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일상 창비시선 294
백무산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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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나게 어떤 시가 생각이 나지는 않지만, 백무산의 시를 처음 접했을 때는 박노해나 김남주의 시를 읽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만국의 노동자여" 이게 내가 처음 읽은 백무산의 시집이었다. 마치 맑스의 공산당 선언을 연상시키는 제목.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의 전면에 나서게 되는 현실 속에서 이 시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박노해의 시가 노동의 일상을 다루고 있다면, 좀더 각성된 노동자의 모습을 느꼈다고나 할까.

 

그때는 그랬다. 격동의 80년대였으니.. 그러더니, 이제는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 어떤 사람들은 노동귀족이라는 소리도 듣고, 한때 많은 가입율을 자랑했던 노동조합은 이제 가입율이 20%대 정도라고 하니...

 

노동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노동자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노동자는 이제 자기 자리도 지키기에 힘들어하고 있다.

 

노동유연성, 말이 좋아 유연성이지 이는 해고의 유연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평생 직장이 보장되던 사회에서 대다수의 노동자가 비정규직으로, 언제 짤릴지 모르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게 된 시대가 되었다.

 

이럴 때일수록 노동자들이 단결해야 하는데, 사실 어려운 환경에서는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기에도 힘들어 하기 때문에 더 나은 미래를 볼 수 있는, 지금이 아닌 내일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기가 힘들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섰고, 노동자들도 이 각자도생의 길 속에서 단결은 이제 한물간 유행어가 되어 버렸다. 한물간 유행어가 되면 절대로 안되는데 말이다. 약한 자에게는 쪽수가 바로 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자꾸 잊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백무산의 이 시집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이 시집은 이미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나온 시집이고, 이제는 자본이 노동자들의 삶을 지배하는 시대에 쓰여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예전의 시에서 느껴졌던 힘을 찾기는 힘든데... 그럼에도 노동의 현실과 우리가 그런 현실 속에서 그냥그냥 살아가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들이 많이 있다.

 

그 많은 시들 중에서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 시... 바로 이 '복(福)이라는 시.

 

    복(福)

 

기특한 여자아이 손이 늘 얼음처럼 차다

몸 불편한 부모 손발 대신하느라고

아직 응석 부릴 솜털 뽀얀 나이인데

어른 몫 하느라 아이 몸짓이 아니다

커서 잘살겠다고 이웃들 덕담들 하지만

그 아이 불길한 미래를 나는 여러번 본 일이 있다

아주 여러번

 

부모 동생 짐 덜자 지지리도 못난 남자 만나

습관이 운명을 부르고 사람을 부른다

그 사람 뒷바라지에 딸린 시부모 시동생 치다꺼리

자식이나 잘 커주면 좋으련만 사고는 쉴 새 없고

남의집살이에 공장일에 가는 곳마다

배부른 자들 봉양하느라 마흔 쉰 예순

늘그막에 발 뻗고 자식 며느리 밥상이라도 받을라치면

덜컥 큰 병원에서 오시란다

 

늘 꼼지락대던 어린 우리들에게 어른들은,

- 좀 처연히 있어 버릇해라, 복 달아난다!

- 복이 왔다가 어디 앉을 곳이 있어야 앉지!

그랫다. 나비도 조용한 꽃에 앉고

새들도 바람잔 가지에 앉는다

땀에 절어 일하는 사람들

복 앉을 처연한 어깨 없이 가난하다

 

저 아이 어깨에 나비가 앉게 해야 한다

저건 착한 일이 아니다

아이가 죄를 짓도록 버려둔 것이다

 

백무산, 거대한 일상, 창비. 2009년 초판 2쇄. 52-53쪽

 

남일 같은가? 아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 일 아니던가. 대학가기 위해 목숨걸고(이 말이 맞을 것이다. 시험을 잘 못 봐서 목숨을 끊는 아이들이 아직도 많은 나라이니) 공부하는 아이들.

 

기껏 대학에 갔음에도 이번엔 취업을 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하는 아이들.(이 말도 슬프지만 맞다. 20대의 취업율이 형편없는 나라에서, 취업이 안돼 목숨을 끊는 젊은이들이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취업이 된다해도 잘리지 않기 위해 또 처절하게 일해야 하는 사람들. 어디 이 시에 나오는 그 어린여자아이만이 그렇겠는가.

 

잘리지 않더라도 노후가 불안정한 사람들. 정말 이 시의 어린 여자아이처럼 살만하다 싶으면 병원에서 오라고 하는... 이제는 몸을 움직이기도 힘들지만, 치료비에 허덕거리며 살아야 하는 그런 삶.

 

지금 우리 시대에는 모든 젊은이들이(아, 모든이라는 말은 잘못이다. 금수저, 다이아몬드 수저를 지니고 태어난 아이들은 이미 다른 삶을 산다) 복이 앉을 시간도 없이 바쁘게 이리저리 휘청거리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에게 어떤 복이 앉을 수 있을까? 이런 젊은이들이 천천히 쉬면서, 복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서, 저 청년은 참 부지런해, 저 청년은 정말 열심이야, 저 청년은 무얼 해도 될 거야 저렇게 열심히 준비를 하니...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이 시에 나오는 말처럼 '죄를 짓도록' 하는 일일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런 말보다는 이들이 쉴 수 있도록, 천천히 갈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함께.. 그런 환경을 만들자고 해야 한다.

 

그건 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우리 모두가 함께 고쳐야 할 문제라고, 그러니 함께 하자고 해야 한다.

 

특히 요즘은 더... 백무산의 이 시... 너무도 아프게 마음 속에 박혔다. 이 시집은 이 시 하나로 내게는 전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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