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대중문화를 엿보다 - 젊은 인문학자의 발칙한 고전 읽기
오세정.조현우 지음 / 이숲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우리는 현대사회에 살아가면서 예전에 일어나던 일들에 대해 이렇게 말하거나 생각할 것이다.
"아니 이미 지나간 일들을 왜 다시 꺼내어 이야기하지? 이미 지나간 일들은 지나간 것으로 보는 것이 맞는 것이 아닐까"라고 말이다. 하지만 막상 우리 인간이 이 세상을 살다보면 많은 것이 바뀌고 바뀌어 10년이 지나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도 있듯이 순간순간 모든 것이 변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지나간 일들이 다시 거론되는 일들을 무엇일까? 지나간 일들은 지나가서 시간이란 비가역성에 의해 다시는 찾아갈 수 없는 과거로 넘어간다. 그런데도 왜 아직도 우리는 고전을 다시금 찾아봐야할까?

그런 의미로서 이 책을 한번 보면 상당히 흥미로울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공간 속에서 끊임없는 변화가 일어나지만 과연 인간 근원적인 부분은 얼마나 변해왔는가이다.  그래서 내가 언제나 생각한 부분이 바로 우리 인간의 역사는 왜 이렇게 계속 되풀이 되고 다시 되풀이가 되어 그런 반복적인 패턴이 되었을까이다.

어떻게 보면 역사적인 사건은 하나의 상징성이 되어 통시적인 현상으로 머물러 있다면 그 상징적인 역사적인 사건은 어떻게든 비슷한 모습으로 우리 인간세계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의 역사는 하나의 상징을 가진 통시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지만, 다시금 반복되는 공시적인 현상으로 보는 것으로도 옳지 않은가 싶다.

사랑, 이별, 배신, 우정, 욕망, 전쟁, 인간불평등 같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우리 세상에 나타나고 있다. 바로 이것은 인간 근원적인 문제는 아직도 계속 이어지고 하나의 역사와 사건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런 점에서 우리 대중문화를 본다면 고전이야기나 현대이야기나 구조상으로 별반 차이점은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분명 시대, 인물, 배경 등은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과 다르나 거기서 일어나는 일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별반 차이점을 느낄 수가 없다. 고전, 대중문화를 엿보다는 우리가 고전을 통해 지금을 알아가기 보단 고전이 오히려 우리를 두고 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국 신화의 생성과 소통 원리
오세정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0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제작하신 오세정 교수님은 본인이 대학교 학부시절에 교양과목을 가르치시던 교수님이다. 오세정 교수님의 한국 신화의 생성과 소통원리를 보면 재미있는 말이 생각난다. 내 생각으로 다시 정리하자면 신화라는 것은 아주 뜨겁고 열정적인 이야기라면 기호학은 아주 냉정하고 분석적인 학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신화라는 것을 연구하는 것은 마치 뜨거운 용암 위에 차디찬 빙산을 올리는 느낌이란 것이다. 솔직히 우리가 신화하면 생각하는 것은 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이야기가 여기서는 그대로 이어지는 하나의 상상공간이다. 그런 저에서 신화는 우리 인간이 현세에서 누릴 수 없거나 이룰 수 없는 바램들을 그대로 넣어주기에는 정말 좋은 이야기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불꽃같은 신화속에서 이 이야기를 만든 고대부터 시작하여 이어져 내려온 현대까지 많은 부분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 신화란 결코 신이 직접 적어내린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신에 대해 적은 이야기이다. 그래서 결국 신화라는 것은 신이 등장할 망정 결국 이야기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공간이며 세계인 것이다.

그래서 신화라는 단어는 과거의 신적이고 기이한 이야기만 아닌 현대에서 계속 이어져 내려가는 하나의 사회문화적인 현상으로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신화로 통해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진행될 미래까지도 이 신화는 계속된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는 한국의 어떤 신화가 있는지 그 신화가 무슨 이야기인지 또한 신화로 통해 역사적인 가치관과 당시 한국사회의 풍속까지도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그리고 한국의 신화는 그리스신화나 다른 국가의 신화차럼 신들만 나와 인간과 별도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신을 조우하여 신이나 영웅이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건국신화, 그리고 인간이 신적인 존재로 가는 무속신화가 존재한다.

건국신화는 우리 시국시조인 단군왕검부터 시작해 수로왕, 주몽신화까지 이어져 나라가 세워지는 과정과 나라를 세우는 신과 영우에 대한 서사적인 구조를 보여주고 있으며, 무속신화는 신과 영웅이 새로운 나라와 문화를 만드는 것이 아닌 기존 있는 세계에서 인간이 시련을 받아 그 시련을 넘어 하나의 의식이다. 그 시련과 그 시련을 거쳐 의식을 마친다면 인간은 하나의 신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는 인간의 희생이 강요됨에 따라 일종의 피해자가 양산되는 구조도 보인다.

어째든 한국의 신화를 알아 간다는 것은 우리의 현재의 모습과 과거, 미래도 같이 알아 가는 것이다. 신화를 소통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이 대한민국에서 우리의 가치를 다시 되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 오타쿠를 통해 본 일본 사회
아즈마 히로키 지음, 이은미 옮김, 선정우 감수 / 문학동네 / 200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타쿠라는 존재는 다소 부정적이면서 좋지 못한 시선으로 사회에서 냉정한 대우를 받는 존재이다. 그런 오타쿠라는 존재가 비록 긍정적이지 못한 입장에서 현대사회에서 살아왔다고 하지만 정작 우리는 오타쿠는 무엇인지 제대로 고민한 적은 그렇게 많다고 볼 수 없다. 특히 한국사회와 같은 경우 오타쿠의 역사가 그렇게 길지 않은 곳에서는 오타쿠에 대한 연구가 그렇게 적절하게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대부분 오타쿠에 대한 연구 내용은 모두 일본에서 적은 전문가나 평론가들의 서적을 그대로 일어를 한글로 번역하여 코멘트를 달고 있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이렇게 국내 오타쿠를 연구하기 보단 일본 오타쿠에 대해 연구한 도서라도 상당한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국내 실정상 오타쿠의 역사가 너무 짧으며 그 범위도 매우 한정적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제대로 오타쿠에 대해 알아보자는 것은 솔직히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집단주의 문화가 강하게 형성된 곳이어서 대중들과의 코드가 맞지 않을 경우 그대로 배척되는 일들이 아주 흔하다. 그런 점에서 일본에서 연구한 오타쿠 관련 도서를 알아본다는 것은 먼저 오타쿠문화 시초인 일본을 알아보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런 일본 오타쿠문화 생성과 그 생성에 따른 사회적 현상과 원리를 알아간다는 것은 오타쿠 뿐만 아니라 그 사회적인 요소까지 파악이 가능하다.

오타쿠라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현상에 따라 생긴 부류이므로 그 사회적 현상을 알아감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오타쿠라는 존재를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그리고 대처할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부분에서 일본 젊은 인문사회학자인 아즈마 히로키 교수의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은 오타쿠로 보는 일본사회이듯이 모든 것은 인문사회적인 현상으로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내용는 모에(萌え)이다. 

모에는 많은 용도로 사용된다. 정말 모에를 생각하자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적용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에 이르게 될 정도로 다양한 부분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모에라는 것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모에라는 것은 우리 인간의 시각적인 정보를 얻는 눈에서 바로 앞에 있는 상이 아닌 가상적인 평면에 의해 맺혀진 상에 마음을 둔느 것이 모에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깐 모에란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과 같이 현실에 있는 존재가 아닌 가상의 존재가 2D의 영상으로 나타나 그것 영상에 나온 존재가 인간의 마음을 자극하는 것이 바로 모에라고 생각한다. 모에란 그 등장하는 존재에 대해 사랑, 연민, 성적욕구, 분노, 존경, 동경, 동정 등 수많은 인간의 감정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에라는 것이 우선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자체가 여성이 아닌 남성중심으로 이루어진 서브컬쳐이므로 남성들의 취향을 맞춘 이른바 모에여성캐릭터에 한정짓는 것을 나는 거부한다. 단지 이쪽 분야에 남자들이 많으므로 남자들의 이상적인 이성관을 그 가상세계에 반영한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만약 모에라는 것을 단순히 한정짓게 되어버리면 동인녀처럼 BL을 좋아하거나 혹은 어린이처럼 아동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좋아하거나 혹은 어느 한 여성 코스프레이어가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다가 이번에 남성 캐릭터를 연기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모에라는 것은 그렇게 단순히 미소녀로 한정지어 뭐든지 성적요소만 보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게다가 코스프레이어 중에서 여성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으나 남성도 꾸준히 늘어가는 추세이고, 이 남성 코스프레이어도 여성 캐릭터를 연기한다. 게다가 간담이나 혹은 메카닉로봇과 같은 인간이 아닌 기계쪽도 연기를 한다. 그렇다면 이것 역시 모에로 볼 수 있는게 아닌가?

어째거나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모든 시간과 마음을 투자하며, 그 투자를 위해 자신의 경제적인 요소도 많잍 투자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마음과 시간을 많이 투자하면 할수록 인간은 사회적인 부분과 멀어지게 되고, 그 시간과 마음을 돈으로 교체하면 정작 오타쿠가 추구해야할 가치가 멀어진다. 이렇듯 오타쿠의 딜레마는 경제적, 시간적, 정신심리적으로 많은 희비가 엇갈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은 어느 일본의 젊은 인문학자의 날카로운 눈으로 관찰한 인문사회적 오타쿠연구도서이다. 물론 일본 현지에는 오타쿠를 연구한 서적이 아주 많은 것은 아니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이다. 그런 점에 한번 이 책을 읽어보고 다양한 도서를 읽어본다면 오타쿠에 대한 문제점과 현상, 그리고 앞으로 문제를 해결해야할 방안도 강구가 가능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아! 노무현
박노해, 진중권, 홍세화 외 지음 / 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고 노무현 대통령이 이 세상을 하직한지도 어느새 1년 반이 지났다. 아직도 그날의 상처가 아물은게 아닌지 계속 노무현에 대한 찬반여론을 형성되고 있다. 노무현의 정권은 성공한 정치인가? 혹은 성공하지 못한 정치인가? 내가 볼때는 이 나라가 세운 직후에 모든 정권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승만정권때는 부정부패 자유당으로 인해 국민들을 혹사시켰으며, 게다가 625전쟁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고위관료들은 서울시민을 버리고 자기몸 살기만 바쁘었다.

그런 정치인들과 정부요원을 보면 과연 이것이 대한민국이 자유국가인가? 이승만 이후 박정희정권이 들어왔다. 박정희 정권에는 국가경제가 상당히 발전하였다. 박정희의 역할과 위엄을 거기에 인정한다. 그러나 거기에 희생된 대가와 고통이 너무나도 막강하다. 고 전태일 열사가 서거한지 40주년된 마당에 그 분이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전신에 불을 쓰고 한줌의 흙으로 돌아간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던 60~70년대는 너무 암울했다. 게다가 박정희 정권때는 공장에서 나오는 검은매연과 공자에서 나온 뿌연 폐수가 경제를 살리는 청신호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이 심각한 환경오염으로 물들어간 신호였으며, 그렇게 걱정하는 지식인까지 탄압하였다. 경제는 살아갔으나 결국 정부와 결탁한 재벌에게 혜택이 돌아간 정경유착이 되었다. 전두환 정권은 마치 플라톤의 국가정체에 나온 참주정같은 정권이었다. 국민을 총으로 쏘아죽이거나 고문하여 죽였다. 그러고는 이승만과 박정희정권의 메카시즘처럼 죄없는 국민들을 억지로 범죄자로 몰아넣었다. 노태우정권 부실공사와 부정축재로 정권이다. 김영삼 시절이 오자 imf 더 이상 할말 없다. 국가경제가 파탄나고 국민생활이 좀먹었다.

김대중 정권 물론 민주화라고 하지만 대북정책에서 기존 정책과 다르기에 마찰과 혼선을 빚었다. 물론 그가 좌파일 망정 빨갱이는 아니다. 빨갱이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를 뽑은 국민 1000만명은 빨갱이란 말인가? 단지 비판을 받는 국내 기업의 해외매각에서 조금 경제적으로 지탄을 받았으나, 김영상 정부까지 이어온 한국의 정경유착과 경제구조가 그렇게 만들었다. 다음 노무현은 김대중을 이어 다시 민주주의의 개혁을 말했던 사람이다. 여러가지 논평이 오고가는 노무현은 신자유주의자나 혹은 좌파라든지 혹은 일자무식이란 다양한 호칭이 붙고 있다. 그러나 내가 한국 광복절 이후 정권을 옆본다면 조선일보가 가장 맹렬하게 비판했던 대통령과 정권이 제일 좋았던 것은 분명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방의 역사
매릴린 옐롬 지음, 윤길순 옮김 / 자작나무 / 1999년 1월
평점 :
품절


예전에 우연히 명지대학교에서 여가생활을 가르치는 김정운 교수님이 저술한 일본열광이라 도서를 보았다. 김정운 교수는 심리학과를 전공하여 문화심리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교수님이다. 교수님이 저술한 일본열광이라는 도서는 김정운 교수가 일본에 직접 여행하면서 그동안 문화심리학자 관점에서 다루어진 일본을 에세이식으로 누구나 편하게 볼 수 있게한 도서이다.
물론 어느정도 쉽게 저술했다고 정말 쉬운 것만은 아니다. 단지 여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다른 민족과 국가 그리고 거기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심한 편견과 고정관념이 박혀있는가이다. 그런 일본과 한국의 미묘한 관계를 다룬 서적에서 우연히 재미있는 도서 이름을 발견하였다. 

그 도서의 이름은 유방의 역사이다. 유방이라면 당연히 여성의 가슴에 달린 신체조직으로 본래의 신체적구조에서 어린아이에게 모유를 전달하여 영양분을 전달해주는 생명의 샘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자면 어린아이에게 달콤한 젖을 주는 생명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다른 쪽으로 본다면 남성이 언제나 바라던 성적판타지의 대상이다. 이 서적을 지은 저자는 미국 저명한 페미니스트 인문학자로서 여성의 유방을 단순히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적인 틀에서 제시하기 보다는 정말 철학적이면서 생물학적이면서 심리학적이면서 인문학적인 요소로 바라보았다. 물론 이 책을 읽은 본인은 남자다. 남자는 누구에게 그렇듯이 언제나 로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 로망은 자신과 평생 함께할 배우자 내지 혹은 현재 필요한 애인이 자신의 원하는 이상적인 몸매와 외모를 가지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남자로 태어난 나도 그런 성적판타지를 없다고 할 수 없지만, 그게 개인적인 바램에서 어느덧 현실에서는 하나의 암묵적인 공통상식이 되어버렸다. 특히 비서구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본인으로서 서구사회관념의 유입은 진보적인 사회를 만들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 어긋난 세상을 만들었다. 우리가 매일처럼 보는 텔레비젼을 보면 그런 문제점을 어김없이 발견된다. 텔레비젼에 나오는 여성을 보면 항상 아이돌스타가 기준이 된다. 큰키, 날씬한 허리와 다리, 풍만한 가슴 물론 나도 처음에 이런 여성이 이상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조금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물론 너무 뚱뚱하거나 마른 것도 싫다. 그런 점에서는 보통 남자들도 거부하겠지만 보통 여자들도 남자들이 너무 뚱뚱하거나 마른 것을 싫어할 것이다.

단지 그런 아이돌스타의 몸매만 보는게 아니라 인간의 신체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구분짓는냐에 따라 불평등이 생긴다. 이 책에서는 분명 여성의 가슴은 아이들과 어머니의 육체적 정신적 교감이 일어나게 하는 신성한 생명의 원천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현실은 여성의 가슴을 어머니의 가슴을 만들기 보다는 오히려 가슴을 감추고 닫음으로서 남성의 성적욕구를 반영하기 위한 구속구라는 것이다. 물론 마빈 해리스의 작은인간을 보면 어느 국가의 여성하층민들은 가슴을 노출하는 것으로 통제력이 생긴다. 가슴이 열고 닫고가 어느 나라와 민족에서는 각각 다른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단지 문제는 그 열고 닫는 의지가 단순히 그 사람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어느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이다.

약간 생뚱맞지만 예전에 화씨911이란 영화를 보았다. 거기서 미국이란 사회가 911테러 이후 항공기 테러검색이 강화가 되었는데, 이상하게 아이에게 줄 모유를 반입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보면 미국 사회는 어머니의 모유보단 대기업에서 만든 우유를 아이에게 주기를 원한다. 어떤 미국 지역의 공공장소에서는 어머니가 아이에게 젖을 주는 것이 불법이라고 한다. 어머니가 자신이 사랑하는 아이에게 모유를 주는 것이 불법이고 그런 장소조차도 구비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본다면 이건 인간 고유의 자유를 빼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이 책에서는 어머니와 아이의 자유성 이외에도 다른 소외된 존재에 대하여 언급한다. 본래 페미니즘은 여성계급 해방도 있지만, 여성의 해방은 곧 남성의 해방도 포함된다. 또한 성차별 극복에 따라 인종, 민족, 국가, 어린이. 노인, 장애인, 게이, 레즈비언까지 해당된다. 진정한 페미니즘이란 남녀노소 골고루 잘사는 것이지 남성의 귄위만 되찾는 것이 바르지 않다는 것이다. 현대 한국에 살아가는 남자의 입장에서 사회생활을 해본다면 여성들은 과연 자기 자신이 주체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권위와 혜택은 자기에게 책임과 역할은 여전히 남자가 떠맡아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신도 여성임에 불구하고 자신보다 불리한 여성을 깔보는 사람도 많다. 그것은 남녀노소 구분없이 사회에서 빈번한 일이다.

남자의 입장에서 아름다운 여성과 혹은 매혹적인 몸매를 가진 여성을 봐서 거기에 눈을 전혀 돌리지 않는다는 것은 순전히 가식이다. 그러나 세상에 그런 여성들은 흔하지가 않은데도 텔레비젼에서는 언제나 아름답고 매혹적인 여성들이 나온다. 물론 그런 여성이 나온만큼 남성도 등장한다. 미디어라는 매체가 사람들로 하여금 환상이 실제 자신에게 다가가게 하는 하이퍼리얼리티 세계를 영상미디어로 구축한다. 문제는 이런 구축된 사회적 인식이 모든 사람들이 바라지만 그 바라는 사람은 자신이 그렇지가 못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인간의 인식은 서로에게 혹은 자신에게 크나큰 상처로 이어질 수 있다. 아래 사진은 유방암선고받고 자신의 가슴 한쪽을 도려낸 다나 메츠거라는 여성이다. 남성의 상징이 남근이라면 여성의 상징은 가슴이라고 하니 한쪽 가슴을 팠다는 것은 아마 그녀에게 크나큰 상처이고 시련일 것이다. 그런 어긋난 사회통념에서도 그녀는 삶의 의지와 정열이 담겨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처음부터 쉽게 세상에 살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나라는 사람도 기존에 가진 고정관념이나 위선을 탈피하기 어렵겠지만 이런 서적을 통해 조금씩 생각하면서 고쳐가는 게 중요한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