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표의 사슬
고시홍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소설은 현실을 반영한다. 아무리 소설이 허구라고 해도 현실을 벗어날 수는 없다. 가장 극단적으로 환타지에 속하는 소설 속 내용들도 어느 순간 현실이 되기도 한다.

 

우주 전쟁을 다룬 웰즈나 해양 탐험을 다룬 베른의 소설들이 지금은 현실에 가까운 일이 되고 있기도 하니 말이다.

 

그래서 소설을 읽으면 현실을 생각하게 된다. 아니 읽으면서 소설 속에 자신이 들어가 함께 생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어느새 등장인물들과 그 장소, 그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데... 여기서 나와야만 한다. 그래야 소설을 소설로 읽게 된다. 나오지 못하면 소설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돈키호테가 되고 만다. 때론 돈키호테가 될 필요도 있지만.

 

이 소설집은 주로 4.3을 다루고 있다. 4.3을 무어라 부르는지에 따라서 이념의 좌표가 달라지기도 하는데, 그래서 그냥 4.3이라고 하자.

 

9편의 단편과 1편의 중편 소설이 실려 있는데, 단편 중에 두 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4.3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4.3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고 있는데...

 

우리에게는 숫자로 다가오는 역사적 사건들이 많은데, 앞에서부터 나열하면 3.1, 4.3. 4.19, 5.18. 6.10. 6.25, 8.15, 10.26, 12.12 등이 먼저 떠오른다. 이들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양한데...

 

이 소설집에서는 제주도 사람으로 4.3에 대한 신원을 시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등장인물들이 4.3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 자신의 운명이 달라진 사람들이니 말이다.

 

아직도 4.3에 대해서는 제대로 규명이 되었다고 볼 수 없는데... 이런 4.3을 다룬 소설 중에 많이 읽혔던 현기영의 "지상의 숟가락 하나"가 있다. 이 소설은 어린아이의 눈으로 본 4.3이라고 한다면, 고시홍의 소설집에 실린 4.3들은 어른의 눈으로 본 4.3이다.

 

물론 소설 속에서는 4.3 당시에는 어린이나 또는 젊은이였겠지만, 한참이 지난 다음에 4.3을 평가, 정리하는 입장에서 소설이 전개되기에 어른의 눈이라고 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제는 갈등이 아닌, 화해로 가야 한다는, 4.3을 품어안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소설집에 실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4.3이 끝났을까?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 '물음표이 사슬'을 보면 4.3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때는 이념 대립이라고 할 수 있다면(과연 이념 대립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이미 좌익이 사라진 이 나라에서 제주도는 또다른 갈등에 휩싸여 있다.

 

바로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다른 말로 하면 아름다운 구럼비 바위를 파괴하는 행위를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갈려 일어나는 갈등.

 

어떻게 이렇게 또다시 갈등이 반복되는지, 그런 갈등은 힘있는 자들이 아니라, 힘없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지, 소설을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강정에서도 한 가족처럼 지내던 사람들이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려 서로 얼굴도 보지 않고 지내는 장면이 이 책 제목이 된 단편소설 '물음표의 사슬'에 나오는데... 이 소설에서는 더 극단으로 장모가 사위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까지 한다.

 

이렇게 가족파괴, 공동체 파괴의 현장이 바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장면인데... 그렇게 보면 4.3은 우리나라 곳곳에서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주도 강정뿐만이 아니라, 핵발전소 건설을 두고 삼척에서도, 송전탑 때문에 밀양에서도 일어났었고, 이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전국에서 다시 사람들이 갈라져 싸우고 있지 않은가.

 

작가는 소설을 통해 4.3을 신원하려고 했는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이 갈등들은 무엇으로 풀어야 하는가?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문제를 일으킨 자들이 해결했으면 좋겠지만, 그들이 해결하는 경우는 못 봤다. 4.3의 경우만 봐도 그러니...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민중, 시민의 몫이 된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들도 바로 우리 몫이다. 문제를 일으킨 자들의 몫이 아니라. 그렇다면 우리는 이 소설집에서 4.3을 어떻게 풀어내고 있는지, 어떻게 풀어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서 읽어야 한다.

 

그래야 소설을 소설로서만 읽지 않고, 현실에서 제대로 살 수 있게 소설을 다시 현실에 가져올 수 있다. 그게 지금 우리가 할 일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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