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운명 사용설명서 - 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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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가 되면 한 해 운세를 점치고 싶은 사람들로 전국의 점집이 붐빈다. 

 

 

우리 어머니도 점 보는 걸 굉장히 좋아하시는데, 장녀인 내가 고등학생이던 때가 특히 심했다. 점쟁이에게 묻는 질문은 당연히 '우리 딸 어느 대학 가나요?'. 묻는 족족 SKY 낮은 과 아니면 그 아래 대학 높은 과에 갈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고, 전교에서 1등하는 딸이 그 정도밖에 못한다는 사실에 실망한 어머니는 마음에 드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일주일이 멀다 하고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다녔다. 결국 나는 점쟁이의 예언대로(?) 수능을 망치고 SKY 낮은 과는커녕 그 아래 대학 높은 과에 가는 수준에 그쳤고, 그 때부터 어머니는 인력(人力)이 운명을 못 뛰어넘는다는 걸 받아들이신 듯 점집 출입을 자제하셨다.

 

 

그런데 한 달 전쯤 어머니가 길거리에서 만 원 짜리 점을 봤다는 얘길 하셨다. 그 점쟁이의 말에 따르면, 올해까지 장장 십 년 동안 바닥이었던 내 운이 내년부터 풀린다고 한다. 그러니까 십 년 전인 고2때부터 올해까지 내 운이 바닥이었던 셈. 그렇다면 내신 1등이 수능을 망친 것도 이해가 된다(물론 무조건 운명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사주팔자도 좋고 오행도 좋아서 초년운보다는 중년운이, 중년운보다는 말년운이 좋단다. 이것저것 재주가 많아서 먹고 살 걱정도 없다고 했단다. 음, 좋구나 좋아......

 

 

허나 이거, 고미숙의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를 읽은 사람이라면 대강 알 수 있는 내용이다. 2012년 출간 당시 바로 책을 구입한 나는 옆에 인터넷 검색창에 '무료 운세'라고 치면 나오는 사이트 중 한 곳에서 출력한 내 사주팔자를 펼쳐놓고 며칠에 걸쳐 공부하면서 읽었다. 점쟁이처럼 정확하게 맞출 수 있는 건 결코 아니지만, 적어도 나의 전체적인 대운과 특징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점쟁이와 다른 점은, 밑도 끝도 없이 '잘된다 안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잘되거나 못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동양 철학의 큰 축인 사주명리학(學)의 차원에서 설명한다는 점.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점집에 의존했던 것도, 내가 좋게 말해 소신있고 나쁘게 말해 X고집을 부려대는 것도 사주로 이해할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참고로 어머니는 임수, 나는 갑목 사주다). 

 

 

이 책은 어려운 용어와 한자 투성인 시중의 사주명리학 책과 달리, 사주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는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비과학적이라는 오명을 쓰고 비하되어온 사주명리학을 동양 철학의 정수이자 인문학의 관점에서 해설한 점도 좋다. 그렇다고 이 책으로 사주명리학을 전부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 신년 운세를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손님, 그건 점쟁이한테 물어보시고요...) 적어도 인터넷 무료 운세로 자기 사주팔자 정도는 알아보고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은지, 이해하는 용도로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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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경호 교수의 동양 고전 강의 : 논어 세트 - 전3권 - 옛글을 읽으며 새로이 태어난다 심경호 교수의 동양 고전 강의
심경호 지음 / 민음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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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관이 명관이다'라는 옛말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옛 것이 새로운 것보다 나은 예는 수없이 많다. 3D, 4D 등 영화 기술이 날이 갈수록 발전해도 <로마의 휴일>,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등 흑백 영화의 감동을 이기기 어렵고, 힙합, 테크노, 일렉트로닉 등 새로운 음악 장르가 연이어 출현해도 클래식이나 판소리 같은 옛 음악의 오리지널리티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책도 마찬가지다. 새로 나오는 책을 읽기에도 시간이 빠듯한데 고전을 읽을 정신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고전의 명성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동양사상의 정수인 <논어>다. <논어>가 만들어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2500년 전인 기원전 500년 경. 유학의 사대 경전 중 하나로 손꼽히며 중국, 한국 등 동양 문화권 지식인의 필독서로 읽혔다. 심지어는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 미국의 3대 대통령 제퍼슨, 독일의 문호 헤르만 헤세 등도 즐겨 읽었다고 하니 <논어>야말로 동서고금 사랑받은 최고의 책이 아닌가 싶다.

 
<논어>를 읽지 않았거나 이미 읽었으나 다시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 바로 <심경호 교수의 동양고전 강의 : 논어>다. 저자 심경호는 서울대학교와 일본 교토대학에서 수학했으며 현재는 고려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문학연구회 논문상, 성산학술상, 동양문자문화상 등을 비롯해 한국학술진흥재단 제 1회 인문사회과학분야 우수학자로도 뽑힌 바 있는 분이다. 이 책은 저자가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한자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며, <논어>의 한 장(章)마다 한 강의를 할당, 459강으로 되어 있다. 다소 벅찬 분량이지만 각 강의 길이는 짤막하니 틈틈이 읽으면 좋겠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위정 제5장 학이불사즉망, 1권 p.78)


나는 논어를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고 고등학교 한문 시간에 한문 쓰기 교재로 배운 적이 있다. 그 때는 한문 쓰는 것도 지겹고 귀찮거니와 입시 공부에 치여 문장의 의미가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았는데, 지금 다시 읽어보니 기억나는 구절이 몇 개 있고 마음에 와닿는 구절은 더 많다. <논어>에는 정치와 학문, 효도 등 스케일이 큰 이야기들만 나오는 줄 알았는데, '벌써 이루어진 일은 말하지 않고, 다 된 일은 간하지 않으며, 이미 지나간 일은 탓하지 않는다.'(팔일 제21장 성사불설, 1권 p.112), '오직 어진 사람이어야 남을 제대로 좋아하고 남을 제대로 미워할 수 있다'(이인 제3장 유인자능호인, 1권 p.124), '싹이 났으나 꽃이 피지 못하는 것도 있고, 꽃이 피었으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도 있구나!'(자한 제21장 묘이불수, 2권 p.46) 처럼 요즘 사람들이 읽는 자기계발서나 에세이에 나올 법한 문구들도 제법 보였다. 사람 사는 일이 예나 지금이나 비슷했고, 학문과 인간사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일찍이 종일토록 밥을 먹지 않고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고서 생각한 적이 있으나 유익함이 없었다. 배우는 것만 못했다.'(위령공 제30장 오상종일불식, 3권 p.80) 라는 문장도 재미있다. 공자가 학문을 워낙 강조하여 사색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예상과 달리 사색은 '유익함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생각이 많아서 고민인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다. 그런데 주희는 '공자는 사색만 하고 배우지 않는 자를 경계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한 것이라고 풀이하고, 정약용도 '공자가 학문을 더욱 중시하는 것처럼 말한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문면에 드러나지 않는 모종의 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문장만 읽었더라면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였을 것을, 주희와 정약용의 주석을 함께 읽으니 다각도로 생각해보게 되고, 심오한 의미까지 알게 되어 좋다.


동양철학, 그 중에서도 동양고전의 정수인 <논어>를 읽게 되어 처음에는 너무 어렵지는 않을지 겁도 나고 두려웠다. 막상 읽기 시작하니 알던 문장은 다시 보는 재미가 있고, 몰랐던 문장은 새롭게 아는 즐거움이 있다. 무려 2500년을 견뎌낸 철학과 진리를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니, 참 좋은 세상이다. 공자님이 보시면 뭐라고 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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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 a True Story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1
페르디난 트 폰쉬라크 지음, 김희상 옮김 / 갤리온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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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유혹하는 수많은 책들 중에서 이 책을 고른 건 순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어떻게 살인자를 변호할 수 있을까?>. 법정 드라마를 좋아하고, 순전히 흥미로 대학에서 법학 과목을 몇 개 들은 적도 있는 내가 늘 궁금해하던 문제였다. 저자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는 형법 전문 변호사로서 활약한 경험을 각색해 쓴 이 책으로 무려 50주 이상 독일 베스트셀러 차트에 오르고 전세계 25개국에 번역 출간되는 성공을 거두었다. 변호사가 재판 경험을 바탕으로 쓴 에세이는 더러 있지만 이 책처럼 아예 소설 형식으로 구성한 책은 드문데다가, 실화인지 소설인지 분간이 안 될 만큼 이야기가 생생하고 흥미로웠다. 인물과 사건을 추가하고 길이를 더 늘이면 같은 독일 사람인 넬레 노이하우스의 소설 '타우누스 시리즈'와 비슷한 작품이 나올 것 같다.


이 사건에는 변호할 게 없었다. 다만 법철학으로 다룰 문제가 있었을 따름이다.
즉, 처벌이라는 게 무슨 의미를 가질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형벌을 내릴까? (p.24)


책에는 모두 열한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지역에서 명망 높은 노의사가 아내를 토막 살인한 사건, 아버지에게 시달리던 첼리스트가 결국 동생을 천국으로 보낸 사건, 난민자 신세인 창녀와 홈리스가 사체를 유기한 사건, 한 남자가 질투에 눈이 멀어 자신을 위해 돈을 벌던 여자친구를 죽인 사건 등 법정 스릴러 영화나 소설에서 흔히 본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이야기들이 저자가 직접 겪은 실화라니. 너무 끔찍해서 제발 소설이길 빌었다. 심지어는 저자가 정말 직업 소설가가 아니라 변호사 맞나 의심이 될 정도였다.


의뢰인이 정말 무죄일까 하는 의문은 중요한 게 아니다.
변호사의 1차적인 임무는 의뢰인의 보호이기 때문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p.161)


이야기를 한편 한편 읽을 때마다 나는 유럽에서도 가장 안정적인 사회를 구축했다고 여겨지는 독일 사회 내부에 양극화, 가정 폭력, 성매매, 마약, 소수자 차별, 신나치주의 등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는지를 느꼈다. 저자는 이에 대해 분명한 코멘트를 하지는 않지만, 변호사로서 법을 통해 이 문제들을 해결한다는 게 얼마나 버겁고 힘든 일인지를 간간이 토로한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멋진 수트를 입고 화려한 변론을 펼치는 변호사의 모습은 허상일뿐, 실제 변호사들의 삶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겠다. 1편의 성공에 힘입어 2편도 나왔다고 하고 국내에도 이미 출간되어 있다고 하니 기회가 된다면 꼭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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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뱅이의 역습 - 무일푼 하류인생의 통쾌한 반란!
마쓰모토 하지메 지음, 김경원 옮김, 최규석 삽화 / 이루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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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눈이 핑 돌도록 일하고 시간이 없어서 일손 더는 세탁건조기를 갖고 싶다고? 일에 쫓겨 생활이 불규칙해지니까 건강기구를 산다고? 출근길 지하철에서 쾌적하게 음악을 듣기 위해 iPod를 마련한다고? 이것저것 물거늘 사들여 방이 좁아지니까 이번에는 PDP가 갖고 싶다고? 결국 생산자는 필요 이상으로 생산해야 하니까 잔업이 줄어들 리가 없지. 이거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제길... 정도껏 해두라구. (p.75)


모두가 고학력, 고수입, 고스펙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이런 시대에 가난뱅이를 자처하는 사람이 있다. 이름은 마츠모토 하지메. 이래봬도 도쿄의 부촌 중 한 곳인 세타가야구 출신이고(비록 고토구의 달동네로 이사가기는 했지만), 도쿄에 있는 데다가 사립대 랭킹 중상위권에 속하는 호세 대학 출신이다. 


달동네에 살아도 좋아하는 밴등에 감동을 받아 기타를 사거나 록가수의 라이브에 가거나 무전여행을 떠나는 등 청춘을 만끽하던 그에게 가난뱅이의 삶이 '숙명'으로 다가온 건 대학교 때다. 대학 경영에 대기업들이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후줄근하던 캠퍼스에는 으리으리한 새 건물이 들어서고, 얼마 안 있어 대학은 본래 기능인 학문, 연구, 자치활동 대신 기업에 필요한 취업자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다. 보다 못한 저자는 '호세 대학의 궁상스러움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해 학생식당 밥값 인상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고, 대학의 각종 규제에 반대하는 찌개 집회, 맥주 파티, 카레 데모 등을 열었다. 졸업 후에는 재활용 가게 '아마추어의 반란'을 열고, 스기나미 구의회선거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스스로 가난뱅이의 삶을 택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다른 가난뱅이들과 연대하여 꾸준히 사회운동을 하고 있는 점이 놀랍다. 집 구하기, 옷 구하기, 밥값 줄이기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술부터 재활용 가게 창업, 지역 연대, 매체 활용 등 다양한 방법을 연구한 점도 훌륭하다. 게다가 내용과 이름들이 어쩌면 하나같이 재미있고 기발한지. 이 재능을 부자가 되는 데 썼다면 굉장한 부자가 되었겠다 싶다. 더욱 대단한 것은 항상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고 규칙이나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는 일본 사회에서 이렇게 급진적이고 도발적인 사람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책 말미에 실린 우익 인사 아마미야 가린과의 대담이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마츠모토와 아마미야 두 사람의 정치적 입장은 정반대지만, 스스로를 가난뱅이로 규정하고 빈곤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점은 같다. 즉, 현재 일본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차이보다는 경제적 계급, 빈부 차이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마츠모토의 용감한 행동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심각해지는 양극화 문제로 인한 것이며 그것이 사회적 시선을 잊게 할 만큼 강렬했다고 생각하니, 게다가 우리나라도 먼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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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 개정판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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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큰 병은 없지만 빈혈과 편두통을 달고 살고 환절기마다 감기에 걸리는 예민한 체질이다. 똑같은 걸 먹어도 식구들 중에 나만 배앓이를 하는 일도 많고, 치통도 잦아서 충치인가 싶어 치과에 갔다가 별 이상 없다는 진단을 받고 허무하게 돌아온 적도 여러 번이다. 이쯤되면 몸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아주 작은 통증에도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심리적인 문제를 의심해 보는 수 밖에 없다. 병원에서도 스트레스성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꾸준히 운동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코미디 프로그램도 찾아서 보고 있다. 

 

 

건강과 명상, 심리에 관한 책도 즐겨 읽는데, 그 중 가장 심리적인 안정과 위안을 얻은 책이 바로 고미숙의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다. 사십대 초반에 병원에서 몸에 종양이 있다는 진단을 받은 저자는 의사의 권유대로 치료를 받지 않고 독학으로 동의보감을 공부하면서 요가, 등산, 자전거 타기 등 운동을 통해 병을 고쳤다. 자신의 경험과 공부를 집대성한 결과물인 이 책에서 저자는 고전문학자답게 어렵기로 소문난 조선 최대의 의학서 <동의보감>을 고전 텍스트로서 알기 쉽게 해설하며, 의사나 의학 전문가의 관점이 아닌 환자의 입장에서 병을 어떻게 바라보고 견디고 이겨낼 것인가를 설명했다. 

 

 

하늘에 해와 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두 눈이 있고, 

하늘에 밤과 낮이 있듯이 사람은 잠이 들고 깨어난다.

하늘에 우레와 번개가 있듯이 사람에게 희로가 있고, 

하늘에 비와 이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눈물과 콧물이 있다. 

 

하늘에 음양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한열이 있고, 땅에 샘물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혈맥이 있다.

땅에서 풀과 나무가 자라나듯 사람에게는 모발이 생겨나고, 

땅속에 금석이 묻혀 있듯이 사람에게는 치아가 있다.

이 모든 것은 사대와 오상을 바탕으로 잠시 형을 빚어 놓은 것이다. 

 

(동의보감 내장편 10쪽, pp.22-3)

 

 

<동의보감>은 인간의 몸이 우주와 동일한 시스템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즉 우주에 다양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도 계절이나 환경에 따라 변화가 일어나고, 우주가 오랫동안 아무 일 없이 균형을 이루며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몸 역시 스스로 치유하고 조절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병이나 아픔은 현대 의학이나 임상 의학에서 보듯이 없애고 뿌리뽑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겸허하게 수용해야 할 대상이다. 심지어 저자는 병을 '생의 선물'이라고까지 말한다. 생각하는 사람만이 고민이나 번뇌를 얻는 것처럼, 살아있는 사람만이 병을 얻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내가 주로 앓는 병은 신장이 허해서 생기는 것인데, 신장이 허한 사람은 겁이 많다고 한다. 걱정이나 고민도 겁이라면 확실히 나는 겁이 많다. 겁이 많은 내 성격이 신체적인 병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마음의 병이 몸의 병이 되는 것처럼 마음의 병을 고쳐서 몸의 병도 고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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