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제목은 맨 처음의 시 '가시'와 맨 끝의 시 '황토'와 연결된다. 제목에서처럼 시집은 기역부터 히읗까지 가나다 순으로 시가 수록되어 있다.


  관심 있는 시를 찾으려면 사전 순서를 생각하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시집이기도 한데... 무엇보다도 이 시집을 읽으면 어떤 시를 읽어도 마음이 편안해 진다.


  봄을 맞아 식물들이 이제 막 새순을 내기 시작했을 때 그 성장을 돕는 봄비가 내린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땅을, 식물을, 그리고 우리들 마음을 촉촉히 적셔주는 봄비. 그런 봄비와 같은 시집이 바로 이 시집이다. 


어느 시를 읽어도 마음이 촉촉해진다. 좋다. 더 말이 필요 없는 시집이기도 하다. 세상이 너무도 각박해지고 있는데, 전쟁으로 서로를 죽이고 파괴하고, 여기에 '부수적 피해'라고 할 수밖에 없는 - 군인이나 전쟁과 관련이 없는 인간들이 의도적이지 않게 피해를 입는 것을 부수적 피해라고 하지만, 사실 부수적 피해는 인간이 아닌 존재들이 더 많이 입고 있다 -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들도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는 현 상황.


누구를 비난해야 하는가? 명확한데... 어떤 이유로든 전쟁은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 누군가는 전쟁이 아니라 군사 작전이라고 하던데, 그래서 의회의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하던데... 이것이 군사 작전이라면 도대체 전쟁은 무엇인가?


이 군사 작전으로 인해 전세계가 피해를 입고 있는데, 그 힘 있는 자에게 책임을 지울 수 있는 사람, 나라가 없는 현실. 


세계화 시대가 끝났음을, 우리는 지구촌 주민들이 아니라 결국은 각자의 나라에 속한 국민임을 처절하게 깨닫게 하고 있는 요즈음... 김용만 시인의 이 시집을 읽다가, 그 힘 있는 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구절이 있다.


'힘센 짐승이라고 / 지 맘대로 내걸면 폭력 아닌가 / 집 찾아드는 오만 것들 / 자기 집이라 하면 안 되는가' ('밤마다 내려오는 별은 어쩌고' 중에서. 47쪽)


무얼 내거는가? 그것은 집의 이름, 일명 '당호'를 지으라는 사람들의 말로 자기 집임을 선언하라는 말에 시인이 하는 말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MAGA'라는 말에 들어 있는 폭력을 생각하게 되는데, 지구촌이 아니라 자기 나라만을 생각하는, 다른 사람들의 이동을 막는 그런 행위. 시인으로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될 행위를 당당하게 외치는 그 힘센 사람.


하지만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을 들려주고 싶은 그런 힘센 사람에게, 시인의 이 시를 읽어보라고 하면 그는 읽을까? 읽기는, 이런 시를 읽을 사람이었다면 그런 짓을 하지 않겠지.


이렇게 시집 어느 쪽을 펼쳐도 좋다. 봄을 맞아 이런 구절 '가을은 빗속에 떠나고 / 봄은 빗속에 오더라'('먼 젖은 산이'에서. 39쪽)를 통해서 봄과 가을에 오는 비가 지닌 의미를 생각하기도 하고.


'일기'란 시를 보면 그동안 내가 얼마나 '인간' 중심적인 생각을 하고 살았는지, '나'만을 중심에 놓고 다른 것들을 밀어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하는 반성을 하기도 한다.


'이따만한 / 대보름달 / 앞산 위에 걸렸는데 // 오늘 아무 일도 없었다고 // 하마터면 쓸 뻔했다'('일기' 전문. 88쪽)


그렇지. 이 세상에 온 존재는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살 수밖에 없고, 세상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때는 없다는 것. 주위를 살피는 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는 눈,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시이기도 하고.


이렇게 인간은 인간만으로 존재하지 않고 함께 어울리며 살아간다는 것을. '사람의 일'이란 시를 보면 부끄러워진다. 우리는 진정 다른 존재들과 함께하고 있는가?


'나무의 일은 하늘을 향해 바로 서는 것이고 / 땅의 일은 수평을 이루는 것이다 / 사람의 일은 수평과 수직을 지키는 삶이다 / 쉽지만 사람은 안 한다 // 나무와 땅을 괴롭힐 뿐 // 시멘트 매꼼히 발라버릴 뿐' ('사람의 일' 전문. 57쪽)


한글 창제 원리 중에 모음의 원리가 '천지인'이라고 했는데, 하늘과 땅, 그리고 둘의 사이에 있는 인간. 이러한 인간과 비슷하게 수직으로 서서 땅과 하늘을 연결해 주고 있는 나무. 그러한 나무를 받쳐주고 있는 땅.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이들을 지키는 일. 이들을 파괴하지 않도록 하는 일. 시인은 쉽다고 이야기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전혀 쉽지 않은 일. 생각을, 생활 방식을 바꿔야 하는 일. 


하지만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이 지구에서 인간이 살기는 힘들어진다고 하니, 이제 우리의 생활 방식을 바꿔야겠지. 그런 점을 생각하게 하는 시이기도 했는데...


봄비처럼 다가온 시집. 시들... 메말라가던 마음이 조금은 촉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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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단
정보라 지음 / 상상스퀘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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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던 2024년 12월 3일. 선진국이 되었다고 우리가 일구었던 성과들에 자부심을 가지던 때.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 면에서도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자긍심을 지니고 있을 때, 그러한 자부심, 자긍심을 한 번에 무너뜨린 사건.


그건 사건이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 천만다행으로 일회성 사건으로 그치고 말았으니 망정이니, 2차, 3차 사건이 일어났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이 소설은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비상계엄 포고문에 나오는 '처단한다'는 말. 도대체 누가 누구를 처단한다는 말인가? 비상계엄을 선포한 자들은 자신들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처단하려 했다.


하지만 정작 처단되어야 할 존재는 자신들임을 그들만 모르고 있었는지도. 무속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돌고 있었는데, 진정 무속을 믿었다면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무속은 '인과응보'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인과응보'란 결국'권선징악'아닌가. 


악을 아무리 선으로 포장하려 해도 악은 악으로 밝혀진다. 이것이 권선징악, 인과응보다. 그리고 이 명제는 무속에서 거부할 수 없는 명제다. 원한이 쌓인 존재를 인정하고, 그 원한을 해원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무속 아닌가.


그런데 무속을 믿는다는 자들이 원한을 쌓는다고? 이런 얼토당토않은 짓을 하다니... 무속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는 성공 이전에 이미 실패를 안고 있는 행위인데, 그것을 실행하다니.


이미 경제로 선진국, 문화로도 선진국이 된 이 나라 국민들이 가만 있을 리 없었고, 광장으로 나와 비상계엄이 실패할 수밖에 없도록 했고, 주모자는 탄핵으로 법의 심판을 받게 했으니, 이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은 그런 부당함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다시 소설은 2차 계엄으로 시작한다. 1차 계엄의 실패를 경험한 자들은 2차 계엄 때 국회를 무력으로 진압한다.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서술. '총소리가 울렸다. 피가 튀었다', '총을 쏘았다','계엄군은 발포했다', '계엄군이 사격했다'와 같은 말들. 실제로 2차 계엄이 성공했다면 소설 속 일들이 현실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감정이 없는 행위를 하는 존재들에 맞선 사람들은 연대를 한다. 그들은 서로를 돕고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준다. 고공농성하는 노동자들에 연대하는 농민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 자신도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지만 더한 사람을 보살피고 도움을 주려는 간호사 등등.


비상계엄에 맞서는 이러한 연대를 통해 정작 '처단되어야' 할 존재는 바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이를 추종하는 자들임을 소설은 보여준다. 


그들의 비인간성에 비해 끝까지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마지막 부분에서 죽은 사람들이 계엄군의 머리에, 어깨에, 다리에, 팔에 매달려 결국 그들을 포위하는 모습을 서술함으로써 이미 그들이 처단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법 심판 전에 이미 그들은 그들이 믿던 무속에 의해서도 처단되고 있는 것이다. 


'죽은 자들이 일어섰다.

 반란군은 포위되었다. 자신이 목숨 걸고 지켰어야 할 국가와 국민에 항적한 반란군은 피해자들에게 소리 없이 산 채로 먹혔다.

 그리고 죽은 자들은 반란군이 남긴 총탄과 무기를 들고 원한을 풀기 위해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139-140쪽)


다행이다. 우리 사회는 여기까지 가지 않았으니... 작가가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우리 국민이 막았기 때문 아니겠는가. 만약 막지 못했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으리라.


그야말로 처단 당해야 할 자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처단 당하는' 비극을 겪었으리라. 그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아야 함을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비상계엄 말고도 우리 사회가 겪었던 비극들이 소설에 등장한다. 그들이 겪은 비극도 막을 수 있었던 것이었음을, 그러한 비극을 초래한 책임자들에게 적절한 책임을 묻지 못했음을, 그것이 비상계엄을 초래한 것 이유가 되었음을 생각하게 한다.


비상계엄 전에도 고통을 겪던 이들이 이 소설에 주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비상계엄으로 더한 고통을 겪게 된다. 비상계엄을 이겨낸 우리는 이제 이들이 고통받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는 점을 말해준다고 생각하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작가는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사람들 역시 비상계엄 상황에서는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여러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서술을 통해 비상계엄은 결코 옹호되어서는 안 된다는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만약 2차 비상계엄까지 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에서 시작한 이 소설은, 그러한 일이 발생했다면 끔찍한 재난이 벌어졌을 것이라는 것, 하지만 그들은 결국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결국 처단당하는 것은 그들이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따르게 된다는 점을 소설을 통해서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 제목이 '처단'이다. 누가 처단되어야 할지 읽어보라. 처단되어야 할 대상이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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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디스 걸
버지니아 로버츠 주프레 지음, 김나연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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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를, 아니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의 주모자 이름, 엡스타인. 단순한 성추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다. 단순한 성추문이 아니라 권력과 연계된 권력형 범죄다.


돈과 권력을 쥐고 어린 여성들을 유인해 착취하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저 자신이 이용할 만한 또는 자신을 보호해줄 만한 사람에게 그들을 넘기는 행위를 버젓이 한 인물. 


파렴치한이라는 말로는 부족하고, 극악한 범죄자라고 해야 할 인물인데, 이 인물이 처벌받은 것은 그가 온갖 짓들을 하고 난 뒤였으니...


처벌을 피하고 피하다 결정적인 증인들이 나서자 결국 감옥에 가고 만 엡스타인, 또 그 조력자인 맥스웰. 하지만 이들이 저지른 짓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받은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상처는 평생을 간다. 언제 어디서든 튀어나와 삶을 힘들게 한다. 왜 그랬냐고, 의지로 벗어날 수 있지 않았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극도의 무력감과 공포감에 빠져 있는 사람은 어떤 행동도 할 수가 없다. 그들이 시키는 행동만 할 수 있을 뿐.


극도의 공포감에 싸이게 되면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다. 몸이 굳어버린 듯, 발이 땅에 붙어버린 듯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 엡스타인과 맥스웰은 어린 소녀들을 또 여성들을 그러한 상태에 빠뜨린다. 그런 불안에 싸인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이들은 그렇게 사람을 조종한다. 사람을 이용한다. 자신들의 돈과 권력을 이용해서. 여기에 권력을 지닌 자들과의 친분을 과시함으로써 자기를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함을 보여준다. 이런 사람이 바로 엡스타인이었다.


오로지 자신만 있는 사람... 남의 고통을 오히려 자신의 쾌감으로 바꾸는 사람. 그런 사람은 반성을 할 줄 모른다. 그가 감옥에서 죽었다고 하는데 자살로 판정받고 있지만 자살이라면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서가 아니라 감옥에 있는 자기 처지를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일 테니... 이래저래 그는 죽어서까지도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엡스타인에게 피해를 입었던 사람 중 한 사람인 버지니아 로버츠 주프레. 어린 나이에 엡스타인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고, 그를 벗어나지 못해 세계 곳곳을 다니며 온갖 인간들에게 성노예처럼 부려졌던 사람.


탈출할 수 있지 않았냐고? 엡스타인이 물리력으로 감금하지는 않았다고, 돈을 지불하지 않았느냐고, 그러니 당신은 성노예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그런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 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쉽게 하는 말이지만, 당시 상황에서 버지니아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고 해야 한다.


집에도 갈 수 없는,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던 사람이 어떻게 그에게서 벗어나 자신만의 생활을 할 수 있었겠는가. 버지니아가 할 수 있는 일은 약물로 도피하는 것이었다. 순간의 고통을 잊기 위해서.


하지만 순간의 고통은 잊을 수 있을지 몰라도 고통은 지속되고, 자신의 삶이 그렇게 되면 안 된다는 생각도 강해진다. 하여 탈출을 시도하고, 여기에 조력자가 되는 남편 로비를 만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새로운 삶을 살다가 엡스타인에 대한 소식을 듣고, 딸이 태어나자 딸이 살아갈 세상은 자신이 살아온 세상처럼, 아니 엡스타인과 같은 사람이 계속 처벌받지 않고 살아가면 안 된다는 마음을 먹고 적극적으로 고발을 하고 증언을 하기 시작한다.


자신에 대한 비난, 가족에 대한 위협에도 정의를 위해 굴복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싸우게 되는 버지니아. 결국 버지니아의 증언은 신빙성이 있음이 확인되고, 수많은 다른 증인들이 나타남으로써 엡스타인과 맥스웰은 법의 심판을 받는다.


버지니아는 법인을 만들고 피해자가 더이상 고통받지 않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려고 한다는 것으로 이 회고록은 끝을 맺는다.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회고록은 '딸-죄수-생존자-전사'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딸' 한 가정의 자식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성추행을 경험하고 삶이 왜곡되기 시작하는 버지니아.


버티기 힘들었을 때 도움을 준다는 명목으로 다가온 맥스웰과 엡스타인. 그러나 이들은 버지니아를 죄수처럼 다루고, 버지니아는 생존자가 되기 위해 그들이 시키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이 생존이 아님을 깨닫고, 결국 그들에게서 벗어나 호주로 가서 새 삶을 산다.


새로운 삶. 과거를 잊고 사는 삶. 하지만 트라우마는 언제 어디서든 나타난다. 여기에 언론에 보이는 가해자들의 얼굴은 버지니아를 더욱 힘들게 한다. 딸이 태어나자, 이대로 생활하면 안 된다는, 딸에게는 더 나은 세상이 되게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적극적으로 가해자들과 싸우는 전사가 된다.


이런 내용... 솔직히 읽기 힘든 책이다. 이런 경험을 내놓기까지 버지니아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자신의 상처를 다시 반추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해묵은 상처를 다시 후벼파는 일이 되었을 텐데도, 정의를 위해서 그 상처를 다시 드러내 보인 버지니아의 용기.


끝났을까? 아니, 아직도 진행 중이지 않나. 이런 가해자들이 여전히 처벌받지 않고 지내고 있지 않나. 책의 끝부분에서 머리가 쭈뼛해지는 내용은 이 회고록에서도 가해자들 중 몇몇의 이름을 버지니아는 밝히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들이 어떻게 보복을 할지 두렵기 때문인데... 그들은 이 사회에서 막강한 권력과 재력을 지니고 있고, 그것을 이용해서 피해자를, 피해자의 가족들까지도 더욱 힘들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데... 이것이 남 나라, 남의 이야기일까?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났지 않은가.


그러니 읽기 힘든 내용일 수밖에 없다. 가해자가 처벌받고 피해자가 위로와 공감을 얻어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행복한 결말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니까.


그럼에도 버지니아는 자신의 상처를 다시 내보였다. 자신이 힘들지라도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게 해야 하니까. 가해자가 버젓이 판치는 세상이 되면 안 되니까. 이 책을 쓴 이유가 그것이라고 하니. 긴 말 필요없다. 이 책을 읽어보면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는 일을 하는 작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알 수 있으니...


버지니아는 이런 세상을 꿈꾼다.


'나는 꿈꾼다. 약탈자들이 비호받는 대신 죗값을 치르고 상처 입은 이들이 수치심 속에 숨는 대신 따뜻한 연민으로 보호받는 세상, 막강한 권력을 쥔 자들도 여느 누구와 다름없이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는 세상을.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큰 낙인이 찍히는 세상, 착취의 늪에 빠졌던 이들이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시간이 얼마나 흘렀든 자신을 망가뜨린 이들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세상을 갈망한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아직 우리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

고로 이 책이 우리를 그토록 간절히 바라는 현실로 단 한 걸음이나마 더 다가서게 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단 하나의 삶이라도 지켜낼 수 있다면, 나는 나의 소명을 다한 셈이다.'(653쪽)


우리도 버지니아처럼 자신의 상처를 드러냄으로써 세상의 정의를 실현하기를 소망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로 인해서 우리 세상은 조금씩 좋은 쪽으로 변해왔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겠지.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어 정의를 실천하려 한 버지니아. 그러나 버지니아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비록 버지니아는 갔지만 그가 바라던 것은 사라지지 않고 이 책을 통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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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가와 아리스에게 바치는 일곱 가지 수수께끼
아오사키 유고 외 지음, 김선영 옮김 / 리드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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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5주년 기념 헌정 추리소설집. 이 소설집을 읽으면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작품을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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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랭귀지 Photo Language - 크리에이티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김용호 지음 / 몽스북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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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 사진을 주로 찍었던 작가라고 한다. 그가 작업한 내용을 책으로 정리했는데, 단순히 이윤을 위해서 일했다고는 보기 힘들다.


이윤을 위해서 일을 하는 작가가 상업 작가라고 하더라도, 이윤을 내기 위해서는 소비자에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는 같은 것만을, 단순한 것만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 작가와 상업 작가를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윤을 위한 기업의 의뢰를 받아 활동을 하느냐, 그러한 의뢰 없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작업을 하느냐는 차이는 있겠지만, 결과물에서 예술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명확히 구분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성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는 전적으로 내 생각이다)


김용호라는 사진 작가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기업이 의뢰한 활동을 하는데도 자신의 창의성을 십분 발휘한다. 의뢰한 대로만 하면 그러한 의뢰 역시 지속되기 힘들다는 것, 왜냐하면 기업 입장에서도 고만고만한 광고 사진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기업의 특성을 잘 드러낼 사진을 원하기 때문이다.


미처 자신들도 모르고 있었던 기업의 특징, 작가가 작업한 내용을 보고 아, 우리가 이렇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될 때, 아마도 기업은 그 사진가에게 지속적으로 작업을 맡길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어떻게 작업했는지, 왜 자신의 활동을 정리해 놓은 이 책 제목을 '포토 랭귀지'라고 했는지 알게 된다.


그는 '커머셜 영역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해서 세 가지를 들고 있다. 물론 그가 든 세 가지는 실력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실력이 없으면 안 되니... 굳이 실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할 필요는 없다.


그 세 가지는 '예절, 겸손, 배려'다. 이것들은 모두 관계다. 상업적이든 아니든 '관계'는 그만큼 중요하다. 천재라 불리는 재능을 지니고 있어도 제대로 관계를 맺지 못하면 그 세계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그러니 그가 말한 것,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 세 가지와 창의성이 어떻게 연결이 될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창의성이 없는 것에서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고, 관계를 통해서 새로운 관계, 관점을 만들어가는 것이 창의성이니, 창의성에서도 이들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업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그는 어떤 일을 맡더라도 철저하게 준비한다. 현장 답사는 물론이고, 도서관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도록 준비한다. 이러한 철저한 준비성이 작가로서 그를 우뚝 세우는 요소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 그는 많은 사람과 교류를 한다. 소위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것인데, 이는 예절, 겸손, 배려를 몸에 지니고 있어야 잘 만들어갈 수 있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어려운 작업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이는 작품을 의뢰한 클라이언트의 말, 주문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클라이언트에게 새로움을 제시하는 자세로 나아간다. 여기에서 사진이라는 분야에만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로 자신의 일을 넓혀간다. 


그가 최근에는 재능 기부를 통해 많은 공익 활동을 하는 것도, 영상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것도 그러한 활동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책에는 저자인 김용호의 작품 활동이 정리되어 있다. 사진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보여주는 작가의 사진에 감탄하기도 한다. 


결국 사진은 있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있음에도 보지 못하고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 보여주는 작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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