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말한다. 박근혜가 가니 세월호가 왔다고. 하지만 아직 다 오지 않았다. 아직도 가족 곁에 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모두 왔을 때 그때서야 세월호가 왔다고 할 수 있다.

 

  정말 가슴이 먹먹해지는 일이다. 인공지능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제4차산업이 어떻다느니 하면서, 과학기술이 엄청나게 발전했다고 자랑하면서 아직도 이들이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니.

 

  이건 정말로 책임방기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있으나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있으니, 이들이 모두 우리 곁에 왔다고 할 수 있으려면 책임을 반드시 지워야 한다.

 

  그래야 그때서야 이들이 집에 갈 수 있고, 집에서 비로소 자신이 가야 할 곳으로 갈 수 있다. 그때까지는 아직 집에도 올 수 없게 된다.

 

김해자의 시집 제목이 "집에 가자"다. 제목에서 딱 세월호가 연상됐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세월호의 아픔이다. 우리 가슴에 진한 멍으로 남을, 그런 아픔.

 

그래서 시집 제목은 "집에 가자"지만 이런 제목을 지닌 시는 없다. 이 제목이 된 구절은 '피에타'란 시에 나온다.

 

피에타... 죽은 예수를 안고 슬픔에 잠겨 있는 마리아.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져 있지만, '피에타'란 말에는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이 온전히 담겨 있다.

 

     피에타

 

인천항에서 낯선 이 포구까지

오는 데 수십 일이 걸린 데다

그 사이 몸은 다 식고

손톱도 다 닳아졌으니

삼도천이나 건넜을까 몰라

구조된 것은 이름, 이름들뿐

네 누운 이곳에

네 목소리는 없구나

집에 가자 이제

집에 가자

 

김해자, 집에 가자, 삶창. 2015년 초판 2쇄. 66쪽.

 

이렇게 집에 간 사람들, 이들의 넋이 과연 제 자리를 잡았을까. 아니 이들의 넋은 아직도 이곳을 떠돌고 있다. 함께 가야 할 사람들이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세 해가 지난 지금도 이들은 아직 집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집에는 가야 그 다음 영혼의 길로 갈텐데, 집에도 가지 못하고 있으니, 제발 집에 가게 해달라고 외치는 가족들의 통곡이 여전히 우리들 가슴을 후비고 있다.

 

이제는 제발 집에 가게 해야 한다. 그래야 이곳을 떠도는 영혼들도 이들과 함께 갈 수 있지 않겠는가.

 

시인의 '집에 가자'는 외침이 가족의 외침을 대변하고 있는데, 이 집에 가자는 말, 여전히 집에도 못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간절한 외침으로 들린다.

 

'집에 가자 이제 / 집에 가자'고... 그렇게 집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우선 집에 간 다음에, 그 다음에 책임 규명하고, 책임을 져야 할 사람에게는 반드시 책임을 지게 하라고...

 

그때서야 세월호는 우리에게 온 것이 된다. 그때서야 이들이 집에 갈 수 있게 된다. 그때까지는 여전히 시인의 외침이 울려 퍼져야 한다.

 

'집에 가자 이제 / 집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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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9 0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19 09: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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