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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 개정판
고미숙 지음 / 북드라망 / 2012년 10월
평점 :
나는 큰 병은 없지만 빈혈과 편두통을 달고 살고 환절기마다 감기에 걸리는 예민한 체질이다. 똑같은 걸 먹어도 식구들 중에 나만 배앓이를 하는 일도 많고, 치통도 잦아서 충치인가 싶어 치과에 갔다가 별 이상 없다는 진단을 받고 허무하게 돌아온 적도 여러 번이다. 이쯤되면 몸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아주 작은 통증에도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심리적인 문제를 의심해 보는 수 밖에 없다. 병원에서도 스트레스성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꾸준히 운동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코미디 프로그램도 찾아서 보고 있다.
건강과 명상, 심리에 관한 책도 즐겨 읽는데, 그 중 가장 심리적인 안정과 위안을 얻은 책이 바로 고미숙의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다. 사십대 초반에 병원에서 몸에 종양이 있다는 진단을 받은 저자는 의사의 권유대로 치료를 받지 않고 독학으로 동의보감을 공부하면서 요가, 등산, 자전거 타기 등 운동을 통해 병을 고쳤다. 자신의 경험과 공부를 집대성한 결과물인 이 책에서 저자는 고전문학자답게 어렵기로 소문난 조선 최대의 의학서 <동의보감>을 고전 텍스트로서 알기 쉽게 해설하며, 의사나 의학 전문가의 관점이 아닌 환자의 입장에서 병을 어떻게 바라보고 견디고 이겨낼 것인가를 설명했다.
하늘에 해와 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두 눈이 있고,
하늘에 밤과 낮이 있듯이 사람은 잠이 들고 깨어난다.
하늘에 우레와 번개가 있듯이 사람에게 희로가 있고,
하늘에 비와 이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눈물과 콧물이 있다.
하늘에 음양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한열이 있고, 땅에 샘물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혈맥이 있다.
땅에서 풀과 나무가 자라나듯 사람에게는 모발이 생겨나고,
땅속에 금석이 묻혀 있듯이 사람에게는 치아가 있다.
이 모든 것은 사대와 오상을 바탕으로 잠시 형을 빚어 놓은 것이다.
(동의보감 내장편 10쪽, pp.22-3)
<동의보감>은 인간의 몸이 우주와 동일한 시스템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즉 우주에 다양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도 계절이나 환경에 따라 변화가 일어나고, 우주가 오랫동안 아무 일 없이 균형을 이루며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몸 역시 스스로 치유하고 조절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병이나 아픔은 현대 의학이나 임상 의학에서 보듯이 없애고 뿌리뽑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겸허하게 수용해야 할 대상이다. 심지어 저자는 병을 '생의 선물'이라고까지 말한다. 생각하는 사람만이 고민이나 번뇌를 얻는 것처럼, 살아있는 사람만이 병을 얻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내가 주로 앓는 병은 신장이 허해서 생기는 것인데, 신장이 허한 사람은 겁이 많다고 한다. 걱정이나 고민도 겁이라면 확실히 나는 겁이 많다. 겁이 많은 내 성격이 신체적인 병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마음의 병이 몸의 병이 되는 것처럼 마음의 병을 고쳐서 몸의 병도 고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