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을 도서관에서 봤을 때, 시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마음에 담아 두었던 시가 있었음에도 시인을 기억하지 못하다니...

 

시인보다는 시가 기억되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자기변명을 삼긴 하지만, 그래도 시집을 보고 시인을 기억하지 못하다니... 물론 이 시가 이 시집에 실려 있는지도 몰랐으니...

 

다른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들어 공책에 적어놓았던 시였는데...

 

그 시 제목은 '마음의 도둑'이다.

 

사람의 마음을 훔친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도둑인데... 쫓아낼 수도 없는, 그렇다고 내 마음 속에 받아들여 나와 함께 하기에는 아직 거리가 있는 사람.

 

그런 상태.

 

 마음의 도둑

 

마음에 도둑이 들었나 봐

온몸 구석구석을 뒤지더니

깊이 잠들었던 살결을 일깨우더니

종일토록 나가지를 않는다

 

도둑이 들어도 정말 큰 도둑이 들었나 봐 두근두근

온몸이 두근거리는 소리에 잠들지 못하고

한밤중 어둠이 헝클러지도록 잠들지 못하고

마음은 하루 종일 서성대는데

창 밖에 가문비나무 뒤척이는 소리

바람이 발자국을 지우는 소리 문을 닫다가

별들에게 그만 내 눈동자를 들켜 버렸는데

 

가져가려면 빨리 가져가지

이토록 들쑤셔만 놓고 뒤흔들어만 놓고

가지 않는 이여

 

내 심장을 꺼내 드릴까

한 점 열에 들뜬 살점을 떼어 드릴까

내 머리카락 모두 잘라 신발을 만들어 드릴까

 

길도 보이지 않고

집도 보이지 않고

구름이 달빛을 삼킨 밤

개들도 깊은 잠에 빠져 버린 밤

아, 너무도 큰 당신이 내 몸속에 들어왔네

 

권대웅, 당나귀의 꿈, 민음사, 2007년 개정판 1쇄. 86-87쪽.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사랑에 빠졌을 때 제 맘에 들어온 사람을 밀어내지 못해, 그 사람으로 인하여 마음을 졸이고 있는 상태.

 

정말, 도둑이 들어도 너무 큰 도둑이 든 상태. 

 

이 시 사랑에 막 빠진 사람들이 읽으면 마음에 콱 들어와 박힐 것이다.

 

그런데... 이 시야 늘, 내 마음에 박혀 있다고 하더라도, 이번 시집을 읽으며, 마음을 울리는 시는 '미아리를 지나며'였다.

 

마냥 슬픔으로 다가온 시. 지금 우리나라 현실이 떠오르면서 슬픔이 차오르게 된다. 도대체 이 나라는 어디에 있을까... 나를 반겨줄 나라, 아니 나를 포근히 감싸줄 나라 말이다.

 

나는 무슨 고개를 넘어야 나를 반겨줄 나라를 만날까.

 

우리나라는 언제 누구나를 반겨줄 수 있게 될까. 우리나라를 생각하기만 해도 마음이 포근해지는 그런 때. 그런 나라를 꿈꾸며...

미아리를 지나며


이 고개를 넘으면 평화의 나라가 보일까

한숨도 눈물도 없이 낮은 처마와 더 낮은 불빛 속에

전쟁을 싫어하는 아버지와 늦은 귀가를 기다리는

허리 굽은 어머니

세상에서 돌아올 지친 아들의 자리 비워 두는

마을이 보일까

이 고개를 넘으면

내가 찾아야 할 길들

내가 만나야 할 길들

지붕 아래 따뜻한 마음 한 잔 권하며

저 밖의 나라는 만들지 말자고 만들지 말자고

낡은 신발 끌고

늦은 밤 도달한 미아리

미아리 고개를 넘으면 보인다 보여

저 추악한 빌딩 속으로 입 벌린

숱한 구원의 붉은 십자가와

지친 행상 길을 내려가는 어머니

보인다 보여

낡은 창녀촌과 만원 버스와 삼양동과

빈 라면 봉지

반겨 줄 그 무엇도 없는 나라가

보인다


권대웅, 당나귀의 꿈, 민음사, 2007년 개정판 1쇄. 82-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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