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 속의 외침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위화의 작품으로는 세 번째, 소설로는 두 번째 읽은 책.

 

두 번째로 읽은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허삼관 매혈기'에 나오는 장면과 연결시킬 수도 있었고, 또 위화의 그 책에 나온 자신이 성장하면서 겪었던 일들이 소설로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입양이 되었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온 둘째 아들... 그 아들의 눈으로 보게 되는 집안일과 어른들의 세계, 그리고 자신들의 성장과정.

 

중국의 어린이들이 어떻게 성장해왔는지를 이 소설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어찌보면 한 손씨 집안의 내력을 이야기해준다고 할 수도 있는 소설이다.  중국판 '삼대', '태평천하'라고 할 수도 있는데...

 

삼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우리나라 '삼대'나 '태평천하'에서는 할아버지 세대는 돈을 많이 벌어 떵떵거리며 살게 되고, 아버지 대에서 흥청망청 돈을 물쓰듯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할아버지도 쫄딱 망해버리는 상태로 나온다는 것이 다르다.

 

또한 아버지 세대는 좌절된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 소설인데, 위화의 이 소설에서는 아버지 역시 제대로 배운 것이 없는 무지랑이에 해당한다는 것이 다르고...

 

그러나 아들 세대는 역시 배우고 무언가를 해보려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삼대의 맨 마지막 세대의 눈으로 소설을 전개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 점에서는 위화의 이 소설이나 우리나라 '삼대, 태평천하'가 비슷한 점이 있다.

 

다만 위화의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아들 세대는 우리나라 아들 세대보다 더 세속적인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 다르다.

 

이 소설은 이처럼 할아버지 손유원, 아버지 손광재, 그리고 그의 아들 셋 손광평, 손광림, 손광명의 이야기에 덧붙여 소설의 서술자인 손광림이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참 본능에 충실한, 욕망에 충실한 삶을 사는 민초들의 모습이라고 해야 할지, 가난으로 인해 파탄에 이르지만 그럼에도 최소한의 정을 끊지는 않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살이가 이토록 지난하지만, 그럼에도 살만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온갖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손광평이지만 결국 자신의 아버지를 어쩌지는 못하고, 동생이 대학에 들어가 도시로 갈 때 배웅해 주는 모습이라든지, 첫째 형을 닮았지만 자신보다 어린아이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손광명이라든지... (그것이 비록 자신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한 위선적인 행동이었을지라도)

 

여기에 주인공의 친구들, 이들 역시 버림받거나 가난에 찌들어 살게 되는데... 그런 시대를 중국이 거쳐왔다는 것.

 

이 소설에도 도회지에 대한 부러움이 드러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창 개발이 될 때 서울로, 서울로 올라왔듯이, 중국 역시 도시로, 도시로를 외치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어른이 되어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자신의 삶을 반추하는 것, 위화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되돌아보면서 이를 소설로 형상화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어린시절을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독자들에게 자신들이 거쳐왔던 과거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시키면서 그 시절을 잊지않도록 하고 있다고나 할까.

 

이미 변해버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 그 시절이 지금의 자신들과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소설. 이것이 위화의 이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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