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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 한국사 :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 - 조선 2 ㅣ 민음 한국사 2
한명기 외 지음, 문사철 엮음 / 민음사 / 2014년 1월
평점 :
<조선2 -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는 민음사에서 3년 간의 준비 끝에 야심차게 내놓은 한국사 통사 시리즈 <민음 한국사> 조선 편의 두 번째 책이다. 이 책 역시 한국사 말고도 주변국, 국제 정세까지 폭넓게 조망하고, 각종 도표와 그림, 사진 자료를 올컬러로 제시해 시각적인 효과를 높였으며, 역사학계의 다수의 전문가들을 포함하여 지리, 과학, 문학, 미술, 음학, 건축 등 비전공자까지 아우르는 필진이 참여한 <민음 한국사>시리즈의 장점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성리학 유토피아라 부를 만한 16세기 조선의 모습은 동시대 세계의 흐름을 볼 때 매우 독특한 것이다. 성리학의 종주국인 중국에서조차 그 한계를 논하는 양명학이 등장하고 서유럽에서도 가톨릭의 아성에 도전하는 프로테스탄트들이 아우성을 치던 시기가 16세기였다. 조선은 그러한 시대적 흐름에 둔감했던 것인가, 아니면 자중자애하며 성리학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그 효용성의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있었던 것인가? (p.5)
16세기 조선은 한마디로 '성리학 유토피아'라고 정리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등 훈구와 사림의 대결이 끊이지 않았으며, 경제적 혼란과 사회적 마찰도 끊이지 않았다. 문화적으로도 성리학을 비롯한 학문, 이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5세기가 여말선초의 어지러운 사회상을 수습하고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 데 국가의 역량을 모두 쏟아부은 시기였다면, 16세기는 안정된 사회체제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국정 방향을 모색하는 시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단순히 이념 논쟁에 치우친, 당파 싸움에 골몰한 고리타분한 시기였다고 평가하기보다는, 신구 세력이 대결하고 그 결과 신진 세력이 권력을 잡는, 역사의 당연한 흐름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한국사를 공부하다보면 외국의 상황을 놓치기 쉬운데 이 책은 각 시대별로 세계 정세까지 설명해주는 점이 좋다. 한국사와 세계사를 따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세계사 속의 한국사, 한국사와 관련된 세계사를 학습할 수 있다는 점은 <민음 한국사>만의 차별화되는 장점이다.
그렇다면 16세기 당시 주변국과 국제 정세는 어떠했을까? 15세기 말(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하면서 세계의 역사는 유라시아 대륙을 넘어 아메리카로 확장되었다. 그 결과는 좋지만은 않았다. 최악은 남미 대륙에서 화려한 문명을 꽃피우고 있던 잉카 제국이 멸망한 것이다. 바야흐로 세계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치고,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에게 먹히는 혼돈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유럽은 종교개혁으로 인해 더욱 혼란스러웠다. 아시아는 포르투갈이 1513년 명과 접촉하고, 1557년 마카오를 특별 거주 지역으로 조차하면서 유럽인을 받아들였다. 17,18세기의 어지러운 국제 정세가 벌써부터 눈에 보이는 듯하다.
16세기 조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바로 임진왜란이다. 이 책은 임진왜란을 '동아시아 7년 전쟁', '동아시아판 세계대전'이라고 명명하며 자세하게 다룬다. 임진왜란 하면 보통 이순신 장군이 활약한 수전과 의병들이 활약한 육전 등 전투 위주로 배우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배경과 경과, 영향 등을 한, 중, 일 동아시아 3국의 정세를 중심으로 설명하는 데 더욱 비중을 두었다. 3국의 역사 인식 차이는 임진왜란을 부르는 명칭에서도 드러난다. 한국은 보통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부르는데 반해, 일본은 '분로쿠게이초노에키(분로쿠, 게이초 연간의 전쟁)'으로 부르며 과거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정벌'로 불렀다. 중국은 '항왜원조'라고 부른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부르는 명칭이 다르고 인식이 다르니, 각각 다른 역사 교과서로 배운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역사관, 세계관을 가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현재 동아시아 3국의 불안한 정세는 여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체계적인 설명과 다양한 읽기 자료, 도표와 그림, 사진 등을 보다 보니 어느새 한 권을 뚝딱 읽었다. 마지막 장을 덮는 기분이 마치 16세기 여행을 마치는 듯했다. 조선 초인 15세기와 서민 문화가 크게 발달한 17,18세기에 비해 비교적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였을 줄 알았던 16세기가 의외로 배울 것이 많고, 성리학의 발달, 사대부 문화 등 조선의 아이덴티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시기라는 것을 알았다. 교과서에서는 보지 못한 역사적인 사료와 그림, 사진 자료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앞으로 출간될 <민음 한국사> 시리즈가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