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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비발~* > 과장된 슬픔, 또는 대면하는 척 외면하기

과장된 슬픔, 또는 대면하는 척 외면하기 /변정수


이라크전쟁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에 전혀 상반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모두 슬픔의 표현을 아끼지 않으며, 적어도 그 슬픔의 표현에서만큼은 어떤 정치적 차이도 무화되고 있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니 차라리 누가 더 슬퍼하며, 심지어 누가 더 진정으로 슬퍼하는지를 경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대면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누군가의 실존적 부재를 인정한다는 것은 기실 누구에게나 슬픈 일이다. 그래서 지구 반 바퀴 너머에서 한 젊은이가 사망했다는 소식은 언필칭 '비보(悲報)'임에 틀림없다. 그 죽음이 슬픈 까닭은, 그가 '무고하게' 죽었기 때문도 아니고 그가 '참혹하게' 살해당했기 때문도 아니며 심지어 '얼마든지 살릴 수도 있었기' 때문도 아니다. 한 생명이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 자체의 현실감이 슬픔이라는 정서로 표현되는 것이다.

국상(國喪)을 방불케 하는 그야말로 '전국민적인' 비통과 애도의 물결이 내게 적지 않은 당혹과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래서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대면하는 일은 그 죽음 자체가 개별적인 만큼이나 또는 그 이상으로 개별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혹시나 망자와의 기억을 상당 부분 공유하는 '가족'들이나 '불알친구'들의 또래 집단이라면 모를까, 도무지 '함께 슬퍼한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아니 심지어 가족이나 불알친구라 해도 그에 속한 각자에게 고유한 기억이 있을 터이므로 각자가 느끼는 망자의 부재감은 철저하게 개별적인 영역에 있다. 하물며 김선일씨라는 개인과 일면식조차 없었던 이 많은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슬퍼한다는 것일까.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의 어디에선가는 '얼마든지 살릴 수도 있는' '무고한' 사람들이 심지어 '참혹하게' 죽어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죽음에 한결같은 슬픔을 느끼지는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 개인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도 알지 못했는데, 하물며 그 부재가 새삼스럽게 슬픔으로 다가올 까닭이 없을 터이다. 하지만 생전의 김선일씨와 교분은커녕 면식조차 없었던 이 수많은 사람들 또한 적어도 그가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김선일이라는 개인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을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 사람들을 슬퍼하도록 하는 것일까. 좀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생전에 일면식도 없었던 사람을 마치 잘 알던 사람인 양 착각하게 만드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래서인지 슬픔의 표현들을 찬찬히 뜯어보면, 망자와의 크고 작은 공통점들을 열거하는 것으로 논리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아무런 근거가 없는 감정이입을 스스로에게 정당화하려는 흔적이 쉽게 발견된다. 그리고 격한 슬픔의 정서를 과장하는 표현일수록 제시된 공통점이 마치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인 양 절대적인 근거로 설정된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요컨대 '김선일씨가 죽었다면 나 또한 똑같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터무니없는 망상이다. 당신이 이라크에서 인질로 잡혀 살해당할 가능성, 또는 좀더 일반적으로 그 주체가 누구이건 간에 자신의 이해관계와는 별다른 상관이 없는 전쟁에 휩쓸려 비무장 민간인 희생자의 한 사람이 될 가능성은, 지금 당장 집 앞 골목을 지나다가 공연히 시비를 걸어오는 깡패를 피하지 못해 날벼락 맞듯 살해당할 가능성이나 고층 아파트 밑을 우연히 지나가다 20층 높이에서 고의로 내던진 물건에 깔려 생명을 잃을 가능성, 또는 적절한 치료만 받으면 얼마든지 완치될 수 있는 질병에 걸리고도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보다 낮다. 그래도 우리는 거의 매일 밤 뉴스에서 이런 어이없는 죽음의 소식을 접하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가해자를 욕할지언정 피해자를 위해 슬퍼하지는 않는다. 유독 김선일씨의 죽음만 '다름 아닌 자신의 일'이 되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가.

아니 좀더 정직해지자. 당신이 윤리적으로 매우 고매한 사람이어서 이 모든 죽음들, 적어도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생리적 수명이 다하기 전에 맞이해야 하는(즉 크건 작건 사회적 책임을 부인할 수 없으며 따라서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마땅히 책임을 나누어야 할) 모든 죽음들에 대하여 언제나 한결같이 깊은 슬픔을 느낀다고 하자. 아마도 당신은 존경할 만한 사회운동가나 종교인이 되기 전에 노이로제에 걸려 정신과적 치료를 먼저 받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특별히 무감각하거나 무책임하지 않은 지극히 평균적인 수준의 윤리 의식을 가지고 있는 갑남을녀들이 이 수많은 '무고하고,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던' 죽음들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까닭일 터이다.

물론 나는 이 수많은 사람들이 그다지 슬프지 않은 데도 슬픈 척하는 것뿐이라고 매도할 의사는 전혀 없다.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애통해한다는 것을 나는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궁금한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유독 김선일씨의 죽음을 윤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등가인 다른 숱한 죽음들에서와는 전혀 다른 정서적 반응을 유발하도록 하는가. 게다가 존재하던 누군가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죽음 앞에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라면, 모든 죽음은 심지어 합법적인 절차에 의한 사형 집행조차도 실존적으로는 등가(사람의 목숨 값에는 차등이 없다!)라는 점은 다시 상기되어야 한다.

가능한 이유는 한 가지뿐이다. 이것은 김선일이라는 개인의 부재에서 오는 슬픔이 아니다! 되풀이 말하지만, 이 수많은 '추모'객들은 김선일이라는 개인을 알지도 못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에서건 망자와 자신을 '과도하게' 동일시하는 데서 비롯된 심리적 투사일 뿐이며 그러한 점에서 이 모든 슬픔은 '정치적'이다. 즉 개인 김선일의 죽음이 아니라 '정치적인 나'의 죽음인 것이다. 물론 이라크전쟁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과 예컨대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살릴 수도 있는 사람을 죽게 내버려두는 낙후한 의료보장 체제는 '정치적'으로 등가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이라크전쟁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에 전혀 상반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모두 슬픔의 표현을 아끼지 않으며, 적어도 그 슬픔의 표현에서만큼은 어떤 정치적 차이도 무화되고 있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니 차라리 누가 더 슬퍼하며, 심지어 누가 더 진정으로 슬퍼하는지를 경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그렇게 과잉된 슬픔의 행렬 속에 정작 서른 두 해 동안 이 세상에 존재했다가 이제는 존재하지 않게 된 개인 김선일의 자리는 사라지고 없다. 거기에는 오로지 정치적 견해를 달리 하는 '집단'에 의해 서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호명된 추상적 상징으로서의 김선일'들'이 있을 뿐이다.

아무리 모든 상제례가 망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것이기는 해도, 비통과 애도가 '전국민적으로' 흘러 넘치는 자리에서조차 아니 오히려 그렇게 되어 버렸기 때문에 정작 망자의 실존적 부재가 '소외'된다는 것은, 그 어떤 '정당한' 명분을 끌어댄다 해도 기실 망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죽음의 개별성을 실존적으로 대면하지 않은 채로(기실 그럴 방법도 없지만) 마치 대면하고 있는 양 슬픔의 정서를 제의(祭儀)화하는 것은 오히려 죽음을 외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정치적' 욕망은, 비겁하게 망자에게 투사시킬 일이 아니라 정직하게 '정치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정치적 견해를 정직하게 표현하기 위해 '파병 반대'의 머리띠를 두를지언정 가슴에 '근조' 리본을 다는 것을 사양한다. 당장 '무고한' 사람들이 숱하게 죽어나가는 절박한 사회적 의제들에 책임 있는 관심을 가지고 적절한 실천을 모색하고자 하는 한편으로 그 피해자들을 위해 일년 내내, 하루 이십사시간을 비통해하지는 못하듯이.

출처: http://www.cultiz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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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밀키웨이 > 향토색 짙은 그림책 화가 김동성

김동성은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이다. 그 역시 매우 사실적인 방법으로 성실하게 그림을 그리며 많은 그림책 작업을 해오고 있다.
『삼촌과 함께 자전거 여행』(채인선 글, 재미마주, 1998) 『안내견 탄실이』(고정욱 글, 대교출판, 2000) 『비나리 달이네 집』 (권정생 글, 낮은산, 2001) 『하늘길』(이문열 글, 다림, 2001) 등에 일러스트를 그려온 역량 있는 작가이다.

 

특히 그림책 『메아리』(이주홍 글, 길벗어린이, 2001)에서는 차지하는 비중이 큰 덕분에 그의 수묵 채색 그림이 힘껏 깊이를 품어내고 있다. 김동성에게는 부드러움과 넘쳐나는 힘이 동시에 있다. 아름다운 고향산천을 담아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농익은 그의 붓질은 어느 것 하나도 허술하게 그리는 법이 없다. 인물의 동작이나 표정도 매우 자연스럽고 세련되다.

 

『메아리』에는 주인공 돌이가 산에서 헤매는 장면이 압권인데, 한 폭의 그윽한 동양화를 감상하는 깊이가 있고, 주인공 돌이의 심기를 온화하게 감싸는 듯, 길을 잃은 돌이의 공포를 스산하게 내뿜는 듯 복합적인 정서를 일으키는 독특함이 살아 꿈틀댄다. 온화한 기운이 감도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풀내가 느껴지는 산에서 어느덧 읽는 이에게마저 메아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북치는 곰과 이주홍 동화나라』(이주홍 글, 웅진닷컴, 2000)의 「은행잎 하나」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차분하게 가라앉은 한 가지 색조의 그림에, 오래된 은행 나뭇잎만이 유난히 샛노랗다. 이 작품은 은행잎이 한창일 때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누구나 잊지 못할 그 이미지를 담아냈다. 노오란 그 색들이 바람에 파르락거리며 흔들리는 느낌....... 너무나 사실적인 그림에서 때로 가장 환상적인 분위기를 느끼는 그런 경험을 선물한다.


 


 

 




사실성이 환상성에 가 닿을 수 있는 이 진실 때문에, 사실적인 묘사에 주력하면서도 생략과 강조의 묘미를 잃지 않는 그림들은 항상 온기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이 두 작가의 그림 장면들은 영화적 앵글을 가진 듯 입체적이다.

특히, 김동성의 그림은 유화나 서양의 다른 재료들이 주는 맛과 탁월하게 다른, 어떤 가능성의 실마리를 던져준다. 수묵의 깊이는 안료를 흡수하는 종이의 호흡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수묵은 서양의 다른 채색 방법들보다 훨씬 깊은 호흡을 가진다. 수묵을 끊임없이 빨아들이는 종이는 발색부터가 다를 수 밖에 없고 이런 물성의 차이는 미묘한 분위기와 그대로 직결된다. 부드러움과 힘을 동시에 갖게 하는 것은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은 종이와의 오랜 숙련의 결과로 빚어진 선묘의 맛인 것이다.

 

 

 

 





그리고 동양화적 방법이 갖는 주목할 만한 또 다른 힘이 있다. 동양화는 관념의 세계를 그린다는 말이 있다. 물결의 무늬나 많은 도상의 형태는 이미 완전한 패턴의 디자인적인 미학이 있다. 그러니까 매우 사실적인 묘사의 방식과 관념적인 묘사의 방식이 함께 어우러져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그런 신비한 점이 이미 있어왔다는 것이다. 이 같은 그림은 『북치는 곰과 이주홍 동화나라』에서 [북치는 곰]에서 느낄 수 있다.

 

 




장편 애니메이션 [바리공주]에 참여하였다.

 

 

 

 

 

홈페이지 http://kds.psshee.com/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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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햇빛이 쨍쨍한 일요일인것 같다.  이 햇살이 아까워서 집안일을 잔뜩했다. 아이들 가방, 내 가방, 신발, 이불빨래등 옥상에 빽빽히 널린 빨래를 보니 나도 어쩔수 없는 가정주부이기에 흐뭇하다.  엄마 따라 빨래 밝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위해서 물놀이를 잠깐 했다. 바깥 목욕탕에서 따뜻한 물을 받아다가  (날씨 믿고 찬 물에 하다가는 감기는 백발 백중이다^^) 김장 김치를 담는 통을 내고 월풀장에 바람 넣어 친구와 하는 물놀이는 바닷가 모래에, 산속 계곡에 비교할수는 없어도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이 엄마의 장난기와 함께 신나는 물놀이^^^^^

부렁부렁...배가 나갑니다... 신발짝을 운전대 삼아서 노를 저어간다.^^

 

 

 

 

 

 

 

 

 

 

 

 

 

 

 

 

 

 

 

 

 

 

엄마가 질소냐!!!! 이 물을 받아라!!!!

 

 

 

 

 

 

 

 

 

 


 

 

 

 

 

 

 

 

 

 

엄마의 물세례를 차단하기 위해서 물안경을 쓰고.


 

 

 

 

 

 

 

 

 

 

 

딸기 대야가 나오고^^^^

 



 

 

 

 

 

 

 



 

 

 

 

 

 

물을 피해 요리 조리 도망 다니지만......이 엄마가 어리다고 봐 줄줄 아느냐^^^^

 

 

 

 

 

 

 

 

 

 

 



 

 

 

 

 

 


 

 

 

 

 

 

 

 

 

 

자!!!!이제 그만 서로의 몸 밀어주기^^^ 미끌미끌,,,,

 

 

 

 

 

 

 

 

 

 

 


 

 

 

 

 

 

 

 

 

 

 

물세례로 잠깐 놀아주고 나는 나대로 할 일이 있어 틈틈히 아이들을 내다 보니 서로 다투고 그리고 화해해가면서 잘 논다.... 싸워서 울더라도 조금 있으면 서로 서로 해결을 하는데 부모들이 너무 빨라 아이들의 생활에 끼워드는것도 참 문제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의 세계는 자신들이 잘 가꾸어 가는데..... 한 걸음 뒤에서서 아이들을 보는 것도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소현이 남친의 할머니께서 매실쥬스와 감자를 한 바구니 삶아 오셨다. 그 맛이 꿀맛이단다... 감자를 먹으면서 이젠 서서히 옥수수도 먹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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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지으신 이 철수 선생님을 초대해서 아이들과 전래놀이 몇가지를 했다. 비도 오고 광고도 별 시원찮게  한 것 같아 참석인원이 적으면 선생님께 실례가 되지 않겠냐는 걱정을 했는데 의외로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많이 참석해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우리가 제안한 이 놀이가 성황리에 끝나니 별 것도 아닌 것 같아도 마음이 한결 뿌듯하다.

앞이고 뒤고 선생님께서 꼭 부탁하신 말씀...... 잘 노는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휼륭한 사람이 된다는 말씀.... 아이들을 잘 놀려야 된다는 그 말씀에 공감하면서 이런 말을 많이 들음으로써 내 아이를 보는 시선이 차츰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실제로는 보릿대로 만들어야 하지만 간단하게 종이로 만들어 보았다.  선생님께서 5월에  잘라서 김치 냉장고 속에 보관해 두셨다가 가져 오신 보리피리에 아이들은 감격을 하고.... 칼집을 내어 혹시나 하고 불은 그 속에서 삐~~~~~하고 소리를 내니 환호성을 지른다. 이젠 보리밭을 그냥 쉽게 지나가지는 않겠다.^^^주인몰래 꺽어야지^^^^


 

 

 

 

 

 

 

 

 

 

열심히 재기도 말들어 본다... 이 제기로 울 집 남자랑 내기를 했는데 정말 힘이 들더라^^^


 

 

 

 

 

 

 

 

 

 

 

 

 

 

 

 

 

 

 

 

 

 



 

 

 

 

 

 

 

 

 

 

입에 물고 이것 저것 불고 하다보니 강의실은 거의 난장판이다... 그래도 그 모습들이 얼마나 보기에 좋았던지.... 선생님께 감사하다면서 사진도 한판 찍었다... 컴터 게임은 동생이 오면 가라하지만 우리의 전래놀이는 옆에 사람이 모이면 모일수록 재미있기에 아이들에게 상대편을 배려하는 마음과 "나"에서"우리"로 갈 수 있는 최상의 놀이 인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아이들에게 즐거운 하루.... 이 엄마도 즐거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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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책읽는나무 > [퍼온글] 로알드 달 - 네번째


◈로알드 달이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과 그의 작품세계

-<The ALAN Review/Fall 1998/Volum26, Number1-Sharn E. Royer(Malone College)중에서>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와 <찰리와 초콜릿 공장>으로 어린이 책 작가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로알드 달은 사춘기에 막 접어드는 청소년들을 위한 세 편의 장편 소설을 쓰기도 했다.
로알드 달은 이 시기 아이들을 두고 "내가 사춘기에 접어 든 청소년들을 책 속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나는 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것을 이뤄낸 뿌듯함을 느낄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로알드 달이 청소년을 위해 쓴 책은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성인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의 책 속에 담겨 있는 기성 세대에 대한 비판과 사회 제도에 대한 경멸은 그의 책이 청소년들에게 널리 읽히는 하나의 이유가 되었으며, 사회를 바라보는 로알드 달의 이러한 관점은 비평계 전반에서 격렬하게 찬반 논의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로알드 달의 작품을 좋아하는 다양한 독자층을 볼 때, 우리는 로알드 달이 독자들을 끄는 대단한 능력을 지녔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청소년을 위한 책을 쓰기 전에 어린이와 성인을 위해 많은 책을 썼다.
로알드 달이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은 세실 스콧 포레스터(Cecil Scott Forester)의 설득으로 인해<Saturday Evening Post>지에 영국 공군시절에 로알드가 겪었던 모험담을 소설로 쓰면서이다.
그리고 그는 1943년에는 자기 작품을 영화로 만들고 싶어하는 월트 디즈니 사(社)를 <그렘린(The Gremlins)>이라는 로알드 최초의 어린이 책을 썼다. 이후 로알드 달은 오랜 동안 아동 문학계를 떠났고, 성인을 위한 단편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인간 본성에 대해 지나치게 무시무시하게 썼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생생한 묘사, 잘 짜여진 플롯,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새로운 플롯을 구성해 내는 데 어려움을 겪기 시작하면서 로알드는 다시 어린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 후 그가 처음으로 쓴 어린이 책은 1961년에 출판된 <제임스와 슈퍼 복숭아>이며, 그가 가장 마지막으로 쓴 책은 로알드 달 사후인 1991년에 출판된 <심술궂은 목사님>이었다.

그는 "내게 아이가 없었더라면 난 어린이 책을 쓰지도 않았을 것이고, 쓸 수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어린이 책 작가가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해 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고 있다.
로알드 달은 1977년에 자서전적 단편 둘, 에세이 하나, 단편 네 개를 묶어 <핸리 슈거와 여섯 사람들의 멋진 이야기(The Wonderful Story of Henry Sugar and Six Others)>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는데, 이 책이 나오자 비평가들은 이 책에서 단 두 이야기만 청소년이 등장하기 때문에 오히려 성인용 도서에 더 가깝다고 평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그다지 그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5년 후에 엄청난 성공을 이룬 <The BFG>를 출판했다.


청소년들을 사로잡은 세 소설

로알드 달의 작품 중에서 1982년에 출판된 <The BFG>와 1983년에 출판된 <마녀를 잡아라(The Witches)>, 그리고 1988년에 출판된 <마틸다(Matilda)>는 십대 독자들 사이에서 많은 인기를 누린 책들이다.
이 책들은 중학교나 고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읽을 만한 독서수준의 책이기는 하지만, 비교적 어린이들이 주인공으로 나오고 있어 10대 초반의 청소년 도서로 읽히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나이와는 상관없이, 정신 발달 수준이 사춘기에 접어드는 10대 초반의 아이들과 비슷하기 때문에 청소년 도서라 할 수 있다.

프로이드 밑에서 수학한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에 따르면, 12세에서 18세 사이의 아이들은 자아 동일시와 역할 갈등에서 오는 정신적 위기를 겪는다고 한다. 이 시기 아이들은 자기 의지가 강하고 독립적인 개인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발달 과제이다. 많은 청소년들이 중학교에 들어가면 자아존중감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로 미뤄볼 때 이 일이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로알드 달이 쓴 청소년 도서의 주인공들은 모두 성취동기가 높고, 독립심이 강하다..

<BFG>의 주인공은 크고 친절한 거인(Big Friendly Giant)에게 유괴 당한 여덟 살짜리 소피이다. <BFG>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소피는꿈나라를 통해 인간의 창문으로 날아 들어온 크고 친절한 거인을 만나게 되는데, 소피에게는 천만 다행으로 이 거인은 거인 나라에 사는 인간을 잡아먹는 거인국의 아홉 명의 다른 거인들과는 달리 사람을 먹는 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어린이들을 잡아먹는 거인들의 끔찍한 식습관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 소피와 BFG는 거인들이 더 이상 전 세계 어린이들을 먹어 치우지 못하게 하려고, 영국 여왕은 물론, 영국 육군 장성, 공군 장성들을 끌어 들여 모험을 떠난다.

로알드 달의 두 번째 청소년 도서인 <마녀를 잡아라>의 주인공은 겨우 일곱 살이다. 마녀의 위협에서 도망친 노르웨이인 할머니는 자동차 사고로 부모를 잃은 주인공의 후견인이 된다.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영국 브로네마우스로 여름 휴가를 떠났는데, 그곳에서 주인공은 우연히 1년마다 열리는 영국 마녀들의 모임을 목격하게 되었고, 여왕 마녀의 마법으로 쥐로 변하게 되었다. 현장에서 탈출한 주인공은 할머니의 도움으로 아주 독특한 방법으로 영국 어린이들을 모두 죽이려는 마녀의 사악한 계획을 물리친다.

제목으로도 쓰인 <마틸다>의 주인공 마틸다는 다섯 살이고, 타락한 부모님은 마틸다 존재를 무시해 버리곤 하는 무심한 사람들이다. 마틸다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하니(Miss Honey)라는 조용하고, 사랑이 많은 선생님을 만난다.
마틸다는 또 이 학교 여 교장이고, 올림픽에서 해머던지기를 하듯이 계속해서 아이들을 던지기 연습용으로 삼는 무시무시한 트렌치불(Miss Trunchbull) 선생님도 만난다. 트렌치불 선생님은 마틸다의 천재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녀의 지적 능력이 발달하는 것도 막으려 든다. 그렇지만 마틸다는 자신이 가진 지적 능력을 목적에 맞게 발휘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고, 모두의 행복과, 부당한 대우를 받는 하니 선생님의 처지를 바로잡기 위해 트렌치불 선생님을 몰아낼 계획을 세우는 일에 자신의 지적 능력을 사용한다.

로알드 달의 청소년 도서들은 나이 어린 영웅들이 주인공으로 나오긴 하지만 이 작품들은 청소년 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이는 로알드 달의 주인공들이 독자들과 나누고자 했던 모든 것들을 올바르게 이해한 수준 높은 독자들 덕분이라 하겠다.


로알드 달의 세계관이 녹아 있는 그의 작품들

로알드 달의 삶을 이끌었던 중요한 가치들은 그가 십대 초반의 아이들을 위해 쓴 문학 작품들 속에 잘 드러나 있다. 로알드는 아주 어릴적부터 노르웨이인이었던 어머니 때문에 영국 사회와는 동떨어진 체 살았으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는 영국 사회 속에서 살면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어릴 적에 그는 늘 노르웨이 신화를 듣고 자랐으며, 1년에 한 번씩 방학이 되면 노르웨이에 가곤 했는데, 그의 이런 어린 시절은 <마녀를 잡아라>에 잘 나타나 있다.

로알드의 어머니는 학생들에게 육체적 체벌을 가하는 영국 학교 교육 방침에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남편이자 로알드의 아버지 뜻을 따라 로알드를 영국인 학교에 보냈다. 그래서 로알드는 성 패터 예비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그 때 어린 로알드(이 때 로알드는 겨우 아홉 살이었다.)는 장난을 치면 어김없이 지팡이로 호되게 맞곤 했다.

그는 이 시절을 "공포스럽고, 끔찍한 훈련의 연속이었으며, 기숙사에서는 절대 말을 해서는 안되고, 복도에서는 절대 뛰어다녀서는 안되고, 생활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으며, 이것도, 저곳도 아닌 오직 복종해야 하는 규칙, 규칙, 산더미 같은 규칙들 밖에 없었던 나날들이었고, 우리를 지팡이로 지독하게 세게 내려치는 공포는 늘 죽음과 같은 공포를 느끼게 했다."고 회상하고 있다.

이 후 로알드는 인정사정 없이 학생들을 때리는 교회 목사가 교장으로 있는 영국에서 유명한 렙톤 사립학교에 다녔다. 이런 학교 상황은 나중에 <마틸다>에서 아이들이 설교 시간에 감초를 먹은 것을 벌주기 위해 아이들을 사정 없이 멀리 던지는 트렌치불 교장 선생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로알드 달의 전기 작가 중 한 사람의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작가 로알드 달의 삶이 그의 작품들 속에 잘 반영되어 있음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는 "로알드 달의 도덕관은 답 없는 질문이란 없으며, 승리 없는 전투도 없고, 해결하지 못할 만큼 복잡한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작품이 담고 있는 진실인 것이다." 라고 썼다.
로알드 달의 이 모든 경험을 종합해 볼 때, 우리는 그의 문학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사회에 대한 아주 씨니컬한 그의 사회관을 엿볼 수 있다. 비록 현재를 살고 있는 로알드 달의 모든 독자들이 로알드 달과 같은 경험을 하지는 않았을지라도, 그가 쓴 작품들은 억압받고, 부당한 규칙을 강요당하는 청소년들을 하나로 묶어준다.

이렇게 형성된 그룹은 정부나 학교 같은 사회적 권위나 제도들을 반드시 믿고 수용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로알드의 사회관이 창조해낸 산물이다.

로알드 달을 인터뷰하고, 그의 작품들을 연구하면서 로알드와 많은 시간을 보낸 마크 웨스트(Mark West)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어린이를 위한 것이든 어른들을 위한 것이든 로알드 달의 작품들은 거의 모두 사회의 권위, 사회 제도, 사회 규범 등을 조소하거나, 없애버린다."

심지어 육군 장성까지도 로알드의 사회 제도에 대한 비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것은 아이들을 잡아먹는 거인을 사로잡는 방법을 찾지 못하는 공군 참모 총장과 육군 참모 총장이 등장하는 <BFG>를 통해 잘 나타난다. 그들은 결국 사소한 난관에 부딪혀 거인들에게 한 방에 날아가고 마는데, 여왕은 이들을 한심한 사람들이라 부른다. 로알드 달은 이들의 무능력한 행동들을 보여 주고, 비웃는 과정을 통해 대중들에게 사회 제도를 만든 사회 기득권 층들의 행동을 결코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만일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고통을 주는 어른이 있다면, 로알드 달의 작품 속에서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그 권위의 대표라고 생각되는 어른들은 악의로 가득 찬 대우를 받는다. 이 점은 <마틸다>에서 마틸다가 다니는 학교 여 교장인 독재자 트렌치불 선생님을 통해 잘 드러나는데, 그녀는 마틸다의 텔레파시 세례를 받아, 결국 죽게 된다.

또 우리는 이 작품을 비롯한 다른 여러 작품들에서 "악한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로알드 달의 도덕관을 읽을 수도 있다.
<the Children's Review> 1997년 호에 실린 로알드 달에 관한 기사에 따르면 로알드 달 작품 속에 나오는 도덕관은 아주 간단하다. 그것은 절대 선(善) 대 절대 악(惡)의 대결로 이 과정에서 회색지대는 없으며, 마지막은 항상 아주 즐겁고 무시무시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로알드가 어른들에 대한 권위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유일한 예외는 "행복과 안락함의 원천으로서의 가족에 대한 따뜻한 묘사"이다.

<마틸다>를 제외한 로알드 달의 모든 작품에서,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가족은 세계의 종말이 닥쳤을 때조차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마녀를 잡아라>에서 주인공과 할머니의 경우가 그 좋은 예라 하겠다.
(여왕 마녀의 마법으로)쥐로 변한 주인공이 자기 할머니에게 영국에 사는 모든 마녀들을 없앨 계획을 털어놓자, 할머니는 즉시 "그럼 당장 시작하자. 우리는 단 1초도 낭비할 시간이 없어!"라는 반응을 보인다. 따라서 모든 어른들이 다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자신의 권위를 강요하는 어른들은 반드시 벌을 받는다. 이런 사실 때문에 로알드의 작품을 둘러싼 비평계의 반응은 늘 긍정과 부정, 양 갈래로 갈린다.

로알드 달의 작품이 청소년들에게 주는 긍정적 자극

많은 사람들은 로알드 달의 사회관이 독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한다. 사회에 대한 그의 견해는 청소년 자신들의 가치관을 아주 잘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에게 대단한 호소력을 발휘한다.

한 비평가에 따르면, 로알드 달이 청소년 독자들을 사로잡는 이유로, 첫째, 그는 아주 통쾌하고 슬레스틱한 유머뿐만 아니라 청소년들 세계에서만 통하는 농담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재미와 즐거움이 섞인 문장들을 사용했다는 데 있다.
둘째로, 청소년들은 종종 자신들을 사회화하려는 어른들에게 반감을 가지는데, 로알드 달의 작품들은 이런 어른들을 완전히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어, 청소년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신 분석학자인 에릭 에릭슨은 청소년들이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는 동안 부모에게서 달아나려 하고, 어른들의 권위에 반항하는 현상은 사회성 발달을 하기 시작하는 이 시기청소년기에 주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보았다.

로알드 달이 청소년층의 흥미를 끄는 로알드의 또 다른 사회관은 권선징악에 대한 믿음이다.
예를 들면 <BFG>에서 BFG에게 생포된 아이들을 잡아 먹는 거인은 구덩이에 던져져 갇히는데, 이 과정에서 거인들에게 친절을 배풀거나, 그들을 교화시키는 일 따위는 결코 없다.

악한 세력을 처벌하는 로알드 달의 방법이 청소년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로알드의 작품에서는 물리적 폭력이 악을 징계하는 합법적인 방법으로 용인된다는 점이다.
줄리아 메리지(Julia Mariage)가 <The School Libration>에서 언급했듯이 폭력이 어른들과 관련되면 아주 부정적인 것이 되지만, 아이들은 폭력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한다. 이러한 로알드 달의 이러한 관점은 청소년들의 가치관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며, 이를 통해 청소년들은 독서에 대한 자발적인 동기유발이 가능하게 된다.

로알드 달의 책들이 청소년들에게 미친 또 다른 긍정적 영향은 그의 저서가 낮은 자아 존중감과 싸워 나가면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그들에게 용기를 주었다는 점이다.
문학 평론가인 린다 타일러(Linda Taylor)는 가장 널리 알려진 로알드 달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위트 있고,, 혼자서도 뭐든 잘 해 나가며, 끈기 있고, 지적이며, 아이디어가 넘친다."고 했다.
특히나 마틸다와 소피 같은 여 주인공들은 어떤 권위에도 굴복하지 않는 독립적인 인물들이기 때문에, 소녀들은 이 주인공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그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마틸다는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자기 자신의 가치를 찾지 못하게 되는 현실을 거부하고 자신이 현실의 쓸모 없는 희생자가 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네 살 때 부모님이 책을 사 주지 않자, 공공 도서관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법을 터득했다.

로알드는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다분히 독립적인 인물들이 그들에게 강요되는 억압에 맞서 당당히 복수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마틸다는 부모님이 자기들과 함께 조국을 떠나자고 강요하자, 사랑하는 선생님과 함께 조국에 남는 것으로 부모님에게 복수한다.

그러나 로알드는 독립적이고, 아이디어가 넘치는 어린 영웅들도, 호의적인 어른들과 힘을 합치면 그들에게서 안락함과 후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것은 <마녀를 잡아라>에서 주인공이 자기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누군가 너를 사랑하는 동안에는 네가 누구든, 어떻게 보이든 상관없어."라고 말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어른에 대한 긍정적인 면은 청소년들을 책 속으로 깊이 끌어당기고, 삶의 희망을 준다. 그러나 로알드 달 작품 전반에 흐르는 어른들에 대한 지나칠 정도로 부정적인 묘사는 위에서 말한 긍정적인 측면을 무색하게 진다.


로알드 달 책에 대한 부정적 견해들

많은 사람들은 삶에 대한 로알드 달의 비현실적인 묘사 방법에 거부감을 가지기도 한다..
데이비드 리스(Davide Rees)는 <The Children Literature of in Education> 1988년 호에 쓴 기사에서 "로알드 달이 그리는 세계의 문제점은 흑백논리로 된 이분법적 세계라는 것과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로알드가 그의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삶은 그의 사회에 대한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로알드에 따르면 어른들은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범죄자로 그린다고 했다. 그러나 리스는 "대부분의 어른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아이들 세계로 들어간다. 그리고 보통 아이들은 소피가 만난 살점을 뜯어먹을 만큼 악한 어른들이나, 군대 지휘관들이나, <BFG>에 나오는 유치한 어른들을 만나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라고 로알드에게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만나는 어른들은 아주 다양한 전형을 이루고 있으며, 훨씬 덜 극단적이다. 그리고 로알드 달이 묘사하는 삶이 비현실적인 또 다른 이유는 마틸다가 좋아하는 하니 선생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선(善)과 가난이 늘 공존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구성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아닌 마르크스 경제 체제적인 경제적 관점을 찾아내기도 한다.

로알드의 책 속에 나타난 삶이 모든 게 불공정하고, 항상 선(善)이 승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의 책을 싫어하는 성인 독자들도 있다.
심지어는 <마녀를 잡아라>에서 생쥐로 변한 주인공이 "난 생쥐로 변한 게 그리 나쁘다는 생각은 안 든다. 그리고 그다지 화가 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인간이었을 때 보다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하면서 독자들도 그렇게 느끼기를 바란다. 이처럼 지나치게 낙담하지 않는 것은 예외적인 게 아니라 달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규범이 되었고, 그래서 독자들 역시 이것이 당연하다고 느껴야 하는 것이다.

로알드의 책은 청소년들에게 해를 끼친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에 대한 잘못된 묘사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로알드의 작품을 통해 권위적인 어른들은 자주 악의적인 복수의 희생자가 되고, <마녀를 잡아라>에서 주인공의 부모가 자동차 사고로 죽은 것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때로는 죄 없는 어른들도 매우 악의적으로 다루어진다.

비평가 미라 밀러 세드카(Myra Pollack Sadker)와 데이비드 밀러 세드카(David Miler Sadker)는 로알드 달의 작품에 나타난 연령차별과 어른들의 필요, 열망 그들의 의견은 전적으로 무의미하며, 하찮은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을 비판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이미 어른들에 대해 좋고, 싫음의 상반되는 감정이 대립하고 있는 이 시기의 청소년들에게, 어른들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로 가득 찬 로알드의 책은 어른들과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법을 사용하기(The Uses of Enchantment)>라는 책을 쓴 브루노 베텔하임(Bruno Bettelheim)은 이런 경향들을 언급하면서 로알드 달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어린이들에게 우리 삶이 옳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은 공격적이고, 비사교적이고, 이기적이고, 화내고, 근심하는 등 인간들 마음 속에 있는 본성 때문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지 않으며, 대신에 인간은 타고날 때부터 선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어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선한 것만은 아니고, 또 어떤 아이들은 어릴적부터 선하기보다는 악한 길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로알드 달은 인간은 선하다는 진리에 대한 반기를 들었고, 그 대문에 그의 문학은 성인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로알드 달의 작품에 대한 비판은 그가 작품에서 중요한 문제들을 어떻게 취급하고, 그것이 독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다. 이것은 90년대에 자주 인기 책 목록 9위를 기록한 <마녀를 잡아라>를 통해 드러난다. 이 책 속에서 로알드는 영국에서 성 차별주의자라는 이유로 페미니스트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으며, 마녀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로 미국의 마녀 협회에서도 많은 비난이 쏟아졌다.

이런 관점에서의 로알드 달에 대한 비평은 다음과 같은 진술을 통해 뒷받침할 수 있다. 마녀들은 모두 여자이고, 남자 마녀는 하나도 없다. 그런 반면 위의 문장은 잔인한 사람들은 모두 남자이다. 라는 말을 간과하고 잇기도 하다. 로알드 달은 사람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 중에는 사랑스러운 할머니도 나온다."라는 대답으로 일간하곤 했다. 할머니 캐릭터는 주인공이 "내겐 정말 훌륭한 할머니가 있기 때문에 난 지금도 여러분과 이야기할 수 있다."라고 말할 때, 할머니는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로알드 달은 사람들이 자기를 비난하는 것은 자기 이야기들에 나오는 할머니가 보여 주는 용기와 지혜를 생각하지 못하기 대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는 자신을 비난하는 어른들에게 신경 쓰기보다는 독자들을 재미있게 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했다.

로알드 달이 비판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그가 어린이들을 너무나 무시한다는 점이다. 이 사실은 딱지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마틸다를 통해 알 수 있다. <문학 평론가인 안나 플라우어즈(Anna A. Flowers)는 어린이를 무시하는 것은 복수나, 재미, 정의로운 것 등과는 달리 훌륭한 주제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마틸다>라는 책을 가지고 아동을 방치하고, 학대하는 것에 대해 아이들과 토론해 볼 수도 있겠지만, 비현실적이고, 어른들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로 가득 찬 로알드의 사회관이 청소년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보다는 오히려 해를 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은 로알드 책의 인기를 더욱 높이는 데 한 몫 했다.

어린 청소년들을 위한 로알드 달의 작품이 불러일으킨 논쟁은 배만이 넘는 십대들이 그의 책에 관심을 가지도록 했고, 독서에 눈을 뜨게 해 주었다. 젊은이들은 (사회적) 권위를 부정하고, 정의가 승리할 것이라는 데 대한 굳은 신념이 담긴 본질적으로는 그들과 동일한 로알드 달의 사회관이 담긴 책 속에서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로알드 달 작품의 인기를 증명하듯, 1997년 봄에 한 중학교 사서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그의 책들은 늘 제 주문 목록에 들어 있고, 아이들이 너무 많이 돌려 봐서 책이 다 해어질 정도다. 또 이 책은 늘 대출 예약이 되어 있는 책이기도 하다."부패한 권위에 대한 멸시, 불합리한 체제에 대한 불신 때문에 로알드 달의 책들은 청소년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다. 환타지와 유머스런 표현들이 절묘하게 숨어 있는 이 책은 청소년들에게 많은 희망을 안겨 주었으며, 청소년층에게 널리 읽히고, 많은 독자들을 확보함으로서 그는 작가로서 높은 성공을 이룩했다.

 

출처 북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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