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 한겨레 신문을 집어들었는데... 1면에 사진이 보인다. 무슨 일일까? 옆의 기사를 본다.

 

신문 1면에 실리는 기사들은 사회에서 중요한 일이라고 인식되는 일인데... 국정원 해킹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제목을 달고 있는 기사에 사진까지 있으니 눈이 안 갈 수가 없다.

 

사실, 요즘은 신문을 잘 읽지 않는데... 뭐, 좋은 일이 있어야 읽지. 신문을 읽다가 오히려 마음의 파장만 깨질 뿐인데.

 

그럼에도 신문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우리나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고 싶기 때문이다.

 

'모르는 게 약'이란 말도 있지만, '아는 게 힘'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알고 맞을 때와 모르고 맞을 때 느끼는 강도는 다르니, 적어도 알면 대비를 하려고는 하기 때문이다.

 

이번 신문 1면에 실린 기사 역시 즐거운 일이 아니라 안타까운 일이다. 도대체 아직도 이런 일이,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항의행동을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돈이 걸린 소송으로 해결하는 이 사회의 모습이 씁쓸하기만 하다.

 

약자 편을 잘 들어주지 않는, 강한 자에겐 한 없이 약하고, 약한 자에엔 어마어마하게 강한 법이라는 존재를 깨닫게 해주는 기사이기도 했는데...

 

제목은 이렇다.

 

KTX 전 승무원들, 남은 건 빚뿐

"10년 싸움 허무하게 끝낼순 없어"      (한겨레신문 2015년 7웧 23일자 1면. 기사 제목)

 

왜 빚이 남았을까 했더니, 이들은 1심에서 승소해서 4년간 월급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대법원이 '대법원이 2월 26일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정규직"임을 인정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낸 뒤~' 이들에게 지급한 임금을 돌려주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해고를 당하고, 임금지급 가처분 신청을 해서 임금을 받았는데, 대법원에서 파기했으니 원천 무효, 다시 받은 임금을 뱉어내라, 그러니 근 10년간 투쟁했던 결과가 해고와 임금뱉어내기로 인한 빚더미...

 

이렇듯 노동자는 살기가 힘든데... 아직도 팍팍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데...

 

헌책방에서 발견한 김지하 시집 "황토"

 

60-70년대, 아니 80년대까지만 해도 김지하의 시는 울분에 처한 사람들의 가슴을 적셔주는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김지하는 우리나라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그런 그가 나중에는 변했다고 하지만, 그가 이미 발표한 시들은 우리들 가슴 속에 계속 남아 있는데.

 

이 시집에서 '서울길'을 읽으며, 아직도 우리 노동자들은 김지하가 '서울길'에서 노래한 현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서울길' 시와 함께 이 기사가 떠올랐으니 말이다.

 

서울길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흰 고개 검은 고개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길

몸 팔러 간다

 

언제야 돌아오리란

언제야 웃음으로 화안히

꽃피어 돌아오리란

댕기 풀 안쓰러운 약속도 없이

간다

울지 마라 간다

모질고 모진 세상에 살아도

분꽃이 잊힐까 밀 냄새가 잊힐까

사뭇사뭇 못 잊을 것을

꿈꾸다 눈물 젖어 돌아올 것을

밤이면 별빛 따라 돌아올 것을

 

간다

울지 마라 간다

하늘도 시름겨운 목마른 고개 넘어

팍팍한 서울길

몸 팔러 간다.

 

김지하, 황토, 솔. 2000년 1판 5쇄. 20-21쪽.

 

이때는 고향을 벗어나 돈을 벌어 잘 살고 싶은 마음으로 서울에 올라왔는데... 지금은 잘 살고 싶은 마음에 정규직이라는 홍보에 회사에 들어갔는데, 알고보니 비정규직이고, 그것도 고용이 보장이 잘 안되는 상태.

 

몸을 팔 수밖에 없는, 가진 것이라곤 노동력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김지하가 노래한 이 시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슬프다.

 

김지하의 시가 쓰여진 시대, 그리고 이들 노동자가 대법원에서 원심 파기 판결을 받은 시대... 아버지와 딸이 정치권력의 최고 정점에 있는 시대.

 

무엇이 변했는가. 87년 민주화 투쟁을 거쳐 왔는데... 더 정교해진 자본의 논리와 그를 반영하는 정치 논리 속에서 민중들의 삶은 제자리 걸음을, 아니 흐르는 강물에서 제 자리를 지키려는 것은 곧 뒤로 가는 것이라는 말처럼, 민중들의 삶은 뒷걸음질 쳐 오지 않았는가.

 

이제는 이 노래는 과거 속에서만 존재했으면 좋겠는데, 이런 노래가 자꾸 현재로 살아 나오면 안 되는데... 그런 생각이 들게 한 기사와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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