 것도 안다. 차별과 불평등에 관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쓰였음에도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끝나지 않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밟는 자들이 있다는 건 밟히는 자들이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이상한 시나리오가 여전히 존재한다. 고로 맞은 자는 흉터로 기억하지만 때린 자는 남은 게 없어 기억을 못 하나 보다. 가해자들은 죄다 돌머리거나 오리발의 대가들인 셈이다. 증거는 차고 넘침에도.
거기서 사람을 온갖 방법으로 구부려놓기 때문에 똑바로 인생을 살아갈 수 없게 돼. 거길 나올 때쯤에는 사람이 아주 뒤틀려버린다고. -p.208
이 이야기의 큰 틀은 인종차별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강자가 약자를 누르는 이야기이자 사회와 가족 간의 연결고리를 잃어버린, 소외된 자들을 배척하고 끊어버리려는 이야기이다. 눈에 보이는 높은 담은 없지만 무관심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행되는 인권유린의 실태를 고발하는 이야기이다. 세상을 흑과 백이라는 확연한 이분법으로 잘라 놓고 어정쩡한 푯말을 세운다. 분리돼 있지만 평등하다는 원칙. 이곳 니클도 분리돼 있지만 폭력에는 차별이 없었다.
우습게도 멕시코계 아이 하나는 어정쩡한 피부색 때문에 흑과 백을 오간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고 한숨짓는 아이의 목소리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저자는 실제 도지어 남학교에서 벌어졌던 사건을 모티브로 니클 감화원을 그렸다고 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이야기가 절대 허구나 상상으로 읽히지 않는다. 인종차별은 오래전부터 아주 잔혹하게 자행되어 왔다. 남북전쟁으로 촉발되긴 했으나 오히려 짐 크로 법이 있었기에 그 법에 적극적으로 대항함으로써 두드러진 것이 아닐까 한다. 역사에서 늘 진실과 자유의 문은 더디게 온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마치 재물처럼 희생되고서야 조금씩 열어젖힐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피 말리는 일인가.
1962년. 엘우드는 짐 크로 법이 폐지되기 전 -1965년에 폐지되었다- 즉 법의 부당함에 대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높아지던 시절을 지나던 청소년이었다. 비록 그의 부모들이 그를 할머니에게 버려두고 떠나버리긴 했지만 깨어있는 정신을 지닌 청년으로 자라는 중이었다. 하지만 당시 흑인들에겐 불운이 늘 따라다녔다. 재수 옴 붙으면 죽음이 들러붙기도 한다. 똑똑하고 바른 청년 엘우드 또한 그 불운을 비껴갈 수 없었고 니클 아카데미로 오게 된다.
아카데미란 탈을 쓴 이 교육기관은 문제아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크나큰 문제아부터 소소한 문제아까지 죄목도 다양하지만 대부분 억울하게 끌려온 아이들이다. 더군다나 변명조차 통하지 않던 흑인에게는.
들어오긴 쉬워도 나가기는 어려운 곳.
비위생적인 시설과 말도 안 되는 체벌이 행해지던 곳. 연고 없는 아이들의 생을 보장받을 수 없는 곳.
한 마디로 이곳은 감옥보다 더 한 수용소를 연상시킨다. 관리자들은 이런 아이들의 살점을 야금야금 뜯어먹으며 이득을 취하고 소문의 틈새를 완벽히 차단한다. 어쩌면 알면서도 눈 가린 자들덕에 더 배를 불렸을 수도.
마틴 루서 킹 목사는 고통 속에서도 사랑을 외쳤고 견딤의 숭고함을 부르짖었건만 스펜서나 얼 같은 인간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악용해서 더 악랄하게 괴롭힌다. 엘우드는 바른 생활로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자 했다. 하지만 착하게 잘 지내면 아무 일 없을 거라던 경찰의 말이 통하지 않는 곳이 니클이었다. 싸움을 말리려다 되레 죽을 만큼 맞았고 니클의 실체를 알리기 위해 기록해둔 종잇조각도 휴지가 되었다. 엘우드의 순진함이 지독한 체벌 앞에 짓밟히고 선량한 희망마저 독방에서 체념화되어간다. 할머니 또한 그를 도울 수 없었고 도움을 청한 편지도 묵묵부답이었다. 정말 그는 분수에 맞지 않는 요구를 한 대가로 벌을 받고 있는 것일까. 니클의 공포에 체념한 아이들 중 어느 누구도 그런 생각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터너는 누구보다 그 사실을 알았고 자신보다 용감했던 엘우드와 목숨을 건 탈출의 동반자가 되어준다.
후반부에 가서야 표지 그림을 이해했다. 누가 되었든 진실을 알려 줄 산증인이 필요하고 억울한 영혼들의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 한쪽 눈을 가리고 있던 이들에게 나머지 한쪽 눈을 뜨게 끔 알려야 한다.
이야기는 현재 니클의 소년들의 뼛조각이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해 과거로 떠난다. 무력해진 폭력 앞에 엘우드는 세상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거다란 지렛대는 폭력밖에 없다. -p.111 가설을 세우기도 하지만 니클을 없애기 위해 나름의 계획을 세운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진실이라는.
"그 녀석들은 죽어서도 골칫덩이였다" 라는 첫 문장을 읽으며 골칫덩이로 여긴 것이 개발업자였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마음이 무너졌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회의 골칫덩이로만 존재할 수 없었던 이 가여운 영혼들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사회고발 소설을 읽을 때 불편함보다는 이러한 비극이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불편하고 안타깝다. 어찌 되었든 흑인 아이들의 인권 따위를 무시한 건 백인이었고 백인들은 그런 체재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 피부색에 관심을 두지 않던 이들조차도 무관심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랬다면 엘우드의 쪽지로 변화가 일어났어야 했다.
세상을 일부밖에 보지 못하는 눈에 익숙해지면 -p.116 이런 일들은 어디서든 계속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아니 나조차도 엘우드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자신이 비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열해지느냐 마느냐보다 더 외면할 수 없었던 건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를 찍어 누르는 크고 작은 힘에 사라져선 안된다. 그리고 진실에 가닿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고발 소설답게 여기저기 널려 있는 풍자의 떡밥도 볼거리다. 두 번 읽어 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