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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왜 무너졌는가
정병석 지음 / 시공사 / 2016년 10월
평점 :
"이게 나라냐?"
요즘 나오는 말이다. 21세기에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특정한 개인의 의견을 주로 참조해 국정을 운영해 왔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대통령이 사과, 또 검찰의 조사를 받겠다고까지 한 일이 일어난 우리 사회.
삼권분립이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라는 개인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현재의 상황에서 어쩌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자주 일어났던 일인데... 지금까지 대통령 측근의 비리가 끊이지 않았던 데에는 대통령이나 그 주변 인물들의 부정과 부도덕이라는 면도 있겠지만, 제도에서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절대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 이런 말이 역사에서 통용되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에게 절대권력을 주면 그 권력 주변에는 부패한 세력들이 꼬여들 수밖에 없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 구조의 문제인 것이다.
한 사람의 권력이 사법, 행정, 입법, 또 경제까지 장악해 전권을 휘두룰 수 있는 구조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 수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특별히 훌륭한 개인이 이 구조 속에서도 훌륭히 직무를 수행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통상이 아니라 아마 예외가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사태를 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안 된다. 구조와 제도의 면에서 보아야 하고, 해결책 역시 제도와 구조의 측면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나온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제목에서 요즘 사태와 관련해 우리의 흥미를 끌고 있지 않은가. 또 우리에게 참조가 될 만한 사항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하고 있다.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 이미 무너진 나라를 대상으로 그 이유를 분석하는 것은 현재 유지되고 있는 나라를 대상으로 앞으로의 전망을 분석하는 것보다는 쉽다. 왜냐하면 결과가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를 가지고 망하지 않은 나라와 비교하면 망한 이유를 밝힐 수 있다. 다만, 조심해야 할 것은 결과를 가지고 원인을 추적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대가 흐른 다음 시대에 사는 사람에게는 자명한 사실이 그 당시에는 자명하지 않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 말은 우리가 역사를 참조하는데, 과거의 일들은 잘 밝히면서도 그것을 현재에 적용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이다.
조선이 망한 이유를 제도에서 찾고 있는 이 책은 정치, 경제, 사상 쪽 등 다양한 분야를 분석하고 있다. 전문 역사학자가 아닌 저자가 조선이 망한 이유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가 경제학자로서 제도권에서 일한 경험이 많기 때문이고, 그것을 사회구조에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 나온 이론을 조선에 적용해서 분석하고 있는데... 착취적 제도와 포용적 제도라는 개념을 동원해서 나라를 분석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특히 조선이라는 나라가 500년 이상을 유지되어 온 이유를 분석하면 이 책에서 말하는 것에 모두 동의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제도가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 나라가 온전히 유지되기는 힘들다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다.
조선 역시 마찬가지다. 강력한 성리학 이념으로 무장한 집단이 지배층으로 등장하고, 이들이 성리학을 구현할 나라를 세우려고 노력을 했는데...
사상 면에서 성인군자를 추구하는 것을 비판할 수는 없고, 이것이 서민들의 존중을 받았음은 명백한 사실인데... 조선은 농업과 상공업 경시, 신분제, 배타적 지식의 독점과 배타적인 정치 독점 등으로 쇠퇴할 수밖에 없었음을 여러 역사적 사료들을 바탕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온 것들을 지금과 비교해 보면... 지금도 통용되고 있는 것들이 있지 않나 싶어 마음이 편치가 않다.)
조선에서는 농업을 중시했지만, 이것도 말뿐이고 사실은 공부하는 유학자를 존중했고, 양반이 농사를 짓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으니, 농업이 중시될 수가 없었고, 이렇게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이 있는 농업도 실질적으로는 천시받았으니, 상업이나 공업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지만 제대로된 상업, 공업이 발달할 수가 없었고, 하다못해 수레를 쓰자는 논의가 어떻게 무시되었는지를 살펴보면 경제가 특정 규모 이상으로 발전할 수 없는 제도와 구조를 지니고 있는 나라가 조선이었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든 박지원의 허생전을 보면 당시 만 냥으로 우리나라 경제를 파탄낼 수 있음을 허생을 통해 알 수 있고, 박제가의 북학의에서 제기한 내용들이 거의 채택되지 않았음을, 그래서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등장하여 개혁의 기회를 맞이했으나 정부의 지식 독점으로 그들의 책들이 거의 출간되지 않았고, 또 출간되더라도 극소수에게만 읽히도록 출간되었으니... 조선은 꽉 막힌 제도, 변화의 여지가 별로 없는 제도를 지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신분제를 통한 사람 착취제도가 조선 말기까지 존속했으니, 그 사회가 변화를 받아들일 분위기를 형성하기는 힘들었을 것이고, 정치에서도 사색당파 때까지야 이러저러 참아줄 수 있다고 해도,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세도정치로 다른 집단이 정치에 참여할 기회조차 박탈했으니...
(다른 집단이라 함은 소위 양반들 중에서 노론과 노론 중에서도 특정 성씨 집안 사람들이 아닌 사람들을 말한다. 남인과 같은 양반들도 이미 정치에서 소외된 지 오래 된다. 그러니 일반 백성들이 정치에 참여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대한제국 때 '만민공동회'를 통해서나 나타나게 되지만, 이도 정부의 탄압으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분제로 사람 착취, 세도정치나 또는 양반들만의 정계 진출로 정치적인 독점, 농업이나 상공업을 경시한 생활태도, 게다가 세계 최초라고 늘 자랑하는 금속활자를 만들어 놓고도 이를 대중에게 모두 알리는 책을 편찬한 것이 아니라, 소수의 지식인 집단만 보게 출간하는 행위, 가장 과학적인 문자인 한글이 있음에도 이를 활용한 문자생활을 장려하지 않은 점 등등.
이렇게 보면 조선은 꽤나 폐쇄적인, 그리고 다른 힘없는 존재들을 착취하는 제도를 지닌 나라였다. 그러니 사회가 급변할 때 그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더이상 변화할 수 있는 제도를 지니지 못하고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밖에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이것들이 주로 작용했다는 것이 이 책이 주장하는 핵심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대한민국이 출범한 지 70년이 되어가는 지금은? 조선으로 치면 나라가 기틀을 잡고 안정을 추구하기 시작하던 때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겨우 나라의 초기에 접어들었는데... "이게 나라냐?"라는 말이 나오다니...
"이게 나라냐?"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다. 나라에 대한 방향성이 있다는 말이다. 그 방향성에 맞지 않으니 이런 절규가 튀어나오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으니 이런 말이 나온다.
이게 나라냐, 이게 나라가 아니라면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제도와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
나라라는 것이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는 국민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국민들이 만들어낸 제도, 문화, 생활 등의 총합이 바로 나라다. 특정 정치인의 전유물이 나라가 아닌 것이다.
지금, 특정 정치인이 전횡을 휘두루고, 그를 조종하는 다른 개인이 존재할 수 있는 이런 제도에서는 "이게 나라냐?"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다못해 이 책에서 조선을 건국하는데 공이 큰 정도전은 정치에서 왕과 재상이 함께 하는 세상을 꿈꾸었다는데, 이렇게 권력이 분산되고 공유되어야 특정인에게 휘둘리는 일이 없을 거라고 이미 조선초에도 주장했는데...
지금 헌법 개정문제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게 나라냐?" 이렇게 외치고 있는 지금... "조선은 왜 무너졌는가" 이 책은 지금의 우리가 나아갈 길에 참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에서 주장한 내용에 모두 동의할 필요는 없다. 이 책에서 나온 쟁점들을 가지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참 시의적절하게 책이 왔다. 그리고 많이 참조가 되기도 했다. 조선에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버려야 할 것은 버려야 한다는 것. 이렇게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현재를 보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가끔은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많이 참조가 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