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부터 시작한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중심을 잡기가 어려울수록 자신을 다잡아야 한다.

 

남을 보지 말고 자신부터 보아야 한다. 우선 나를 세우고, 바로 선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이 설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나를 제대로 보아야 한다. 나를 온전히 들어내야 한다. 들어내어 드러내야 한다.

 

투명한 나를 내가 보고, 남이 보게 해야 한다. 무엇으로 나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가린 것을 없애고, 자신조차 없애 결국 자신의 투명함이 세상을 밝히게 해야 한다.

 

자신의 피, 그런 피가 불이 되고 빛이 되게 하는 일, 그것이 어지러운 세상에 주어진 '화두'라고 생각한다.

 

김영래의 "하늘이 담긴 손"이라는 시집을 읽다가, 이 '화두'란 시에 꽃혔다.

 

       화두

 

밝혀 스스로를 보기 위해

자신의 내부를 환히 들어내는 불.

 

전생(全生)의 각혈인 꽃이여.

 

김영래, 하늘이 담긴 손, 민음사,2004년 1판 1쇄. 102쪽.

 

자신의 온 삶을 걸고, 그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어 내부를 들어내고, 드러내어, 스스로를 보고, 남에게 빛을 주는 존재, 그렇게 되기 위한 치열한 정진. 그런 화두.

 

아마도 어지러운 세상에서 이런 치열한 정진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되리라. 밖으로 향하는 것이 아닌, 안으로 향해 결국 그 안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밖으로 나아가게 되는 삶.

 

그런 삶을 통해 이런 삶을 비춰주고, 이끌어 주어야 한다.  자신의 손조차 도움을 주지 못했던 손이지만, 그러나 이 손에는 하늘이 담겨 있기에...

 

   하늘이 담긴 손

 

모든 것 지나가 버린 들, 쓰러진 길 위에

채 움켜쥐지 못한 꿈을 향해

동냥 그릇처럼 놓인

탁발의 허기진 손.

가문 땅에 비로소 내리는 비에

작고 쓸쓸한 웅덩이 되어 하늘을 담고 있는.

 

어느 손도 그 손을 맞잡아주지 못했고

자신의 다른 한 손조차 그 손의 아주 오래된 기다림을

달래줄 수 없었던

 

하나의 손.

 

김영래, 하늘이 담긴 손, 민음사,2004년 1판 1쇄. 109쪽.

 

이 지경이 되어 하늘을 담기 전에, 우리 스스로 서로 서로 손을 내밀어 그 손에 하늘을 담을 수 있도록 하는 일.

 

왜 나는 이 '하늘이 담긴 손'이라는 시 제목을 '하늘을 담은 손'이라고 오독을 했을까? 수동적인 존재이기보다는 화두로 자신을 밝히고 세상을 비추는 사람은 하늘도 자신의 손에 담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일까?

 

비록 이 시 '하늘이 담긴 손'은 너무도 비극적이지만, 우리는 그런 비극을 넘어설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홀로 살지 않고 함께 살지 않는가.

 

메르스라는 중동호흡기질환으로 세상이 뒤숭숭하고, 또 몇십 년만의 가뭄으로 앞으로가 걱정이 되는 이 때, 우리 서로 함께 하늘을 담을 손을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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