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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비발~* > 2004년 7월 12일 오늘은

기쁜 일이 있었다. 세가지나. 이런 날은 나를 도와준,
내 곁에 있어준, 나를 믿어준, 나를 깨우쳐준 모두가 고맙다.
마음은? 그냥 얼떨떨하다.^^



 Los Machucambos -Pep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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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어디에도 > 반딧불의 묘

어디에도 님의 서재에서 보고 찾았다.

없다. 없다. 어! 어디 갔지..누굴 주었나... 토토로도 없고 원령공주도 없고 붉은돼지도 없고 귀를 기울이며도 없고 ..........눈에 띄는 것이라곤 폼포코너구리대전쟁이라는 것 뿐이다. 도대체 어딜갔지..다른 곳에 놓아 두었나!!!!!잊고 있었던 물건들을 찾아본다. 반딧불의 묘. 다시 보고 싶다.


기억을 더듬는데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들 어디로 갔지?????

 

 

 

 

 

 

어디에도님께 퍼온글...

작년이었나 내가 토토로에 환장한 것을 알고 난 친구 녀석이 그 영화를 구해서 시디로 구워주었다. 가끔씩 기분이 좀 안 좋을 때, 난 그 토토로 시디를 돌려 보면서 그 속의 음악처럼 둥당둥당 다시 기분이 좋아지는 걸 지켜보는 게 무척이나 좋다. 그런데 그 친구가 토토로를 주면서 몇 개 다른 영화도  같이 구워줬는데 매번 토토로만 보느라 바빠서 다른 것들은 그냥 방구석을 굴러다니도록 내버려 두고 있었다. 그러다 어제, 우연찮게 그 중의 하나를 골라서 보다가...... 정말 우느라고 죽는 줄 알았다. 제목은  <반딧불의 묘>.

 

 

 

 

 

 

 

 

 

 

 

 

 

 

 

 

 

 

 

 

 

 

대강의 줄거리 정도는 어찌어찌 주워 들어 알고 있었고 또 감독인 다카하시 이사오라는 사람이 미야자키 하야오와 같은 지브리 스투디오를 어쩌구 저쩌구 한 여차저차한 사이라고도 하니(잘 모르면서 아는 척을 해야하니 대충 얼버무리기 전법;;) 내 마음은 이미 예전부터 심각하게 반딧불의 묘를 원하고 있은 셈. 허나 함부로 그 시디를 돌려보지 못한 단 하나의 이유는, 주변에서 본 인간들마다 무지하게 슬퍼서 펑펑 울었다는 사실. 그래서,
나는 (우는게 겁나서)매번 시디 껍데기만 만지작만지작 망설이다가 에이, 다음에~ 하고는 늘상 토토로만 줄창 봤던건데, 어제 밤 실행에 옮긴 결과, 조울증의 주기 중 울의 상태에서 이 영화를 보지 않은 것을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어제는 편안한 조증 상태에서 밥먹고 술먹고 (둘다 얻어 먹어)기분이 좋았고 집에 와서 씻고 보니 웬일로 맥주도 냉장고에 얌전히 앉아 있어 혼자 캬캬 거리며 맥주를 따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이 영화를 척 돌리기 시작했는데.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안되어 곧장 희희낙락의 시간은 끝이 났고 그에 이어 바로 마시는 맥주가 그대로 눈을 통해 다시 빠져나오기라도 하는양 계속 줄줄줄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나중에는 너무 슬프고 가슴 아프고 안되었고 속상하고 해서 목에서 꺽걱 소리가 날 지경이었는데 약간의 술기운이 감정의 오바를 가져왔을 지언정, 이 영화는 아마 근 5년 아니 10년안에서라도 나를 가장 많이 울게 한 영화로 단숨에 기록되었다.

주인공은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다. 세이타는 중학생 정도의 나이, 여동생인 세츠코는 다섯 혹은 여섯 살 정도이다.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일본의 어디. 전쟁 때문에 엄마가 죽고 군인인 아빠도 죽고 결국 고아가 된 그들이 친척집에 맡겨졌다가 점차 냉대와 구박을 받고, 둘 만 방공호 속에서 지내면서 굶고 훔쳐먹고 굶고 하면서 겨우 살아가는, 죽는, 뭐 그런 이야기.

나는 전쟁의 가장 극단, 반대말은 아이들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전쟁의 광기와 끔찍함을 아직 세상이 뭔지 납득은 커녕 미처 다 알지도 못하는 나이의 아이들이 겪는다는 건 지독하게 잔인한 일이다. 허나, 그래서, 나는 영화나 드라마에 아이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잔뜩 긴장을 하고 실눈을 뜨게 된다. 흥, 얄팍할 수도 있어. 어린 아이가 주인공에다 전쟁이 배경이야?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웃다가 결국 맑고 큰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장면 보여주려고? 흥! 내가 이번엔 그렇게 순순히 같이 울어줄줄 아시나? 하는 같잖은 반항심으로 말이다.

물론 <반딧불의 묘>는 그딴 알수 없는 반항보다는 무조건적인 기대감과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는 상태로 보기 시작했지만, 솔직히 주변 인간들이 울었다는 말에 약간은 경계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초반부터 그딴 마음은 눈사람 녹듯 순식간에 사라지고 이미 나는 줄줄 울고 있었다. 그리고 한 번 시작된 눈물은 다 마셔버린 맥주병을 다시 채우고도 넘칠 만큼 멈추질 않았다. 함께 넘쳐버린 먹먹한 감정들은 밤사이 내내 나를 들쑤시고 떨게 만들었다.

새삼스레 전쟁의 무모함이니 잔혹함 같은 것들을 말하는 건 뭣도 모르는 내가 하기에는 너무나도 벅찬 일이고, 애써서 말하려 한다고 해도 어떤 단어로도 표현이 부족할 것이다. <반딧불의 묘>를 보고 그 배경이 된 전쟁에 관해서나, 스토리를 통해 나타내고자 한 감독의 의도나 덧붙여 많은 이들이 칭찬해마지않는 그 섬세한 동작과 표정의 표현에 관해서조차 나는 잘 모르기 때문에 뭐라고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내가 설사 잘 안다고 해도 그것에 관한 많은 정보를 지니고 있다고 해도, 나는 역시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을 진정으로 흔들고 움직일 수 있는 힘을 만났을 때, 진정으로 감.동.했을 때는  진짜 할 말이 없어진다. 그저, 부르르 떨면서 맘껏 울면 그 뿐. 그리고 그러한 순간 순간들이 주는 힘으로 어쩌면 계속
살아 갈 수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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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밀키웨이 > 크리스 반 알스버그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1949년 미국 미시간주의 Grand Rapids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젊은 시절 그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겠다는 꿈을 꾼 적은 없었습니다. 그보다는 법률가가 되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Ann Arbor에 있는 미시간 대학에 진학했으나 신입생으로서 교양 과목으로 이수한 그림 그리기에 오히려 흥미를 느껴 본격적으로 조각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1972년에는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학교에 진학하여 석사과정을 밟았으며 졸업 후 얼마 안 되어 뉴욕시립갤러리에서 그의 조각 작품들을 전시하는 기염을 토하며 일약 유명 조각가로서의 명성을 한 몸에 얻었습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그가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학교에 교편을 잡고부터 시내 반대쪽에 멀리 떨어져 있는 조각 작업실에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한 때부터였습니다.

그의 그림에서 무언가 이야기를 떠받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느낀 그의 아내와 친구이자, 그림책 작가인
데이비드 맥컬리(David Macauly)의 소개로 Houghton Mifflin사와 연결되어 어린이를 위한 작품들을 내놓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릴 적에 올챙이를 잡고, 썰매를 타고, 야구를 하며 놀던 기억이 어린이 책을 내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하는데 그의 최초의 작품인 "압둘 가사지의 정원" 으로부터 최근작인 "자수라(Zathura)"에 이르기까지 모두 16편의 작품들을 선보였으며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랑 받고 있습니다.

"주만지(Jumanji)"와 "북극으로 가는 급행열차(Polar Express)", "압둘 가사지의 정원"은 대성공과 함께 모두 칼데콧 상을 수상했으며 "주만지"는 1996년 영화로까지 만들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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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이파리 > 장님의 등불

장님의 등불

어느 나그네가 캄캄한 밤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낯선 길인데다 험하기 조차하여 걸어가기가 매우 힘이 들었습니다.


나그네가 겁먹은 채 더듬거리고 있는데 뜻밖에 앞쪽에서 등불이 반짝이는 게 보였습니다.


등불에 가까이 다가간 나그네는 깜짝 놀랐습니다.


등불을 든 사람이
장님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분이 왜 등불을 들고 나오셨습니까?"
"나는 등불이 필요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기에 들고 나왔지요."


장님은 이렇게 말하면서 나그네에게 갈 길을 자세히 가르쳐 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보다 남을 생각하는 장님의 마음은 등불보다 더 밝은 빛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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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앗간에 들렀다 오는길에 하늘을 보니, 달이 너무 예뻤다. 그래서 부랴부랴 집으로 뛰어들어가 디카를 들고 나왔다.(허둥지둥 뛰쳐 나가는 내 모습에 울 엄니는 뭔일 생긴줄 알고 뒤따라 나올 정도로...^^)

  그러나 그 사이 달은 구름 속을로 쏘~옥하니 들어가 버린... 뒤... ㅠ.ㅜ

  흰나리 대신 원추리를 찍었던 거처럼, 이번에는 둥그런 달 대신 호적하게 켜져있는 가로등을 찍었다. 야간설정을 안 한지라... 주위가 온통 쌔까맣게 나왔는데... 히힛~ 그래서 더 맘에 들어 버렸다.(밑에 왕관같은 것도... 잘 나왔고~*)

  책울성이 메세지님과 나의 이미지가 헛갈린다시니... 이 참에 이걸 이미지로... (^ㅠ^) 저 등불을 내 맘속에 심어두고 꺼지지 않게(아니 전기가 나가지 않게인가? ^^) 잘 관리해야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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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밀키웨이 > 귤


 

저는 결혼 8년차에 접어드는 남자인데요.
저는 한 3년전쯤에 이혼의 위기를 심각하게 겪었습니다.
그 심적 고통이야 경험하지 않으면 말로 못하죠...
저의 경우는 딱히 큰 원인은 없었고
주로 와이프 입에서 이혼하자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더군요..
그리고 저도 회사생활과 여러 집안일로 지쳐있던 때라 맞받아쳤구요.

순식간에 각방쓰고 말도 안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대화가 없으니 서로에 대한 불신은 갈수록 커갔구요..
사소한 일에도 서로가 밉게만 보이기 시작했죠..
그래서 암묵적으로 이혼의 타이밍만 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아들도 눈치가 있는지 언제부턴가 시무룩해지고
짜증도 잘내고 잘 울고 그러더군요..
그런 아이를 보면 아내는 더 화를 불같이 내더군요..
저도 마찬가지 였구요..
계속 싸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아이가 그러는 것이 우리 부부때문에 그런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요..
가끔 외박도 했네요..
그런데 바가지 긁을 때가 좋은 거라고 저에 대해 정내미가 떨어졌는지
외박하고 들어가도 신경도 안쓰더군요..
아무튼 아시겠지만 뱀이 자기꼬리를 먹어 들어가듯이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이었답니다.

그러기를 몇달..하루는 늦은 퇴근길에..
어떤 과일아주머니가 떨이라고 하면서 귤을 사달라고 간곡히 부탁하기에
남은 귤을 다 사서 집으로 들어갔답니다.
그리고 주방탁자에 올려놓고 욕실로 바로 들어가 씻고 나오는데,
와이프가 내가 사온 귤을 까먹고 있더군요..
몇개를 까먹더니 하는 말이
"귤이 참 맛있네"
하며 방으로 쓱 들어가더군요.
순간 제 머리를 쾅 치듯이 하나의 생각이 떠오르더군요..

아내는 결혼전부터 귤을 무척 좋아했다는 것하고,
결혼후 8년동안 내 손으로 귤을 한번도 사들고 들어간 적이 없었던 거죠..
알고는 있었지만 미처 생각치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그순간 먼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예전 연애할 때에 길가다가 아내는 귤좌판상이 보이면
꼭 1000원어치 사서 핸드백에 넣고
하나씩 사이좋게 까먹던 기억이 나더군요..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컥해져서 내 방으로 들어가 한참을 울었답니다.
시골집에 어쩌다 갈때는 귤을 박스채로 사들고 가는 내가 아내에게는 8년간이나
몇백원도 안하는 귤한개를 사주지 못 했다니 맘이 그렇게 아플수가 없었습니다.

결혼 후에 어느덧 나는 아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신경을 전혀
쓰지 않게되었다는걸 알게 됐죠..
아이문제와 내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말이죠..
반면 아내는 나를 위해 철마다 보약에 반찬 한 가지를 만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신경 많이 써 줬는데 말이죠..

그 며칠 후에도, 늦은 퇴근길에 보니 그 과일좌판상 아주머니가 보이더군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또 샀어요.. 그리고 저도 오다가 하나 까먹어 보았구요..
그런데 며칠전 아내 말대로 정말 맛있더군요..
그리고 들어와서 살짝 주방탁자에 올려놓았구요..
마찬가지로 씻고 나오는데 아내는 이미 몇 개 까먹었나 봅니다.

내가 묻지 않으면 말도 꺼내지 않던 아내가
" 이 귤 어디서 샀어요? "
" 응 전철입구 근처 좌판에서 "
" 귤이 참 맛있네 "
몇 달만에 아내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잠들지 않은 아이도 몇알 입에 넣어주구요...
그리고 직접 까서 아이 시켜서 저한테도 건네주는 아내를 보면서
식탁위에 무심히 귤을 던져놓은 내 모습과 또 한번 비교하게 되었고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뭔가 잃어버린 걸 찾은 듯 집안에 온기가 생겨남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아내가 주방에 나와 아침을 준비하고 있더군요...
보통 제가 아침 일찍 출근하느라 사이가 안 좋아진 이후로는 아침을 해 준 적이 없었는데..
그리고 그냥 갈려고 하는데, 아내가 날 잡더군요..
한 술만 뜨고 가라구요..

마지못해 첫술을 뜨는데, 목이 메여 밥이 도저히 안 넘어가더군요..
그리고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도 같이 울구요..
그리고 그동안 미안했다는 한 마디 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부끄러웠다고 할까요...

아내는 그렇게 작은 한 가지의 일로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작은일에도 감동받아 내게로 기대올수 있다는걸 몰랐던 나는
정말 바보 중에도 상바보가 아니었나 싶은 게 그간 아내에게 냉정하게 굴었던
내 자신이 후회스러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후, 우리부부의 위기는 시간은 좀 걸렸지만 잘 해결되었습니다. 그 뒤로도 가끔은 싸우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귤이던 무엇이든 우리사이에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주위를 둘러보면 아주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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