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사회와 그 적들 김소진 문학전집 2
김소진 지음 / 문학동네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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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읽었는데, 또 책도 있었는데, 물론 이 판은 아니었지만, 읽으면서 내용이 어렴풋이 생각나는 소설이 별로 없다. 그냥 소설의 분위기만 느껴질 뿐이다.

 

역시 단편들에 대한 기억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소설에 대한 분위기는 남아 있다. 김소진의 소설들, 밝다기보다는 어두침침한 느낌, 무언가 칙칙한 느낌을 준다는 느낌만 남아 있는데, 역시 다시 읽으니 마찬가지다.

 

마치 기형도의 시집을 읽을 때처럼 어두운 분위기,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작가의 운명을 예감하기라도 한 듯이 기형도도 김소진도 그리 오래 살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우리 곁을 떠났어도 작품은 남아서 그들의 이름을 알리고 있는데, 이번에 읽은 김소진의 소설은 전집으로 나온 것 중에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라는 소설집이다. 많은 단편들이 실려 있는데...

 

김소진의 약력을 알면 소설 속에서 김소진 개인사가 잘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소설들에서 대학생이 나온다. 이는 김소진의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런 대학생 또는 기자라는 직업, 소설가나 시인이 된 인물이 꼭 나오고, 이 인물과 관계를 맺는 인물들로 소시민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온다.

 

여기에 이런 지식인 말고 아버지나 어머니 철원댁에 대한 서술에서는 공통된 점들이 나온다. 아버지는 월남한 사람, 전쟁 중에 포로로 거제도에서 남한을 선택한 사람, 어머니는 철원댁으로 불린다는, 억척스럽게 가족을 먹여 살리는 민중의 전형. 그리고 한 마을에서 만났던 사람들.

 

결국 김소진의 작품은 지식인과 그 사회의 기층을 이루는 민중이 함께 나오는데, 민중을 주인공으로 삼는 듯하지만, 실질적인 주인공은 바로 지식인이다.

 

대학생 서술자, 기자 서술자 등등 작가 자신의 모습이 다분히 반영된 인물이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에 등장해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민중들의 삶에 대해서 낙관적인 전망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사회가 민주화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기층민중들의 삶이 더 나아지지 않은 상태, 이들에게는 정권만 바뀌었을 뿐인 모습.

 

민중들과 지식인들이 어떻게 갈등하고 있는지, 마치 이들은 함께 있으면서도 함께 하지 못함을 보여주는 소설이 전집의 제목이 된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이다.

 

시위하다 죽은 열사의 주검을 지키는 자리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여줌으로써 서로가 같은 목적으로 한 자리에 있지만, 그들이 함께 하지 못하고 있음을, 함께 할 수 없음을 짧은 소설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민중들은 이런 운동권들 사이에서도 밀려나고 마는 관계, 도대체 민중에게 무엇이 열린 사회일까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다. 민중의 적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

 

그렇다고 지식인들이 만족하고 사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들 역시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극적인 변신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 '혁명기념일'에 나오는 석주- 대부분은 자신들의 지향과 지금의 삶의 괴리를 느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소설은 현재에서 시작해서 과거로, 이 과거에서 다시 또 다른 과거로 간다. 이런 과거에서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구성들을 주로 택하고 있는데, 이는 과거들이 중첩되면서 현재 인물의 모습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러므로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이 지금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를 소설이 서술되면서 과거의 모습들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게 된다.

 

단편이라고 단순한 구성을 택한 것이 아니라, 김소진의 소설은 이렇게 짧은 소설 속에서 여러 층의 시간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 시간들이 바로 인간 삶의 복잡성이고, 이것을 단순명쾌하게 말할 수 없음을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게 김소진 소설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또 [새우리말 큰사전]을 독파했다는 작가의 이력답게 우리말들이 많이 나온다. 어쩌면 사라져 갈 우리말들이 김소진의 소설을 통해서 자리를 잡고 버티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시간의 중첩, 우리말들의 향연, 이 속에서 지식인과 함께 있지만 함께 하지는 못하는 민중들, 그런 우리나라 80-90년대의 모습을 김소진의 소설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아마도 소위 386이라고 하는 지식인들은 김소진의 소설을 통해서 자신들의 과거를 반추해낼 수 있을 것이고, 그 시대를 모르는 사람들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우리 현대사를 간접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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