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탄생 - 우리가 찍은 낙인의 역사
수레카 데이비스 지음, 이영아 옮김 / 현암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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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피는 책이다. 즉, 괴물이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괴물로 존재한 것이 아니다. 인간들이 어떻게 규정하고 분류했는지에 따라 괴물이 된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은 괴물의 탄생이라는 제목이 있지만, 작은 한글 제목으로 붙인 '우리가 찍은 낙인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낙인. 그것은 다른 존재에게 붙이는 이름이지만, 이 이름은 분류를 통해 다른 존재를 가두는 역할을 한다. 즉 우리와 다른 존재, 그래서 우리와 어울릴 수 없는 존재. 그냥 어울릴 수 없는 존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안녕을 위협하는 존재, 그래서 괴물.


이런 괴물은 함께할 수 없다. 퇴치해야 한다. 즉 괴물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그 존재는 인류와 함께할 수 없고, 인류에게서 추방당해야 할 존재가 된다. 인류와 다른 존재를 괴물이라고 하는 것은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그 존재를 피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연결이 되고, 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 존재를 배척해야만 한다는 의식으로 굳어지게 되는 것. 즉 모르는 존재는 모르기 때문에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데, 그 두려움을 안고 그 존재와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그 존재를 배척하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괴물의 역사일 것이다.


이러한 괴물에는 비인간 존재들이 있다.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인간이 잘 모르기 때문에 두려움이 있고, 그래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벽을 쌓고 다른 존재들을 그 벽 너머로 보내고 가두는 역할을 한 것이 괴물이라고...


비인간 존재들을 괴물로 만든 역사를 추적하는 책이라고 제목을 보고는 생각했는데, 책장을 넘기면 곧 비인간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같은 인간을 비인간으로 취급하고, 그 결과 그러한 비인간 취급을 받는 인간들을 괴물로 이름짓고 배척하는 인간의 역사를 살피고 있는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저자는 괴물을 '괴물은 상상의 산물이다. 이 책에서 내가 사용하는 '괴물'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이 '정상' 범주의 건너편이나 바깥에 있다고 여기는 인간을 정의할 대 사용하는 모든 용어 -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중립적이든 -를 포함한다.'(9쪽)고 정의하고 있다.


즉 이 책은 권력을 쥔 집단들이 다른 집단들을 판단할 때 사용하는 기준을 '정상'이라고 보고, 자신들의 '정상' 범주에서 벗어났다고 보이는 다른 인간 집단들에게 '괴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배척한 역사를 살피고 있다.


그렇다면 권력을 쥔 집단은 어떤 집단인가? 바로 지역으로는 유럽, 종교로는 가톨릭(기독교), 인종(인종은 없다는 말이 있지만 통상 쓰고 있으니)으로는 백인이다. 이들을 '정상'에 놓고 다른 인간들을 '비정상'으로 보는데, 이런 '비정상' 인간들 중에서도 더 멀리 간 집단을 '괴물'로 이름 붙였다는 것.


자신들이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인간들, 또 자신들과는 다른 신체적 조건을 가진 인간들, 여기에 능력 면에서도 자신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인간들도 '비정상'의 범주에 들어가고, '괴물'로 여겼다는 것.


그러니 괴물이라는 말에는 권력을 쥔 집단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 다른 존재들을 규정짓고 배제했는지, 단순히 배제가 아니라 구경거리로 삼거나 또는 멸절시키기 위한 방법들을 사용했는지 등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지구에 살면서 자신들이 정한 '정상'의 범주 바깥에 있는 존재들을 '괴물'로 규정짓는 이유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다. 그들을 이해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들만이 정상이고, 자신들과 다른 존재들은 비정상이라고 하는 집단에게, 지구 밖의 존재들은 말할 것도 없다. 한때 외계 존재가 등장하는 영화들을 보면 외계 존재를 상당히 위협적인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표현하지 않았던가. 물론 인간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외계 존재를 그린 영화도 있지만...


대체로 외계 존재는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그것이 문제라는 인식을 지닌 것은 지구에서 다양한 인간들을 규정짓고 범주화해서 벽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잘못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데...


인권이 모든 인간에게 적용이 된다면, 과연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까지 나아가야 하는데, 현재는 인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집단들은 모두 인간, 즉 인권을 지닌 존재로 인정하고 있으니... 여기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이렇게 차별의 역사를 살피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괴물이라는 이름을 지닌 존재를 흥미 위주로 찾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괴물로 만들고 억압하고 배척했던 역사를 살핌으로써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존재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우리의 기준을 벗어난 존재, 또는 우리의 기존 관점으로는 판단하기 힘든 존재들, 경계에 속한 존재, 경계 밖의 존재들과 함께해야 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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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사랑하는 '나'


  당연하지 않은가. 자신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을, 누구를 사랑한다는 말인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존재도 사랑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나를 지나치게 사랑하면 다른 존재들은 나로 인해 가려진다.

  

  아니, 다른 존재들은 나에게 들러붙는 방해물이 된다. 거추장스럽다고 여긴다. 


  그런 상태. 그러니 나를 사랑하는 나는, 적당히 나를 사랑해야 한다.


'나'에 집착하면 안 된다. '나'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은 '나'에게 집착하지 않는다. 그래야 '나'를 사랑할 수 있다. 아니 다른 존재를 사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지나치면 어떻게 될까? 서효인 시를 읽으면서 나를 지나치게 사랑하는 일이 '질투'일 수도 있음을 생각한다.


누군가를 좋아해서 질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좋아해서 생기는 감정, 즉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 그러한 욕망이 질투로 나타나는 것.


다른 존재가 지니고 있는 것을 인정하는 마음에 앞서, 그것을 자신이 지니지 못했다는 결핍으로 느끼는 것. 그것이 질투 아닐까.


그런 자신을 보면서, 결국 질투는 자신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싸움일 수밖에 없음을... 하여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남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 그렇게 남을 사랑한다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것. 


그 보이는 것들을 다른 사람의 눈에도 보이게 하는 것. 시인... 시... 그것이 바로 시 아닐까 하는 생각.  



      로맨스


  질투는 드라마에서처럼

  누군가를 좋아해서 생기는 감정은 아니다 그것은

  제가 저를 너무나 좋아해서 생기는 습기 같은 것이라

  해수욕장의 발바닥이다 털어도 털어도 모래가 붙는다

  도넛 방석 위에 앉아 불 꺼진 모니터를 바라보면

  거기에 진짜 내가 있다 늠름한 표정으로 나는

  내가 좋아서 미치겠는 날도 많은데 남은

  나를 좋아해 미칠 수는 없겠지 오늘은

  동료가 어디 심사를 맡게 되었다고 하고 오늘은

  후배가 어디 상을 받게 되었다고 하고 오늘은 

  친구가 어디 해외에 초청되었다고 하고 오늘은

  그 녀석이 저놈이 그딴 새끼가 오늘은

  습도가 높구나 불쾌지수가 깊고 푸르고 오늘도

  멍청한 바다처럼 출렁이는 뱃살 위의 욕심에

  멀미한다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 나는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변명하고 토하고

  책상 위에 앉아 내 이름을 검색하고

  빌어먹을 동명이인들 같은 직군들 또래들 심사위원들 수상자들 주인공들 나는 내가 좋아서 미치겠는데 남들은 괴이쩍게 평온하고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안 그런 척하는데 나는

  나 때문에 괴롭고 나는

  나를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고

  늠름한 표정으로 슬리퍼를 털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화장실 간다

  오줌을 누는데 보이는 건 불룩한 아랫배가 전부

  이런 나라도 사랑할 수 있겠니,

  대답 대신 쪼르륵

  내려가는 소리 들린다

  푸르고 깊은 몸 곳곳에 해변의 모래가 들러붙어서

  사무실에까지 왔다 질투는

  로맨스 같은 구석이 있다 오늘은

  예고편에 불과하고 내일은 동료와 친구와 선후배와 옆자리와 뒷자리와 동명이인과 같은 직군과 비슷한 또래와 노인과 젊은이와 이토록 연안에서 깊이 추잡스럽겠지만 극적이게도

  바깥은 평온하다. 그것이 나를 더 미치게 하는 줄도 모르고


서효인, 나는 나를 사랑해서 나를 혐오하고, 문학동네. 2022년. 1판 2쇄. 96-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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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의 목소리 -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꺾이지 않는 마음, 현장의 이야기
모사브 아부 토하 외 지음, 파티마 부토 외 엮음, 이나현 옮김 / 돌베개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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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들이 처한 현실을 들려주는 소리가 여기에 있다. 들어야 한다. 그리고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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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외주 -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출현
홍진기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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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外注)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주로 경제활동에 관련되어 많이 쓰는 용어다. 자신들이 처리하지 않고 다른 곳에 맡겨 일처리는 하는 경우를 외주 준다고 하니...


이때 외주는 직접 제품을 생산하는 일을 맡기는 경우도 있지만, 일을 다른 조직의 사람에게 맡기는 것도 포함이 된다. 


현대에 와서 모든 일을 자신들이 다 처리할 수는 없기에 외주를 주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런 외주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먼저 제품을 외주로 주는 경우, 자신들이 생산할 능력이 되지 못하거나 또는 외주 주는 것이 더 비용이 싸기에 설비나 노동자들에게 투자를 하지 않는다. 이때 외주 업체가 생산하지 않겠다고 하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


제품이 아니라 행위, 즉 일을 외주 줄 때도 문제가 발생한다. 자신들이 처리하지 않고 외부의 조직에게 일을 맡기기 때문에, 외부 조직이 일을 거부할 때 어려움에 처하기도 한다. 


이렇게 외주는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비용 면에서나 또는 효율 면에서 외부에 맡기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여길 때 발생한다. 그만큼 위험도 감수해야 하지만, 모든 것을 외주로 해결하려 했을 때 결국에는 자신들에게 손해도 돌아오기도 한다.


내부에서 기본적인 것을 처리할 수 있는 상황에서 부차적인 외주로 했을 때는 외주 업체에 문제가 생겼더라도 외주를 준 업체에는 문제가 그리 심각해지지 않지만, 핵심적인 부분까지 외주 주었을 때 외주 업체에 문제가 생기면 외주를 준 업체 역시 심대한 타격을 받는다.


이것이 외주가 지닌 문제다. 그런데, 인간이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사고(思考)-생각하는 분야를 인공지능에게 외주를 준다.


당장은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런데 외주에 의존하다 보면 본질을 잃을 수가 있다. 중심을 잃었을 때 생기는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가 없다. 이러한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 바로 이 책이다.


저자는 어느 날, 학생들의 보고서가 글은 좋아졌는데, 이상하게 사람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많은 학생들이, 아니 대다수의 학생들이 인공지능을 통해서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말이 된다.


인공지능에게 맡겨 제출한 보고서. 매끄럽고 내용도 잘 정리가 되었을 테고,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도 거의 없을 텐데, 그런데... 정작 중요한 그 보고서를 작성한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보고서가 아무리 형식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사람이 직접 작성했던 예전에는 그 나름대로의 개성이 드러났을 것이다. 자신이 고민하고 정리한 내용들이 보고서에 담겼을 것이고... 하지만 이제는 인공지능에게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옮겨 적는 것을 넘어, 보고서까지 인공지능이 쓰게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천편일률적인 보고서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더 이상의 고민을 하지 않는다. 고민을 하지 않는 인간들, 다른 말로 하면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출현(이 책의 작은 제목이기도 하다)이 대세가 된 것이 바로 현대다.


생각하지 않는 인간, 사고(생각)를 인공지능에게 외주를 주는 인간. 편리하고 빠르다고 인공지능에게 의존하는 인간. 처음엔 편리하고 좋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영원히 지낼 수는 없다. 사고하지 않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는데, 인간의 기본 특징이 바로 생각에 있는데, 이러한 생각을 외주 주고 있다면, 결국 자신들의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인간이라면 그 뒤의 삶은 어떨까?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기 이전에 인간 스스로 통제권을 인공지능에게 넘기는 것이 아닐까. 인간을 위해서 인공지능을 이용한다고 했던 것이 인간의 능력을 없애는 결과를 낳는다는 우려. 이것이 바로 '사고외주'라고 제목을 단 이 책의 고민 아닐까.


인공지능을 없앨 수는 없는 시대가 되었으니, 그렇다면 인공지능을 더 잘 활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해야 하는 시대. 인공지능에게 사고를 외주 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를 보충하는 역할로 인공지능을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멈춤이 필요하다고... 빠름 속에서 쉬지 않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멈춰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경험을 통해서 실패하고 고민하는 시간들을 지녀야 한다고. 이러한 일들이 불편할 수 있지만 불편함을 감수해야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 수 있는 '판단의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고 한다.


외주로 인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심심치 않게 언론을 통해서 만나왔다. 그렇다면 이를 우리의 사고로 확장하면, 과연 우리의 사고를 외주 주는 것이 바람직할까? 외주를 주더라도 본질을 유지한 상태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한정해야 한다는 것을 그동안 역사를 통해서 보아왔지 않은가.


인공지능 시대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지녀야 할 기본적인 가치들, 그것들마저 외주 주고 의존하면 안 된다.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 판단하는 능력. 그리고 관계 맺기를 통한 다양한 경험, 때때로 멈출 줄 아는 태도를 지닌 인간, 그런 인간이 현대 인공지능 시대에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는 사람일 것이다.


짧지만 저자의 고민이 잘 드러난 책이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모든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 그런 자세 역시 사고외주일 테니... 이 책에서 제기한 문제를 중심으로, 현대 사회를 살펴보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저자는 직접 글을 써보라고 하는데... 저자의 권유는 어렵지 않다. 어쩌면 어렵지 않아서 가장 어려울 수도 있는데... 키보드를 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글을 써보는 것.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을 보태고 싶습니다. 이 책의 어느 페이지든, 여백이든, 책의 맨 뒤 빈자리든 좋습니다.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것 아무것이나 펜으로 직접 적어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키보드로 옮기지 마시고, AI에게 다듬어달라 하지 마시고, 그저 펜으로요. 글씨가 삐뚤어져도 좋고, 문장이 미완성이어도 좋고, 단어 한 개여도 좋습니다.' (149-150쪽)


손으로 무언가를 쓰는 일,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이 사고를 외주 주지 않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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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어의 발견
김미형 지음 / 사람in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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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당연한 말. 차별하는 말 쓰지 말자.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내가 무심코 한 말이 차별하는 말이었음을 알게 될 때가 있으니... 알게 되면 사과하고 고쳐야 하는데, 어떨 때는 시기를 놓치기도 하니. 


그 말이 차별하는 말이었음을 깨달았다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게 왜 차별하는 말이야 하고 반문하고, 수긍하지 않을 때도 있으니, 너무도 당연한 차별하는 말을 하지 말자고 하는 말이 그리 쉬운 말은 아니다.


어쩌면 세상 이치가 그럴지도 모른다. 당연한 일. 그 당연한 일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때 사회가 혼란을 겪게 되지 않을까. 특히 사회에서 나름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차별하는 말을 쓴다면, 그 사회에서 차별이 없어지기는 힘들어질 테다.


차별하는 말 중에, 요즘 우리 사회에 만연한 말들이 있는데, 바로 '멸칭'이라고 하는 말들이 아닐까 싶다. 멸칭, 남을 멸시하는 말. 멸칭 자체가 차별하는 말인데... 그런 멸칭을 아무렇지도 않게 언론에 내보내는 일이 잦고 있으니...


특히 개인방송이 많아지면서 이러한 멸칭으로 부르면서 자신들의 편을 만들어가는 일이 너무도 많아지고 있음이 문제인데, 멸칭을 쓰지 말자면서 자신들이 다시 멸칭을 쓰는.


개인방송뿐이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이러한 멸칭이 공공연하게 쓰이고 있으니, 국민을 대표하고 대변한다는 사람들이 아무 생각없이(아니, 이들은 분명 의도적으로 이러한 멸칭을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멸칭을 함부로 쓰는 모습을 보면, 차별 없는 세상이 쉽게 만들어질 수 없겠단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뜨끔하기도 했다. 나 역시 별다른 생각 없이 차별하는 말을 쓰곤 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으니...


말을 할 때 한 번 더 생각하는 자세를 지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았구나, 혹 내가 차별하는 말을 쓰면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지적했으면 나는 고쳤을까? 아니면 기분 나빠했을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읽은 책인데...


우리 사회 곳곳에서 쓰이고 있는 차별하는 말에 대해서 살피고, 그러한 말을 쓰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책이다. 내가 쓰고 있는 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책이기도 하고.


저자는 차별하는 말을 '의미성, 의도성, 맥락'이라는 세 영역을 통해서 살피고 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때는 차별하는 말이 되지 않지만, 어떤 경우에는 차별하는 말이 되고, 또 차별의 의미가 담겨 있지 않던 말이 맥락에 따라서 차별하는 말이 될 수도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니 말을 할 때 내 의도는... 하고 자신의 말을 변명하려고만 해서는 안 됨을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다.


저자의 말처럼 차별하는 말은 배제하는 말이다. 상대를 용인하지 않는 말이다. 나와 같은 대등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 태도다. 그러니 이러한 말이 사회에 퍼져 있다는 것은 평등한 사회가 아니라 누군가를 억압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그 억압이 말로 나타나고, 말로 나타나는 일이 잦으면 태도에 스며들어 고치기 힘들어진다. 지금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말들의 칼을 보라. 이들의 말은 상대를 대등하게 인정하는 말이 아니라 상대를 밀어내는, 상대를 찍어누르려 하는 말이다.


그런 말들이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니, 다른 분야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차별하는 말, 멸시하는 말들이 넘쳐나는 사회는 결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없다.


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회가 될 수 없다. 그런 사회에서는 갈등이 심해질 수밖에 없고, 오로지 나와 우리만이 중요하고, 상대는 없어져야 할 아니면 꾹꾹 눌러서 일어나지 못하게 해야 할 존재가 된다.


그것이 차별하는 말이 지닌 위험성이다. 말이 곧 행동을 낳고, 그러한 행동이 그 사회를 만들어가니 말이다.


하여 내 말이 남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 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또한 상대를 나와 같은 존재로 인정하는, 나를 상대의 처지에 놓아보는 상상력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과 함께 살아가는 태도가 필요하다.


'차별어의 발견'은 바로 '상대를 발견'하는 일이다. 낯선 존재를 나와 같은 존재로 인식하는 일. 이 처음이 바로 내 말에 담겨 있는 차별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발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쓰지 않도록 하는 것.


말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소통의 역할을 제대로 하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차별하는 말을 하지 않는 데서 시작한다.


저자가 들고 있는 많은 차별어들, 우리 사회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 말들이고, 쓰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 말들이다. 이 말들을 쓰지 않는 데서부터 소통이 잘되는 사회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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