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란 시인 돌아가시다. 아침에 신문을 보니 부고가 떠 있다.
그의 시 '직녀에게'는 노래로 불려 통일의 염원을 우리에게 알려주곤 했었는데...
교육자이자 시인으로서 우리나라가 암울했던 시기에 좌절하지 않고 빛을 보여주고자 했던 분이었는데...
이제 그분들이 시대가 지고 있다. 새로운 세대가 나와서 그분들이 미처 이루지 못한 것들을 이루어가야 하는데...
청년들이 너무 조용히 지낸다고, 순응한다고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고, 이런 그들에게는 앞이 보이게 이정표를 제공해주거나 빛을 전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지식인이라는 이름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지식인은 사회의 앞날을 걱정하고, 사회의 앞날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들 중 대부분이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기에 급급한 실정.
이러니 아직 밥그릇을 받지도 못한 청년들이 어떻게 나설 수 있겠는가. 기껏해야 아버지 밥그릇을 빼앗아 자기 밥그릇을 만들라고 하는 것이 노동개혁이라고 하는 이 시대에.
요즘은 지식인 대우도 받지 못하지만, 그의 시선집 "무등산"에는 교육에 관한, 교사에 관한 시가 많이 있다.
그 중에서, 교사에 대한 시이기는 하지만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적어도 우리 사회 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남보다 더 배웠기에, 남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기에, 남보다 더 부유한 위치에 있기에 더욱 더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그들 다음 세대에게 지녀야 할 태도라고 할 수 있는 시.
우리들의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우리들은
두 눈이 초롱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
보다 높은 곳을 향하여
이상의 고운 날개를 펴고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아이들에게
우리들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빼곡하게 들어박힌 6호 활자,
작은 행간을 따라가며
4지선다식의 메마른 지식의 조각,
사합오락의 엄포를 놓으며
일류대 들어가는 기계,
참고서 외우는 기계를 만들 것인가?
고득점으로 일류대 합격하여
검사 판사가 되고 의사가 되고
남보다 출세하고 돈을 벌어
남 위에서 떵떵거리는 출세를 권할 것인가?
부동산 투기를 배워
재산을 몇천 배로 늘이는 방법
뛰어난 경영학과 재정학
남을 속이고 곡학아세하는 방법을 가르칠 것인가?
꽃은 가르치지 않아도 아름답게 피고
갈매기는 훈련시키지 않아도
푸른 파도 위에서 멋진 곡예를 부린다
차라리 침묵을 가르치자
이 낡은 교과서, 이 어지러운 활자 투성이의
빼곡한 행간마다 어지러진 낙서의 민주주의
이 낡은 페이지를 덮고
차라리 묵념을 가르치자
눈 감고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아란 하늘 아래
자유로이 날고 있는 갈매기
한 송이 들꽃이 노을에 젖어 있는
우리들의 잃어버린 고향을 생각하자
눈과 귀가 누가 되어
보고 듣는 것이 마비되어 버린
오 아는 것이 병이 된 무거운 어깨여
아직은 두 눈이 초롱한 우리들의 아이들이여.
문병란, 무등산, 청사. 1986년. 125-126쪽.
문병란 시인이 시 중에서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던 시는 두 편. '직녀에게'와 '식민지의 국어시간'
이제 그는 하늘나라에서 통일을 염원하면서 제대로 된 우리 국어시간을 가질 수 있으련지...
암울했던 시대 우리들에게 앞을 보여주었던 시인. 이제 그는 가고, 그가 염원했던 일들은 우리에게 맡겨졌다.
삼포세대를 넘어 오포세대라고 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아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문병란 시인의 부고를 접하고, 그의 시를 다시 읽으며 생각하게 된다.
시인이 편히 잠들기를, 다른 세상에서는 분단되지 않고, 식민지도 아닌, 진정한 우리의 글을 배우고 가르치고 계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