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이 편안해 지는 시들이다.
짧은 시행들에도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고, 무엇보다도 정신없이 살아온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
세상이 각박하다고, 세상은 본래 그러하다고 막 지내면서, 자신의 감정을 억지로 억지로 억누르며 지내온 세월이, 이 한 편의 시로 눈 녹듯이 녹아버리고 말았다.
그래 눈물이 날 때는 울을 수도 있어야 해. 무언가 자신의 마음 속에 꽉 차 있던 덩어리들을 한꺼번에 쏟아낼 수도 있어야 해.
선암사, 해우소... 이름을 뒷간이라고 하는... 근심을 덜어내는 장소로써의 해우소.
그 곳에 가서 자신의 근심, 걱정, 눈물들을 모두 쏟아내고 홀가분하게 돌아올 수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눈물이 많은 이 시대에, 이 눈물을 어루만져줄 대상이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눈물이 날 때 그 눈물 속에 걷히지 말고, 눈물 속에서 허우적 거리지 말고, 눈물이 밑으로 쏙 빠지게 하는 어떤 곳... 그런 곳에 가서 눈물을 흘리고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충만으로 가득한 가을이지만, 한 편으로는 스산한 가을이기도 하다. 이 때, 정호승의 시 한 편 읽자. 그리고 마음 속에 쌓아두지 말자.
선암사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창작과비평사, 1999년 초판. 47쪽.
이런 선암사는 도처에 있다.
가을, 눈물이 나면 어디론가 가자. 가서 나를 내려놓고 오자. 새로운 나로 출발하기 위해서. 나를 받아줄 대상은 어디에나 있을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