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키와 예술 - 파리코뮌에서 베를린장벽의 붕괴까지
앨런 앤틀리프 지음, 신혜경 옮김 / 이학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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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경우 한 가지. 무정부주의로 번역하는 경우에 질서를 무시하는 혼동과 파괴를 추종하는 집단이라는 생각. 또 한 가지는 아나키스트는 테러리스트라서 테러를 맹종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제시대 무정부주의로 번역하는 바람에 많은 오해가 있었고, 또 그들이 테러활동을 한 바람에, 여기에 우리나라에서 영화까지 만들어지는 바람에 그들은 폭력주의자로 낙인 찍히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나키즘이 잘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한 번도 권력을 잡은 적이 없다는 점이다.

 

권력을 부정하는 그들이 권력을 잡을 수는 없는 일. 권력 추구가 아니라 자율과 자치, 협동을 추구하는 그들이기에 정권을 잡고, 자신들의 생각을 강요한다는 일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조직의 결정을 따르라는 말이 통할 수 없는 사상이 아나키즘이기에, 이들은 정치계에서 한 번도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 그 결과가 권력을 쥔 집단에 의해 오해되거나 축출되거나 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 들어가는 길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에 아나키스트가 얼마나 될까? 아나키즘을 추구하는 사람들, 그런 집단들, 그리고 아나키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아나키즘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아나키즘을 추구하는 예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자율, 자치, 협동은 예술의 기본이 아니던가. 예술은 그 본성상 아나키즘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특정한 권위를 부정하고, 개인의 자율성을 최대화하려고 하며,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상들을 인정하고 공존하도록 하는, 또 작업을 할 때 혼자만이 하기도 하지만, 함께 하는 상호성이 중시되기도 하는 그런 활동, 그것이 바로 예술 아니던가.

 

이렇게 기본적으로 아나키즘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예술이 아나키즘 사상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를 살펴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서양에서 나온 책이라 우리나라 아나키즘과 예술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지만 이 책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아나키즘과 예술 관계를 유추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은 아나키즘과 예술의 관계를 1871년 파리 코뮌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때 나오는 작가가 바로 쿠르베이다. 쿠르베를 중심으로 프루동과 졸라의 논의를 살펴보면서 아나키즘과 예술의 관계를 설명해 나가고 있다.

 

그 다음에는 신인상주의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미술에 관한 책을 보면서 신인상주의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점묘법을 드는데, 그 점묘법이 참 기발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나키즘과 관련성을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아, 했다.

 

점묘법. 독립된 각 점들이 주변의 점들과 관계를 맺을 때 자기 나름의 색을 띠게 되는 표현법. 그렇다. 아나키즘 역시 독립된 개인들이 자율적인 생활을 하지만, 그런 자율적 개인들의 연합으로 아나키 사회라는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연결이 되는구나. 단지 예술가들이 아나키즘 사상을 지니고 있었다, 또 아나키즘 사상으로 당대 사회를 표현했다를 떠나서, 미술 표현기법 자체가 아나키적 요소를 지니고 있음도 깨닫게 되었다.

 

여기에 이어서 러시아 혁명기와 공산당 독주체제의 예술을 이야기하는데, 결국 아나키즘은 러시아에서 사라지게 되고, 예술 역시 사라지게 된다.

 

다름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에서 아니키즘은 허용될 수 없는 다양성의 사상이었기 때문일테고, 자연스레 그러한 예술 역시 창작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공은 미국으로 넘어간다. 미국에서도 역시 아나키즘 사상이 꽃필 조건이 많았기 때문이다. 인종차별, 베트남 전쟁 반대 등으로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상들이 난무할 때 역시 그 조류에 따른 예술도 나타나게 된다.

 

하여 미국에서 이루어진 6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르는 과정에서 아나키즘과 예술이 어떻게 관련이 되는지를 이메일을 통한 인터뷰, 작품을 통한 소개 등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아나키적인 예술이 현재에도 계속될 수 있음을, 아니 계속되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나키즘이라는 말만 쓰지 않았을 뿐이지, 아나키적 예술이 많이 창작되었다.

 

가끔은 정권의 탄압을 받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아나키적 예술은 사그러지지 않고 더 타오를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아나키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억누르고 짓밟으려는 권력에 저항하는 사상, 그것이 아나키이고, 예술은 자신의 생각을, 자신의 표현을 남에게 맡기지 않고 자신 스스로 판단하여 표현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예술이고, 아나키적 예술이기 때문이다.

 

무언가 억압당한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수록 아나키 예술은 더 활발히 이루어진다. 이미 충분히 자유로운 사회라면 아나키다 뭐다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고, 압력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반발 역시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아나키적인 예술이 많이 나오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얘기는 그 사회에 억압적인 요소가 많다는 얘기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 책은 그래서 아나키와 예술의 관계를 파리 코뮌부터 1990년대까지를 역사적으로 살피고 있지만, 지금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거울 역할을 하기도 한다고 할 수 있다.

 

한 번 주위를 살펴보자. 지금 우리 예술에서 이런 아나키적 예술이 얼마나 있는지.

 

덧글

 

이 책에서 예술이라고 했지만, 영어로는 Art이고, 또 주로 미술가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미술 관련 분야에서 아나키즘과의 관련은 잘 알 수 있지만, 다른 예술 분야에 대해서는 잘 알 수가 없다. 아마도 미술관련 이야기를 확장해서 다른 분야로 적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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