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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어른
백기완.문정현 지음 / 오마이북 / 2017년 11월
평점 :
꼰대들이 판치는 사회라고 했다. 꼰대들은 자신들만이 옳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이런 꼰대들이 사회 곳곳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다는 거다.
그러니 사회도 꼰대처럼 될 수밖에. '어른 없는 사회'라는 일본 학자 우치다 타츠루가 쓴 책도 있지만 우리나라 역시 어른 찾기 힘들다.
그렇다고 어른은 없고 꼰대만 있을까? 세상에 그런 사회는 없다. 어디서든 어른은 있다. 이런 어른들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사람들이 없을 뿐이지.
어쩌면 꼰대들을 어른이랍시고 모시는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아서 더욱 어른들이 없는지도 모른다. 제 잇속만 챙기는 그런 사람들을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잘못.
어른과 꼰대를 구분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에서도 어른들이 더 많이 눈에 띄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드는데...
책 제목이 "두 어른"이다. 이런 책을 보면 무조건 사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냥 책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단지 제목만이 아니라 비닐로 감싸놓아 내용을 볼 수는 없지만 겉표지에 보이는 두 어른의 뒷모습 때문이다.
직접 만나뵙지는 못했지만 내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두 분의 뒷모습. 세월이 흘러도 한참 흘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두 분의 뒷모습.
우리나라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온 두 어른의 뒷모습이라니... 세월이 이리도 흘렀구나, 이분들이 이젠 노인이 되었구나, 그러나 노인이란 육체적인 늙음을 이야기하는 것일뿐.
이 분들은 여전히 길 위에 있으니, 육체는 노인이나 정신은 젊은이 못지 않은, 그래서 어른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하니.
이분들의 말씀을 들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직접 길 위에서 늘 들을 수 있는 것 아니니, 집에 책을 두고 생각날 때마다 한장 한장 들춰본다면 언제든 두 어른의 말씀을 들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
그러니 무엇을 망설일까? 어른 없는 사회에서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의 말씀이 들어있는 책인데...
맘에 새겨둘 말들이 많이 있지만, 말에 중심을 두어서는 안 된다. 이분들은 말보다는 행동을 하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신영복 선생의 말처럼 머리에서 가슴, 가슴에서 발까지... 이분들은 발까지 자신들의 삶이 도달한 분들이기 때문이다.
두 어른은 백기완 선생과 문정현 신부다. 두 분 다 여전히 길거리에 계시는데... 그만큼 우리 사회가 여전히 이 어른들을 길거리로 불러내고 있다는 얘기인데... 두 어른들이 지팡이를 짚고 있는 사진이, 우리들의 어깨에 기댄 사진으로 바뀌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더 말이 필요없다.
두 어른들의 말씀 한 도막씩만 옮기고 글을 맺는다. 더 주절거릴 필요가 없는 책이기 때문이다. 직접 읽으며 머리에서 가슴으로, 다시 가슴에서 발로 우리를 옮겨가야 하는 글, 말들이기 때문이다.
74. 문정현
나는 참 좋은 몫을 받았다고 생각해.
좋은 몫을 가졌다고 생각해.
지금까지 정말 빈틈없이 살았어. 공백이 없어.
사건과 사건이 계속 연결되고
계속 길 위의 삶이었어.
길에서 살다 죽는 것이 내 보람이야. (101쪽)
77. 백기완
저 때문에 쓰는 힘은
갈데없이 시퍼런 칼이 된다.
나아가 저 한 사람 때문에 쓰면
어김없이 사나운 창이 되기도 하고.
하지만 남몰래 수굿수굿
이 벗나래(세상)를 위해서 흘리는 땀은
곧 하제가 되는 거다.
하제라니 무슨 뜻일까.
희망이란 뜻을 글로가 아니라 온몸으로 내둘한
무지랭이들의 벅찬 숨결이다. (104쪽)
참고로 이 책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나왔다.
'꿀잠'과 오마이뉴스가 두 분의 말씀을 엮어 대담집을 만든다고 나섰을 때도 두 어른은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이번에도 설득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두 어른은 수십 년 동안 길 위에서 민중과 함께 '외치는 자'였고, 고통의 거리에 천막 교회를 짓고 십자가를 세우는 '남은 자'였다. 비정규노동자들이 꿀잠 잘 곳을 짓는다는데, 그 부족한 비용을 채우겠다는데, 이를 마다할 어른들이 아니었다. (142쪽)
이 책은 바로 없는 사람, 약한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 진실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두 어른의 연민과 참여와 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