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 된 시집을 읽다. 신경림의 "남한강"
내가 지니고 있는 시집이 94년 판인데... 이 시집을 96년에 산 것으로 되어 있다.
신경림에 관해서 관심이 많을 때, 특히 그의 민요풍의 운율에 감탄하고 있을 때 산 시집일텐데...
예전에 읽을 때도 운율에 관해서는 기가 막히다, 마치 민요를 눈으로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느낌을 지니고 있었는데... 다시 읽어도 역시 운율이 너무도 잘 드러난다.
게다가 이제는 운율만이 아니라, 이 시에 담겨 있는 민중정서들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새재", "남한강", "쇠무지벌"이라는 세 편의 장시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은 하나씩 읽어도 좋고, 이어서 읽어도 좋다.
"새재"와 "남한강"에는 연이라는 공통인물이 나오기 때문이고, "쇠무지벌" 또한 앞의 시들에서 사건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같기 때문이다.
남한강가, 아마도 충주 쯤 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진 일을 시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를 '서사시'라고 해도 좋고, '장시'라고 해도 좋다.
이야기의 인물이 있고, 사건이 있고, 갈등이 일어나는 등, 이야기가 있는 시가 바로 이런 장시인데...
조선말기 이야기를 담은, 어쩔 수 없이 의병 또는 화적떼가 되어 결국 참수당하는 '돌배'의 이야기가 '새재'이고, 그 돌배를 사랑했지만 결국은 남한강에서 주막을 차리고 돈을 벌 수밖에 없는 일제시대를 살아가는 '연이'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남한강'이다. 여기에 그 곳을 아우르는 지명인 '쇠무지벌'에서 해방 뒤에 일어난 사건을 다루는 것이 '쇠무지벌'이다.
대대로 당하기만 하던 민중들이 일어서는 장면을 다루고 있는데... 결과는?
하지만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 당하기만 하는 민중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의 힘으로 지키려는 민중들의 각성이 중요하다.
이 시집을 읽어가면 결국 밀리고밀리다 일어서고 만 민중들의 모습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민중들의 역사는 피의 역사라는 사실을, 이 시집에서 다시 느끼고 있는데...
강을 제목으로 한 작품이 많다. 강과 관련되어 삶의 모습들이 잘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김용택의 '섬진강', 신동엽의 '금강', 최두석의 '임진강'이 신경림의 '남한강'과 더불어 강을 제목으로 하는 시집이고, 소설로는 조정래의 '한강', 조명희의 '낙동강', 이기영의 '두만강', 안수길의 '성천강'이 있다. 그냥 내가 알고 있는 작품들만 한정해도 이런데... 더 찾아보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른 작품은 논외로 하고, 신경림의 이 '남한강'을 읽으면 한국현대사에서 민중들의 삶을 엿볼 수가 있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운율이 있는 시를 따라서 읽어가면서 머리 속으로는 민중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그려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