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외인구단 애장판 1~5 박스 세트 1 - 전5권 공포의 외인구단 애장판 세트
이현세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현세 화백님은 현재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님으로 재직 중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가 한국 만화역사에서 남긴 흔적과 공헌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분이며, 한국 만화애니메이션 문화를 향유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그 분은 내가 어린 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작가였다.
바로 이현세 화백님이 만들어낸 많고 많은 작품이 있지만, 나는 이현세 화백님의 이름 3자가 나오면 딱 이 만화를 추천한다. 바로 공포의 외인구단이다. 공포의 외인구단은 당시 1980년대 한국에서 3s 정책(sex, sports, screen)이 나올 적에 국내에서는 한참 프로야구가 인기몰이였다. 이런 흐름에 따라 공포의 외인구단은 그런 한국 대중문화에 어울려 나온 명작 만화책이다.

내가 이 만화책을 처음 본 것은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당시 1980년대와 1990년대 한국 프로야구가 국민학생인 나에게도 큰 여파가 올 정도로 많은 인기가 있었다. 당시 그런 프로야구와 더불어 공포의 외인구단은 아주 흥미롭고 재미있는 만화책였다. 물론 그 안에 담고 있는 내용은 단순히 야구승부만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었으나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주인공의 역경과 시련 그리고 극적인 비극과 플롯이 작품 요소에 반영되어 많은 몰입도를 조성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런 추억에 잠긴 나에게 최근 읽어본 공포의 외인구단은 어린 시절에 보던 그 만화책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왜냐하면 공포의 외인구단은 엄청난 내용과 가치관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그 외인구단 소속 선수들은 모두 엄청난 실력을 가진 인간이지만 사실 알고보면 인간패배자였다. 모두 멸시와 조롱을 받는 실패한 인간들, 즉 당시 살아가던 힘없는 서민과 억압받던 소외된 자였다. 그런 패배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그들이 최후의 발악을 떨며 자신은 이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비명지른 만화가 공포의 외인구단이다.

팔이 고장난 투수 오혜성, 거대한 덩치인 백두산, 손가락 하나 없는 조성구, 게다가 팔이 없거나 태어날 때부터 키가 너무 작거나 태어날 때 한국인이 아닌 혼혈아 태어난 사람들, 그리고 미치광이 감독.. 이들은 모두 패배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소시민이들었다. 아무런 내일도 기약도 없이 죽음을 각오하고 야구훈련을 한 이들은 자신들의 잃어버린 공간을 찾아 투쟁을 한다. 그리고 이들의 목표는 프로야구단 꼴등 팀에 가서 100연승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100연승이란 길고 긴 서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세상에 대한 복수와 패배한 자들의 포효는 야구 팬들로 하여금 환호성을 외치게 한다. 하지만 모든 세상에는 완벽한 일들이 없는 가보다. 100연승을 앞둔 상태에서 외인구단의 최대 라이벌인 마동탁이 다시 돌아와서 100연승의 종지부를 찍고 만다. 결국 100연승을 이루지 못한 패배한 인생들은 마지막 1승을 앞에 두고 현실 앞에 좌절한다.

이 좌절의 패배로 인해 오혜성은 시력을 잃어버리고, 마동탁의 아내요 오혜성의 첫사랑인 엄지는 오혜성이 눈이 실명된 것에 충격받아 정신을 실성한다. 그리고 마동탁은 엄지와 이혼하고 실성한 엄지와 눈이 멀은 오혜성은 최후에 해후하여 자신들의 사랑을 확인한다. 패배한 인간이 자신들의 목포인 100연승을 달성하지 못해 좌절하지만, 그 1승을 놓치더라고 99승의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외팔이 선수 최관은 엄지 동생와 결혼하였고, 땅꼬마 최경도도 자신이 좋아했지만 자신에게 냉대하게 대한 은행여직원과 결혼하다. 조성구도 패배자 투수로 살림살이가 어려워 집에서 구박받았으나 이제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안식처를 얻었으나 오혜성은 안식처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최후에 실성한 엄지와 만나 제정신이 아닌 두 사람은 사랑을 영원히 나눌 수 있다.

억압받던 우리 한국 사회에서 공포의 외인구단은 어떻게 보면 패배자들의 향연이다. 마동탁은 부유한 집안에 엘리트 선수로 언제나 성공이 보장된 인간이었다. 그의 엘리트의식이 패배자들에게 조금씩 밀리자 자존심이 상하게 되고 마동탁이란 엘리트는 최후의 100승 고지에서 외인구단에게 패배를 안겨주게 된다. 하지만 아무리 외인구단이 패배하더라도 그들 가슴 속에 묻은 억압된 욕망과 현실에 대한 분노는 닫혀진 것이 아니라 세상에 향해 분출되고 있었다. 너무 뜨겁고 열정적이기 때문에 최후의 패배는 우리에게 아주 비극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던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왕립우주군 : 오네아미스의 날개 - 할인행사
야마가 히로유키 감독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드디어 보았습니다. 전설의 그 애니메이션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를 말이죠. 왕립우주군 오네아미스의 날개는 오타쿠 전문집단인 가이낙스의 최초작품입니다. 1987년 야마가 히로유키가 각본과 감독을 맡아 안노 히데아키, 오카다 토시오, 사다모토 요시유키, 오구라 마사히로 등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 계에서 많은 영향을 끼친 분들이 만든 작품으로 제가 보고 있는 2010년이니 지금으로부터 23년전에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배경이나 사물에 대한 그림체는 정말 완벽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퀄리티가 높습니다. 그러나 대신 인물에 대해서는 그래 이쁘게 혹은 멋지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왕립우주군은 내용적인 작품성과 인간에 대한 철학적인 담론을 담고 있으므로, 캐릭터의 모난점은 그런 부분을 강조하겠지요. 이 작품에서 보이는 특성은 아마 저보다는 오랫동안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를 보고 있는 분들이 잘 아시고 더욱 잘 적어 주실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 작품은 최근까지도 영화평론가 사이에도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전 명작구분에서 대중의 인기가 좌지우지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유행이나 인기의 가치로 작품의 가치를 어떻게 매기는 지요?




제가 이게 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 그것은 여기에 무엇이 담겨있고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전달하는가라는 겁니다. 화려한 영상이미지와 극적인 플롯전개와 몰입도로 작품을 판단짓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통해 이 작품들이 무엇을 전달하는 겁니다. 아직 개념이 잘 안되서 이해반 불가반인 영상기호학이란 책을 보면서 애니메이션화면이 카메라시점과 똑같이 적용하는 점과 숏과 숏이나 시퀀스. 몽타쥬, 미쟝센 등 익숙하지 않은 단어와 그 단어가 지칭하는 의미도 이해가 어려워서 계속 고민합니다. 하지만 왜 이런게 중요한가는 이해갔습니다. 애니메이션 화면과 화면은 프레임과 프레임의 연결로 영상이미지에 사운드를 가미하여 우리에게 어느 주제를 전달하고자하는 한가지의 전달체계 즉 언어라는 겁니다.



주인공인 시구르츠 리닷트입니다. 그는 왕립우주군의 장교로 있지만, 사실 왕립우주군은 속된 말로 당나라군대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나라에서는 아주 무시당하고 무능력한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봅니다. 사실 주인공의 얼굴을 보면 뭔가 영웅이라는 느낌보다는 그저 한심하고 나약한 한 청년으로 보입니다. 그런 그가 처음 작품 시작할 때 동기 한명이 우주로켓 발사시험에서 사망합니다. 그러나 그는 집에서 무력한 인간처럼 천정을 보면 생각합니다.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그는 예식복장을 갖추지 않고 지각까지 했으니 그의 한심하고 나약한 현실을 절실하게 보여줍니다. 그는 이 왕립우주군이 자신이 그나마 밥을 빌어먹을 수 있지만, 언제 여기가 해체될지도 모르고 자신은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합니다. 그리고 그런 현실을 타파하기 보다는 그런 현실에 안주하며 살아가고 있는 전형적인 현대사회의 젊은이이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우리도 현실에서 주어진 환경에서 그저 마음을 안주하지만 한편으로 언제나 불안해합니다. 목표없는 미래, 꿈, 희망 어째보면 리닷트의 모습은 우리의 일상처럼 그저 흘러가는 청춘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 무기력한 리닷트가 왕립우주군에서 실패한 인생을 넘어서는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해야할지 다시금 고민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심, 마음 다스리기 - 조선 선비들의 마음 경영법
문효.이소영 지음 / 왕의서재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우리 선조들 중에서 위대한 학자와 사상가들은 마음을 스스로 다스기를 중시했다. 그 이유는 자신의 가치관이나 마음가짐을 확고히 다지기 위한 길이기도 하나 한편으로는 그 시대상에 놓여 있던 자신들의 입장에 많은 부담이나 모순을 느낀 것도 없지 않다.

특히 조선시대는 유교사상 성리학을 필두로 하여 모든 정치, 사회, 문화 등이 형성되어 왔다. 그리고 유교시대인 조선에서는 이른바 사대부라는 최고 계급이 통치하던 사회이므로 그 사대부라는 양반들은 위로는 임금에서 아래에 있는 농민들을 받치고 봉양해야만 했다.

그러나 모든 사회가 이런 마음가짐으로 통하는 세상이 아니다. 양반이라도 당파싸움에 쌓여 귀양을 가거나 벼슬을 잃은 경우도 있고, 높은 벼슬에 있더라도 막대한 업무에 항상 마음을 노심초사하였다. 게다가 조선후기로 넘어오면서 사회적 모순이 급격하게 심해지면서 지식이나 재주는 많으나 신분상 중인 내지 서열로 머물러 그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채 생을 마감한 인물들도 많았다.

그런 점에서 조선사회는 지식인들에게 매우 심적인 고생을 안겨주고 그들에게 많은 현실모순을 통해 답답함을 안겨주었다. 그래서일까 그들에겐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심적인 안정을 찾을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다.

물론 요새 사회에서는 신분제가 사농공상이 아닌 경제적인 부로서 조금 다르게 배치되었으나 적어도 정치적 사회적 참여면에서 조선시대보다 훨씬 자유로워졌다. 그렇게 자유로워도 여전히 사람들에겐 마음의 안식처가 필요하다.

그래서 마음 약한 존재는 자신의 안락함과 편안함을 찾기 위해 자기만들의 틀에 박혀 버리기도 한다. 최근 히키코모리(은둔형 폐인)이나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펼치는 이른바 중2병이란 속칭도 생겼다. 물론 이런 부정적인 요인은 사람들간의 소통과 대화를 끊게 하나 어떤 분야와 장르에 잘 접근하면 좀 더 새롭게 좀 더 발전적으로 변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지금보다 더욱 답답한 당시로는 선조들은 어째 마음을 다스렸는가? 그들은 자신의 울분을 삼키기 위해 우리보다 더욱더 깊은 여가활동을 즐겨왔다. 답답한 귀양생활과 정치생활을 피해 자연으로 간 윤선도, 어지러운 세상에서 차로 통해 마음을 푼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 당파싸움으로 멸문지화하여 대학자로 거듭난 성호 이익, 어지러운 정치를 탕평책으로 이끌어 내던 개혁군주 정조의 담배 등등 말이다.

여기에 소개된 인물은 우리 나라 역사에서 매우 뛰어난 인물임에 동시에 매우 심각한 고뇌를 짊은 인물이다. 그런 사람들로 통해 새롭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 그리고 그것으로 통해 울분과 한을 삭히는 선조들의 지혜를 엿보는 것도 좋은 의미가 되지 않을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기자와 나눈 3일간 심층 대화
오연호 지음 / 오마이뉴스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솔직히 한국에서는 기나긴 왕족과 양반들이 권력을 갖고 통치하던 봉건주의 국가사회이었다. 그리고 그 조선이라는 마지막 봉건국가가 1905년 을사조약과 1910년 경술국치로 인해 그 역사는 머나먼 과거로 흘러가 버렸다.

 



그리고 억압된 일제강점기와 해방직후의 양쪽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625전쟁, 그리고 수많은 독재와 봉기 등등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 근현대사는 너무나도 빠르고 숨 쉴 사이 없이 지나가기 바쁜 고속철도와 같았다. 너무 빨리 지나가기만 하니 앞만 바라보고 뒤와 옆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물론 그런 난항들은 근현대가 아니라 조선시대와 그 이전에도 있었다. 그 많고 많은 시련과 수난 속에서 조금 이런 생각을 해본다. 과연 누가 역대 정치지도자에서 가장 탁월했는가? 나는 우선적으로 추천하는 정치지도자는 학자임금인 정조이다. 조선시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창제나 여러 사업을 했지만, 결국 그것은 아버지 태종 이방원의 덕이었다.

 



순수하게 자신의 힘으로 어려운 정국은 헤쳐 가며 나라를 위해 붕당정치의 폐단과 관료들의 비리, 제도의 불안정 등을 척결하여 더욱 강한 나라로 만들려고 했다. 물론 1800년 정조가 승하하면서 탕평정책은 깨져 버리고 다음해인 1801년 신유사옥과 황사영백서로 인해 많은 실학자들이 유배와 처형은 당한다.

 



역사에서는 이런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만약에 그렇게 되었더라면” 라고 말이다. 과거가 지나간 이상 되돌아 갈수도 만들어 놓을 수도 없다. 그저 흘러갈 뿐이다. 단지 과거를 이해함으로 현재를 알고 미래를 준비할 뿐이다. 지금 조선시대 봉건사회도 끝이 나고 냉전시대 산물인 625전쟁도 다 지나갔다. 세월은 그렇게 변화를 거치어 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긴 여정을 마친 한국이 왕권국가에서 국민국가로 변화되면서 나보고 누가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이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노무현이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노무현 대통령이라 해서 모두 잘하고 탁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서 생각한 것이다. 참고로 나는 나이가 20살 이전에 정치에 전혀 관심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학업열등생이 대학에 가기 위해 고등학교 말년 3학년은 그저 공부에 매진하였다. 그런 다음 수험에 대한 해방감을 맛보기 위해 예전부터 좋아한 락을 즐기기 위해 언더그라운드 세계에서 자유를 만끽했다. 기타 치는 형들에게 기타도 조금 배우고, 합주도 구경하고 공연도 가고 같이 술마시고 그저 그게 나는 좋았다.

그것이 나의 고등학교 이후 대학입학전의 생활이다. 내가 정치에 대해 눈을 뜬 건 대학교 1학년 시절이다. 우리학과는 환경공학이라 환경부에서 주관하는 전국 폐기물 통계조사에 참여할 때이다. 때는 1999년 겨울, 나는 지정된 구역에서 주택, 상가 등 다양한 거주 및 건물형태에 따라 폐기물 수집을 하고 있었다. 



마친 사무실 부분이 있길래 개인사업장에 들어가서 폐기물조사하는 것이 다소 부담스러워서 인근에 국회의원 사무실이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가서 환경부 통계조사한다고 말하는데, 순간 그 국회의원 밑의 보좌한다는 인간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이 쌔끼들아! 여기가 어딘줄 들어와! 어서 안꺼져!”라는 심한 욕설과 비인간적인 행동이었다. 



이때 이후로 이 사무실의 주인과 그 주인이 몸담은 정당은 일체 뽑지 말아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어린시절이라 그렇게 흥분했지만, 지금 역시 생각해보면 열받는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시민이 찾아와 어려운 부탁도 아닌데 욕한다는 사실에 사실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후에 부산에서 계속 지내면서 부산에 살면 부산권 정치인인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당시 부산은 경상권이라 전라도지역과 지역감정이 매우 심했다는 점과 그런 상태에서 노무현 장관은 신기하게 보였다. 나 역시 부산에 살다보니 노무현이란 3자는 금방 알게 된다. 정치적 당색이라던가 신념이 아닌 어떤 인물인가에서 말이다. 



그런 애기를 들은 직후에 2002년 나에게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할 수 있던 기회가 왔다. 그리고 노무현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는 당선되고 나는 2003년 군입대를 하게되었다. 나는 군복무를 공군으로 갔는데, 당시 배치부대가 김해공항으로 갔다. 2004년에 들어오고 2005년에 부서가 공사설계시공파트로 갔는데, 때마친 그 해는 APEC이 열렸다. 의전실 공사의 설계, 시공, 관리를 맡은 부서에서 기술행정을 맡았던 나로서 이 APEC은 사실 악몽이었다. 



맨날 잦은 공사내용 변경, 주요 지휘관, 정부기관, 심지어는 국무총리와 대통령까지 들어와서 이 현장을 보고 갔다. 시공부서에 있던 사람으로 VIP가 오는 것은 상당히 싫다. 아니 짜증난다. 공기는 다가오는데, 이 사람들로 인해 공사가 제대로 될 수 없다보니 잦은 야근과 주말잔업이 있었다. 남들은 군복무 하면 초소근무가 주된 추억이나 나는 사무실에서 야근과 잔업이 추억이다. 



솔직히 이때는 노무현 대통령이 미웠다. 개인적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것은 아니었다. 이라크 전쟁과 더불어 정부에서 파병안을 내고 어느 순간 파병안이 결정되자 그 여세는 내 주변에서 일어났다. 내가 속한 부대가 수송기가 있던 곳이라 많은 장병들이 머나먼 이라크로 가게 되었다. 거기에는 내 동기도 있었고, 같은 대대 사람들도 있었다.  



나에게 한없이 고맙고 친근하기도 한 사람이 한국을 떠나 몇 개월 동안 모래폭풍으로 이루어진 이라크로 간 것이다. 나중에 한국에 무사히 귀국하여 내가 전역 전에 서로 잘 지냈지만, 그들이 느낀 이라크 파병은 그렇게 재미난 이야기가 아니다. 비록 전투가 바로 일어나는 위험지대가 아니나 언제 전투가 날지 언제 폭격이 날지 언제 테러가 날지 모르는 비상시기이니 말이다. 



그런 곳을 내 옆에 있던 사람이 갔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라크 파병부대에 가서 장병들과 만났다는 것이다. 누구는 인기몰이라거나 혹은 정치적인 수단이라 하지만, 나는 역으로 묻고 싶다. 당신은 당신의 이름을 올리기 위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지공간에 들어갈 자신이 있냐고 말이다. 



사실 이라크 지역에 이착륙하던 항공기는 대부분 보잉이나 에어버스에서 만든 제트엔진으로 된 항공기가 아니라 C-130H이라는 군작전수송기였다. 이 항공기 직접 타지는 않으나 같이 있던 사람들에게 들으면 안다. 대단히 시끄럽고 불편하다고, 그런데 그 수송기에 몇 시간을 앉아 사지로 갔다고 생각해보라. 



그래서 나는 노무현이 좋아한 것이다. 물론 공군이라는 이름아래 좋아하게 되었으나 차후 전역 전까지 지켜보면서 그가 한국군사력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런다고 모두 이런 군인으로 지내면서 생각한 노무현이 나에게 전부는 아니다. 그가 100% 옳은 것은 아니나 그가 자신을 스스로 낮추는 것이 나는 좋았다. 



권력의 최고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에게 머리를 숙이는 모습에 솔직히 군인으로 있었던 당시 나로서는 놀라움이었다. 그런 사람인듯 노무현 대통령은 여러 가지로 참 말이 많고 많았다. 마지막 인터뷰에서 보고 아이러니한 내용은 진보세력에서는 보수적이라고 비난받고, 보수세력에서는 너무 진보적이라고 비난받은 것이다. 우리나라가 진보와 보수가 양극화되어 으르렁되는데, 그는 진보도 보수도 아닌 곳에서 비난당하고 있었다. 



그런 이것이 무엇인가? 한국 진보세력의 가장 문제점은 이책에서 보여준 “쉬운데로 안주거리처럼”이란 것이다. 반대에 대한 반대로 하는 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진보주의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선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에게 역사의 사실을 존중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과거로부터 법칙을 배우고 그 법칙으로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 아닙니까. 진보주의자들이 주로 개방 문제와 관련해서 그동안 주장했던 것이 그 이후에 사실로 증명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전부 다 사실이 아닌 것으로 증명 되었습니다.” 



사실 한국에 진보든 보수든 어느 것이든 버릴 수만은 없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이 제기한 진보에서는 현실을 보고 국제사회를 보자는 것이었다. 진보가 우리는 이 세계에 대해 불만으로 반대만 한다고 하여 그것이 우리로 끝나면 모르나 한국은 한국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아닌 다른 나라가 있기에 존재한다. 한국이 국제정세에 흐름을 따라가지 않으면 자재수입과 제품수출 무역으로 생존하는 국가로서 치명적인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이 인상 깊었다. “그래서 이런 현실,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돌아보지 않는 자세는 공부하는 사람들의 자세도 아니고, 정치하는 사람들의 자세도 아닙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과학적인 자세를 가져야 하는 것이지요. 객관적 사실을 사실로 인정할 줄 알고, 그래야 오늘을 바로 해석할 수 있고 내일을 예측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현실을 제대로 꿰뚫어보는 과학적 논리를 지니고 정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오히려 “그러니까 공허하고 교조적인 이론에 매몰되어서 흘러간 노래만 계속 부르지 마라. 이겁니다. 일부 고달프고 불평스러운 사람들을 선동해서 끌고 갈 수 있을지도 모르고, 일부 이른바 강단사회주의라고 이야기하는 급진지식인들은 뭉쳐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에서 현실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한다고 했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쳐서 뭐든지 극단적 행위보단 과학적인 사고로 판단하라고 했다.

그렇기에 국민들이 이런 지나친 이데올로기에 빠지지 않으려면 국민 스스로 정치에 참여하고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권력은 위임하되 지배를 거부하라” 모든 국가조직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을 위해 공적인 업무에서 공권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그 공권력이 국민이 위임한 사람들의 사욕에 이용되는 것을 국민 스스로 막아야 한다고 했다.



과연 내가 아는 노무현, 당신이 아는 노무현, 아니면 내가 모른 사람들의 노무현, 그것은 각각마다 다르다. 사람들이 살아온 환경과 조건, 그리고 가치관은 뭐든지 다르게 보일 뿐이다. 단지 타인에 의한 노무현이 아니라 노무현에 의한 노무현은 무엇인가에서 그는 기존에 내가 생각하던 것이랑 다른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 - 이론의 쓸모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택광 지음 / 글항아리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내가 처음 좌파와 우파에 대해 안 것은 중학교이었다. 당시 정인화 선생이 만든 영원한 제국에서 제시된 성호학파의 갈래에서 알았다. 성호학파는 조선시대 최고 학자 겸 사상가인 성호 이익 선생이 만든 도서로 다양한 학문과 사상 그리고 문화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거기에는 중국에 선교온 마테오 리치 신부가 만든 천주실의에 대해 최초로 연구한 서적이라 한다.

이 천주실의라는 학문은 가톨릭신앙을 포교하기 위해 마테오 리치가 만든 서적이나 그 내용은 동양의 사상과 문화에 맞추어서 적었으므로 당시 천주실의는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서구 교황청의 정치적인 체계가 바뀌면서 당시 제사를 지내야 마느냐에서 기존 천주실의는 제사를 지내는 것이 당연하나 바뀐 가톨릭 포교에선 제사는 불가하다고 했다.

그런 갈등과 천주교라는 것은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성호학파가 2가지 갈래로 나눤다. 하나는 순암 안정복과 이삼환의 필두로 하는 성호우파, 또 하나는 만천 이승훈, 광암 이벽,  아우구스티노 장약종, 다산 정약용과 같은 남인 계통의 젊은 학자들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처음 받아들인 좌파와 우파는 어느 일정한 사상과 철학에 관련하여 급진적인가 혹은 보수적인 태도인가에 따라 구분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은 사상이나 철학, 학문 등이 좌우 관계없이 인간을 근본으로 하여 단지 그것에 대해 바라보는 시선과 관점의 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서는 이런 관점이 무의미하게 사라져가는 추세인듯 하다. 정말 좌파와 우파의 차이는 그런 관점과 시선의 차이라기 보다는 단지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의 당위성 내지 편가르기식으로 머물게 된 것이다. 

정치적으로 우파와 좌파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것은 정치적인 노선이 문제가 근본 자체가 나라를 어떻게 운영하고 사람들을 어떻게 잘 지내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기본 중에 기본은 어디로 사라져 갔는지 이제는 상대방에 대한 반대를 위한 반대를 외치게 되었다.

그것이 과연 옳은가 아니면 그른가 보다는 그 옳고 그름에 따라 정치적인 표명하기가 바쁜 것이다. 게다가 우리 나라 아직 민주주의라는 근현대적인 정치체계가 들어온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 약 600년간의 사대부국가에서 약 50년동안의 일제 강점과 625전쟁으로 나라가 많이 혼돈되었기 때문이다.

나라가 전쟁으로 얼룩진 만큼 그 당시에 민주주의라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고, 북한과 대치로 인한 이데올로기적인 군사외교 적대는 어두운 사회상을 반영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래서 흔히 한국에서 좌파라고 하면 다들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일수이다. 내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시절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빨갱이 불온서적으로 마르크스 도서를 읽으면 안된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제 어른이 되어 집근처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면 마르크스 서적이 주변에 넘치고 넘친다. 당시 내가 받아들인 시대상은 어떠한가? 우리는 좌파하면 무슨 이미지가 떠오를까? 기존 한국사회를 혼돈하게 하는 존재, 아니면 빨갱이? 사실 알고 보면 마르크스는 그런 유령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자본주의를 부정하기 보다는 자본주의에 대하여 냉철하게 바라보아 그 체계와 흐름을 분석하고자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마르크스라고 하면 모든 국가체계를 무너뜨릴 귀신으로 보는 것이다. 사실 나도 인문학이란 세계에 발을 들인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거의 신입생급이다. 하지만 외국도서를 읽다보면 놀란다.

소련과 대치하던 미국, 영국은 물론이거니와 독일, 프랑스에서 마르크스에 대한 학문적인 업적을 여실하게 맺고 있던 것이다. 세계 학문체계에서 프랑스의 구조주의와 후기구조주의, 독일의 프랑크푸르트학파가 유명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그들은 소비에트연방과 북한의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마르크스에 대해 연구하고 정치에 활용하였다. 

한국사회에서 사회주의 이렇게 말하면 모두 좌빨 종북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옭아내지만, 막상 그렇게 했다면 서구사회는 모두 한통속이라는 인식 오류가 발생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그런 좌파의 시초인 마르크스에 대한 내용으로부터 근현대 좌파지식인에 대한 내용과 간단한 소개로 통해 인문좌파이론이 뭐가 있는지 알려준다.

인문좌파는 정치적인 좌파가 아니다. 그런다고 우파도 아니다. 지금 뭐가 잘못된 현상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이것이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논하는 것이 인문좌파이다. 그래서 인문좌파에 거론되는 철학자는 대부분 근현대철학자들이 아주 많았다.

먼저 마르크스로 필두로 하여 마르크스 이전의 칸트와 헤겔, 마르크스 뒤를 이은 엥겔스와 발터 벤야민, 알튀세르, 사르트르. 데리다, 자크 라캉, 미셀 푸코, 들뢰즈, 슬라보에 지젝 등, 솔직히 내가 여기서 거론된 학자들은 다 이름을 들어본 사람이다. 단지 이름은 듣고 간단한 소개만 알지 실제 그 사람들이 무슨 내용을 말한지는 세세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이 좌파지식인이란 점에서 우리가 근현대를 지나온 점에서 새로운 철학이나 사상은 대부분 좌파적인 부분에서 많이 나온 점이다. 나는 이 책을 다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며 생각한 점은 인문좌파는 근본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에 대해 다른 관점으로 보고 생각하여 지적하여 원인을 규명하자는 것이다.

예전에 한창 관심있었던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사상에서 이른바 데리다의 해체주의를 처음으로 들었다. 물론 해체주의에서 거론하는 남녀차별, 인종차별 등과 같은 고질적인 문제는 해체하는 것이 옳으나 그런다고 해서 모든 것을 해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해체라는 모더니즘의 틀을 반대로 보기보단 추가와 보완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추가와 보완으로 통해서 얼마든지 기존 사회 기반을 부정하기 보단 그것에 대한 기능을 좀 더 올린다면 그것이 진정한 인문좌파로서의 소양이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