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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 한국사 : 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 - 조선 1 ㅣ 민음 한국사 1
문중양 외 지음, 문사철 엮음 / 민음사 / 2014년 1월
평점 :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께서 아동용 책 세일즈 일을 하신 적이 있다. 그 덕에 우리 집에는 각종 동화책, 전집, 위인전, 백과사전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고, 덕분에 나와 동생은 그 시절 내내 집에 쌓여 있는 책을 읽으며 도서관이 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
그 중 내가 가장 좋아했던 책은 역사책과 위인전 류였다. 그 때 마침 태종 이방원을 중심으로 조선 건국 전후를 그린 <용의 눈물>이라는 사극이 크게 인기를 끌었는데, 드라마에 나오는 이성계, 정도전, 이방원, 양녕대군, 세종대왕 같은 인물들을 책에서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로 인해 나는 초등학교 6년 내내 역사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고, 사학과 대신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여 나름 비슷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민음사에서 야심차게 내놓은 한국사 통사 시리즈 <민음 한국사>를 읽으면서 그때 그 어린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만나본 적 없는 옛 조상들의, 살아본 적 없는 과거 이야기를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이 그저 즐겁고 재미있었던 그 시절의 모습을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에는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 말고도 교과서에는 없는 새로운 내용이 많다. 수능 사회탐구 과목으로 국사를 선택했고, 한국사능력검정시험 고급을 취득한 만큼 국사에는 자신이 있다고 자부했던 게 부끄러울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식의 일괄적인 분류가 아닌 주제별, 테마별 분류를 택해 구성이 다채롭고, 다양한 읽기 자료와 사료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읽는 재미도 있으며, 각종 도표와 그림, 사진 자료를 올컬러로 제시해 눈까지 즐거웠다. 입시 목적의 국사 교육,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에 익숙하던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천진난만하게 역사만화와 위인전을 들춰보던 어린시절을 떠올린 것도 무리는 아니다.
<민음 한국사>의 첫번째 특징은 우리 역사 말고도 주변국, 세계 정세까지 널리 조망했다는 점이다. 가령 <민음 한국사>의 첫번째 시리즈 <조선1 - 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에서는 15세기 당시 중국이 원-명 교체기여서 혼란스러웠다는 점, 정화의 원정을 통해 과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동서양의 교류가 활발해졌다는 점 등이 도입부에 서술되어 있다. 정화의 원정으로 처음 유럽에 소개된 화약이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함락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점, 중국의 활판인쇄술이 독일에 전해져 구텐베르크가 유럽 최초로 금속활자를 사용한 대량 인쇄에 성공한 점 등은 개별적인 사건은 알고 있었지만 유기적으로는 알지 못했던 사실들이라 놀라웠다. 이러한 배경을 알고 나니 이성계, 정도전 등이 역성혁명에 성공한 이유, 조선초에 무기, 활판인쇄술 등이 발전한 이유 등이 저절로 이해가 되었다.
두번째 특징은 각종 도표와 그림, 사진 자료를 올컬러로 제시해 최고의 비주얼을 자랑한다는 점이다. 기존의 역사책, 국사책들이 재미없다, 딱딱하다는 멍에를 쓴 이유 중 하나는 단조롭고 평이한 편집, 구성이 아닐까 싶다. <민음 한국사>는 다르다. 컴퓨터, 스마트폰 화면이 부럽지 않을 만큼 화려하고 세련된 이미지가 각 장마다 펼쳐진다. 15세기는 수도 건설로 인해 건축기술이 급격히 발달하고, 성군 세종을 중심으로 과학, 인쇄, 문화, 예술 등이 역사상 최고로 발전한 시기다. 이를 반영해 <조선1 - 15세기 조선의 때 이른 절정>에는 경복궁을 비롯한 새로운 건축물, 간의, 일구, 자격루 등 발명품, 활판인쇄에 쓰인 활자, 분청사기, 서예, 미술 등이 풍부하게 소개되어 있다. <민음 한국사> 시리즈를 전부 다 갖춘다면 웬만한 역사부도, 백과사전이 부럽지 않을 것 같다.
세번째 특징은 이념의 편향과 전공자들의 한계로부터 벗어나 다각도로 한국사를 조망했다는 점이다. 특정 이데올로기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인 서술을 위해 역사학계의 중진 학자들이 전공에 따라 분담했으며, 역사학계뿐 아니라 비역사학계의 학자들까지 참여해 입체적으로 집필했다. 필진을 보면 국사학 전공자가 다수이기는 하지만, 지리, 과학, 문학, 미술, 음학, 건축 등 비전공자도 다수 참여한 것을 알 수 있다.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한국사 수능 필수, 국사 교과서 채택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은데,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과서뿐 아니라 일반인 대상의 교양서도 다루는 주제가 한국사, 즉 우리 역사라면 보다 철저하게 검증된 책을 고를 필요가 있다. <민음 한국사>는 기존의 책과 다른 신선한 방식으로 한국사를 조망할 뿐 아니라, 다채로운 자료를 바탕으로 독자의 눈을 즐겁게 하는 편집과 구성 방식을 택했으며, 지난 3년 간 각 분야의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만든 책이라는 점에서 믿음이 간다.
더욱 즐거운 소식은 이번에 출간된 조선1, 2편을 시작으로 총 16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며, 원시시대부터 현 정권까지 한국사를 총망라할 예정이라는 점! 앞으로 전권을 소장해서 식구들과 함께 읽을 뿐 아니라 내 자식, 손주들에게도 대대로 물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