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무 시집을 읽다. 마음이 따스해지다. 시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받다.

 

"시간의 그물"이라는 그의 시집을 읽었을 때도 좋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 시집 역시 좋았다.

 

  자연과 사람이 분리되지 않고 시인이 생활에서 떨어져 있지 않아서 더 좋았다고나 할까.  머리를 쓰기보다는 마음이 먼저 작동하는 시들이 많았으니.

 

  게다가 시집을 읽으면 마치 오래 전 아름다운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을 받게 된다. 그렇다고 시집에서 아름답고 좋은 것들만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시집의 분위기가 대체로 그렇다.

 

  제목이 된 '위대한 식사'만 보아도 공동체의 모습, 사람만의 공동체가 아니라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공동체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모습이 이 시에 드러나 있다면, 반대로 공동체가 파괴된 사회의 모습이 '오후의 식사'라는 시에 나타나 있다. 같은 가난이지만 그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은 천양지차다.

 

마음이 짠해지는 시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 어우러진 공동체의 식사와 자연과 멀어지고 사람들과도 떨어져 혼자 먹어야 하는 현대인의 비애가 잘 드러나 있다.

 

이런 변화를 알 수 있는 시가 바로 이 시집의 처음에 실린 시다. 예전에는 마을마다 하나씩은 있었던 마을나무.

 

그러나 지금은 거의 다 사라진, 자연스레 고사되어 사라진 나무와 사람들이 베어버린 나무들, 이제는 사람들과 함께 살지 못하고 있는 나무, 자연과 멀어진 사람들.

 

시인은 '내 생애의 한 토막이 그렇게 부러졌다'고 했는데, 이것은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라는 공동체에 해당하는 것이다. 시를 보자. 

 

  팽나무가 쓰러, 지셨다

 

우리 마을의 제일 오래된 어른 쓰러지셨다

고집스럽게 생가 지켜주던 이 입적하셨다

단 한 장의 수의, 만장, 서러운 곡도 없이

불로 가시고 흙으로 돌아, 가시었다

잘 늙는 일이 결국 비우는 일이라는 것을

내부의 텅 빈 몸으로 보여주시던 당신

당신의 그늘 안에서 나는 하모니카를 불었고

이웃마을 숙이를 기다렸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아이스께끼장수가 다녀갔고

박물장수가 다녀갔다 당신의 그늘 속으로

부은 발등이 들어와 오래 머물다 갔다

우리 마을의 제일 두꺼운 그늘이 사라졌다

내 생애 한 토막이 그렇게 부러졌다

 

이재무, 위대한 식사, 세계사, 2002년 초판. 15쪽.

 

아름다운 마을을 지켜주던 나무가 쓰러지는 장면, 공동체가 무너지면서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 그 시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사람이 쓰러뜨리지 않았더라도 이미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기에는 너무도 산업화된 사회. 그런 사회의 시작, 바로 우리 곁에 있던 마을 나무가 쓰러지는 일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시 팽나무를 심는 일, 그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꼭 우리 때만이 아니라도, 먼 미래를 위해서도.

 

마치 흑백사진에 나와 있는 예전 모습을 보는 것처럼 시집을 읽으며 마음이 과거로 과거로 흘러갔다. 그렇게.

 

제4차산업혁명 운운하는 시대에, 정말로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은 기계도시가 아니라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이런 팽나무 그늘 속에서 함께 쉴 수 있는, 그래서 밥을 먹을 때도 온갖 자연이 함께 하는 그런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시집.

 

오래된 미래라는 말을 많이 한다. 이 시집에서 다시 오래된 미래를 보고 느꼈다고 해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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