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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산책자 - 강상중의 도시 인문 에세이
강상중 지음, 송태욱 옮김 / 사계절 / 2013년 4월
평점 :
내 두 발로 걸어다닌 곳은 자동차나 버스, 기차를 타고 지나간 곳보다 훨씬 생생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 멋진 건물을 보아도 무언가에 탄 상태에서 본 것은 잘 기억이 안 난다. 반면 한걸음 한걸음 발을 움직이고 시선을 옮기면서 본 것은 어제 본 것처럼 또렷하다.
4년 전 찾은 도쿄도 마찬가지. 6박 7일 동안 도쿄와 가마쿠라, 에노시마를 아우르는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통수단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발로 걷는 쪽을 택했다(물론 먼 거리는 전차나 지하철을 탔다). 아사쿠사, 우에노, 하라주쿠, 시부야, 긴자, 이케부쿠로 같은 동네를 하루에도 몇 군데씩 걸어다닐 때는 솔직히 지치고 힘들었다. 하지만 그 때 보았던 풍경들은 저릿한 다리의 통증과 함께 오롯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래서 강상중 교수도 도쿄라는 도시를 설명함에 있어 굳이 '산책'이라는 테마를 택한 것은 아닐까? <도쿄 산책자>의 저자인 그는 <고민하는 힘>으로 일본과 한국, 양국에서 모두 유명해진 재일 한국인 2세 출신의 학자다. 그는 2013년에 낸 이 책에서 도쿄라는 도시를 인문학적으로 해석했다. 도쿄 또는 일본 문화를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한 책으로는 롤랑 바르트의 <기호의 제국> 같은 책이 있었다. 도시를 인문학의 관점에서 연구한 학자로는 저 유명한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있다.
이 책의 특징은 도쿄라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대도시를 일본에서 오래 산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지식과 감성, 거기에 재일 한국인 2세라는 외부자 아닌 외부자의 시선까지 더해 설명했다는 것이다. 도쿄에 대해서는 이미 너무 많은 책이 있고, 직접 가본 적도 있어서 이 책이 새로워봤자 얼마나 더 새로울까 싶었는데, 일본의 역사와 정치, 문화, 예술 등 다방면의 지식이 녹아 있어서 예상외로 공부가 되었다.
이 책의 또다른 특징은 사진이다. 매 장마다 저자를 모델로 찍은 사진이 있어서 학자가 쓴 인문서치고는 드물다 싶었는데, 마지막에 일본의 유명 여배우 고이즈미 쿄코와의 대담이 실린 것을 보고 놀라 찾아봤더니 이 책에 실린 글이 잡지 <바일라>에 2년 간 연재된 것이라고 한다. 그럼 그렇지.
그럼 기왕 찍은 것 컬러 사진으로 실어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흑백 사진으로 실은 것이 아쉽다. 총천연색 일상을 흑백으로 처리함으로서 일부러 객관적인 인상을 주려고 한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내 발로 직접 걸으며 보았던 색색의 풍경들을 무채색의 사진으로 다시 만나는 건 썩 즐겁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