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나의 놀이를 할 수 있겠군. 기쁘다. 방금 아이들과 남자가 집으로 갔다. 배를 두들기면서.
오늘 하마터면 남자랑 싸울뻔 했다. 그 싸움이라는 것이 치고 박고 육박전이
아니라 오로지 감정싸움이다. 소현이 친구들이 집으로 간다고 준비를 하는 도중
남자가 도착했다. 아이들보고 차 잘 보고 가라고 여러수십번을 다짐하고 잠깐
집을 보니 그야말로.....말 안하는 것이 낫겠다. 나중에 치우지 싶어서 그냥두고
일을 하고 있는데 남자가 자꾸 배고프단다. 잠깐만 있으라고 하고 열심히 대여하고
반납하는데 남자는 영화프로를 보고 있었다. 내 생각같아서는 할 줄 모르지만
책이라도 좀 꽂아 주었으면 좋겠는데 누워서 TV만 본다. 아이들이 한바탕 물러가고
뜸해진 시간에 뭘 먹고 싶냐고 하니까 속까지 시원한 국수가 먹고 싶다고 했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는데 뭐가 그리도 덥는지. 국수를 사러 앞 슈퍼에 가다보니까
옆에 분식집 언니가 나와 있다. 에라이 모르겠다 싶어서 국수 두그릇을 시켰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그냥 빈손으로 집에 와서 남자에게 다싯물 내어 놓은 것도 없고
덥기도 덥고 몸도 피곤하고 더더군다나 분식집에 너무 장사가 안되는 것 같아서 시켰다고 하니
날 빤히 쳐다본다. 난 그 모습이 싫다. 사람이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가 아니고
남자는 자기의 속이 안 좋을라치면 날 그냥 빤히 본다.
그래서 내가 왜 싫어요. 말을 해요.하니 정말 이해가 안간다고 한다. 뭐가 이해가
안가냐고 하니 집에서 국수를 시켜먹는 것이 이해가 안간다고 한다. 그러면 언제는
안 시켜 먹었냐고 하니 그래도 오늘은 하루 쉬는데 마누라가 해주는 음식을 먹고 싶지
남이 해주는 음식은 먹지 싫다고 한다. 나의 머리에는 그야 말로 스팀이 올랐다.
지글 지글 끓는다.그러면 언제는 내가 해준 음식을 안 먹었던가?
나는 어제 너무 늦게 자고 피곤하고 해서 그렇다고 나는 내가 힘들고 밥하기 싫을때는
돈에 구애 안 받고 한그릇 시켜먹고 말것이라고 반박했다.
남자는 아무말도 안하고 영화만 보고 있다. 낮에 TV에서 하는 영화.
난 나의 남자가 이럴때는 정말 싫다. 둘이서 볼 일이 있어 돌아오는 길
남자는 점심때가 넘어도 어디가서 밥 먹고 들어가자고 한 적이 없다.
내가 집에 반찬도 없는데 맛있는 것 먹고 가자면 도리어 반찬 없더라도
라면 끊여 먹으면 된다고 한다. 계획이 없는 외식은 남자는 싫단다.
집에서 먹으면 되는 데 뭐하러 왔다 갔다 귀찮게 밖에서 먹냐고 한다.
그러나 난 지금 아니다. 예전에는 정말 남자의 말과 나의 마음이 일치가 되어서
오늘 같은 날에도 집에서 국수 삶아 먹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요즘은 나의 생각이 바뀌었다.
피곤하고 하기 싫으면 한끼 시켜도 먹고 아이들도 시켜도 주고 김치도 사먹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매일 사먹자는 것은 전혀 아니다. 나는 상당히 찌지고 뽁는 것을 좋아하고
나의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간장 된장 젓갈부터 시작하여
물김치 깻잎김치 장아찌등 담아 먹을 수 있는 것은 다 담아 먹는다.
그러나 오늘 같은 날은 전혀 아니다. 나는 속으로 바랬다. 내가 엄청 피곤하게 보일때는
남자가 먼저 시켜 먹고 한끼를 때우자고 하길 바랬다. 부엌에서 음식을 하면서
손님이 오면 몇번이고 왔다 갔다하고 밥을 먹다가도 이제는 일어서서 일하다가
먹다가 하는 것이 만성이 되어 버린 내가 힘들어 보이기는 커녕 당연하게 보이는지.
다 버릇을 잘못 들인 탓이다. 그러면 남자가 시킨 국수라고 해서 삐져서 안먹느냐?
천만의 말씀이다. 자알 먹는다. 나는 기분이 안 좋아서 못먹고 내 걸 반 덜어 주었는데도
다 먹었다. 그리고는 또 보다만 TV를 본다. 어느 정도 정리를 하고 가게도 한가해서
살짜기 물었다. 나 지금 밖에 좀 갔다 오고 싶은데 가게 봐 줄 수 있냐고하니
왜 갔다 오란다. 걱정하지 말고. 열과 성을 다해서 봐줄테니 갔다 오란다.
그말에 조금 맴이 풀리어 TV를 같이 봤다. 그러면서 당신이 내 맘을 조금만
이해해주면 되는데 왜 그럴까. 나도 밥 하기 싫을때가 있는데. 그러면 먼저 알고
한끼 시켜 먹자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넉두리마냥 중얼중얼 하니까
그냥 피식 웃는다. 이 곰탱이 같은 남자에게 내가 뭘 더 바라겠는가?
한가지는 못 박았다. 나는 시켜 먹고 싶을때에는 집에서도 시켜 먹을 거라고.
그렇게 말하니 참 보기 좋겠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세대차이다고 하니 별것에
다 갖다 끼어 맞춘다고 한다.
저녁은 남자 좋아하는 맵싹한 찌짐 굽고 뽁음밥 해서 맛있게 차려 주었다.
먹는 것 좋아하는 세명이서 열심히 먹는다. 남은 재료로 뽁음밥을 했다고 하니
남자가 엄마의 주특기란다. (난 재료를 다 갖추어 음식을 하지 않는다. 있는데로 한다. )
민수가 자꾸 남자 동생을 낳아주라고 한다. 옆에서 소현이는 여자동생을 낳아주라고 한다.
엄마도 낳고 싶다고 하니 옆에서 소현이가 앗 안되지 엄마가 아기를 가지면 아프니까 한다.
그러면서 또 둘 다 동생을 안 낳아 주도 되요 한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 때문에 속이 상하는 것도 풀리는 가 보다.
남자는 지금쯤 열심히 축구를 보고 있겠지. 그리고 낮에 나의 일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있겠지.
그리고 내일이며 또 밥 하겠지. 난 여러가지를 생각하는 반면에 남자는 너무 단순하여
항상 내가 춤추고 장구치고 다 하는 격이다.
그래서 불똥이 안튀고 사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