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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위한 다섯 가지 선물
에란 카츠 지음, 김현정 옮김 / 민음인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중요한 시험이나 과제, 업무, 프레젠테이션 등을 앞두고 내용을 외우느라 고전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신기한 것은, 기억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기억이 안 나는 것이 있는 반면, 기억하고 싶지 않거나 기억할 필요가 없는데도 잊혀지지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시험공부를 할 때 외우려고 애썼는데도 막상 시험을 볼 때 생각이 전혀 안 나는 것이 있는 반면, 그 때 선생님이 입고 있었던 옷이라든가 짝궁이 들려준 농담처럼 중요하지 않은 것은 기억하지 않으려고 해도 저절로 기억이 된다는 것이다. 왜 뇌는 어떤 정보는 기억하려고 애써도 기억하지 못하는 반면, 어떤 정보는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기억하는 것일까? 사람이 뇌를 조종하는 것일까, 아니면 뇌가 사람을 조종하는 것일까?
이 문제의 답을 얻기 위해 펼쳐든 책이 바로 <뇌를 위한 다섯 가지 선물>이다. 저자 에란 카츠는 500자리 숫자를 한번 듣고 기억하여 기억력 부문에서 세계 기네스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유태인으로 히브리 대학을 거쳐 현재는 메가마인드 메모리 트레이닝 CEO로 기억 증진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운영, 강연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기억력을 높이는 방법을 다룬 <천재가 된 제롬>, <슈퍼 기억력의 비밀> 등의 책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유명하다. 신작 <뇌를 위한 다섯 가지 선물>은 <천재가 된 제롬>의 주인공이기도 한 제롬이라는 교수가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중국, 베트남, 태국 등 아시아 5개국을 돌며 미스터리 사건을 해결하면서 뇌의 비밀과 기억력을 높이는 방법을 알아가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뇌과학이나 기억력에 관한 책 하면 보통 설명문 위주로 딱딱하게 구성된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웬만한 미스터리 소설 못지 않은 줄거리 구조로 되어 있어서 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의 구성도 특이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기억력을 높이는 방법 역시 일반적이지 않다. 기억력을 높이는 방법 하면 어떤 식으로 외우라든가, 필기나 이미지를 활용하라든가 등의 암기법 자체를 말하는데, 저자는 기억을 잘하기 위해서는 기억이라는 것의 성격 자체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잊기, 용서하기, 결정하기 등 기억에 수반되는 것들을 이해해야 한다. 나는 특히 기억을 잘하기 위해서는 잊는 것도 잘해야 한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너무 많은 정보를 머릿속에 담아두려고 하기보다 제한된 정보를 잘 활용하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는 부분도 도움이 되었다. "가장 효과적인 결정은 제한된 수의 집중적인 정보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내린 결정입니다. (중략) 마음에 쏙 들었던 첫 번째 집, 가장 처음 찾아온 구직자, 첫 번째 가게가 정확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과 일치하는 그런 때가 있지요. 하지만 '그럴 순 없어. 좀 더 찾아봐야 해.'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죠.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pp.121-2) 욕망 또한 기억력을 높이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무엇을 가지고 싶다, 무엇을 하고 싶다는 욕망이 '무엇' 자체에 대한 생각을 방해하는 것이다. 욕망을 줄이고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할 줄 알면 뇌의 기능이 훨씬 좋아진다니,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서양에서 통용되는 경제학은 물질적인 부와 욕망을 자극합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살고자 애쓰지요. 이런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불교 경제학에서는 욕망을 단순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의식주, 병을 고치기 위한 의약품 등 가장 기초적인 필수품을 제외한 다른 물질적인 욕망은 최소화시켜야 합니다. 무의미한 욕망을 좇으면 전반적으로 행복이 줄어듭니다." (p.187)
이 책은 특이한 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우리나라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일단 제롬과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미선'이라는 인물이 한국계 미국인이고, 두 사람이 처음 방문하는 국가도 우리나라이며, 세종대왕과 팔만대장경, 고려시대 승려 지눌 등 우리 역사에 관한 내용이 외국인이 쓴 책 치고는 굉장히 많이 나온다. 저자가 이스라엘 사람이고 유대인이다보니 비슷한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과 한민족에 대해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책을 읽어보니 그 말이 결코 입발림이 아니고, 관심과 애정의 정도도 보통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