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 왜곡된 현대사의 서막
박태균.정창현 지음 / 역사인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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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가면서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이다.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고나서 이제는 제 나라를 세울 때인데, 이 때부터 일제로부터도 암살당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제 동포들 손에 죽임을 당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원통했을까.

 

그렇게 우리나라 현대사가 시작되었고,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왜곡하는 서막이라는 사실을 이 책이 말해주고 있다.

 

광복절을 건국절로 대체하자는 말에는 이들의 노력을, 죽음을 배제하자는 말이 포함되어 있을텐데, 격동의 한국 현대사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정치 신념을 펼치려 했던 사람들을 우리나라 역사에서 괄호치려는 그런 모습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더 한심하다고 생각한 것은 제 동포의 손에 죽임을 당한 지도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철저하게 밝혀지지 않더라도 최소한 기본적인 사실들만이라도 밝혔어야 하는데, 당시 경찰과 법원은 도대체 한 일이 없으니...)

 

오히려 그들이 죽음에 경찰이 관여되어 있음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고, 더 높은 선에서도 그들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할 수 있음에 진상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아마도 경찰, 검찰, 재판부에 대한 불신이 이때부터 싹트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하게 하는데...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정치인은 다섯 명이다. 암살 당한 순서대로 하면 '현준혁, 송진우, 여운형, 장덕수, 김 구'다.  

 

이들을 다시 인지도 순으로 배열하면 김구>여운형>송진우>장덕수>현준혁 순이 아닐까 하는데...

 

해방직후에 암살당한 현준혁은 사회주의자라는 점에서, 또 북한에서 암살당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고, 그의 암살이 남한의 정치계에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지 않았고, 또 사건 관련자들에 대해서도 알려져 있지 않다.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머지 네 사람은 남한에서 암살당했고, 당시 정치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그들의 암살은 남한의 정치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영향 하에서 이승만 독재 정권이 탄생하게 되고, 그의 독주가 시작된다.

 

이승만의 독주 속에서 진상규명은 물 건너 가 버리고, 지금도 우리는 그들의 암살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해방 정국의 극심한 혼란 상황에서 이렇듯 암살이 빈번했던 것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남과 북의 분단을 초래하고 갈등을 유발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온건한 보수주의자였던 송진우의 죽음으로 온건보수 쪽은 힘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고, 중도 좌파 정도의 평가를 받던 여운형의 죽음으로 좌우합작이 물 건너 가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과 남북 분단이 이루어지기 더 쉬워졌으며, 장덕수의 죽음으로 민주주의를 확립하려는 카드 하나가 사라져 버렸다.

 

여기에 김구의 죽음으로 인해 이승만 독재를 견제하고 물리칠 수 있는 가장 큰 정치가가 사라져 버렸으니...

 

이들의 죽음으로 이득을 본 사람은 누구인가? 암살의 배후를 캐는 질문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장 이득을 볼 사람이 암살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더 많으므로...

 

아직도 미국의 비밀문서 중에 해제되지 않은 것이 있어 이들 암살의 전모를 밝히기는 힘들다고 한다. 게다가 이제는 암살의 관련자들이 모두 세상을 떴으니... 기록에 의해 진실을 밝혀내야 하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최근까지의 결과로 이들 정치가들의 암살에 얽힌 배후와 의미를 파악해 보여주려는 노력을 한 것이 이 책이다. 따라서 이런 역사를 알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이 책이 지닌 의미일 것이다.

 

덧글   

 

읽다가 발견한 소소한 오류와 동의하기 힘든 부분

 

1. 22쪽. 고은의 시 인용 첫구절에서 1995년은 -> 1945년으로 수정되어야 하고

 

2. 120쪽. 장경근은 ... 1960년 3.15 부정선거 때에는 내무부 장관으로서 부정선거를 총체적으로 지휘한 인물이다. -> 이상하다. 이 부분은. 내가 알기론 내무부 장관으로 3.15 부정선거를 지휘한 인물은 최인규인데... 최인규 편을 찾아보면 그렇게 나오고, 그가 부정선거 죄목으로 사형당한 걸로 나오는데... 이 부분은 확인이 필요하다.

 

3. 229쪽.  미군은 결국 6월 29일 철수를 끝냈다. 바로 김구가 암살 당하기 3일 전이었다.  -> 김구가 암살 당한 3일 후였다가 맞는다. 240쪽에는 미군이 철수하기 3일 전이라고 제대로 나온다.

 

4. 그 다음 납득하기 힘든 부분 : 여운형 편에서... "지도자의 삶은 그 자체가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 ... 여운형은 통일정부가 수립될 경우 그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 그 자신에게 전혀 책임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 이전보다 더 조심하고 또 조심했어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134-135쪽)

 

이런 말이 있는데, 이건 참... 여운형은 미군정에 신변보호를 요청했으나 무시당했고, 경찰은 그의 암살에 관련이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그냥 정계은퇴? 그건 정치가로서의 책임이 아니지 않은가.

 

여기에 여운형은 개인 경호원을 두었으니, 그는 자신이 할 만큼 했다고 보는데... 또하나 해방 정국에서 훌륭한 정치가는 수단과 방법을 가려야 한다.

 

간디를 보라. 그 역시 죽음을 예견했음에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순간을 모면한 정치가는 훌륭한 정치가일 수 없다.

 

죽음의 길을 알고도 가야 하는 사람, 그것이 바로 지도자의 삶이지 않을까. 그래서 이 책의 여운형 편의 말미에서 한 주장은 여운형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마음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동의하기는 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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