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함에 대하여 - 악에 대한 성찰 철학자의 돌 2
애덤 모턴 지음, 변진경 옮김 / 돌베개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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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말한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라고. 만물의 영장이고, 지금은 신의 위치에까지 오르려 하는 인간(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인데도 세상은 선함과 더불어 악함이 공존하고 있다.

 

적어도 신은 선함 자체 아니던가. 의도적으로 악을 행하는 존재는 신이 아니다. 또한 만물의 영장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로만 신의 위치에 도달하였다느니, 만물의 영장이니 하고 있고, 실제 행동은 오히려 악마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악행들을 보라. 지금도 민주주의의 선도국가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벌어지는 온갖 총기난사 사건, 또 혐오 범죄들을 보라. 인간의 선함을 믿기에는 너무도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그러나 꼭 이런 악함만으로 인류가 피해를 입는 것은 아니다. 선한 의도로도 막대한 피해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 책에서는 처음에 트루먼과 밀로셰비치를 비교한다. 트루먼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 투여하는 것을 승인했다.

 

그 결과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었으며, 대를 이어서 고통을 받고 있다. 하지만 트루먼을 악한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반면에 어쩌면 트루먼보다도 더 적은 영향을 끼친 밀로셰비치는 악한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트루먼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밀로셰비치는 다른 인종을 없애기 위해서 자신의 권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악이란 실수나 잘못된 행동과 어떻게 대비될까?

 

저자는 처음에 이렇게 말한다.

 

'악한 행동이란 예측되는 결과가 타인의 고통이나 굴욕을 수반하는 행동이며, 실행이 고려되면 안 되는 행동이다.' (96쪽)

 

이렇게만 하면 잘못된 행동이나 악한 행동이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 정의에 따르면 트루먼이나 밀로셰비치나 다 악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자신이 선택한 행동들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타인에 대한 위해와 모욕을 금지하는 의무적 장벽을 회피할 수 있는 전략 또는 학습된 절차를 통해 행동을 결정할 경우, 그 행동은 악하다.' (98쪽)

 

조금 더 구체적이긴 하지만, 적어도 이 정의에서 트루먼과 밀로셰비치는 구분될 수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악에 대한 정의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결과를 예측하고, 그것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방법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경우 악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보통 악을 행할 때 어떤 장벽을 만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장벽 앞에서 돌아선다. 그래서 악한 행동이 우리 인간 모두를 지배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장벽을 넘어선다. 처음에는 우연히 넘어설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들이 반복되면서 그들은 이 장벽을 넘어서는 방법을 알게 된다.

 

이때부터는 '악'에 지배당하게 된다. 이들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혼란스럽고 위태로워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악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악에 대하여 탐구를 하는 이 책이 궁극적 목표로 삼은 것은 악으로부터 우리가 벗어나는 것이다. 악을 극복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각의 힘이다.

 

아렌트는 생각없음에서 악이 나왔다고, 악은 특별한 사람이 저지르는 짓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충분히 저지를 수 있음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 말했다. '악의 평범성'이라고.

 

그렇다면 악은 우리에게도 있고, 우리 사회에도 있다. 악이라는 것은 난 악이다라고 명확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던 형태로든 잠복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 악은 발현되지 못하게 하는 장벽 앞에서 멈춰 있는 것이다. 이게 우리 보통 사람들에게 있는 악이다. 보통 사회에 있는 악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장벽이 무너진다면 보통 사람이 악한이 된다. 보통 사회가 악한 사회가 된다. 그렇게 되지 않게 하는 방법, 어떤 때 악의 장벽이 무너지는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상상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악의 장벽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게 한다. 사회에서 증오, 혐오 범죄가 넘쳐나는 것은, 한 사회가 전체주의로 가는 것은 악의 장벽이 무너졌을 때 일어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라 한다. 무엇이 악한 행동인지 명확하게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어쩔 수 없었어라는 말은 진실을 가리는 말이다. 어쩔 수 없었더라도 자신이 한 행동은 악한 행동임을 인식하고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악한 행동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잘잘못을 가려야 한다. 그리고 나중에 악한 행동을 한 사람과 화해하거나 용서하더라도 진실은 밝혀야 한다. 그 다음에야 악한 행동을 막을 수가 있게 된다.

 

이 책의 번역자는 이 책과 더불어 우리나라 '세월호' 사건을 떠올린다. 누구의 실수인가? 잘못된 행동인가? 아니면 악한 행동인가?

 

이 책에 나와 있는 정의와 비교해 보라. 그들은 그때 어떻게 행동해야 했는가? 선장은, 승무원은, 해경은, 재난구호를 책임지고 있는 관료들은, 최종적으로 국민의 안전을 지켜줘야 하는 대통령은?

 

진실 규명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회가 조금 더 좋은 쪽으로 갈 수 있는 길, 악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 악의 장벽을 어떤 순간 넘을 수 있는지 상상해서, 악의 장벽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찾는 것.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 바로 이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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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6 09: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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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6 09: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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