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아이디어 - 창의성을 깨우는 열두 잔의 대화
김하나 지음 / 씨네21북스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인문학으로 광고하다>에서 저자 박웅현은 똑똑하고 창의적이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들만 모인 광고계에서 최고가 된 비결로 주저없이 '책읽기'를 들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넥타이와 청바지는 평등하다' 같은 재치있고 기발한 카피들이 딱딱한 인문학 책을 읽고 만들어진 거라니, 허탈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나같은 사람도 노력만 하면 충분히 창의적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제일기획, TBWA 코리아 등을 거친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김하나 역시 창의성의 비결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당신과 나의 아이디어>에서 저자는 창의성이 교과서처럼 규격화되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천재들의 전유물도 아니며, 통통 튀는 감각을 지닌 젊은 사람들만이 가지는 것도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보다는 오히려 성실함과 진지함이 창의성을 가지는 데 필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한다. 박웅현이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그것도 원서로 읽으며 우직하게 내공을 기른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천재의 삶에서 배워야 할 점은 사과가 떨어지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사과의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요? 그러니 자기 일의 기본을 성실하게 배워온 당신 같은 사람이라면 이제 창의성의 자세도 훌륭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창의성은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특별한 소수만의 전유물이 결코 아니에요. 말했죠? 창의성은 하나의 태도라고요. (p.28)


두 남녀가 서울 모처의 바에서 술을 마시며 대화하는 방식으로 쓰인 이 책에서 저자는 아예 창의성이라는 단어 대신 아이디어라는 단어를 쓰자고 제안한다. 창의성이라고 하면 보통사람이 가지기 힘든 거창하고 대단한 재능 같지만, 아이디어는 누구나 일상 속에서 떠올릴 수 있는 기발한 생각이나 센스 같은 느낌이 든다.


아이디어는 출출하던 차에 찾은 분식집 테이블, 퇴근길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잔, 자동차 유리창에 붙은 중고차 딜러의 전단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하다못해 늘 가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새로운 맛에 도전해보는 식으로도 찾을 수 있다. 나와 동생은 진작부터 하던 것이 있다. 어쩌다 단둘이 외식을 하게 되면 우리는 늘 먹는 평범한 음식 대신 안 먹어본 외국 음식이나 처음 보는 디저트에 도전한다. 이름하여 '어제와 다른 나' 프로젝트! 별것 아닌데 머리회전에 도움이 된다니 뿌듯하다.
 

아이디어 하면 보통 광고나 영화, 음악, 패션 등 창의성을 요하는 미디어, 예술 분야에서나 쓰이는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양성평등, 민주주의 같은 이념도 실은 누군가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태어난 발명의 소산이다. 높이뛰기 경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배면뛰기, 이른바 '포스베리 플랍' 기술 역시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딕 포스베리라는 선수가 처음 시도하여 만들어진 발명품(?)이다. 달리기를 할 때 바닥에 손을 대고 몸을 숙인 채 출발 준비를 하는 '크라우치 스타트' 자세도 지금은 초등학생도 알지만 1896년 아테네 올림픽 때까지 시도되지 않았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처음에 어떻게 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를 깨닫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어딘가 유연해집니다. 옛것도 앞뒤의 맥락을 살펴보면 벽을 깨고 나온 신선함으로 여전히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경우가 많지요.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 용감한 시행착오에 박수를 치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p.173)


연말 탓인지 유난히 피로하던 몸과 마음이 이 책 한 권으로 활기를 되찾은 것 같은 느낌이다. 
글도 좋고, 내용도 좋고, 만듦새까지 좋은 별 다섯 개 짜리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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