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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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인 오늘로서 만 스물일곱 살이 된 나도 열다섯 살이었던 때가 있었다. 나는 그때 겉으로는 반장, 학생회 임원, 방송부원으로 이름을 날리는 모범생이자 우등생이었지만, 실제로는 친구들과 g.o.d나 신화 같은 아이돌 그룹 이야기하는 것이 삶의 유일한 낙인 평범한 여중생이었다. 그 때는 그저 아이돌 그룹의 노래나 춤이 좋아서, 외모가 끌려서 좋아한다고 믿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하루라도 성적 걱정, 등수 걱정 안 하고 살아보고 싶던 내게 아이돌 그룹은 온갖 고민을 잊을 수 있는 피난처라서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때의 내 또래인 학생들이 EXO같은 아이돌 그룹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 걱정이나 우려보다는 안쓰러운 마음이 더 든다. 


처지는 다르지만 피난처를 찾는다는 점은 같은 열다섯 살 학생이 여기 또 있다. 이름은 '못'. 공부를 잘하지도, 외모가 잘나지도 않고, 존재감마저 없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하는 못은 '모아이'라는 아이와 '쎄트로' 불량 학생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돈을 갈취당하는 게 일상이다. 한 번이라도 친구들한테 무시당할 걱정, 맞을 걱정 하지 않고 학교에 가고 싶던 못에게 어느 날 피난처가 생긴다. 그것은 여느때처럼 벌판에서 불량 학생들에게 맞고 돈을 뺏긴 못과 모아이 앞에 나타난 탁. 구. 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핑, 퐁, 핑, 퐁, 랠리를 시작했고, 탁구를 치면서 두 소년의 일상은 조금씩 전과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간다. 

 
얘야, 세계는 언제나 듀스포인트란다. 
이 세계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나는 줄곧 그것을 지켜봤단다.
그리고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에게 탁구를 가르쳤어. 
어느쪽이든 이 지루한 시합의 결과를 이끌기 위해서였지. 
하지만 아직도 결판은 나지 않았단다. 이 세계는

그래서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곳이야. 
누군가 사십만의 유태인을 학살하면 또 누군가가 멸종위기에 처한 혹등고래를 보살피는 거야.
누군가는 페놀이 함유된 폐수를 방류하는데, 또 누군가는 일정 헥타르 이상의 자연림을 보존하는 거지.
이를테면 11:10의 듀스포인트에서 11:11, 그리고 11:12가 되나보다 하는 순간 다시 12:12로 균형을 이뤄버리는 거야.
그건 그야말로 지루한 관전이었어. 

지금 이 세계의 포인트는 어떤 상탠지 아니?
1738345792629921:1738345792629920. 어김없는 듀스포인트야. (pp.117-8)


박민규 소설 아니랄까봐 이 소설 역시 시종일관 기이하고 환상적이다. 달라도 너무 다른 외모의 두 소년이 벌판에서 탁구를 치는 모습도 그렇고, 둘이 본격적으로 탁구를 치기로 하면서 알게 된 세크라땡 아저씨와 그의 아들들, 모아이의 주변사람들까지, 하나같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런 비현실적인 장치들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현실을 떠올리게 만든다. 불량 학생들이 일방적으로 못과 모아이를 괴롭히는 것을 알면서도 묵인하는 학생들과 교사들, 평범한 소년 못이 삶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는 모습은 이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요구하거나 방치하는 현실과 다르지 않다. '세계는 언제나 듀스포인트'라서 절대적인 희망도, 절대적인 절망도 품을 수 없다는 세크라땡 아저씨의 말은, 안타깝지만 무엇도 제대로 해줄 수 없는 어른의 무력감을 대변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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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아이디어 - 창의성을 깨우는 열두 잔의 대화
김하나 지음 / 씨네21북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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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광고하다>에서 저자 박웅현은 똑똑하고 창의적이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만 모인 광고계에서 최고가 된 비결로 주저없이 '책읽기'를 들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같은 재치있고 기발한 카피들이 딱딱한 인문학 책을 읽고 만들어진 거라니, 허탈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나같은 사람도 노력만 하면 충분히 창의적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제일기획, TBWA 코리아 등을 거친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김하나 역시 창의성의 비결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당신과 나의 아이디어>에서 저자는 창의성이 교과서처럼 규격화되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천재들의 전유물도 아니며, 통통 튀는 감각을 지닌 젊은 사람들만이 가지는 것도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보다는 오히려 성실함과 진지함이 창의성을 가지는 데 필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한다. 박웅현이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그것도 원서로 읽으며 우직하게 내공을 기른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천재의 삶에서 배워야 할 점은 사과가 떨어지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사과의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 자기 일의 기본을 성실하게 배워온 당신 같은 사람이라면 이제 창의성의 자세도 훌륭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창의성은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특별한 소수만의 전유물이 결코 아니에요. 말했죠? 창의성은 하나의 태도라고요. (p.28)


두 남녀가 서울 모처의 바에서 술을 마시며 대화하는 방식으로 쓰인 이 책에서 저자는 아예 창의성이라는 단어 대신 아이디어라는 단어를 쓰자고 제안한다. 창의성이라고 하면 보통사람이 가지기 힘든 거창하고 대단한 재능 같지만, 아이디어는 누구나 일상 속에서 떠올릴 수 있는 기발한 생각이나 센스 같은 느낌이 든다.


아이디어는 출출하던 차에 찾은 분식집 테이블, 퇴근길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 자동차 유리창에 붙은 중고차 딜러의 전단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하다못해 늘 가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새로운 맛에 도전해보는 식으로도 찾을 수 있다. 나와 동생은 진작부터 하던 것이 있다. 어쩌다 단둘이 외식을 하게 되면 우리는 늘 먹는 평범한 음식 대신 안 먹어본 외국 음식이나 처음 보는 디저트에 도전한다. 이름하여 '어제와 다른 나' 프로젝트! 별것 아닌데 머리회전에 도움이 된다니 뿌듯하다.
 

아이디어 하면 보통 광고나 영화, 음악, 패션 등 창의성을 요하는 미디어, 예술 분야에서나 쓰이는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양성평등, 민주주의 같은 이념도 실은 누군가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태어난 발명의 소산이다. 높이뛰기 경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면뛰기, 이른바 '포스베리 플랍' 기술 역시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딕 포스베리라는 선수가 처음 시도하여 만들어진 발명품(?)이다. 달리기를 할 때 바닥에 손을 대고 몸을 숙인 채 출발 준비를 하는 '크라우치 스타트' 자세도 지금은 초등학생도 알지만 1896년 아테네 올림픽 때까지 시도되지 않았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처음에 어떻게 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를 깨닫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어딘가 유연해집니다. 옛것도 앞뒤의 맥락을 살펴보면 벽을 깨고 나온 신선함으로 여전히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경우가 많지요.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 용감한 시행착오에 박수를 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p.173)


연말 탓인지 유난히 피로하던 몸과 마음이 이 책 한 권으로 활기를 되찾은 것 같은 느낌이다. 
글도 좋고, 내용도 좋고, 만듦새까지 좋은 별 다섯 개 짜리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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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프래질]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안티프래질 - 불확실성과 충격을 성장으로 이끄는 힘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안세민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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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스완' 개념을 제시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예측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경제학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그가 쓴 글이나 책을 읽어보면 재미있고 매력적인 사람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건 아마도 그가 학자로서는 드물게 정계와 재계, 심지어는 자신이 속한 학계에 대해서도 심심찮게 '돌직구를 날리는' 사람이라는 점과, 경제학자로만 규정짓는 것이 아까울(!) 정도로 다방면에 학식이 풍부하고, 글까지 잘 쓰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심지어는 운동도 많이 해서 몸도 좋다고!).



신작 <안티프래질>도 무척 재미있다. 잘못해서 떨어뜨렸다가는 발을 찧겠다 싶을 만큼 두꺼운 이 책은 알랭 드 보통, 빌 브라이슨 저리 가라 할 만큼 글이 좋고, 경제학 외에도 문학, 철학, 의학, 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가 복합적으로 등장하여 경제경영서라기 보다는 '종합교양서'를 읽는 느낌이었다.



네로는 뉴욕 시내의 세계무역센터 터 맞은편의 거대한 건물을 바라보면서 서 있곤 했다. 

그 건물에는 은행과 중개업체들이 상주해 많은 사람들이 일하고 있다. 

그들은 뉴저지와 일터를 오가는 데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고, 

크림 치즈를 바른 베이글을 먹으면서 인슐린 저항으로 동맥 경화를 촉진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이메일을 교환하고, 보고서를 쓰면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생산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잡음이다. 

헛수고, 불협화음, 미학적이지 못한 행동, 불확실성의 증대, 

뉴욕 지구 친환경 구역의 기후 변화를 초래할 에너지 생산, 

언젠가는 증발하게 될 부에 대한 집단적인 망상을 의미한다. (pp.228-9)



안티프래질은 '취약한, 잘 부서지는' 이라는 뜻의 영단어 'fragile'의 반대 개념으로, '비온 뒤에 땅이 굳는' 것처럼 충격을 받아도 부서지지 않고 오히려 강해지는 특성을 뜻한다. 위험회피적이고 정형화되고 예측적인 것을 선호하는 프래질과 달리, 안티프래질은 위험을 선호하고, 무작위하거나 가변적인 것을 수용하며, 예측이 아닌 경험에 의존하는 특성이 있다. 



저자는 여러 장에 걸쳐 프래질과 안티프래질 개념의 차이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관료주의, 제도주의, 계획주의, 예측에 대한 선호 같은 것은 프래질, 인위적이지 않고 자유로운 상태는 안티프래질이다. 잘 다니던 회사에서 하루 아침에 잘릴 수 있는 샐러리맨은 프래질이고,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일할 수 있고 정년도 없는 택시기사 같은 자영업자는 안티프래질이다. 병원이나 약에 의존하다 걸리는 의원성 질환은 프래질이며, 몸이 스스로 치유할 수 있게 내버려둬서 면역력을 기르는 것은 안티프래질이다. 즉, 규칙이나 형태가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 개입을 하는 것보다는 안 하는 것, 큰 것보다는 작은 것이 낫고 더 강하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프래질한 개체는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안티프래질한 개체만 적자생존하는 상태야말로 이상적이다. 그런데 과도한 정부개입과 금융지원이 이루어질 경우, 자연스럽게 도태되어야 마땅한 기업이나 개인이 살아남아 안티프래질을 위협한다. 프래질과의 경쟁 끝에 안티프래질만 남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옳은 것이 아니라 틀린 것에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혹은 이를 프래질과 강건함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표현하면, 

부정적 지식(틀린 것, 유효하게 작용하지 않는 것)은 

긍정적 지식(옳은 것, 유효하게 작용하는 것)에 비해 오류에 더욱 강건하다.


따라서 지식은 추가가 아니라 제거에 의해 더욱 발전한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이 틀린 것으로 판명될 수 있지만, 

우리가 틀린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 옳을 수 없거나 최소한 쉽게 옳을 수 없다면 말이다. (p.467)



인위적, 의도적, 예측적인 것을 거부하는 저자의 태도는 책 후반부로 갈수록 분명해진다. 저자는 부를 위한 학문, 경제성장을 위한 교육을 거부한다. 학문은 학문 그 자체를 위한 학문이지 부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며, 높은 교육수준이 경제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인과관계도 잘못되었다. 



이런 생각은 그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학자가 되기 전 저자는 월스트리트에 위치한 금융 회사에서 트레이더로 일한 경험이 있다. 그 때 그는 회사에서 일하는 전문 트레이더 대부분이 자신처럼 아이비리그 출신이 아니라 가방끈 짧은 길거리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게다가 그들은 아이비리그 출신인 저자보다 일도 잘했다!). 동체역학을 안 배운 세 살 꼬마부터 칠십대 할아버지까지 누구나 자전거를 탈 수 있듯이, 경제 역시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들만의 전문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앎, 지식이라는 것에 회의적이다. 심지어는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한 소크라테스에게 반기를 든다. 나 자신에 대한 '앎'이 '삶'이라는 실전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경제학에도 적용된다. 경제학자, 경제전문가들은 앞으로의 경제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알 수 있다고 쉽게 말하지만, 이는 착각이며 오만이다. 알 수 있는 것은 없거니와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블랙스완처럼 인간의 예측 범위를 넘는 현상이 발생하면 예측은 아무 소용이 없다. 과거의 실패한 경험, 즉 블랙스완을 본 적이 있는가 없는가 그것만이 중요하다. 



블랙스완이라는 이름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어 전보다 더 강해지는 것이 바로 안티프래질이다. 책의 많은 부분이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지만, 저자가 몇 년 전에 제시한 블랙스완과 이번에 발표한 안티프래질이 연결되는 이 대목에서 나는 전율을 느꼈다. 블랙스완이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했듯이, 안티프래질 역시 앞으로 다가올 경제 현상을 제대로 예측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것은 위기를 극복하여 더욱 강해지는, 긍정적인 것이기를 바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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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머핀 2013-12-14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확인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
 
[제6의 물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제6의 물결 - 자원 한정 시대에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제임스 브래드필드 무디 & 비앙카 노그래디 지음, 노태복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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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섬(zero-sum)이 아닌 윈윈(win-win)이 가능하다고 보는 경제학의 전제에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경제관계의 주체를 가계와 기업, 정부로만 한정한다면 윈윈할 수도 있다. 국가 간 무역 또한 윈윈이 가능하다. 하지만 경제의 주체를 인간뿐 아니라 자연을 포함한 생태계 전체로 상정했을 때에도 과연 윈윈이 통할까? 자원고갈과 환경오염의 예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자연이 인간을 위해 손해만 보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사실인데 말이다. 


호주연방과학원 사무총장 제임스 브래드필드 무디의 <제6의 물결>은 그동안 주류 경제학자들이 무시해온 자연에서 경제 흐름의 새로운 방향을 찾았다. 경제는 산업 기술의 변혁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는다. 지난 200년 간 다섯 번의 거대한 경제적 변동이 있었다고 보는 콘트라티에프 파동에 따르면, 제1의 물결은 산업혁명, 제2의 물결은 철도와 증기의 발명, 제3의 물결은 전기의 이용, 제4의 물결은 자동차의 발전, 제5의 물결은 정보통신기술의 향상으로부터 야기되었다. 그렇다면 제6의 물결은 어떤 기술로부터 추동될까? 저자는 '자원 효율성'을 답으로 제시한다.

 
"자원 효율성은 제6의 물결에서 핵심이다. 
우리가 풍부하고 값싼 자원을 획득하던 시기에서 
드물고 소중한 자원을 관리하는 시대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원 효율성은 여러 경로를 통해 이루어진다. 
가령 포장을 줄여 돈을 절약하는 회사에서부터 
단열을 더 좋게 하여 전기료를 줄이는 개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더 적은 자원으로 이러한 일을 할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면, 
당신은 다음에 다가올 물결의 시장 변화 요인에 동참하기 시작한 셈이다." (pp.78-9) 


자원 효율성을 테마로 한 미래산업의 예로는 무엇이 있을까? 첫째는 쓰레기 자원이다. "쓰레기는 결코 쓰레기가 아니며 또 다른 형태의 제품이다. 여전히 대부분 사람은 쓰레기를 수익의 사각지대라고들 여긴다. 하지만 제6의 물결이 이런 생각을 바꾸고 있으며 산업계는 차츰 쓰레기가 팔릴 수 있는 제품이라고 인식해가고 있다." (p.194) 자원이 부족해질 수록 이미 사용된 자원이나 사용되고 남은 자원에 대한 수요도 높아질 것이다.


서비스업 역시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원효율성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바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존 자동차 산업은 자동차라는 재화를 판매하는 데 골몰했고, 자동차 산업의 부수적인 서비스업인 정비업이나 보험업 등은 이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도였다. 반면 카셰어링은 이동성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한정된 차량(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미래 트렌드에 걸맞다. 소유 대신 공유와 렌트의 개념이 점점 인기를 끌 것임은 <트렌드 코리아>에서도 예측된 바 있다.  


디지털과 자연의 융합 역시 활발해져 지능화된 냉장고, 스마트 가옥 등 자연을 모방한 디지털 기술이 인기를 끌 것이다. 인근 지역에서 생산된 식품만 먹는 로컬 푸드 운동처럼 생산물은 지역에서 생산, 소비하고, 정보만 국제적으로 유통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새로운 황금 시대>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생체모방 기술 역시 각광을 받을 것이다. 자연에서 기술 발전의 아이디어를 얻는 생체모방은 단순히 제품 개발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 디자인 등에도 응용되어 산업생태학, 에코디자인이 주목을 받을 것이다. 주어진 자원을 누가 더 효율적으로 쓸 것인가. 이를 고민한다면 자원 고갈이라는 위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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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머핀 2013-12-14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바다출판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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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아프니까 청춘이다> 류의 말랑말랑한 청춘 멘토서가 인기를 끌더니, 최근에는 이른바 '돌직구' 스타일의 직설적인 책들이 인기다.  다들 삶이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일까? 아니면 좀 더 근본적인 처방을 원하는 것일까?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는 전자이며 후자이기도 하다.  1966년 <여름의 흐름>으로 최연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자로 이름을 올린 그는 일흔인 지금도 나가노의 시골에서 속세와 동떨어진 생활을 하며 꼬장꼬장하게 살고 있다.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겠지만, 이 책 에는 그의 독한 인생관이 가득 묻어난다.  '인생이란 멋대로 살아도 좋은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인간을 구속하고 억압하는 요인으로 크게 가족, 국가, 직장, 종교, 연애 이렇게 다섯 가지를 든다.


먼저 저자는 부모에 대해 "그저 낳았을 뿐인데, 자식을 소유물로 간주한다. 자신을 위해 존재하고, 또 자신을 위해 이것저것 보살피는 편리한 가정부라 착각한다. 이 때문에 학교며 직장이며 결혼 상대며,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이 자신이 깔아 놓은 레일 위를 달려야 마땅하다고 믿는 것이다. 이렇게 진저리가 나도록 뻔뻔한 부모는 아무리 타당한 논리를 내세워도 통하지 않는다." (pp.34-5) 라고 매몰차게 잘라 말한다.  부모를 하늘처럼 떠받들고 모시라고 가르치는 우리네 유교문화와 다르다.  하지만 유교라는 것이 무엇인가.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임금과 신하, 이렇게 상하를 구분하여 지배질서를 만들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그의 말대로  부모의 사랑에 거짓이 없다고 믿으며 부모 품에 머무르려고 하는 자식에게 미래는 없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 어떤 국가도 실은 국민의 것이 아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정부가 하는 일에 한 치 오차가 없다고 믿을 수 없다.  직장도 똑같다. "남에게 고용되는 처지를 선택하는 것은 자유의 9할을 스스로 방기하는 일이다. 인생 전부를 남의 손에 빼앗기는 것이다. 쥐꼬리만 한 월급과 상여금과 퇴직금을 빌미로 지시에 따르기만 해야 하는 인형 취급을 당하고, 퇴직 후 제2의 인생이라는 거짓으로 점철된 무지갯빛 꿈을 꾸는 동안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철저하게 무시된다." (p.47) 고용주 또는 주주의 이익에 봉사하는 직장이 평생 자신의 행복을 보장해줄 것이라고 믿는다면 큰 착각이다.  종교와 연애도 판타지다. 


읽다보니 이런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사는 데 의미나 목적 따위란 없으며, 만약 그런 것들이 있다면 인간은 "그 의미와 목적의 노예가 되어 오히려 그것들을 잃고 말 것"이라고 단언한다. "의미도 목적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즉, 스스로 찾을 수 있다는 의지의 자유로움이 존중된다는 뜻이며, 의지의 세계에는 정해진 것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p.185) 즉, 자유롭게,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멋대로' 살아도 된다. 하아, 그런데 그 '멋대로' 산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멋대로 산다는 건 뭘까? 정말 그래도 될까? 이 지독한 자기 검열! 저자는 이런 나에게 엿이나 먹으라고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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