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속물일 때가 있다 - 두 남자의 고백
악셀 하케 & 조반니 디 로렌초 지음, 배명자 옮김 / 푸른지식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피로사회>를 읽은 김에 독일책을 한 권 더 읽었다. 제목은 <두 남자의 고백 - 나는 가끔 속물일 때가 있다>. 악셀 하케와 조반니 디 로렌초라는 독일 저널리스트 두 사람이 대화하는 형식으로 된 대중서다. 대중서치고는 무거운 감이 없지 않은데도 2011년 출간되어 오랫동안 베스트셀러로 사랑받았다는 것을 보니 독일이 확실히 철학의 본고장, 종주국이구나 싶다.


책에서 악셀 하케, 조반니 디 로렌초 두 사람은 정치, 이주 노동자, 종말, 교육, 정의, 정신병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람이 어린 시절이나 청년기의 경험을 회고하고 현재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털어놓는 형식이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톤이 가볍지만 무거운 이야기도 종종 있다. 가령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로렌초가 학교에서 교사, 학생들로부터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다든가, 정통 독일인인 하케가 어린 시절 가정에서 뿌리 깊은 유대인, 외국인 혐오증을 경험한 뒤 자기가 독일인이라는 사실을 경멸했다는 대목이 그랬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단일민족의 신화, 외국인 혐오증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도 이들의 글에 공감하거나 뜨끔할 이가 많으리라.


두 사람은 또한 최근 몇십 년 사이에 정치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식고 사회적인 분위기가 급변한 것을 한탄했다. 그리고 이는 정계와 사회 자체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전통 사회의 구조와 가치가 사라지면서 행동규범 또는 신념체계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들은 또한 <피로사회>에서 한병철이 제시한 바 있는 '번아웃(burnout)'의 문제도 지적한다. 능력 지향의 시대에서 탈진해버린 사람들이 우울증으로 도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절대적인 가치나 규범, 신념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없을 때의 부작용도 심각한 것 같다. 그러고보니 80년대에 태어난 나는 50년대생인 두 저자처럼 대가족, 민주주의, 반전, 언론의 자유 등의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도, 절실히 고민해보지도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여유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아프고 흔들리는 걸까. 어쩐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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