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단
정보라 지음 / 상상스퀘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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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던 2024년 12월 3일. 선진국이 되었다고 우리가 일구었던 성과들에 자부심을 가지던 때.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 면에서도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었다고 자긍심을 지니고 있을 때, 그러한 자부심, 자긍심을 한 번에 무너뜨린 사건.


그건 사건이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 천만다행으로 일회성 사건으로 그치고 말았으니 망정이니, 2차, 3차 사건이 일어났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이 소설은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비상계엄 포고문에 나오는 '처단한다'는 말. 도대체 누가 누구를 처단한다는 말인가? 비상계엄을 선포한 자들은 자신들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처단하려 했다.


하지만 정작 처단되어야 할 존재는 자신들임을 그들만 모르고 있었는지도. 무속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돌고 있었는데, 진정 무속을 믿었다면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무속은 '인과응보'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인과응보'란 결국'권선징악'아닌가. 


악을 아무리 선으로 포장하려 해도 악은 악으로 밝혀진다. 이것이 권선징악, 인과응보다. 그리고 이 명제는 무속에서 거부할 수 없는 명제다. 원한이 쌓인 존재를 인정하고, 그 원한을 해원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무속 아닌가.


그런데 무속을 믿는다는 자들이 원한을 쌓는다고? 이런 얼토당토않은 짓을 하다니... 무속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는 성공 이전에 이미 실패를 안고 있는 행위인데, 그것을 실행하다니.


이미 경제로 선진국, 문화로도 선진국이 된 이 나라 국민들이 가만 있을 리 없었고, 광장으로 나와 비상계엄이 실패할 수밖에 없도록 했고, 주모자는 탄핵으로 법의 심판을 받게 했으니, 이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은 그런 부당함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다시 소설은 2차 계엄으로 시작한다. 1차 계엄의 실패를 경험한 자들은 2차 계엄 때 국회를 무력으로 진압한다.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서술. '총소리가 울렸다. 피가 튀었다', '총을 쏘았다','계엄군은 발포했다', '계엄군이 사격했다'와 같은 말들. 실제로 2차 계엄이 성공했다면 소설 속 일들이 현실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렇게 감정이 없는 행위를 하는 존재들에 맞선 사람들은 연대를 한다. 그들은 서로를 돕고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준다. 고공농성하는 노동자들에 연대하는 농민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 자신도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지만 더한 사람을 보살피고 도움을 주려는 간호사 등등.


비상계엄에 맞서는 이러한 연대를 통해 정작 '처단되어야' 할 존재는 바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이를 추종하는 자들임을 소설은 보여준다. 


그들의 비인간성에 비해 끝까지 인간성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과 마지막 부분에서 죽은 사람들이 계엄군의 머리에, 어깨에, 다리에, 팔에 매달려 결국 그들을 포위하는 모습을 서술함으로써 이미 그들이 처단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법 심판 전에 이미 그들은 그들이 믿던 무속에 의해서도 처단되고 있는 것이다. 


'죽은 자들이 일어섰다.

 반란군은 포위되었다. 자신이 목숨 걸고 지켰어야 할 국가와 국민에 항적한 반란군은 피해자들에게 소리 없이 산 채로 먹혔다.

 그리고 죽은 자들은 반란군이 남긴 총탄과 무기를 들고 원한을 풀기 위해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139-140쪽)


다행이다. 우리 사회는 여기까지 가지 않았으니... 작가가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우리 국민이 막았기 때문 아니겠는가. 만약 막지 못했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으리라.


그야말로 처단 당해야 할 자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처단 당하는' 비극을 겪었으리라. 그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아야 함을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비상계엄 말고도 우리 사회가 겪었던 비극들이 소설에 등장한다. 그들이 겪은 비극도 막을 수 있었던 것이었음을, 그러한 비극을 초래한 책임자들에게 적절한 책임을 묻지 못했음을, 그것이 비상계엄을 초래한 것 이유가 되었음을 생각하게 한다.


비상계엄 전에도 고통을 겪던 이들이 이 소설에 주로 등장하는데 이들은 비상계엄으로 더한 고통을 겪게 된다. 비상계엄을 이겨낸 우리는 이제 이들이 고통받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는 점을 말해준다고 생각하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작가는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사람들 역시 비상계엄 상황에서는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여러 인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서술을 통해 비상계엄은 결코 옹호되어서는 안 된다는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만약 2차 비상계엄까지 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에서 시작한 이 소설은, 그러한 일이 발생했다면 끔찍한 재난이 벌어졌을 것이라는 것, 하지만 그들은 결국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결국 처단당하는 것은 그들이겠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너무도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따르게 된다는 점을 소설을 통해서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 제목이 '처단'이다. 누가 처단되어야 할지 읽어보라. 처단되어야 할 대상이 명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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